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계곡에서 생긴 일(4)
수진이와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동적 스트레칭이요?"
"그래."
몸을 쭉쭉 당기는 듯한 운동을 하는 것보다 워밍업을 하듯 조금 큰 동작으로 관절이나 인대에 무리가 가지 않는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단다.
젊은 사람들에겐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 나잇대의 사람들에겐 그런 작은 일조차 크게 다가온다.
쇠질을 하다가 스트레칭의 영향으로 손에 힘이 풀리면 무거운 역기에 깔리거나 손목이 비틀릴 수 있으니 조심하고 있지.
"진짜 헬창이 다 됐어. 이러다가 나중에 헬스 트레이너 하는 건 아니죠?"
"헬스 트레이너도 재능이야."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몸에서 땀이 조금 흐를 정도로 워밍업을 하고 심장에서 먼 곳부터 천천히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혹시 찬물에 심장마비라도 걸리면 위험ㅡ
"에잇!"
수진이가 뿌린 차가운 계곡 물이 얼굴과 몸에 닿는다.
이렇게 뜨거운 태양 아래 있건만 물이 제법 차가워서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에잇! 에잇! 에잇!"
수진이는 계속해서 내 얼굴에 물을 뿌려왔다.
나는 몸이 흠뻑 젖은 상태로 물을 뿌리는 수진이를 바라봤다.
파레오를 걸쳤지만 슬릿을 통해 보이는 건강한 다리와 하의 수영복.
위에 입고는 있으나 물이 묻어 안이 비치는 셔츠.
그리고 하얀색 비키니지만 강조선이 들어가고 가슴을 밑에서 받치는 게 아닌 위에서 가린 모양이라 조금 격하게 뛰어놀면 위로 올라가서 가슴이 훤히 드러날 것 같은 야시시한 상의 수영복.
"에잇!"
다시 한 번 뿌려진 물이 얼굴에 튀고 방금까지 달아올랐던 의식이 천천히 식는다.
수진이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손에 물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천천히 얼굴을 가리고 있는 척을 하다가 수진이가 물을 퍼 올리는 동작을 하자마자 앞으로 튀어나갔다.
"꺅!"
전신이 흠뻑 젖은 상태로 수진이에게 들러붙자 조금 차가워졌던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수진이는 차가운 물이 묻자 몸을 조금 움츠렸다가 내 옆구리를 손으로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내가 몸을 뒤틀면서 떨어지자 내 얼굴을 향해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에잇!"
여름방학을 시작하고 가장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보인다.
하긴,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아무도 오지 않는 계곡에 신혼부부가 함께 왔는데 즐겁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지.
수진이에게 물을 두어 번 더 맞은 다음 수진이를 등지고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앗! 그건 반칙이지!"
"억울하면 너도 하던가!"
수진이는 내가 뿌린 물에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억울하다는 듯이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이씨!"
물을 뒤집어쓴 수진이는 고개를 돌리고 나를 등진 상태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우린 이미 물을 충분히 뒤집어쓴 상태다.
지금이라면 괜찮겠지.
수진이를 등지고 물을 뿌리는 척을 하다가 바로 수진이를 향해 뛰어들었다.
"이번엔 안 통해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피하는 수진이.
하지만 어차피 물속이라 피해도 손이 닿는 거리다.
나는 곧장 수진이의 손을 붙잡아 당기곤 내 품에 안아 들었다.
"윽."
나한테 끌어안긴 상태로 발버둥을 치려다가 여기가 종아리까지 물이 오는 곳이라 떨어지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몸에 힘을 뺀다.
기도하듯 양손을 모아쥔 상태로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올려다본다.
"서방님..."
"원래 오프닝은 다이빙이지."
"꺅~"
수진이는 즐겁다는 듯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수진이를 품에 안은 상태로 천천히 바위를 향해 걸었다.
그렇게 수진이를 물속으로 던지려고 하다가 혹시 안에 바위나 돌이 있어 수진이가 다칠까 봐 던지지는 못했다.
"...겁쟁이."
"겁쟁이로 사는 게 부인 살해범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뭐든 안전이 제일이야.
