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4)
수진이가 임신 안정기에 들어간 순간부터 수진이는 슬쩍슬쩍 장난을 쳐오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이 이젠 해도 된다는데요?"
그리 말하면서 내 허벅지를 슬쩍슬쩍 만져온다.
아무래도 내가 저번에 말했던 절대로 하지 않겠다던 말을 시험해보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부분은 참 여자 같다.
헤어지자고 말하고 남자의 사랑을 시험하는 여자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여자들과 다른 점은 내가 이대로 불이 붙어 수진이를 침대에 눕히고 섹스를 하자는 이야기를 꺼내도 웃으면서 받아줄 거란 점이 다르겠지.
"내가 지금 수진이랑 냥냥하면 우리 장군이가 여자 여럿 후리고 다니는 후레자식이 될 거 같으니 참아야지."
수진이는 내 말을 듣더니 씨익 웃고는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왔다.
그리 내 머리를 만지던 수진이는 이내 본인의 머리카락에 시선을 주었다.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뭔가 고민에 빠진 느낌이다.
"왜?"
"아니, 뭐 별건 아닌데요. 머리 좀 자를까 싶어서요."
별것 아닌 게 아닌데? 굉장히 중대사항이다.
수진이의 머리카락은 윤기가 흘러 손으로 만질 때면 비단을 만지는 느낌이 든다.
바람에 머리가 흔들릴 때면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가끔 멍하니 바라볼 때가 생길 정도다.
요즘은 마스크를 끼고 다니지도 않아서 그 외모가 눈에 띄니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다.
그리고 수진이의 옆에서 손을 잡고 걷는 나를 보곤 혀를 차거나 남자가 존나 갑부구만 하는 이야기를 하며 뒷담을 깔 뿐이지.
수진이는 그 웅성거리는 소리에 약간 울컥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지만 나는 좀 달랐다.
예전엔 우리의 관계를 보며 뒤에서 쑥덕이는 사람들이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이젠 오히려 쑥덕이는 그 소리가 굉장히 듣기 좋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진이는 남들이 쑥덕거릴 정도로 미인이라는 거고 그런 미인이 내 아내라는 소리가 아닌가.
그리 생각하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이게 기만자의 심정인지도 모르겠다.
"아쉬워요?"
"어. 수진이는 머리카락도 굉장히 예쁘니까."
"음~ 원래라면 우리 서방님을 위해서 기르고 싶은데 배가 무거워지니까 머리 감기가 힘들어서요."
"그럼 이제부턴 내가 감겨줄게."
"네?"
"욕조에 받힘이라도 올려두고 거기에 누우면 내가 머리를 감겨주면 되잖아?"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반쯤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그 정도로 수진이의 머리카락은 소중하니까.
내 눈빛을 본 수진이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루만 해보면 감겨준다는 이야기 못 하게 될걸요?"
"그래?"
"내기라도 해봐요? 1개월도 못 간다는 것에 한표."
내기라니 오기가 생기는 데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진이의 머리를 감겨주겠다고 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1주일도 가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다.
"이제 제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겠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진이를 끌어안았다.
수진이의 머리카락은 여고생이었을 때 보다 길어져서 이젠 허리에 가까운 위치까지 닿았다.
왜 그리 기르느냐는 이야기를 했을 땐 내가 긴 생머리를 좋아하니 그리하고 있다고 했지.
그 말을 들었을 땐 수진이가 그저 사랑스럽고 귀엽게만 보였었는데 이걸 막상 내 손으로 직접 관리 해주려 하니 굉장히 힘들었다.
왜 샴푸와 린스, 트리트먼트가 그리 빨리 동나서 새로 사게 되는지 알게 됐다.
여자 중엔 샤워만으로 1시간을 소비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머리가 이리 긴 사람들은 가능하겠구나 싶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수진이를 끌어안은 상태로 머리카락을 슬쩍 만져본다.
앞으로는 이 아름답고 찰랑이는 머리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아쉬워하지 마요. 그리 많이는 안 자를 테니까. 누가 보면 머리 밀고 절에 들어가는 줄 알겠네."
수진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 옆구리를 살짝 찔러왔다.
"그래?"
"네. 저도 제 머리가 맘에 드니까요. 그래도 자르긴 해야 해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고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나에게 보란 듯이 머리카락을 내밀었다.
"여기 봐요. 관리가 안 돼서 갈라졌잖아요."
"정말이네."
머리카락이란 걸 이렇게 가까이에서 관찰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수진이의 말대로 수진이의 머리카락 중엔 끝 부분이 두 가닥으로 갈라진 머리카락이 있었다.
신기했다.
머리란 게 관리를 못 하면 이렇게 갈라지기도 하는구나.
소설로 봤을 때는 그냥 수분이 부족한 손이 트는 것처럼 머리카락의 끝 부분이 거칠어진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어차피 또 기를 테니까 실망하지 마세요."
수진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장난감을 조르는 아이를 상냥하게 타이르는 엄마와 같은 분위기로 내 등을 토닥였다.
"수진이 마망..."
"우쭈쭈~ 마망이에용~"
수진이는 본인이 말하고도 웃겼는지 나를 끌어안은 상태로 쿡쿡 이며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웃던 수진이가 몸을 움찔 떨더니 내 몸을 살짝 놓고는 자신의 배에 손을 얹었다.
"수진아?"
"쉿! 잠시만요."
수진이는 눈을 감은 상태로 자신의 배에 손을 올려놓은 상태로 숨까지 아주 천천히 쉬기 시작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방안.
수진이는 한참 눈을 감고 있다가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나를 바라봤다.
"방금 배를 찼어요!"
수진이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본인의 배를 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수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진이의 앞에 쪼그려 앉아 배에 귀를 가져다 댔다.
