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네. 제 아내는 여대생입니다.(4)
중간고사가 끝나고 수진이는 계획대로 본인이 쓴 소설을 모두 업로드한 상태였다.
수진이의 대학 생활은 순조로웠다.
수진이의 왼손 약지가 큰 효과를 발휘했는지 대뜸 말을 거는 사람들은 있어도 진지하게 수진이를 어떻게 해보려는 사람이 나타나진 않았고 동아리의 분위기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 순조로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업 중에 벌써 과제를 끝낸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교수가 수진이의 소설은 결말이 조금 아쉽지만, 캐릭터들이 살아있고 전개가 시원하면서도 묘사에 신경을 많이 쓴 재미난 소설이라는 평을 내렸다.
수강생들은 수진이를 돌아보며 처음엔 신기하다는 듯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내고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정말 재밌는 소설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하꼬 작가라도 뜨기 마련이다.
수진이의 25편짜리 소설은 인터넷에서 추천글이 써지면서 서서히 언급되기 시작했다.
줄거리에 대학교 과제로 올리는 소설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어서 후반부가 나오진 않겠지만, 너무 아쉽다는 이야기의 리뷰글.
그러다가 자신이 이 소설을 쓴 사람과 같은 대학을 다니는데 예쁜 여대생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우효~ 여대생이 쓴 소설이라니 미친거냐구!!!
이런 느낌의 댓글들과 왜 자신의 소속을 밝히고 싶어서 이러는 거냐는 이야기, 작가 어서오고 등등 여러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것에 어그로가 끌린 독자 중에 수진이의 소설에서 익숙한 향기가 난다며 이거 좀 그렇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어딘가 나는월억킥 작가의 소설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수진이가 소설속에서 묘사하는 서술 방식과 유사성을 언급하며 이 소설을 쓴 사람이 나는월억킥 작가를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스팀 펑크 조선의 작가가 나는월억킥 작가의 광팬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수진이가 처음 올린 소설의 첫 번째 댓글이 처남의 닉네임이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수진이가 처음으로 나는월억킥이 되는 한 걸음을 내딛게 한 사람이 처남이었으니 재밌다고 소설에 댓글을 다는 역할을 했어야겠지.
잠깐의 헤프닝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넘겼는데 이 사건은 점점 스노우볼이 굴러가듯 커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물고 뜯는 것은 생각보다 재밌는 행동이니까.
수진이의 소설은 심심한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기에 훌륭한 재료였다.
독자들이 신선하다고 느끼는 묘사와 전개의 유사성을 끊임없이 언급하며 이 정도면 작가 본인이나 거의 표절에 가까운 건데 문제가 되지 않냐는 이야기가 하나.
내용이 같은 것도 아니고 문체가 조금 닮은 건데 표절이 왜 나오느냐는 이야기가 하나.
그렇게 조금 소란스러운 이야기가 인터넷에 퍼져갈 때쯤 수진이의 수업을 듣는 교수가 수진이를 호출하는 상황이 생겨버렸다.
아무래도 소설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대리로 쓰거나 혹은 표절에 가까운 행위를 했는지에 대한 확인을 하는 절차였다.
수진이는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작가라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빵점처리가 되어버리니 어쩔 수 없었다며 한숨을 쉬는 수진이.
이 소설의 표절이니 동일인이니 하는 사건은 이렇게 끝이 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교수의 입에서 말이 나왔는지 아니면 조교인지 그것조차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지 수진이가 쓴 소설이 작가 본인이 쓴 소설이 맞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헛소리라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결국 나는월억킥은 여대생이 맞다는 결론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수진이가 다니는 동아리까지 전파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름 작가를 바라는 학생들이 들어가는 동아리였기에 이미 하꼬 작가로서 소설을 쓰고 있거나 그런 노력을 하는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 이미 현역 작가인 수진이는 붕 떠버린 존재가 되어버렸다.
처음엔 그 상황도 별로 나쁘진 않았다.
작가가 옆에 있으니 작가에게 소설에 관해 물어보며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될 줄 알았건만 또 그렇지만도 않았나 보다.
수진이에게 친근하던 몇몇 선배들이 수진이가 없는 곳에서 수진이의 뒷담화를 하기 시작한 거다.
눈에 띄는 존재이긴 했으나 지금까진 그냥 예의 바르고 그냥 좀 예쁜 신입생으로만 여겨왔는데 자신들보다 돈도 잘 벌고 잘나가는 학생인 거지.
거기에 처음 동아리에 들어올 때 혹시 쓰고 있는 소설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냥 취미로 단편이나 몇 편 써보고 써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해버렸던 게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본인들을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수진이는 뒷담화를 하는 동아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수진이가 완전히 혼자가 되진 않았다는 점이지.
