〈 210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12)
수진이의 몸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우리는 처음으로 진수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왔다.
진수의 100일 잔치가 곧 있을 예정이라 진수의 몸에 맞는 한복을 준비해볼 생각이다.
처음엔 돌잔치만 좀 크게 해보고 가볍게 나와 수진이 둘이서만 할 생각이었는데 아버지가 극구 반대하셨지.
아버지가 100일 잔치를 그렇게 하는 녀석이 어딨느냐며 전화로 버럭 소리를 치실 때는 조금 놀랐다.
몸이 조금 움찔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손주의 100일 잔치에 본인을 불러주지 않아서 섭섭하다고 화를 내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 이건 어때요?"
"괜찮네."
수진이는 책자에 실려있는 사진 중에서 한 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100일치곤 덩치가 커다란 게 장군감이라는 생각이 드는 아이였다.
외모도 괜찮아.
하지만 우리 진수만큼은 아니지.
우리는 점원을 부른 다음 이 사진에 찍힌 한복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고 점원은 즉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복을 준비하면서 몇 번이고 수진이와 아이를 힐끔거리는 점원.
수진이가 엄청 동안으로 보이는데 아이를 안고 있으니 몇 살일까 궁금한 걸지도 모른다.
내가 점원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 시선을 느낀 점원이 헛기침하며 작게 웃는다.
"아내분이 정말 미인이시네요. 아이도 아내분을 닮아서 참 예쁘고."
"네. 세상에서 제일 미인이죠."
내가 그리 말하자 점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진수가 입을 한복을 가져왔다.
"정말... 밖에서는 자중 좀 하세요. 부끄럽잖아요."
그리 말하며 얼굴을 붉히는 수진이.
귀엽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미인이네.
"진수야~ 옷 갈아입어요~"
수진이는 아주 천천히 진수의 옷을 벗기고 한복을 입혔다.
진수는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에도 신기하게 울지 않았다.
우리가 키스하려는 순간에는 고막이 찢어지라 울부짖었으면서 또 이럴 땐 조용하다니.
알 수 없는 녀석.
"와! 진짜 잘 어울려요! 선생님은 어때요?"
"그러네. 역시 우리 진수는 미남이네."
나와 수진이는 평소처럼 진수의 모습을 보며 잘 생겼다니 귀엽다니 하며 입을 놀렸다.
수진이는 한술 더 떠서 휴대폰을 꺼내 한복을 입은 진수를 연신 찍어댔고 나는 수진이에게 휴대폰을 건네받고 수진이가 진수를 품에 안은 사진도 한장 찍어주었다.
그러자 점원이 눈을 크게 뜬 상태로 뭔가 중얼거렸다.
아주 작지만 선생님... 선생님...? 이런 느낌으로 중얼거린 기분이었다.
예전이면 신경을 썼을지 모르지만 이젠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면 바퀴벌레 부부로밖에 안 보일테니까.
나는 곧장 지갑을 꺼내 진수의 한복 계산을 마쳤다.
진수가 저리 조용히 있을 때 얼른 일을 끝마쳐야 한다.
처음이라 조용히 있는 거지 몇 번이고 옷을 갈아입히면 귀찮고 짜증 난다는 감정을 울음으로 토해낼 것이 분명했으니까.
울어야 할 때만 우는 아이라도 안 우는 것은 아니니까.
"안녕히 가세요!"
점원의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나왔다.
"자, 그럼 얼른 돌아가요. 아이한테는 자외선도 별로 안 좋다고 하는 거 같으니."
"그러자."
자외선만의 문제도 아니지. 미세먼지도 문제다.
아이를 기르기엔 이 나라는 너무 환경이 안 좋아.
될 수 있으면 아이의 몸이 튼튼해질 때까지 집에서만 기르고 싶다고 생각될 정도다.
하지만 거의 100일이 다 되어 외출을 한 진수의 표정을 보니 그런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만 남겨둬야지 싶다.
저리 눈을 부릅뜨고 세상의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고 고개를 사방으로 돌리려고 발악하니 말이다.
진수는 호기심도 왕성한 아이구나.
"또 준비해야 할게 뭐죠?"
"나머진 내가 알아서 준비할게. 그동안 집에서 진수랑 놀아주고 있어."
"그래도 돼요?"
"아이 보는 게 더 힘들지. 그리고 아이는 밖에 오래 돌아다니면 별로 몸에 안 좋다잖아. 집에 있어."
"네."
나는 수진이와 진수를 집으로 데려다준 다음 100일 준비를 위해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너무 초라하게 해서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들을 정도만 아니라면 충분하다.
돌잔치는 친구들도 불러서 조금 시끌벅적하게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
진수의 100일 잔치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100일 잔치인데도 평소에 안 입으시던 정장까지 입고 찾아오셨다.
그 모습을 보자 입꼬리가 멋대로 씰룩여서 표정을 관리하는 게 참 힘들었다.
아버지는 진수를 보자 얼굴이 화악 밝아지며 진수를 품에 안고는 "우르르르 까꿍!" 하는 소리를 내셨다.
진수는 아버지가 그리 익숙하지 않을 텐데도 울면서 짜증을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우! 아!" 소리를 내며 꺄르르 웃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곤 1초 정도 넋이 나가셨다.
그리곤 정신을 차리시곤 진수를 굉장히 다정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아버지도 아이 앞에서는 저런 표정을 지으시는구나.
완전히 넋이 나가셨다.
하긴, 진수가 좀 귀엽고 잘생기긴 했지.