하지만 1분이 지나도록 태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장군이가 엄마를 많이 좋아하나 보네."
아쉬웠다. 나도 느껴보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어."
"그럼 하루 종~일 귀 대고 있을래요?"
"정말로 그런다?"
"아하하! 어차피 다음 달이면 더 자주 느껴질 텐데 왜 그리 설레발을 치고 그러시지?"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태교를 하듯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온종일 귀를 대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다시 소파에 앉았지만, 심히 아쉬웠다.
수진이의 저 조금 부풀어 오른 배 안에 나의 아이가 있다고 실감하는 순간이었으니까.
아, 이게 찰나의 아쉬움인가.
나는 아쉬움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떤 느낌이었어?"
그래도 느낌 정도는 물어볼 수 있겠지.
"음~ 아주 미약하게 뭔가가 살짝 눌렀다가 뗀 느낌? 거의 못 느낄 정도였어요."
그리 말해도 무슨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
임신 16주차.
산모들이 흔히들 임신 5개월 차라고 하는 임신 안정기는 이전과는 달리 눈에 띄는 변화들이 나타난다.
가령 배가 볼록하다가 불룩해지는 느낌이 나고 가슴이 한 치수 커지고 식욕이 늘어나는 점이 그렇다.
"으으~ 체중이 또 늘었어..."
수진이는 체중계에 올라선 다음 한숨을 쉬고 내려왔다가 다시 체중계에 올라가는 기행을 반복했다.
체중계로 운동이라도 하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은 광경이었다.
물론 그리 물어보면 어떤 반격이 돌아올지 무서우니 실행하지는 않는다.
임신한 아내에게 상처를 주면 평생 갈굼을 당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으니까.
장난을 쳐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은 정도로만 친다.
그 미묘한 선을 넘으면 굉장히 위험하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나는 수진이가 체중계를 신경 쓰지 않을 정도의 장난만 치기로 했다.
"이렇게 훌륭한 물건이 생겼으니 늘어날 수밖에 없지."
나는 수진이의 뒤에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리곤 한숨을 쉬는 수진이의 가슴을 슬그머니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수진이는 나를 돌아보며 살짝 눈을 찌푸리곤 내 손등을 꼬집어왔다.
"이건 이제 우리 장군이 거예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고는 나에게서 슬그머니 거리를 벌렸다.
나는 수진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장군이는 렌트지."
수진이의 가슴은 내꺼다.
"그리고 몇 개월 지나면 렌트도 반납해야지. 넌 복학해야 하니까 장군이는 젖병 물어야지."
"복학이라..."
수진이는 조금 아득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수진이의 스노우볼은 생각보다 멀리까지 굴러갔다.
굴린 위치가 에베레스트 산 뺨치는 높이에서 굴린 게 확실하다.
나는월억킥이 여대생이라는 소문은 계속 구르고 굴러서 결국 대학교가 어디인지까지 특정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수진이가 휴학해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렇게 이야기가 굴러 결국 나는월억킥이 개인정보가 누출된 충격에 휴학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퍼져버렸다.
처음에 나는월억킥이 본인의 대학교에 다니는 여대생이라는 이야기를 꺼낸 사람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유동으로 달린 글이라 누군지도 모르는 데 누군가를 비난하는 글.
문제는 수진이가 이때 임신을 해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연재를 며칠 쉬어버렸다는 게 문제였다.
공지사항도 최근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신이 없어서 소설에 집중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글을 써버렸다.
이 앙큼한 녀석은 아무래도 아주 소심한 복수를 위해 그리했음이 틀림없다.
다시 연재가 시작되자 독자들은 수진이에게 마음고생이 심하셨다고 위로하는 댓글을 달았고 수진이는 그 독자들에게도 폭탄을 던져버렸다.
본인이 휴학을 한 건 그런 이유가 아니고 임신과 출산을 위해서였다는 폭탄 말이다.
인터넷은 뒤집어졌다.
아니, 여대생인데 벌써 임신이니 출산이니가 왜 나오느냐는 이야기에서 속도위반이냐고 난리가 나고 한동안 떠들썩했다.
수진이는 거기에 휘발유도 부어버렸다.
결혼은 5월에 했고 혼인신고서도 이미 제출을 한 상황이며 속도위반이 아니고 연애결혼이라고 말이다.
그런 글을 쓴 다음에 나와 마스크를 쓴 상태로 찍은 사진까지 올려버리니 이번엔 휘발유 옆에 폭탄이라도 던져놓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봐도 조카와 삼촌뻘의 사진이 올라오니 활활 타오를 수밖에 없지.
독자들은 내가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냐며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독자들 사이에선 나란 인간은 개쩌는 재벌남쯤 되는 인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월억킥이 돈도 많은데 그걸로 되겠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럼 중년 아재의 능숙한 섹스테크닉에 여대생이 몸도 마음도 농락당해서 암컷절정타락을 한 거라는 이야기가 나와버리고 고소 드립까지 나오는 상황으로 번졌다.
수진이는 그 상황이 되어서야 입장문을 썼다.
선을 넘으면 `기생충`당하는 수가 있다는 입장문.
그 후론 그런 이야기가 싸악 사라져버렸지.
수진이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뭔가 뿌듯하다는 듯이 작게 웃었다.
장모님에게 우리의 관계를 허락받으러 갈 때까지 숨기고 살았던 그 반동이라도 온 듯이 모든 비밀을 다 털어낸 그 표정은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뒤가 없는 당돌한 여자 이수진.
하지만 복학이라는 말이 나오니 뭔가 저질러버렸다... 그런 느낌이다.
"어차피 1년이나 흘렀는데 다 잊었겠지."
"그렇겠죠?"
그러길 빌어야지.
임신 스트레스를 그렇게 풀어버렸으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니 수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