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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화 〉네. 제 아내는 여대생입니다.(3) (197/301)



〈 197화 〉네. 제 아내는 여대생입니다.(3)

수진이가 MT를 떠났다.

2박 3일의 일정.

 말인즉슨,  집에서 2박 3일간 혼자서 지내야 한다는 말이다.


40평대의 아파트는... 넓다.

이보다  넓은 집에 사는 가족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적어도 혼자서 지내지는 않겠지.

오직 나와 수진이만이 있던 공간에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겨지니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다.

가을이 다가온다고 가을이라도 타는 것일까.

수진이가 점점  외모와 성격에 걸맞은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수진이 정도의 외모와 사교성이라면 나와는 다르게 많은 친구를 사귀고 바쁘게 살게 되리라.


그래. 수진이는 나와 닮았지만 나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수진이는 처남과 같이 인기가 있을 법한 성격이니까.


그저 운이 나빠서 지금까지 혼자였을 뿐이다.


"하아."

한숨이 나온다.

수진이가 없는 집에서 멍하니 있으려니 예전에 혜정이가 집을 뛰쳐나갔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혼자 집에 남는 것이 외롭다는 생각을 했는데.

혜정이를 떠올리니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대학교엔 나보다 젊고 멋진 남자들이 많아서 나 따위는 언제든 버려질 거라던 그녀의 말.

그 말이 인제야 실감이라도 나는 걸까.


수진이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인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은 수진이의 옆에 수진이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수진이는 점점 더 대학생활에 즐거움을 찾고 있고 그러다 보면 외로움이란 감정이 사라질 정도로 많은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수진이가 나를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외로움에 기인한 것이라면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는 지금은 어떤가.


알고는 있다.


수진이를 지금까지 계속 바라봐왔다.

수진이는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으리란 건 안다.


하지만 이 불안이라는 감정은 내 몸에 달라붙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혜정이가 내뱉은 나보다 나은 남자를 찾게 되리라는  독이 지금이 되어서야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럴  알았으면 수진이가 대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든지 신경 쓰지 말고 이 여자가 내 여자다! 내 아내다! 라고 소리치며 사람들 머리에 팍팍 인상을 심어주는 건데.

수진이가 곁에 며칠 없다는 것만으로 이리도 약해지다니 정말 글러 먹었다.

머리를 비우고 다른 일에 집중해야지.

그렇게 평소보다 공들여 집 안을 청소하거나 소설을 쓰고 주식을 살펴보거나 신작은 어떤 스토리로 쓸지에 대한 구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기나긴 하루를 끝내고 이제 자려고 침대에 누운 순간 수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MT인데도 전화를 하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세요."


`흑, 흐윽.`

"수진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몰려오던 잠이 전부 달아나는 듯한 감각.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진아!"


`흑, 선생님... 보고 싶어요.`


"어?"


`계속 같이 있으려다가 떨어져서 지내려니 흑, 뭔가 허전해.`

"어..."

아니, 불안한 예감도 가끔 틀리기는 하네.


수진이는 술을 많이 마셨는지 전화를 하는 내내 훌쩍이며 내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MT를 가서  문제라도 생겼는데 참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수진이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방이 2개 있는 곳을 잡아서 여자와 남자는 따로 자고 술을 강요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수진이의 칭얼거림을 들어줬다.


"그래서 이제 자려고?"

`네. 그럴 거예요.  자요 서방님. 후훗, 쪽.`


수진이는 휴대폰에 연신 뽀뽀를 하며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왔다.


나도 수진이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수진이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어버려서 잠이 다 깨버렸다.

억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자려고 했으나 잠도 오지 않는다.


나는 오랜만에 잠이 올 때까지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


오랜만에 꿈을 꿨다.

수진이가 MT를 다녀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는 꿈을.

수진이는 2박 3일의 MT를 갔는데 지금 집에 있다는 것은 나의 외로움이 만들어낸 환각이나 꿈이겠지.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자고 있어요?"


수진이는 인상을 쓰면서 그리 말해온다.


생각보다 리얼한 꿈이다.

"꿈에서도 잔소리네."

나는 한숨을 쉬는 수진이를 잡아당겨서 품에 끌어안았다.


생각보다 리얼한 꿈이다.


수진이의 냄새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으휴, 잠 좀 깨요."


"니가 왜 여깄어?"


"그냥 그렇게 됐어요."


수진이는 뭔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리고 애꿎은 머리카락만 손가락으로 비비 꼬고 있었다.

수진이의 잔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고 화장실로 향해 세수를 한 다음 거실로 나갔다.

현재 시각은 11시.

날짜도 수진이가 MT를 지나고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날이다.

"그래서 왜 여깄어?"

"그게요..."

수진이는 뭔가 부끄러운 듯이 내 눈치를 살펴보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버렸다.

"2박 3일인데 뭔가 일이 있는 사람들은 1박 2일만 하고 가도 된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먼저 돌아가겠다고 하고 돌아왔어요."


그렇게만 말하고 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 수진이.


"여보야는  안 보고 싶었어?"

피식.

나는 수진이의 계산된 애교에 웃음이 나왔다.

넌 모를거다. 네가 없는 동안 내가 얼마나 외로워했는지.