수진이가 미인이니 그럴 수 있지.
아버지는 어머니가 곁에서 진수를 안아보고 싶다는 느낌을 팍팍 풍기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진수를 품에서 놓을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손주는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걸까.
어머니에겐 비교적 양보를 많이 하시는 아버지가 지금은 저리 독점을 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버지가 진수를 품에서 놓은 것은 그로부터 1분 정도 시간이 더 지난 다음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진수를 건네받은 다음 유아어를 하며 진수의 옹알거림을 받아주셨다.
이미 40년이나 된 옛날에 겪어보신 일인데도 저 자연스러움.
이게 어머니라는 존재겠지.
아버지는 조금 어색하셨는데 말이야.
그리 생각하며 아버지를 바라봤더니 아버지는 조금 전까지 진수를 품에 안고 있었으면서 다시 진수를 안고 싶다는 느낌을 팍팍 풍기며 어머니가 안고 있는 진수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진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옹알이를 하다가 아버지의 시선을 느꼈는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며 "아으아, 아!"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게 기회라고 생각하셨는지 헛기침을 하시며 "우리 진수가 할애비를 많이 좋아하는가 보구나." 소리를 하시며 어머니에게 손을 내미셨다.
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으시며 아버지에게 다시 진수를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진수를 안아본 시간을 아버지의 절반조차 되지 않았는데.
아버지...
아버지의 주책은 장모님이 찾아오실 때까지 이어졌다.
장모님과 처남이 찾아온 다음엔 다시 좀 점잖은 모습으로 돌아가셨으니까.
나와 수진이에게 주책을 떠시는 모습을 보이는 건 괜찮다는 걸까.
하긴, 내가 보는 소설에 이런 건 무협이 아니니 뭐니 하는 댓글을 남기고 천마가 남자를 이겨 먹으려고 들어서 아내로는 실격이니 뭐니 하는 댓글을 남겼다가 탈룰라를 당하시고 정통무협이라고 서명까지 하신 상황이니 차릴 체면이 없을 수도 있지.
이제 올 사람들은 다 왔고 시간도 되었으니 수진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수진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진수의 옷을 갈아입혔다.
한복을 입히고 자리에 앉힌 다음 100일 잔치가 시작되었다.
100일 잔치는 결혼식처럼 준비할 게 많지 않아서 생각보다 수월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결혼식을 올릴 때보다 더욱 행복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손주가 그리 좋으셨던 걸까.
죄송할 따름이다.
한 명뿐인 아들이란 놈이 40이 다 되도록 아이도 하나 안겨드리지 못해서.
아마 당신들의 삶에 손주란 없으리라고 생각하셨겠지.
그렇다고 나에게 손주를 낳으라고 강요를 할 수도 없었으니 답답하셨을 거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소 찍지 않으시던 사진을 저리 찍으시니 시간이 되면 종종 진수를 데리고 찾아봬야겠다.
안 그러면 섭섭하다고 전화로 잔소리를 하실 거 같은 기분이다.
진수의 100일 잔치가 진행되면서 가장 조용했던 건 처남이었다.
평소엔 가장 시끄러운 처남인데 지금은 굉장히 조용했다.
내가 처남을 바라보니 처남은 머리를 긁적이며 우리 부모님을 힐끗 본 다음 웃었다.
아무래도 우리 부모님과 함께 있는 건 조금 어색하니 사리고 있는 모양이지.
아니, 저리 좋다고 아이 옆에 딱 붙어서 떠드는 장모님과 부모님에게 질렸는지도 모른다.
진수의 100일 잔치가 끝이 나고 장모님과 처남이 집으로 돌아갔지만,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다.
아니 그뿐이랴?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이곳에서 자고 가겠다는 의지가 팍팍 느껴졌다.
아버지의 모습을 힐끗 바라본 다음 어머니를 바라보니 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으셨다.
아무래도 부담이 되면 말하라는 느낌이다.
나는 수진이를 돌아보았다.
수진이가 부담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돌아가시라고 해야지.
하지만 수진이는 역시 수진이었다.
"방도 남는데 주무시고 가시면 되잖아요?"
수진이의 자고 가라는 이야기에 입꼬리가 씰룩거리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오랜만에 참으로 즐거운 표정으로 웃으셨다.
진수가 저리 좋으시면 또 다른 손주를 보게 될 땐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궁금하다.
나는 진수를 눈에 넣어도 안 아파할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시는 아버지에게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드리겠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묵고 가실 생각이셨나 봐.
수진이가 부담된다고 그냥 돌아가시라고 했으면 어쩔뻔했나.
나는 수진이에게 살짝 귓속말을 했다.
"고마워 수진아."
"뭘요. 당연한 건데. 먼 곳에서 오셨잖아요."
그리 먼 곳은 아니지.
그래도 진짜 고맙다.
신혼... 아니, 이젠 신혼은 아닌가.
아무튼, 독립해서 사는 부부가 사는 집에 시부모가 찾아오면 굉장히 꺼리는 아내분들이 많을 텐데 수진이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그 사실이 고마웠다.
"내가 결혼은 진짜 잘했지."
"그걸 지금 아셨어요?"
"아니, 늘 그런 생각뿐이야."
그리 말하자 수진이는 내 옆구리를 손으로 슬쩍 찌르면서 배시시 웃었다.
"저도 그래요. 육아가 그리 죽을 맛이라던데 전 생각보다 할만한 거 같아요. 다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주셔서겠죠?"
말도 참 예쁘게 하네.
내가 결혼은 진짜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