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9)
수진이의 출산 예정일이 1주일 남았을 무렵.
수진이의 진통이 시작되어 우리는 서둘러서 병원으로 향했다.
수진이는 병원에 도착하는 내내 죽을상을 하고 있었고 가쁜 숨을 쉴 뿐이었다.
나는 수진이에게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추천했다.
수진이는 꼰대면서 왜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추천하느냐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인은 반드시 자연분만으로 낳을 거라던 수진이.
제왕절개는 흉터도 남고 장모님이 수진이와 처남을 낳을 때 자연분만으로 낳았으니 본인도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수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었지만, 이것만큼은 내 의사를 따라주길 바랐다.
하지만 수진이는 괜찮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혹시 본인이랑 다시 성관계를 할 때 본인의 배에 난 흉터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던가.
요즘은 의술도 많이 발달해서 그런 흉터도 잘 티가 나지 않을 테니 수술을 받으라고 했건만 기어코 자연분만을 택했다.
두려웠다.
수진이의 몸에 한 줄의 상처가 새겨지는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출산의 고통에 목이 쉴 정도로 비명을 지를 걸 알고 있으니까.
이 나이가 되면 남자들도 출산의 과정과 고통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게 된다.
나는 취미가 독서였던 일도 있어서 그 내용을 조금 더 상세하게 알고 있는 편이고.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출혈량과 고문을 당해 죽는 사람과 같은 처절한 비명.
난 수진이가 겪게 될 고통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동시에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미안했다.
수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니 수진이의 진통이 다시 잦아들었다.
이렇게 몇 번의 진통이 있은 다음에 본격적으로 출산이 시작된다.
나는 수진이의 입원절차를 마친 다음 부모님과 장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수진이와 함께 병원에 온 사실을 알렸다.
그리 통화가 끝나 수진이가 입원한 방에 들어오니 수진이는 아까보단 편안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지금은 좀 괜찮아요. 아깐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본인의 배에 손을 올려두고 한숨을 쉬었다.
아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아픔일 테지.
생리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고 하니.
미안했다.
아픔을 나눌 수만 있다면 수진이가 겪을 아픔을 대신 겪고 싶을 정도로.
"지금이라도ㅡ"
"쉿. 이미 제 마음은 다 정해졌어요. 아, 그리고 분만 과정에 가족이 들어와도 된다는데 다들 들어오지 마세요."
"왜?"
"선생님은 독서가니까 아시잖아요. 들어오지 마요."
"혼자서 괜찮겠어?"
"괜찮아요. 그러니까 밖에서 차분하게 기다리세요."
요즘은 출산과정에 가족이 함께 들어갈 수 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출산과정에서 겪는 충격에 남편과 아내가 섹스리스 부부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지.
아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나 출산을 겪으며 그곳에서 아이가 나오는 모습이나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면 졸도하는 남편도 있다던가.
솔직히 두렵기는 했으나 난 수진이가 같이 와달라는 이야기를 했으면 반드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진이는 혼자서 싸우는 것을 택했다.
나는 그저 수진이가 출산을 무사히 끝내길 빌 뿐이다.
***
수진이가 출산을 위해 수술실로 들어간 것은 입원하고 5일 차가 되던 날이었다.
수진이는 가쁜 숨을 쉬며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고 곧 수술중이라는 표시에 불이 들어왔다.
나는 부모님과 장모님에게 수진이가 출산을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음을 알렸다.
수진이의 수술이 시작되고 초조하게 다리를 떨며 수진이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상했다.
수진이가 임신했을 땐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것만 같은 행복함을 느꼈다.
수진이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며 안정기에 들어가고 아이의 성별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곧 태어날 아이와 같이 놀아줄 생각에 싱글벙글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저 저 수술실에서 비명을 지를 수진이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저 두려움이 앞섰다.
수진이는 혹시 모를 일을 대비에 임신 중에도 열심히 운동을 했다.
입덧이 끝난 다음엔 영양사처럼 태아와 산모를 위한 균형 잡힌 식단까지 조사하며 너무 과한 영양을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지금의 수진이는 운동선수만큼은 아니어도 또래의 여자들보단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수진이가 아이를 낳으며 혹시 잘못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다시 사라졌다.
초조했다.
누구라도 좋다.
얼른 누가 와서 옆에 있어야 이 부정적인 생각이 좀 환기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약 30분이 지나고 병원에 도착한 사람은 장모님도 부모님도 아니었다.
"처남?"
"여사님은 오늘 오후에 근무셔서 제가 대신 왔어요."
처남은 그리 말하며 나에게 물을 건넸다.
"괜찮을 거에요. 고년이 그렇게 독한데 아이 한두 명은 쑥쑥 하고 낳지 않을까요?"
처남은 그리 말하며 나보고 화장실을 좀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처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들어와 세면대에 있는 거울을 보니 왜 처남이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했는지 알겠다.
근심과 걱정을 얼굴에 녹여낼 수 있다면 딱 이런 얼굴이었을 테니까.
