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캠핑장에서 생긴 일(8)
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든 순간 곧바로 고개를 돌려버린 저 어색한 느낌은 아마 우리의 관계를 보거나 들은 게 아닌가 싶다.
아내분과 아이들은 우리에게 저런 미묘한 시선을 보내오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어젯밤에 혼자 텐트에서 나와서 사색이라도 잠겨있다가 들은 게 아닌가 싶다.
미안하다 생각한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런 장소에서 관계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민폐를 끼치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체면을 차리던 이전의 나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에 묻은 수박즙을 물티슈로 닦아내는 수진이를 바라본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하던 수진이는 뭔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아! 소리를 내고는 내 손도 물티슈로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손에 수박즙을 다 닦아낸 수진이는 나를 보며 싱긋 웃음을 보였다.
이전의 나였다면... 이러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이 앞에 있는데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수진이가 내 볼을 살살 꼬집어왔다.
"왜?"
"응~"
자신의 볼을 톡톡 두드리며 눈을 살짝 감는다.
아무래도 아까 했던 수박씨 멀리 뱉기의 우승자 시상식을 하려는 모양이다.
수진이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춰줬더니 이번엔 양팔을 벌리면서 싱긋 웃는다.
수진이의 몸을 부드럽게 안은 상태로 등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자 수진이도 내 등을 가볍게 톡톡 두드려온다.
그렇게 잠깐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있다가 살짝 몸을 떼려고 하는데 내 눈과 수진이의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의 입이 가까워졌다.
그렇게 아주 잠깐 입을 맞추고 떨어뜨리니 수줍게 웃으면서 다시 내 입에 입을 가볍게 맞춰오는 수진이.
서로 새처럼 서로의 입술을 쪼아먹던 우리의 애정 행위가 끝난 것은 화장실을 갔던 꼬맹이들이 "뽀뽀한다!" 라는 소리를 내며 우리를 삿대질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서로의 몸에서 떨어져서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며 얼굴을 긁적였다.
아내분이 조금 당황한 눈치로 삿대질하던 남자애의 손을 내리고 서둘러서 자리에서 벗어났다.
꼬마애는 떠나가면서도 "뽀뽀했대요! 뽀뽀했대요!" 하면서 우리를 놀리며 웃었다.
"우, 우리도 슬슬 정리할까?"
"네, 네..."
서로 어색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2박 3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생각보다 그리할 일이 없었고 가을에 와서 본격적으로 즐기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수진이도 캠핑 캠핑 하며 노래를 부른 것치고는 내 의견에 별다른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거겠지.
점심은 가져왔던 라면을 이용해서 간단히 먹고 짐을 정리해서 차에 실었다.
"뭔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네요."
"아쉬워?"
"아쉽죠. 좀 오랜만에 나온 건데."
그렇게 말하며 백미러로 멀어지는 캠프장을 바라보는 수진이.
나는 수진이를 살짝 곁눈질해봤다.
확실히 뭔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차피 여름방학은 이제 막 시작됐는데 다른 곳도 가보자."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이라.
그러고 보니 수진이와 바닷가는 자주 가봤는데 수영을 해본 적은 없네.
수진이와 스킨스쿠버를 해본 적은 있는데 그것과는 좀 다르지.
"바다나 계곡에 놀러 가서 수영을 하는 것도 좋지."
"역시 수영복이 목적이구나? 음흉해. 이 김변태!"
변태소리를 듣고 수영복을 입은 수진이를 볼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재밌겠다. 바다도 가보고 계곡도 가보고."
"그래."
수진이와 함께라면 뭘 하든 즐거우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
"후우..."
"하아..."
우리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나란히 한숨을 쉬었다.
"아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러게."
여름이 시작되어 즐겁게 어디를 가볼까? 하며 행선지를 고민하던 우리를 반긴 것은 장마였다.
이놈의 장마는 도대체 언제 끝날 생각인지.
수진이는 TV를 보던 시선을 거두고 창가로 나가서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하늘을 원망스럽다는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앙... 내 방학..."
창문에 손을 댄 채로 천천히 무너지는 수진이.
그런 수진이의 곁에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작년에도 비가 많이 오긴 했는데.
그때만 해도 난 학원, 집, 도서관, 카페라는 매우 심심한 인간이었기에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진 못했다.
수진이도 집, 학원, 자습실이나 도서관이었겠지.
지금이 되어서야 이 장마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가끔은 비도 나쁘진 않은데..."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수진이.
아, 오랜만에 들어보는 멘트다.
수진이의 어깨를 툭 하고 건드리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
짧은소리와 함께 엉덩이를 만지며 나를 노려본다.
그러더니 씨익 웃고는 내 옷을 당겨온다.
나도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바닥에 넘어졌다.
수진이는 그런 나의 배 위에 레슬링 선수처럼 배를 올려놓고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수진이의 장난을 받아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끔 내리는 비라서 나쁘지 않은 거지 이렇게 계속 내리는 비는 별로다.
이제 그만 그쳐줬으면 좋겠는데.
"일단 병원이나 다녀오자."
