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1)
수진이의 회임소식은 굉장히 기뻤다.
솔직히 그 자리에서 공중제비를 돌 수도 있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수진이가 대학을 다니는 중에 임신을 해버려서 수진이의 친구와 휴학으로 만나지 못하게 되는 일이 마음에 걸려서 조금 브레이크가 걸렸을 뿐이다.
그런데 나보다 더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서울까지 직접 찾아오셔선 수진이의 얼굴을 확인해보고 몸에 좋은 것들이라며 이것저것 사오시기도 하고 육아용품이라도 보러 가야 하는 게 아니냐며 백화점을 가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떠셨다.
설마 그 정도로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굉장히 점잖은 분들이라 설마 그렇게 행동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지.
수진이는 환갑이 넘은 우리 부모님이 그런 모습을 보이니 상당히 당황해서 어버버버 하며 굳어있을 뿐이었다.
장모님의 반응은 우리 부모님 정도는 아니었다.
나의 카톡으로 임신 초기에 주의사항에 관련된 내용이 논문처럼 무지하게 보내져 왔다.
그 카톡을 받은 순간 장모님이 수진이와 처남을 낳은 어머니이며 동시에 간호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 순간이었다.
"아직 임신 초긴데 왜 이렇게 야단법석들인지 모르겠어요. 이 아이가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도 모르는데."
수진이는 본인의 배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눈앞에 놓인 물건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육아용품과 아기 옷이 한가득하다.
"나중에 성별이 정해지면 그때도 잔뜩 사실 느낌인데."
"제발 그러지 말라고 좀 해주세요... 선물이 한두 푼이면 그냥 넘어가는데 아기 옷은 비싸다구요."
부모님도 비싸다는 건 안다.
그럼에도 지갑을 열고 말 정도로 이 소식이 기뻤다는 것으로 생각해야지.
"그리고 엄마도 왜 이렇게 안 하던 짓을 하는 거야... 아, 진짜!"
수진이는 내가 장모님에게 받은 카톡을 프린트하고 제본을 뜬 내용을 살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장모님이 나에게 압박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라도 했나 보지.
하지만 나는 이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산모는 이래저래 평소에도 생리나 임신, 육아에 대해 접하는 기회가 많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으니까.
남편이 주의해야 하는 사항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가령 화장실이 미끄러워서 산모가 넘어지면 큰일이라는 이야기와 주의사항을 봤을 때 화장실을 리모델링해서 건식 화장실로 바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까.
"선생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마저..."
"이건 필요한 일이야."
수진이는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느냐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신기해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지만, 그 태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수진이가 임신하고 2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입덧이 시작되었으니까.
"우읍!"
수진이는 가리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가려서 먹는다.
해산물은 비리다고 전혀 먹지 못하고 돼지고기에서는 뭔가 냄새가 난다고 한다.
소고기는 소화가 잘되지 않는 고기라서 산모에게 그리 좋지 못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수진이를 위해 식탁은 대부분 닭이 장식하게 되었다.
"죄송해요."
"뭐가? 당연한 거야."
부인이 냄새만 맡아도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데 나 혼자 좋다고 고기를 먹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그거 말고도요."
"당연한 거라니까."
수진이와 나는 집안일을 같이 했지만 지금의 수진이는 집에서 청소기를 돌리는 정도만 하고 있다.
그것도 로봇 청소기를 샀기 때문에 가끔 가구나 책장에 쌓인 먼지만을 살짝 털어주는 일이 대부분이다.
넘어질 위험이 있는 화장실 청소나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요리도 전부 내가 하고 있다.
설거지만큼은 본인이 하겠다고 나서서 설거지는 하고 있지만, 나중에 배가 더 커지기 시작하면 그 일마저 빼앗거나 식기 세척기를 살까 생각 중이다.
수진이는 낭비하지 말라며 잔소리를 하겠지만, 나중엔 그 편리함에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겠지.
수진이의 입덧이 시작되어 가장 문제점은 드라마나 소설에서 많이 보던 바로 그 행동이었다.
"선생님..."
"응?"
"저, 귤 먹고 싶어요."
"그래? 알았어."
수진이는 애초에 식사량이 많지 않았다.
밥도 반 공기를 먹고 중간에 간식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소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뜬금없이 뭔가를 요구할 때가 있다.
그것도 하필이면 이전에는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찾는다.
이전에는 귤이 먹고 싶다고 했다가 귤을 사 오니 못 먹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또 먹을 생각이 들었나 보다.
지금 시각이 밤 10시란 점이 문제였지만 서울은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다.
다행히도 무사히 귤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방심하지 않고 다른 과일도 한 종류씩 사가기로 했다.
이전에 귤을 사 갔을 때 귤을 입에 넣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간 다음 죽을상을 한 상태로 사과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땐 또 밖으로 나가서 귤이 아닌 사과를 사 왔었지.
이번에도 그리될지 모르니 다른 과일도 한 종류씩 사기로 했다.
수진이가 먹지 못한다면 내가 먹으면 되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과일가게 주인의 인사를 받고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진이가 웃으면서도 조금 미안하다는 듯이 우물쭈물 거린다.
나는 그 머리를 살짝 어루만져 준 다음 사온 과일을 테이블에 올려둔다.
"이게 다 뭐에요?"
"혹시 몰라서. 먹을 만한 거 있으면 먹어. 못 먹겠으면 내가 다 먹을게."
"선생님..."