수진이를 옆에 내려놓은 다음 나부터 물속으로 뛰어내려 보았다.
다리로부터 물속으로 뛰어내린 다음 실눈을 뜨고 바라보니 생각보다 깊어서 다이빙한다고 다칠 일은 없어 보였다.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얼굴을 손으로 닦은 다음 수진이를 올려다봤다.
"깊어요?"
"어. 다리가 안 닿아."
"진짜 좋은 곳이네."
수진이는 주변을 둘러보며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보였다.
어른이 수영하기에 좋은 장소인데도 사람이 없다니.
하긴 아버지 세대와 요즘 세대가 좀 다르긴 하지.
아이들은 휴대폰이 있고 컴퓨터가 있고 TV가 있는데 굳이 이런 차가 없이 들어올 수 없는 계곡을 찾아오진 않을 것이다.
내 나잇대의 세대는 찾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다들 바닷가를 가는 추세니까.
"받아요!"
수진이가 위에서 뭔가를 던져왔다.
아까까지 열심히 펌프질했던 그 튜브였다.
그 튜브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풍덩 소리가 나며 얼굴로 물이 튀었다.
수진이가 나를 따라 물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푸하! 와 시원해~"
수진이가 물속에서 고개만 내밀고는 그리 말해왔다.
수진이를 바라보자 방금까지 입고 있던 셔츠는 벗었는지 어깨가 드러나 있었다.
어깨가 아닌 목 쪽에 끈이 있는 비키니가 눈에 들어온다.
드러난 살 색에 눈이 고정된다.
매일 같이 안고 있는 데도 조금 다른 장소에서 조금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 이렇게 설레다니 나도 참 단순한 녀석이다.
"어딜 그렇게 보는 거에요?"
싱긋 웃으면서 내 얼굴에 물을 튀겨온다.
"수진이 가슴."
"선생님은 포르노 배우 한 명으로 죽을 때까지 자위할 수 있는 남자였네요."
"좋지?"
수진이는 좋다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도 뭐한 복잡한 표정을 지은 상태로 튜브에 올라탔다.
엉덩이를 튜브의 구멍에 끼워 넣은 상태로 누워있는 수진이.
몸에 힘을 빼고 손을 살짝씩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편안해 보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튜브를 2개 가져오는 거였는데."
"수영 잘하니까 필요 없다면서요? 으이구! 이건 내꺼니까 안 빌려줄 거에요!"
누가 빌려달라고 했나.
생각해보니 수영을 배우기는 했어도 이렇게 장시간 물에 계속 떠 있는 상황을 상정하고 배운 건 아니었다.
이게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구나.
수진이의 튜브에 손을 올려놓고 둥둥 떠 있자.
이 정도라면 뭐라고 안 하겠지.
"우리 서방님은 나를 너무 좋아하나 보네요? 그 잘하는 수영도 안 하시고 나한테 딱 붙어있고."
"그냥 좋아하겠어?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수진이랑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데."
"..."
수진이가 조금 수줍은 표정을 보인다.
그리고는 손으로 내 얼굴에 물을 뿌려왔다.
거기서 물을 뿌릴지는 몰랐는데. 콧구멍에 물이 들어가서 조금 따갑다.
"가끔 그렇게 돌직구를 던져서 문제라니까 이 사람은. 부끄럽지도 않아요?"
너만 하겠냐.
"하아~ 역시 여름은 이래야지."
"그렇게 좋아?"
"네. 솔직히 초중고 내내 공부만 했는데 이렇게 놀고 그래야죠."
"열심히 한 당신, 떠나라."
"그게 뭐예요?"
"아니, 이걸 모른다고?"
"으~ 아재 냄새."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손으로 잡고 나에게 물을 뿌려오는 수진이.
서로 닮은 듯하면서도 가끔 이런 차이가 보이는 게 참 우습기도 하고 또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뭐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항상 아재니 꼰대니 하며 인상을 쓰다가 작게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하는 우리의 약속이다.
"농담이에요."
