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캠핑장에서 생긴 일(4)
시원한 얼음물을 얻어 마신 다음 그가 하고 있던 텐트 설치를 시작했다.
분명히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자녀가 2명이 있었는데 텐트가 농담 조금 보태서 24인용 텐트처럼 널찍했다.
내가 굉장히 큰 텐트를 보며 입을 쩌억 벌리고 이걸 어찌 설치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목에 두를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좀 크죠? 친구가 신형 텐트를 새로 샀다가 해서 받은 건데 구식이라 설치도 좀 어렵고 그렇네요."
"아, 네."
친구분이란 사람이 대가족이거나 아니면 이런 텐트로 모여서 레저활동을 해야 하는 무슨 카페에 회장이나 뭐 그런 모임을 하는 사람인가?
아무튼, 바닥에 풋프린트라는 바닥 깔개를 깔고 그 위에 이너텐트만 얹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 풋프린트 마저 빳빳하게 당겨지지 않고 조금 뒤틀린 게 눈에 거슬렸다.
"이거 조금 균형이 안 맞는 거 같은 데요? 고치는 게 어떤가요?"
"아, 역시 그런가요? 오늘따라 바람이 좀 불어서 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는 내 말을 들으며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며 곧장 텐트를 손보기 시작했다.
나와 수진이가 텐트를 치며 쉽다고 웃고 떠들던 건 그냥 음... 그래, 우리의 텐트는 그냥 원터치 식이고 이건 뭐 군용 24인용 텐트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일단 천이나 프레임이 다 무겁다.
무거운 것도 무거운 건데 크기가 크다 보니 둘이서 대칭을 이룬 상태로 하려고 하다가도 정신을 차리면 대칭이 안 맞아서 다시 처음부터 하고 있다.
균형에 맞게 맞췄다고 생각을 했는데 미묘하게 안 맞기도 하고 못질까지 해야 하니 손이 굉장히 많이 갔다.
이건 부인분이 화를 좀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한참 고생을 하려고 하니 어깨를 두드리는 손짓에 고개를 돌렸다.
꾹.
내 뺨에 수진이의 검지가 파고들어 와 있다.
수진이는 장난이 성공해서 신이 난 것처럼 작게 웃다가 내 얼굴에 가득한 땀을 보더니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우리의 텐트로 가선 수건에 차가운 물을 적셔 내 목에 둘러주었다.
"괜찮아요? 너무 늦게 와서 걱정돼서 와봤어요."
"미안. 생각보다 어렵네."
"저도 도와줄까요?"
"됐어, 더운데 쉬어."
"남편이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는 걸 아는데 어떻게 저만 쉬어요?"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가 텐트 치는 작업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엔 괜한 오지랖으로 땀만 주룩주룩 흘리고 수진이도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불편했으나 세 명이 하는 작업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순조롭게 텐트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남편분이 수진이를 힐끔거리는 것이 보였다.
수진이까지 텐트 작업을 시키려니 미안한 걸까?
내가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그도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아내분이 굉장히 동안이시네요."
"네, 뭐 그렇죠."
굳이 몇 살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겠지.
동안이라고 말해왔지만,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내 아내는 대학생이니까.
어깨가 으쓱이려는 걸 어떻게든 참아내고 텐트를 계속 쳤다.
그렇게 텐트를 계속 치고 있으려니 그의 시선이 자꾸만 수진이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보면 닳아 이 사람아.
이 정도로 미인이 아내면 부럽긴 하겠지.
아, 이러니까 진짜로 40대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나은 점으로 하루의 피곤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꼰대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뭐, 요즘은 피곤과 스트레스랑은 인연이 없는 삶을 살고 있고 이 정도로 예쁘고 착한 여자와 결혼했으니 무릇 남자라면 이 정도 감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
여자들이 남자친구의 키가 180이 넘고 서울대를 나온 엘리트고 대기업 다닌다고 자랑하는 감정과 좀 비슷하지 않을까?
한참 수진이를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시죠?"
"네? 아, 아뇨. 아내분이 캠핑을 굉장히 즐기시는 것 같아서요. 취미가 맞는다니 부럽네요."
취미가 맞지는 않지.
서로 사랑하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취미에서 재미를 찾기 시작한 거고.
