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캠핑장에서 생긴 일(5)
덥다고는 했지만 그게 싫다는 감정과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고기를 먹기 시작하자 수진이에게서는 다시 즐겁다는 감정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서로에게 쌈을 싸주었다.
그렇게 고기를 구워 먹다 보니 고깃집에서 먹는 된장찌개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혹시 몰라서 사온 된장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캠핑용 버너에 냄비를 올렸다.
물을 따르고 된장과 쌈장을 1대 1로 넣은 다음 작게 자른 삼겹살을 두 점 넣은 다음 마늘과 고추, 양파를 넣었다.
곧 보글거리며 끓기 시작한 된장찌개.
수진이에게 일회용 수저를 건네주자 수진이가 보글거리는 된장찌개를 수저로 떠서 먹는다.
"흐음! 왜 집에서 먹는 거랑 달라진 것도 없는데 더 맛있게 느껴지지?"
그렇게 말하며 양손으로 수저를 잡고는 나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는 수진이.
그 앙큼함에 헛웃음만 나왔다.
달라진다고 뭐가 그리 달라지겠는가.
오히려 두부가 빠져서 식감이 조금 부족할 것 같은데.
그리 생각하며 쌈을 한입 씹어먹은 다음 된장찌개를 떠서 먹으니 수진이의 말마따나 정말로 맛있게 느껴졌다.
"신기하네."
"그죠? 이게 캠프의 신비."
"하하."
정말로 평소보다 맛있게 느껴지는 고기와 된장찌개로 저녁을 먹은 다음엔 남은 숯에 고구마를 하나 넣어서 군고구마를 먹기로 했다.
"와서 먹방만 찍는 거 같다. 에휴, 살찌면 어떡해요?"
"밤마다 그렇게 운동을 하는데 안 찌겠지."
"여, 여기선 안 할거에요?"
"누가 한데?"
캠프장에 아무도 없었으면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딱~ 보면 하고 싶다고 쓰여있는데 아쉽게 됐네요~"
그렇게 말하며 잔불만이 남은 그릴을 바라보고 있다.
시계를 살펴보며 군고구마를 기다리는 수진이.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수진이의 옆구리로 스윽 손을 집어넣어 그 가슴을 만져보았다.
그러자 수진이는 아무 말 없이 내 손등을 꼬집어왔다.
"아파."
"밖에서는 자중 좀 하시죠?"
"장난이었어."
"장난으로 가슴을 만지는 사람이 어딨어요?"
"여깄네."
수진이와 투닥거리며 장난을 치다가 군고구마까지 꺼내 먹고 난 다음엔 차가운 물을 마시고 샤워까지 하고 돌아오니 해가 저물어 하늘이 붉은빛에서 어두운 빛으로 바뀌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캠프장인데 샤워도 하고 이거 완전 외박이랑 다를 것도 없네."
"그럼 샤워하지 말던가."
"누가 싫대요? 오히려 그래서 더 좋은데. 샤워도 못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수건도 많이 챙겨왔는데."
아무래도 물로 땀을 닦고 자려고 수건을 좀 많이 챙겨온 모양이다.
어쩐지 잠깐 있다가 가는 건데 수건을 너무 많이 챙긴다고 했지.
나는 시계를 보며 언제 밤하늘에 별이 뜰까 생각하고 있었다.
"왜 자꾸 시계를 보세요?"
"캠프장에 왔으니까 밤하늘의 별자리는 보고 자야지."
"후훗, 어쩐지 자꾸 별자리를 찾아본다고 하더니 그것 때문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는 게 그렇게 낭만적이라는데?"
"그래요? 별을 볼 일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가끔 소설 속에서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는 장면을 쓰는 녀석이 참 로망이 없네.
하긴 요즘 사람들이 밤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있긴 하겠나.
네온사인의 불빛이 너무 밝아 밤하늘의 별빛이 보이지도 않고 설사 보인다고 하더라도 바쁜 현대인에게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볼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있지도 않겠지.