평소보다 핏기가 없는 얼굴.
나는 물을 틀어놓고 세면대에 손을 얹은 상태로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몇 번이고 되 내였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수진이는 강한 아이고 분명 건강한 아이를 낳을 거니까.
나는 웃으면서 수진이에게 건강한 아이를 낳아주어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된다.
세면대에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찬물로 세수한 다음 다시 처남이 기다리는 대기실로 향했다.
처남은 수진이가 애를 쑥쑥 낳을 거라고 한 사람치곤 다리를 덜덜 떨며 초조한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역시 말은 가벼워도 그 마음이 가볍지는 않은 처남다운 모습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처남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처남은 내가 옆에 앉고 나서야 나를 눈치챘는지 몸을 살짝 떨었다.
"걱정돼?"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죠."
처남은 그리 말한 다음 한숨을 쉬었다.
신기했다.
조금 전까진 굉장히 불행한 일들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지금은 조금 걱정이 되는 정도가 되었다.
수진이와 있으면 항상 장난을 치던 처남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가끔 버럭 하고 화를 내고 싶다가도 옆에서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주면 조금은 기분이 풀리는 그 감정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초조하게 다리를 떨다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팔짱을 낀 상태로 검지로 팔뚝을 툭툭 두드리며 수술중이라는 표시에 불이 꺼지길 기다리는 처남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에 여유가 조금은 찾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사이좋게 다리를 떨며 얼른 수진이의 출산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수진이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1시간 30분가량의 시간이 지났을 때 부모님이 찾아오셨다.
1시간 30분 만에 이 병원을 찾아오실 정도라면 혹시 몰라서 매일같이 병원으로 곧장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전화를 받은 다음 바로 풀 엑셀을 밟아야 한다.
부모님도 나와 별반 차이가 없으셨구나.
처남과 부모님은 약간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고 어머니는 나의 어깨를 살짝 어루만져주시며 괜찮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셨다.
어머니는 내가 몇 살을 먹든 부모로선 아이라는 말을 꺼내셨었지.
그때만 해도 다 큰 어른을 애 취급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어머니가 어깨를 살짝 어루만져주시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두려움과 막막함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수진이가 수술실에 들어간 건 오후 4시경.
현재 시각은 오후 6시.
이제 슬슬 수진이의 출산이 끝나야 할 무렵인데...
왜 아직도 끝나지 않는 걸까.
"헉, 헉, 헉..."
오후 6시에서 10분가량이 지난 시간이 되자 장모님이 도착하셨다.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일을 끝내고 굉장히 서둘러서 뛰어오신 모양이다.
"수진이는?"
"아직 이요."
"하아, 하아, 후우..."
장모님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정돈한 다음 우리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셨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오는 염주.
수진이가 나와 처음으로 연인이 된 다음 날 선물해준 염주다.
나는 염주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신이나 부처를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런 존재들을 믿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 기분이다.
신이나 부처가 있다면 수진이를 도와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아니, 부탁합니다.
내 간절한 소원이 닿았을까.
수진이가 들어간 수술실의 불이 꺼졌다.
그리곤 마스크를 쓴 간호사가 나와 수진이의 보호자를 찾았고 우리는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당황한 간호사가 눈을 껌뻑이다가 수진이의 출산이 무사히 끝났음을 알렸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간호사가 오랜 전쟁에 시달린 국민에게 전쟁이 끝났음을 알리는 사자와 같은 존재로 생각되었다.
아니, 신의 사자와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는 간호사를 향해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바보 같다.
왜 고맙다는 말이 나오는지는 모르겠는데 그저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5번 정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다음 서둘러서 수진이에게 향했다.
수술실에 들어서자 느껴지는 피비린내.
나는 그 냄새의 출처를 향했다.
그곳엔 수진이가 흘렸을 것으로 예상되는 피를 닦은 천이 가득 쌓여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고통을 받은 것은 수진인데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뭔가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어 마음을 다잡고 수진이를 바라봤다.
수진이는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품에 아이를 안고 있었다.
평소보다 창백해 보이는 얼굴.
이 작은 아이가 출산하며 겪었을 아픔을 생각하니 그저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무사히 아이를 낳아줘서 고마웠다.
"흐으, 다들, 오셨어요?"
수진이는 우리를 바라보며 아주 연약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결국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선생님이 왜 울어요?"
"안 울어."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눈가를 만진 다음에 수진이가 안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눈매가 똘망똘망하고 조금 쭈글쭈글한 모습.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눈썹이랑 코가 나를 좀 닮은 것 같다.
"눈썹이랑 코가 아빠랑 판박이네~"
수진이는 장군이 아니, 진수를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부모님과 장모님, 처남이 생각도 비슷했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다.
아, 아아...
저 아이가 나의 아이라니.
그저, 그저 신기했다.
저 작고 연약한 존재가 나와 수진이의 아이라니.
감사합니다.
천지신명님, 부처님, 하나님, 기타 등등 신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