술을 마시고 감정이 격해져서 히끅거리는 네 목소리를 듣자마자 당장 집에서 뛰쳐나가려고 했던  알까.

하지만 그걸 드러내진 않았다.

왠지 부끄러웠으니까.

그래도 말로 내뱉기 부끄러운 감정은 몸으로 표현하면 된다.

나는 수진이의 손을 잡고 수진이를 천천히 내 쪽으로 당겼다.


나는 수진이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며 찰랑거리는 머리에 코를 묻었다.


수진이의 냄새를 맡고 있으면 진정된다.

수진이는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한 느낌을 내고 있었지만, 이윽고 내 몸에 손을 둘러 나를 껴안아왔다.


"우리 서방님도 많이 외로웠구나?"

"어. 이제 너 없으면 하루도 못 살겠어."

꽈악.


나를 끌어안는 수진이의 팔에 조금 힘이 들어간다.


수진이도 나와 같은 심정일까?


"저도 선생님이 주식 배운다고 아침마다 배웅할 때 얼마나 외로웠는 줄 알아요? 집은 넓고 시간은 안 가고."


"그래."

"제가 대학교 안 가고 집에서 쉬었으면 좋겠죠?"


"...솔직히 말하면 그냥 계속 옆에 있으면 좋겠어."

수진이의 즐겁고 활기찬 대학생활?

그것도 괜찮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수진이가 곁에 없는 시간이 이렇게 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쉴 수는 없고 방법이 있긴 한데... 들어보실래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고는 나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쓰윽하며 만져왔다.


장난기가 가득해 보이는 미소를 보이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나는 수진이의 허리를 안은 상태로 수진이의 입에 입술을 맞췄다.


***

수진이의 대학생활이 시작되고 중간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때.

수진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과제도 쌓이고 중간고사도 다가오니 머리가 아픈 모양이다.


"공부는 됐어요. 이미 할 만큼 해서  된 거 같은데 그것보다 에휴..."


수진이는 한숨을 쉬며 본인의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기말과제로 글을 써서 올려야 하는데  중간과제가 소설을 연재할 수 있는 사이트에 가입하고 인증을 올린 다음 소설의 줄거리를 어떻게 쓸 건지 기본 틀을 중간고사까지 제출하라고 한 모양이다.


수진이가 제출할 내용은 나와 웃으면서 떠들던 스팀 펑크 조선이라는 이야기로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25편의 이야기로 쓰면 그리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뭐가 문제지 싶은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웃하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인증이라는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사이트 이메일만 다르면 여러 개로 회원가입이 가능하긴 한데 같은 주민등록번호로는 휴대폰 인증이 한번 밖에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과제를 제출하려고 하면 무조건 `나는월억킥` 닉네임을 달고 올려야 해요."

"아."

"아아아악! 왜 이걸 수강 신청했지?"


수진이는 머리를 감싸 안고 크와와왕하고 울부짖었다.


투명 수진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살려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수진이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다 못해 내 아이디를 빌려주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수진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디가 준수라는 이름인데 그걸 쓰긴 좀..."

"미안. 그러면 처남 아이디로 해봐."


"그럴까요?"

수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오랜만에 처남에게 연락하여 사정을 설명한 뒤에 아이디를 빌리기로 했다.


수진이는 처남의 아이디로 인증을 올리고 소설의 줄거리를 올린 다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럴 때 오라비가 도움이 되다니."

원래 인간사가 다 그런 거지.

"근데 처남은 아이디를 굉장히 쉽게 빌려주네? 보통 본인이 보는 소설을 남한테 들키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 않나?"


"오라비는 소설 보는 게 늘 똑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처남이 보고 있는 소설의 선작목록을 보여주었다.

뭐, 거의 대부분이 스포츠물.


그것도 축구와 관련된 소설들이었다.


그래. 이렇게 일관된 취향이면 굳이 남에게 보여줘도 문제가 되진 않겠다.


간혹 몇몇 판타지 작품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별다른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거 쓰다 보니까 생각보다 재밌던데 중간고사 끝나면 25편 다 올려버려야겠다."

"뭐야, 벌써 다 써놨어?"


"신혼여행 때부터 조금씩 스토리를 쓰고 있었거든요. 25편까지면 우리들의 여행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야! 이런 느낌으로 엔딩을 낼  있을 거 같아요."

그것참 소드마스터 야마토 같은 느낌이네.


처음부터 장편을 노리고 써서 엔딩이 그런 걸까.


"그래서 이거 채점은 어떤 기준으로 하는데?"


"여기 있어요."


수진이가 보여준 채점 기준을 보니 나름 합리적인 기준점이 있기는 했다.


일단 소설 한 편당 띄어쓰기를 제외한 4천자 분량의 글자가 기준이었고 25화를 기준으로 완결을 써야 한다.


맞춤법에 문제가 있으면 감점을 받는 식이고 선작이나 조회수, 댓글의 수로 가산점을 받고 나머지는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따르고 있던가 교수의 취향이 들어가는 거겠지.

일단 분량을 지켜서 제때 글을 올리고 맞춤법에 오류가 없으면 만점을 받는데 나머진 추가로   가산점을 받는 식이라 그리 나쁜 과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로 문제가 생기기 전까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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