수진이와 잡담을 나누다가 몸에 벌레 기피제를 뿌리고 밖으로 나와 캠핑용 의자에 앉았다.
서로 아이스팩을 손에 들고 열기를 식히며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와..."
수진이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자리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솔직히 겨울에 올려다보는 별자리는 추워서 바라볼 틈도 없었겠지.
그러니 다시 한 번 강원도에서 느긋하게 별자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솔직히 강원도에 좋은 기억은 없었다.
수진이와 함께 갔던 하조대의 해돋이 명소가 없었더라면 말이다.
나에게 강원도란 가끔 꿈에 나올 만큼 거지 같은 일들이 가득하던 군대를 다녀온 곳이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던 별자리가 굉장히 밝고 아름답다는 기억만큼은 남아있었다.
수진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다.
오늘은 은하수를 관측할 수 있는 최적의 날이었다.
달이 뜨지 않고 미세먼지 같은 문제도 없었다.
이곳엔 오직 낭만만이 가득했다.
"조금 쌀쌀한 가을에 다시 와서 우리 앞에 모닥불을 피우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몸을 녹이고 혼자서 쓰긴 조금 큰 담요로 둘이 끌어안고 앉아서 별자리를 올려다본다. 그런 상황도 낭만적이고 좋지."
"역시 문돌이야."
"문과라서 문송합니다?"
"아하하! 그래도 전 이런 것도 좋아요. 추운 겨울에 차 안에서 바라보던 별이랑은 비교도 안 되네."
수진이는 밤하늘의 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건 뭐고 저건 뭐고 하며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온다.
나는 내가 아는 선에서만 수진이의 질문에 답해나간다.
하지만 그런 설명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다.
아, 진짜 지금이 가을이었다면 최고였을 텐데.
이 앞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함께 올려다보는 별자리를 보고 싶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내 팔을 쿡쿡 찔러왔다.
"가을에 캠핑해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네요?"
"올 거야?"
"네. 저도 우리 서방님이 말한 광경이 보고 싶어졌어요."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스팩을 잡고 있어 싸늘해진 손을 내 옷 안으로 집어넣었다.
싸늘한 그 기운에 몸을 움츠리니 그 모습을 보고 키득 이기 시작하는 수진이.
나는 복수의 심정으로 수진이의 등에 아이스팩을 넣어버렸다.
"끼약!"
온몸을 뒤틀면서 발버둥을 치니 곧 툭 소리가 나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아이스팩.
수진이는 나를 작게 노려보더니 내 바지를 잡아당겨서 안에 아이스팩을 넣어버렸다.
내가 깜짝 놀라서 몸을 뒤틀기 시작하니 수진이가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낭만적이었던 순간은 잠깐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게 우리 나름의 낭만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나의 독서로 만들어진 얇고 넓은 지식은 이 이상 별자리를 보며 떠들 소재거리를 만들지 못할 테니까.
차라리 층간소음이라는 문제를 벗어나서 평소보다 조금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수진이와 별빛 아래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이 순간이 낭만이나 청춘이라 불리는 그 무언가겠지.
수진이를 붙잡고 차가워진 손으로 몸을 이리저리 만지며 웃고 떠들다 보니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흘러갔다.
밤하늘을 보다가 더는 더위를 참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자리를 정리하고 텐트로 들어갔다.
"냉풍기야. 사랑해~"
수진이는 냉풍기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캠프 본연의 맛 어쩌구 하던 녀석이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자리에 천천히 누워서 배만 덮는 모포로 서로의 배를 덮었다.
베개를 베고 누우니 수진이가 내 팔을 잡아당겨 팔베개를 해왔다.
해주는 사람은 팔에 피가 안 통해서 저리고 받는 사람은 딱딱해서 불편할 텐데 수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키득 이고만 있다.