"네."
우리도 이제 아이를 가져야 하니까.
이렇게 하고 있는데 아직 임신을 못 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니 이참에 산부인과에 들러 임신에 대해서 상담을 좀 받아볼 생각이다.
옷을 갈아입은 다음 곧장 산부인과로 향했다.
수진이는 그동안 제법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나나 수진이, 둘 중 누군가가 불임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얼굴에 드러나고 있다.
솔직히 나도 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 아내와는 관계를 가지더라도 피임을 신경 썼었지만 콘돔이 100%로 안전하지는 않다.
4년간 부부관계를 맺었었는데 아이가 없었으니 오히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호, 혹시 불임이라면... 어떡하죠?"
수진이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불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신호가 걸려 차를 세우고 불안한 눈빛을 보이는 수진이를 슬쩍 바라봤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설령 아이가 없더라도 수진이만 곁에 있어준다면... 그러면 어떤 미래든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수진이에게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뭐 결국 우리가 우려했던 상황은 없었다.
"남편분이 정력이 굉장히 좋으시네요. 이 정도 양이면 보통 남성 정액에 들어있는 정자의 네 배 정도의 분량입니다. 아내분도 몸에 이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수진이를 힐끗 바라봤다.
수진이는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의사의 말을 듣다가 내 시선을 느끼곤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까까진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는데 굉장히 안도한 느낌이다.
산부인과를 나서서 차에 올라타니 수진이가 시트에 몸을 묻는다.
"흐으... 다행이다."
한숨을 길게 내쉰 다음 천천히 안전벨트를 하는 수진이를 바라본다.
"다행이다. 그냥 시기가 좀 안 맞았나 봐."
"의사 선생님이 우리 진단서 보고 놀랐던 거 보셨어요?"
"보긴 봤지."
내 나이가 39이고 수진이가 20인데 놀랄 만도 하지.
"정력왕."
"..."
"정자가 네 배."
"..."
"어쩐지 밤마다 그렇게 사람을 못살게 군다더니 이럴 줄 알았지. 타고난 변태였어."
"건강하니까 좋은 거지."
4배가 얼마나 많은 건지 모르겠다.
저번에 인터넷에 올라온 UFC 선수는 일반인 대비 정자가 15배라던데 그런 사람을 보고 난 다음 4배라고 해도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평소 먹던 정력 관련 식품이나 운동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후우... 아무튼, 그냥 타이밍이 안 맞은 거구나. 다행이에요. 불임이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는데."
수진이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그리 말해왔다.
"불임이라도 상관없어."
"네?"
"애가 없으면 없는 데로 서로를 사랑하며 살면 되는 거지. 오히려 콘돔값도 아끼고 좋네."
"후훗, 바보."
수진이는 내 농담에 작게 웃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불임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문제가 있어도 수진이에게 문제가 있어도 우린 그걸 계속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하나의 아픔으로 간직하고 살아갈 테니까.
저 웃음에 그늘이 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뭐 먹을까요?"
"글쎄... 수진이?"
"저는 야식이고요."
ㅓㅜㅑ...
수진이는 이렇게 가끔 야한 농담에 돌발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평소에는 변태니 개변태니 그러면서 가끔은 나도 당황할 정도의 말을 툭 하고 던져오는데 가슴이 콩닥거린다.
자지가 나 불렀냐며 불끈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수진이도 빳빳하게 텐트가 쳐진 모습을 보더니 작게 웃고 있다.
"그렇게 캠핑이 좋으실까?"
내 텐트를 바라보며 그런 농담을 던져오는데 할 말을 잃었다.
이 요염한 녀석.
의사도 좀 더 노력해보면 임신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오늘은 그 `노력`을 좀 열심히 해봐야겠어.
"역시 저녁은 수진이네."
"제가 음식이에요?"
"산삼보다 몸에 좋은 게 고삼이라지."
"으~ 아재 냄새. 그리고 저 이래 봬도 대.학.생 이라구요?"
"1학기 내내 집에서 인강만 들은 녀석이 까불어. 나일롱 학생이면서."
"이 씨!"
산부인과로 향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차 안.
수진이와 나는 가장 걱정하던 문제를 하나 해결하고 안심이 되어 평소보다 조금 떠들썩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다음 수진이를 끌어안고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은 수진이의 입속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그 상태로 수진이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팬티를 어루만졌다.
수진이는 처음엔 당황한 듯이 보였지만 이내 내 행동에 맞춰주기 시작했다.
"저녁은 배달."
"네..."
수진이를 끌어안아 침대로 눕힌 다음 그 몽롱한 눈빛에 빠져들듯이 수진이를 품에 안았다.
아직 수진이와 못해본 일들이 많이 남았다.
여름방학이니 계곡이든 수영장이든 워터파크든 바다든... 아무튼, 여름다운 일은 아무것도 못 했지.
지금 임신을 하면 조금 제약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수진이를 임신시키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난 이제 곧 40이다.
남자들은 슬슬 이 나이부터 서지 않게 된다고 하니 불안함 마음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 불안함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