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3)
"많이 섭섭해?"
"..."
"엄마가 잘 가르치면 또 달라지겠지. 기운 내자. 우리 `장군이`가 슬퍼할 거야."
"히잉."
수진이의 임신이 4개월 차로 접어들었다.
이젠 제법 불러오기 시작한 배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는 수진이.
수진이는 첫째 아이는 여자애를 낳고 싶어 했다.
본인과 처남의 관계를 아이에게 대입해서 보고 있는 거다.
행동은 어른스럽고 밤에는 대담해지는 여자지만 그런 작은 부분에서는 나이다움을 느끼게 하는 면모가 있었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 알려준 성별은 남자였다.
태명을 귀요미로 지었는데 남자애라고 하니 이제 태명도 바꾸어야 한다며 장군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요. 제가 잘 가르치면 되죠. 의젓하고 멋진 아들로 키워야죠."
수진이는 동생에게 굉장히 상냥한 멋진 오빠로 키우겠다며 본인의 배를 쓰다듬었다.
나는 혹시 다음 아이도 남자애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는데 딸을 키우고 싶어하는 수진이에게 그 말을 했다가는 어떤 소리를 들을지 몰랐기에 그냥 다시 삼키기로 다짐했다.
"참고로 어떻게 키울 건데?"
"공부도 운동도 예절도 완벽하고 취미도 고상하게?"
완전 몬스터 맘이로군.
숨이 턱턱 막힌다.
공부도 운동도 예절도 완벽한데 취미도 클래식을 듣는 다거나 그런 취미라고?
아이가 숨이 막혀서 죽을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수진이의 머릿속 육아가 너무나 궁금해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우선 선행학습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어렸을 땐 한글이랑 영어를 같이 가르치고 초등학교를 들어가면 다른 외국어도 배우게 해서 4개 국어를 하게 하는 거예요. 수학도 중요하죠. 어렸을 때 주판학원을 보내두면 머릿속으로 암산이 빨라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수학은 어려운 문제를 보면 숨이 막히지만 풀고 나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러니까ㅡ"
수진이는 그리 수다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수다맨저리 갈 정도라고 느껴졌다.
초등학생이 4개 국어? 근처에서 영재라고 소문이 나겠다.
주판학원? 그건 내가 학생일 때나 있던 건 데 아직도 있나? 계산기가 있는데 굳이 주판을 배워?
암산이 빠르면 도움은 되는데 그거랑 수학문제를 잘 푸는 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수진이는 이윽고 아이의 교우관계에도 간섭하겠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딱 봐도 미래가 없어 보이는 개망나니랑 어울리면 바로 관계를 끊으라고 이야기할 것이며 컴퓨터는 개인 방이 아닌 거실에 둬서 몰래 게임을 못하게 하고 하루에 1시간만.
게임보다 건강하고 우아한 취미를 갖게 하겠다며 몸에도 좋은 수영이나 우아한 악기를 배우게 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수진이가 장난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농담 말고 진짜는 어떻게 하려고?"
"어? 어떻게 아셨지?"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부부니까."
"이게 일심동체란 건가?"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내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왔다.
나는 수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이는 나와 공통된 취미를 늘려서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즐기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게임을 수진이는 드라마를 같이 하거나 보면서 서로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렸다.
보통의 연인이나 부부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좀 있어야 숨이 트인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는 취미까지 비슷해져서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불안할 정도의 부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런 수진이가 아이에게 게임은 해롭다고 거실에 컴퓨터를 둔다는 이야기를 할 리가 없다.
수진이는 언제나 내 취미나 생각을 존중해주고 나 역시 그렇게 하니까.
"그럼 저 말고 선생님은 어때요? 어떻게 키우실 생각이세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어떻게 키운 다라.
수진이와 아이의 건강이 최우선이라 그건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첫 아이는 여자애가 태어날 거라고 생각해서 별로 생각하진 않았는데."
"않았는데?"
"남자애라면 해보고 싶은 건 있어."
"뭔데요?"
"별건 아니고."
만약에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되고 그게 남자애라면 같이 해보고 싶던 일들이 많이 있다.
같이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한다.
축구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해본 적이 없어 어설픈 패스를 날리는데도 아이는 재밌다면서 나와 패스를 하는 그 시간을 즐겨주겠지.
축구 말고도 캐치볼도 하고 싶다.
아이의 손이 다치지 않게 공은 테니스공이나 소프트볼에 사용하는 고무공을 사용해서 새로 산 글러브의 딱딱하고 거친 가죽이 부드럽고 손에 착착 감기게 될 때까지 서로 공을 주고받고 싶다.
그렇게 큰 아이가 나중에 고민이 있으면 글러브를 옆구리에 끼고 나한테 찾아와 오랜만에 캐치볼이나 하러 나가자는 이야기를 꺼내면 난 아무 말 없이 방에 고이 모셔둔 글러브를 꺼내 캐치볼을 하고 싶다.
수진이의 키는 작지 않다.
나도 내 나잇대의 남자들보단 키가 큰 편이다.
그럼 나와 수진이의 아이는 나보다 더 키가 크겠지.
어렸을 땐 내 허리 정도에 간신히 닿던 꼬맹이가 어느새 내가 올려다 봐야 하는 키가 되어 캐치볼을 하는데 영 어색하겠지.
어렸을 때 생각을 하며 던지면 아이는 공을 조금 높게 던지라는 이야기를 해올 거다.
