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7)
"진수는 어때요?"
"...니가 좋다면 그렇게 하는 거지."
"별로예요? 제 이름에서 한 글자, 선생님 이름에서 한 글자인데."
아, 그런 의미였구나.
난 또 이름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본인 이름을 거꾸로 붙인 줄 알았다.
"진수진수진수... 어?"
역시 깊이 생각해보고 꺼낸 이름은 아닌지 내가 생각했던 바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수진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가 성의 없는 이름을 지었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하는 걸까.
나는 수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 수진이의 부풀어 오른 배에 손을 올렸다.
"김진수, 괜찮네."
"괜찮아요?"
수진이는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꾸지람을 듣기 전의 아이처럼 내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어왔다.
아이의 이름은 개명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 그 아이와 함께 해야 한다.
개명조차 상당히 번거로운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고 말이다.
이름이 특이하면 학교에서 부끄러운 별명으로 불리거나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는 등 생각보다 엄청 중요한 부분이지.
그러니 음양오행을 신경 쓰거나 작명소를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수진이가 더 신경 쓰인다.
김진수가 나쁜 이름도 아니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애초에 수진이는 나와 본인의 이름을 반반 섞은 이름이라고 했으니까.
"진수 엄마라고 부르면 헷갈리겠네."
"그게 뭐예요?"
"진수진수진수진수진수 엄마."
수진이는 내 장난에 역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새로운 이름을 준비해본다고 했지만, 몸이 무거워서 연재하던 소설을 휴재까지 하는 마당에 다른 부분에 신경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수진이를 놀리기 위해 한 말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 그게 무슨 뜻인데요?"
수진이는 살짝 인상을 쓰면서도 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무슨 뜻이냐니.
별로 특별한 뜻은 아닌데.
"난 진수 엄마라고 안 부를 거라고. 항상 부인이나 여보나 수진이로 부를 거야."
"응?"
수진이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내 뜻이 잘 전해지진 않은 모양이다.
그럼 굳이 설명하는 것도 부끄러우니 그냥 넘겨버려야지.
"그런 게 있어."
여자와 결혼을 하고 배우자를 땡땡 엄마라고 부르는 행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호칭은 자신의 배우자에게 엄마로서 해야 할 역할을 강요하는 느낌이다.
나는 수진이를 그렇게 볼 생각도 없고 볼 수도 없다.
아직도 이렇게 어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아이의 엄마로서 취급한단 말인가.
수진이가 아이를 낳고 엄마라고 불리는 존재가 되더라도 아직 20대에 불가할 텐데.
"아, 그런 뜻이구나."
수진이는 내가 한 말을 몇 번 곱씹더니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으이구~ 이 버터남!"
그렇게 말하면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온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능글맞다느니 느끼하다느니 버터남이라느니 하는 말을 해오는데 그 씰룩이는 입꼬리는 어떻게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수진이가 내 얼굴을 보고 내가 뭔 생각을 하는지 대강 이해하는 것처럼 나도 수진이의 표정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강 보인단 말이지.
수진이는 내 얼굴이 어떤 표정인지 종종 말해오지만 난 굳이 수진이의 표정을 지적하지 않는다.
이미 40년에 가깝게 이리 살아온 난 바꿔보려고 해도 바뀌지 않겠지만, 수진이는 다르니까.
기분이 좋을 때마다 콧노래를 흥얼거린다든지 입꼬리가 씰룩인다든지 하는 그 작은 동작들이 내 입방정에 사라지는 것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
***
수진이의 출산 예정일이 앞으로 8주 앞으로 다가왔다.
수진이는 배가 뭉친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었는데 요즘은 특히나 더 그런 증상을 많이 보인다.
산부인과에는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지만 지금 이 시기는 조산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굉장히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확실히 남편이 회사를 간 상황에서 진통이 시작된 아내들은 굉장히 큰일이지 싶다.
다행히 나는 항상 수진이를 곁에서 돌봐주니 별로 큰일은 아니다.
지금 수진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디 간지러운 곳은 없으신가요?"
"넹~"
수진이의 아름다운 긴 생머리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수진이를 눕히고 머리를 감겨주기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이리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긴 머리를 감겨주는 건 큰일이지만 세미롱은 내 손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배가 불러와서 몸을 움직이는 것에 굉장히 어려움을 호소하는 수진이는 씻는 것조차 굉장히 힘겨워했다.
섹스를 한 다음엔 항상 기진맥진한 상태임에도 어떻게든 욕실에서 씻고 싶어 하던 수진이가 머리를 이틀에 한 번씩 감기 시작한 것을 보면 얼마나 불편한지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머리를 감는 것도 그리 힘들어하는데 샤워는 어떻겠는가.
나는 수진이의 손발이 되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수진이는 그걸 굉장히 싫어했다.
내가 아무리 사랑스럽게 배를 쓰다듬어도 배가 볼록 나온 모습을 나에게 보인다는 것이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데 말이야.
"후후, 이제 미용사 하셔도 되겠어요. 엄청 능숙하신데요?"
"그래. 내가 알파 메일이긴 하지."