수진이는 언제나 주고받는 말을 하면서도 그게 그리도 재밌었는지 쿡쿡 하며 평소보다 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캠프장에서도 웃고 떠들며 좋아했었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단둘뿐이니 아무 문제도 없지.
수진이는 한참 튜브를 타고 놀다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와 천천히 수영을 시작했다.
이마에 쓰고 있던 수경까지 내려서 눈가에 쓰는 철저함에 혀를 내둘렀다.
수진이는 도대체 오늘을 얼마나 기대하며 기다린 걸까.
"물이 진짜 깨끗하고 맑네요. 날씨도 좋고."
"진짜 좋은 곳이야."
"아버님도 어렸을 땐 여기에 놀러 오셨을까요?"
"그렇겠지."
차가 없으면 오기 힘들다고 오지 못하는 곳도 아니다.
아직 중, 고등학생이던 아버지와 친구들이 이곳에서 놀기 위해 열심히 뛰어오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마 아침부터 친구들과 약속을 하고 열심히 달렸겠지.
그렇게 전신을 땀으로 적신 상태에서 옷을 벗어 던지고 바로 이곳으로 뛰어들며 웃고 놀았을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으셨겠지.
"나중에 아이들이랑도 같이 와봐요."
"뭐지? 임신천재가 되겠다는 선언인가?"
"자꾸 헛소리하지 말고요."
"좀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네?"
"생각보다 깊잖아. 사고가 날까 봐."
여긴 어른도 발이 닿지 않아서 발에 쥐라도 나면 사고가 날지 모른다.
그러니 아이들과 같이 놀러 오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구명조끼도 입히고 튜브도 쓰면 되죠. 뭐. 그리고."
수진이는 튜브를 붙잡고 있는 나에게 매미처럼 매달려왔다.
튜브가 뒤집히며 머리가 물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올랐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태어나면 저보다 더 신경 써줄 것 같으니까 괜찮아요."
"그거야 모르지."
아무리 그래도 부성애보단 모성애가 더 강하지 않을까.
"그래도..."
"응?"
"저도 신경 써줘야 해요?"
"그래그래."
이런, 우리 가정에는 아이가 이미 있었네.
구렁이가 있다며 자지를 만지작거리던 녀석이 또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 참...
질리지 않는 여자다.
여러 여성과 사귀고 있는 기분이다.
참한 여성이 되어 부모님한테도 이웃에게도 예쁨을 받는 모습도 있고 아이처럼 웃고 떠들면서 천진난만한 모습도 보여준다.
밤에는 요염한 성인 여성이 되어 나의 뇌를 녹여버리는 달콤한 향기를 뿌리기도 한다.
그리고 글을 쓸 때는 굉장히 멋있는 느낌도 든다.
수진이는 질릴 수가 없게 만드는 여성이다.
"내가 평생 한 명의 포르노 배우로 자위하는 남자가 아니었네."
"그게 뭔 소리예요?"
"니가 그만큼 특별한 사람이라는 거지."
"바보~ 꺅! 어딜 만져요!"
"엉덩이."
"정색하지 말고 앗! 버, 벗겨질 거 같아!!!"
수진이의 꺅꺅거리는 소리를 듣다가 화를 낼 것 같은 타이밍에 손을 뗀다.
수진이는 나를 노려보다가 물속으로 잠수해선 내 수영복을 벗겨버렸다.
"우왓! 동네 사람들~ 여기 변태가 있어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내 수영복을 들고 물 밖으로 도망쳤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멋쩍게 웃고는 튜브로 내 구렁이를 가린 상태로 뭍으로 올라왔다.
웃고 떠들면서 놀다 보니 체온이 많이 내려가 있었다.
이젠 좀 쉬면서 체력을 회복해야지.
"여기 오지 마요. 이 변태~"
"수영복은 주고 말해. 아니 스판 재질인데 그걸 어떻게 벗긴 거야?"
수진이는 팬티를 벗기는 장인이 되어 있었다.
하긴 밤마다 그렇게 물고 빠는데 이 정도는 기본일지도 모르지.
"페라 장인 이수진."
"자꾸 헛소리하면 계곡에 던져버릴 거에요."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