그렇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를 웃으면서 응원하고 싶다.
아버지는 나이 차가 2배나 되는 엄마와 결혼까지 했는데 어떤 고민이든 잘 될 거라고 말이다.
그러면 아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날 바라보다가 웃기 시작할 테고 나 역시 그 웃음에 이끌려 웃기 시작하겠지.
"요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셨네."
수진이는 내가 주절거리는 이야기를 듣더니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별로였나?
"그래도 뭔가 좋다. 청춘물 같아서 좋아요."
그리곤 히죽 하고 웃으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왔다.
"역시 선생님은 첫째는 남자애였으면~ 했구나?"
뭐, 사실대로 말하면 그렇다.
수진이가 본인과 처남의 관계를 아이들에게 투영하여 첫째로는 딸을 낳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나도 내 아이에게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투영하여 내가 어렸을 때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친구들이 아버지와 캐치볼이나 축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말 부러웠었지.
나도 아버지와 놀고 싶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같이 목욕도 하고 싶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같이 목욕도 해보고 싶다.
"우리 장군이 빨리 태어나야겠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잖아."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처음에 여자애가 아니라고 했을 때 보이던 시무룩한 얼굴이 아닌 자애롭고 따스한 모성애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음."
나는 수진이의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냥 눈으로 보고 넘겨버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사진은 왜 찍어요?"
"그냥. 찍고 싶었어."
"요즘 사진 너무 자주 찍는 거 아니에요? 나보다 더 찍는 거 같은데."
나는 그리 사진을 찍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었다.
휴대폰에 셀카 한 장 없는 인간이었다.
나에게 사진이란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앨범과 어머니가 어렸을 때 몇 장 찍으신 사진으로 만든 앨범 그리고 혜정이와 찍은 결혼앨범이 전부였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사진을 찍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사진을 돌아볼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면서 왜 사진을 찍는 걸까 생각했다.
휴대폰이나 카메라의 액정으로 바라볼 시간에 눈으로 조금이라도 오래 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진이를 보고 있으면 지금 이 찰나의 순간을 그저 지나쳐 보내기가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사진을 찍는 이유는 이 순간에 느끼는 이 흘러넘치는 감정을 담아내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소설을 쓰며 내 가슴 속에 다 담아두지 못한 감정을 털어내던 것처럼 말이다.
"나중에 육아 일기에 붙여넣어."
"그냥 본인이 찍고 싶어서 찍는 거 아니에요?"
잘 아네.
육아 일기는 핑계에 불과하지.
그렇다고 내 마음속의 이 이야기를 전부 들려주기에는 너무나 창피했으니 굳이 말하지는 않는다.
"나중에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말을 안 들으면 보여줘도 되고."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렇게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네가 태어나길 10개월이나 기다린 엄마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러면 어색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다가 죄송하다고 사과하겠지."
"애초에 반항기가 안 오도록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육아가 그렇게 쉬웠으면 육아 관련 책들이 그리 많이 출판되지는 않았을걸?
"우리 장군이는 정말 큰 일이네. 아빠도 엄마도 이렇게 바라는 게 많아서 어쩌지?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운동도 잘했으면 좋겠고 성격도 좋았으면 좋겠고."
"그게 부모 욕심이라는 거겠지."
우리 아이는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만약인데요."
"응?"
"만약에 우리 아이가 우리를 보고 자라서 커서 소설가가 된다고 하면 선생님은 어떻게 할 거예요?"
수진이의 그 말은 생각보다 나의 가슴에 꽂히는 질문이었다.
소설가가 된다는 말을 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그 말은 나와 우리 아버지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나는 수진이의 질문을 몇 번이고 곱씹은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쓴 소설을 가지고 오라고 해볼 거야. 그리고 읽어보겠지."
"별로면 그만두라고 하려고요?"
"나 같은 하꼬가 그럴 깜냥이나 되겠어? 그냥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읽어주고 잘 썼으면 엄청 잘 썼다고 칭찬해주고 조금 못 썼으면 이런 점은 수정해보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고 말겠지."
"의외네요. 선생님은 소설이 별로면 그만두라고 딱 잘라 말할 거 같았는데."
부모라면 그리 행동하는 게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재능이란 벽에 막혀 허물어지는 광경을 그냥 방치하는 행동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는 굳이 내 아이가 그 벽에 도전하려고 한다면 그 등에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기분 좋았으니까."
"뭐가요?"
"준범이가 내가 쓴 소설을 읽고 재밌으니까 소설가를 해보라고 했을 때 오랜만에 굉장히 즐거웠거든. 그러니 나도 내 아이의 소설을 재밌다고 해줄 거야."
"그거 완전히 오냐오냐 키운다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어차피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독자들에게 엄청나게 얻어터질 것이다.
그렇게 얻어터지다 보면 소설을 쓰는 일이 고통으로 느껴질 테지.
하지만 소설은 쓰면서 즐거워지는 일이다.
그러니 나 만큼은 내 아이의 소설을 세상에서 가장 재밌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아니, 세상에서 두 번째로 재밌는 소설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내 말을 들은 수진이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무언가 확신에 찬 눈빛을 보내왔다.
"첫 번째는 뭐에요?"
"알면서 묻지 마."
나는 수진이의 코를 살짝 찔러줬다.
나에게 최고의 작가는 언제나 너다.
내 인생이란 이름의 소설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행복한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