수진이는 내 몸을 살짝 끌어안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이전엔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지만 미안하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올 것 같으면 고맙다는 말을 해달라고 했다.
"밖에 많이 춥나 보네요. 으, 죄소, 아니 고마워요."
"됐어. 이제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이해할 수 있게 됐으니까?"
"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아니 원제 노르웨이의 숲에 그런 이야기가 있거든. 딸기 쇼트케이크의 이야기가."
"그게 뭐예요?"
우리나라엔 상실의 시대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작품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여자가 완벽한 사랑에 대해 남자와 논하는 장면인데 여자가 바라는 사랑의 예시를 들어준다.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말하면 남자가 어떤 중요한 일이 있든 쇼트케이크를 가장 우선해서 사러 가는 거다. 그런데 남자가 케이크를 사 왔더니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이제 이딴 건 먹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남자는 어이가 없어 그게 무슨 사랑이냐는 이야기를 꺼내니 여자가 바라는 남자의 사랑을 말하는 장면이다.
여자의 이름을 말하며 본인이 잘못했다며. 미리 네 마음이 바뀔 걸 예상했어야 한다고 하는 장면. 남자는 웃으면서 다른 케이크를 사 오겠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 모습을 보면 여자는 남자를 좀 더 사랑하게 되고 그게 사랑의 형태라는 이야기를 꺼낸다.
처음엔 그걸 보고 여자가 참 지랄맞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능한 이야기긴 하다.
임신한 여성이라면 그럴 수 있지.
"그래서 선생님은 제가 귤을 먹지 못할까 봐 여러 가지 사 왔다 그거죠?"
"그래. 그래서 어때? 나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진 거 같은 기분이야?"
"음~ 글쎄요?"
수진이는 귤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를 향해 내밀었다.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귤을 깐 다음 수진이의 입속에 귤을 넣어주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별다른 거부를 보이지 않고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해서 더 좋아질진 모르겠네요."
"그래?"
나도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다시 수진이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회귀는 별로라도 환생은 해보고 싶어.
"선생님~ 앙~"
"앙."
내 입에 귤을 넣어주며 싱긋 미소를 보이는 수진이를 바라보면 그런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이번 생으로 헤어지라니 너무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요즘 인한 강사님이랑도 만나고 그러시는 거예요?"
"원래부터 카톡으로 안부 겸 연락은 종종 했어."
인한 강사는 나에게 딸 자랑을 하던 팔불출이었다.
그만큼 육아나 아내에 대해 신경 쓸 점들을 잘 알고 있었다.
장모님이 보내주신 자료를 제외하고서도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 많았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근황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인한 강사는 소설이 굉장히 순항인가 봐. 생각보다 돈도 잘 벌려서 아내분이 좋아한다네. 더는 용돈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서 맘 편히 살고 있다더라. 차도 한 대 뽑았다고 하던데. SUV로."
"와, 완전 성공하셨네요?"
인한 강사는 세금을 제외하고 소설만으로 월 300 정도의 수익을 벌고 있다고 했다.
본직이 있는 데도 그 정도의 수익을 벌고 있으니 완전히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차도 한 대 뽑고 남은 돈으로는 주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엔 뭘 하든 다 성공하는 남자라며 아내를 따라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개잡주에 물려서 손절을 한 다음부턴 주식은 아내분의 손에 맡겼다고 한다.
"그리고 다정 강사도 좀 변했더라."
"어떻게요?"
다정 강사는 나와 마지막으로 마주친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어깨와 허리도 펴고 다니기 시작했고 머리 모양도 바뀌어 많이 밝아졌고 특히나 수강생들의 반응이 좋다고 한다.
내가 다니던 학원은 인터넷 강의도 제공되는데 그 인터넷 강의에 미인에 거유인 국어 강사가 나타났다고 한동안 떠들썩했던 모양이다.
국어 강사란 생각보다 입지가 애매한 강사다.
원래부터 국어 강사는 뽑는 인원이 한정되어있었다.
한때는 논술이 중요해져서 조금 여유가 생기긴 했으나 다시 논술의 중요성이 떨어진 지금 영어강사나 수학강사처럼 어딜 가든 쉽게 취직이 되지 않는 입장이다.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인맥을 통해 다른 학원을 알아보려고 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지.
다정 강사도 그리 다르지 않은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보다 더 훌륭한 강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외모만 좋았으면 이렇게 화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강의는 굉장히 알기 쉬웠고 재밌었다.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변화라고 하면 다정 강사에게 계속 어프로치를 시도하던 35살 아니 36살의 이야기다.
다정 강사에게 교제를 신청했다가 대차게 까인 모양이다.
인한 강사가 말하기론 몸을 슬쩍 돌리면서 자꾸 징그럽게 가슴을 쳐다보시던데 그러지 말라고 딱 잘라 말해버려서 통쾌하다고 했던가.
술자리에서 그냥 술에 취한 겸 장난식으로 던져본 잽이었는데 어퍼컷이 날라와서 얼굴이 시뻘게진 36살이 학원을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결국 작년에 학원을 그만뒀다고 한다.
언젠가는 그리되리라고 생각하긴 했지.
"다들 잘 사시는 모양이네요."
"그러게. 아무튼, 그래서 인한 강사가 산모는ㅡ"
"그만! 알아서 조심하고 잠 잘 자고 운동도 부지런히 하고 병원도 다닐 테니까 그만!"
알면 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