"선생님은 가끔 툭툭 튀어나오는 헛소리만 없으면 알파에요."
"그럼 내가 항상 무뚝뚝하게 할 말만 하는 사람이면 어때?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가 그리 말하자 수진이는 미간을 찌푸린 상태로 한참을 끙끙이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선생님은 지금이 알파에요."
"그지?"
수진이와의 관계에 관해 썼던 소설을 읽으면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다시 한 번 되뇌게 된다.
그때와 비교하면 수진이가 피식피식 입꼬리를 씰룩이는 농담을 하는 지금의 내가 더 매력적인 남자일 거라고 믿는다.
"선생님은 그거에요."
"뭔데?"
"유행 따라 하려다가 삑사리 나는 아저씨."
이 자식이...
내가 비록 40이 다 되었지만, 마음만은 20대인데.
내 마음에 이리 스크래치를 내다니 나쁜 녀석.
"그래도 뭔가 바보 같아서 귀여워요."
그리 말하면서 히죽이는 모습을 보니 입 밖으로 나오려던 불평이 다시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건 뭐 거의 아웃파이터다.
연신 잽을 날리면서 신경을 살살 긁다가 다가가려 하니 애교를 섞은 눈웃음이라는 이름의 카운터를 먹여온다.
수진이와의 대화는 대부분 그렇게 끝이 나버린다.
그래. 나와 수진이의 관계는 흔히들 말하는 낮져밤이다.
내가 평소에 3대 7정도로 진다면 밤에는 9대 1정도로 이기는 그런 관계.
하지만 수진이의 임신이 있은 다음부턴 그런 구도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거의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다.
"삐졌어요?"
"아니."
평소에 3대 7과 9대 1이면 내가 12대 8로 이기고 있었으니 지금 3대 7로 몇 번 져주는 일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야지.
그게 부부관계라고 생각해.
"지금 무슨 생각 하세요?"
"수진이가 복학하고 또 휴학해버리는 미래를 생각하는 중이야."
"피임해야겠다."
"야."
"진심이에요. 대학은 졸업해야 할 거 아녜요?"
뭐... 맞는 말이긴 하다.
아쉽네.
"참고로 또 어떤 변태 같은 생각을 하셨을까?"
"뭐가 또 변태야?"
"캠프장이랑 계곡에서 하자고 덮쳐오는 사람이 변태가 아니면 뭐에요? 오, 오줌싸면 좋아하고..."
사랑하는 여자가 내 테크닉에 이성을 잃고 오줌을 지리면 다들 좋아하지 않나?
내가 변태인가.
자꾸 변태라고 들으니까 진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진짜 무슨 생각 했어요?"
"아니, 뭐, 대단한 건 아닌데."
"선생님 특) 이런 말로 우물쭈물 거리면 항상 뭔가 대단한 게 나옴."
"수유대딸 해달라고."
"악!"
내 부드러운 손길이 기분 좋은지 반쯤 눈을 감은 상태로 싱글벙글 웃고 있던 수진이는 나의 작은 욕망에 접하자 눈을 부릅뜨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야 이 변태야!!!"
"아니 왜?"
"변태 변태 개변태!!!"
변태라며 소리를 친 수진이는 숨을 헉헉거리다가 배가 또 뭉쳤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배에 손을 얹었다.
나는 수진이의 변태소리를 몇 번 입안에서 되 내였다.
"아니, 저번에는 해줬잖아?"
저번에는 수진이 마망이 수유대딸이라고 맘마 줘 해보라며...
"그런 장난이랑 진짜로 모유를 마시고 싶다는 거랑 같아요?! 진짜 완전 변태야!"
변태라는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다.
그래도... 수진이 마망의 모유 맛이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으니까.
"수진이 마망. 맘마 줘."
"아, 진짜 미쳤나 봐."
수진이는 내 세상 진지한 눈빛에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전 진짜 두려워요."
"뭐가?"
"언젠가 선생님이 관장약이라도 사 와서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이야기를 꺼낼까 봐요."
"내가 그 정도로 변태는 아니야."
사실 좀 호기심이 있긴 한데 순간의 호기심으로 수진이에게 어떤 병이 생길지 모를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수진이의 머릿속에선 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변태라는 건 잘 알겠다.
"우리 집엔 애기가 두 명이나 있네. 에휴."
두 명이라니 세 명인데.
"수진이 마망. 물 온도는 따뜻해요?"
"그랭 쭌수야. 물이 따뜻해~"
수진이의 혀 짧은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헹궈준 다음 머리에 수건을 감아 머리를 말려주었다.
수진이는 아주 느긋하게 몸을 일으킨 다음 내 손을 잡고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고마워요. 선생님 덕분에 개운해졌어요."
"그래."
"고마워 쭌수야~"
"마망, 자꾸 그러면 맘마 쭈쭈 할 거야?"
그리 말하자 그제야 자신의 가슴을 양손으로 가린 상태로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수진이.
정말로 덮쳐오면 어쩌지 하는 그 불안한 눈빛을 바라보니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내가 4대 6으로 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