"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낚시하는지 알겠네요. 캠핑을 와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기도 그렇고. 공기가 깨끗해서 좋은데 좀 심심하긴 해요."
"가을 캠핑은 조금 다를지도."
"그럴까요?"
"일단 추우면 모닥불을 피는 게 추가되니까."
"우리 서방님은 모닥불을 왜 이렇게 좋아하지? 불장난하면 밤에 오줌싸요?"
"...왜? 부모님께 처남이 오줌쌌다고 구라라도 치려고?"
"윽!"
수진이가 이를 악물고 내 옆구리를 꼬집어왔다.
제법 아팠다.
"오라비는 진짜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리는 수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처남이 인사답지 않게 소설을 쓰는 바람에 지금의 나와 수진이가 있는 건데 말이다.
"근데 처남은 왜 인싸라면서 웹소설을 읽는 걸까?"
"아, 별건 없어요. 그냥 사귀던 여친이 웹소설을 읽고 있어서 같이 읽다가 그냥 그대로 읽기 시작했대요. 그전까진 롤이니 배그니 프리미엄리그니 그런 이야기만 했어요."
그럼 우리의 지금 관계는 그 처남의 전 여친 때문이란 말인가?
여러 우연이 만들어져서 지금의 이 만남이 있는 거구나.
"신기하네. 알고 보면 처남 때문에 만나게 된 건데."
"오라비 때문이 아니에요."
"응?"
수진이는 검지로 내 가슴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배시시 웃었다.
"이렇게 은하수가 뜬 날에는 로맨틱하게 말해야죠. 운명이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조금 부끄러운듯한 미소를 짓는다.
솔직히 나도 그런 말을 꺼내볼까 생각은 했는데 내가 하면 느끼하다거나 버터남이나 뭐 그런 반응이 돌아올까 봐 자제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미인이 수줍은 듯이 웃으면서 그런 말을 꺼내니 굉장히 매력적인 대사로 들린다.
나는 수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웃었다.
"우연이 몇 번 겹쳤지. 그날, 평소처럼 집에 일찍 돌아갔다면 만나지도 못했겠지. 네가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을 테고. 그리고 무엇보다ㅡ"
나는 수진이의 뺨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탱탱한 피부의 감촉을 느끼며 엄지로 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ㅡ네가 나에게 먼저 다가왔으니까 이렇게 된 거지. 고마워. 이것도 저것도 전부다."
수진이가 없는 삶?
지금의 난 그런 미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준범이의 도움으로 돈을 벌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 녀석의 조언을 무시해서 한번 피를 봤는데 두 번이나 무시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돈이 생긴다고 내 삶이 달라졌을까?
남들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을 수 있다.
삶에 여유가 생겼을 테니까.
하지만 그다음은 없다.
38살의 남자에게 돈이 10억 생긴다고 미래가 갑자기 떡하니 나타날까? 그것도 돌싱남이?
착각도 유분수지.
돈이 생겨서 남들과 비슷한 상황이 되었어도 나는 서서히 메말라갔을 거다.
수진이의 뺨을 어루만지며 그렇게 말해오자 수진이는 눈을 슬며시 감으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대로 내 입술로 파고들어 오는 수진이의 혀의 감촉이 느껴진다.
1분, 2분, 3분, 4분, 5분.
관계를 가지는 것도 아닌데 굉장히 오랜 시간의 키스를 나누고 수진이의 입이 떨어졌다.
"사랑해요. 이것도 저것도 전부다. 남들이 뭐라든 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수진이의 눈에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애정이 느껴졌다.
아, 아쉽다.
이곳이 캠프장이 아니고 그냥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면 이대로 덮치고 있었을 텐데.
내가 그리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천천히 내 뺨을 쓰다듬더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할까요?"
달뜬 숨을 내쉬는 수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촉촉하게 젖어든 눈동자가 내 마음을 술렁이게 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수진이의 머리를 끌어당겨 다시 수진이와 키스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