선배들이 수진이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동아리를 그만둔 동기가 수진이와 함께 점심을 먹는 관계가 되었다.
수진이의 굉장히 좁은 인간관계가 어떻게든 넓어지긴 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수진이는 좋은 친구를 사귀었다며 오랜만에 친구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엔 로판을 보다가 본인도 한번 써보자는 생각으로 글을 썼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용돈 벌이로 쓰던 소설로 먹고살까 고민하는 친구라고 한다.
그 친구는 로맨스 소설을 쓰는 모양이다.
서로 웹소설을 연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 겹치지 않는 판타지와 로맨스의 분야라서 서로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다.
수진이는 그 친구와의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11월이 되어 평소와 같은 시간을 보내던 때.
수진이가 아침부터 뭔가 몽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기야?"
"조금 미열이 있는 거 같아요."
"설마 그 코로..."
"그게 언제적 이야긴데 지금 나와요?"
수진이는 집에 상비된 약을 찾아서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난 수진이의 그 손을 잡고 말렸다.
"이게 내 착각일 수도 있는데 혹시 모르니까 잠깐만."
나는 수진이의 체온을 잰 다음 수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수진이와 이렇게 오랜 시간 서로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젠 임신을 하지 않을까 싶은 시기였으니까.
"축하합니다. 임신 2주차네요."
저번에 찾아왔던 산부인과에서 수진이의 임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진이는 눈을 껌뻑이며 의사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실감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의사의 주의사항을 들은 다음 수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서, 설마 진짜로 임신이라니. 어, 어쩌면 좋지?"
수진이는 본인이 임신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으면서 막상 임신을 하고 나니 상당히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하긴,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는 하나 아직 20살인 수진이가 얼마나 준비를 했겠나.
나는 당황하는 수진이의 어깨를 살며시 안아준 다음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일단 양가 부모님께 연락드리자. 그러고 나서 이야기하자."
끄덕끄덕.
수진이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내 몸을 조금 강한 힘으로 끌어안았다.
"무서워?"
"아니요. 갑자기 임신이라서 놀라기는 했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혹시? 하는 생각이 있기도 했으니까요."
갑자기 생리를 하지 않았으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을 수도 있겠지.
지난 몇 개월간 그 혹시? 라는 상황이 몇 번이고 이어졌지만, 드디어 임신이 된 거다.
이걸로 수진이를 집에 있게 만들 명분이 생기기는 했다.
수진이의 말대로 되어버린 셈이지.
하지만 이제 막 친해진 사람과 다시 헤어지게 하여야 한다는 점이 미안했다.
"고마워. 그리고 좀 미안하고."
"뭐가요?"
"그 소설 쓴다던 친구랑 여행도 해보고 할 것도 많다고 했는데 이리 돼버렸네."
"괜찮아요. 그 애도 제가 유부녀인 거 아니까."
"어?"
"말해버렸어요. 그러니까 임신으로 휴학해도 이해해주겠죠. 그리고 휴대폰 번호도 알고 친해졌으니 별로 문제는 없을 거 같은 데요."
"그럼 다행이고."
수진이는 마음을 다잡았는지 오히려 배시시 웃으면서 내 볼을 콕콕 찔러왔다.
"아내가 여대생인 것도 문젠데 임신까지 시키다니 완전 도둑놈이네요?"
그러게.
완전 도둑놈이다.
"이렇게 내 아내는 임산부가 시작되겠네."
"뭔 소리예요?"
"그런 게 있어."
대학생이면서 임산부인 수진이와 육아를 하는 일상이 기다린다.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그래도 웃으면서 우리의 아이를 기다려야지.
"그럼 제가 전화할게요."
"그래."
집으로 차를 몰기 시작하자 수진이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 장모님과 우리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임소식을 알리는 전화.
전화기 너머로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는 나보다 더 흥분한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부모님은 손주가 보고 싶으셨구나.
장모님도 그럴 줄 몰랐는데 신기하네.
수진이와 집에 돌아온 다음엔 의사가 알려준 대로 평소와 같이 지냈지만, 몸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평소보다 더욱 신경을 썼다.
먼지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말라고 평소보다 청소에 신경을 쓰거나 화장실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미끄러지지 않는 슬리퍼를 준비하는 등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하지만 나의 그 요란함은 부모님을 이기지는 못했다.
설마 부천에서 직접 올라오실 줄은 몰랐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떠들썩하게 시간이 흘렀고 수진이가 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겨울방학이 다가왔다.
"아쉽네요. 1학기밖에 못 다니고 또 휴학이라니."
"내년엔 또 다니면 되잖아. 조금만 참자."
"왠지 또 임신해서 그렇게 또 1년 미뤄지고... 이러는 거 아닌지 몰라?"
수진이는 짓궂은 표정으로 내 허벅지를 살짝 두드렸다.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