요즘 내가 드라마를 제법 재밌게 보고 있는 것과 수진이가 나보다 더 게임을 잘해서 수진이의 하드 캐리로 자주 치킨을 맛보고 있는 것뿐이다.
공통의 취미라면 독서, 아니 웹소설을 읽는 일이다.
나는 잡식이라 도서관에서 책도 자주 빌려다 읽지만, 수진이는 웹소설만 읽을 뿐이라 독서가 공통의 취미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아무튼, 같이 읽는 웹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은 제법 재밌다.
서로가 좋아하는 일이라 이야기를 할수록 대화가 달아오르니까.
요즘 가장 뜨거운 주제는 인한 강사의 소설이다.
성인이 된 수진이는 놀랍게도 인한 강사의 소설을 보고 있다.
여자가 야설이라니 웬 말인가 싶다가도 여자도 야동을 보는 사람이 있는데 활자가 무슨 상관이냐는 말에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하고 납득해 버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정마새인 수진이에게 야설은 우숩지라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분노 1스택을 쌓은 수진이가 옆구리를 꼬집었던 일이 떠오른다.
내가 그 일을 떠올리며 키득 이고 있으려니 나에게 말을 걸었던 남편분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책을 읽으며 혼자 사색에 잠겨서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며 멍을 때리는 게 버릇이 되어 종종 이러니 당신의 말을 씹은 것은 아니다.
"저도 아내도 캠핑은 처음입니다."
"아, 그래요?"
그는 내 말을 듣더니 텐트 설치를 돕던 수진이를 힐끔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자꾸 남의 아내를 보며 한숨을 쉬지 말아줄래?
수진이는 본인의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안보는 척을 하면서도 귀를 미묘하게 쫑긋거리고 있었다.
덥다는 듯이 본인용으로 가져온 차갑게 적신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땀을 닦다가 이제야 여기를 눈치챘다는 듯이 싱긋 웃어오는데 그 요망함에 속지 않는다.
"..."
이 사람은 속으셨네.
그는 수진이의 그 미소를 빤히 쳐다보다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랑 수진이랑 비교라도 하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면전에서 자꾸 한숨을 쉬다니 참...
그렇게 작게 한숨을 쉰다고 못 알아보진 않는데.
그가 한숨을 쉬든 말든 텐트 설치는 착착 진행되어 곧 마무리되었다.
수진이는 제법 체력을 써서 피곤했는지 어깨를 휘휘 돌리고 있었다.
나는 그 어깨를 주물러주며 나 때문에 애쓰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수진이는 고개를 흔들며 진짜 캠핑하는 맛을 알게 되었다고 제법 재밌는 경험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기특한 녀석.
수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우리의 텐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가는 중에 생각한 건데 아내분이랑 아이들은 어딜 나간 건가?
딱 봐도 커 보이는 텐트를 남편 혼자에게 맡기고 애들과 근처 시원한 곳에 에어컨이라도 맞으러 간 걸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힘내시길.
수진이와 함께 우리의 텐트로 향하다가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도 저거 설치할 걸 그랬다."
"조금 아쉽긴 하네요. 그래도 둘이서 그거 설치하면 힘들었을 걸요?"
우리가 바라보는 곳엔 타프라는 이름의 그늘을 만드는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있으면 제법 편할 것 같은데 생각을 못 했네.
더울까 봐 모자랑 부채를 가져오긴 했는데 역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은 그늘이 충분히 있는 곳이어서 조금 나은 편이다.
우리의 짐이나 인원수를 고려해서 그늘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준 사장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늘이 이 정도 있으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
식사를 준비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제 뭐 하죠?"
"의자에 앉아서 책을 보던가 누워서 잠깐 낮잠이라도 자거나 그러는 거지."
"그럼 피곤한데 낮잠이라도 잘까요?"
"그러자."
캠핑 초보들이 캠핑을 왔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재밌는 게 많은 도시에서 벗어나서 아무것도 없는 캠프장에 왔는데 뭐 할 게 있겠는가.
그냥 평소보다 공기가 맑다고 느끼며 시원한 냉풍기의 바람을 쐬며 누워서 잠을 자며 힐링하는 게 캠핑이지.
"시원행~"
"하하."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오며 장난을 치는 수진이.
나는 그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오랜만에 함께 낮잠을 잤다.
냉풍기가 없었으면 어쩔뻔했냐 수진아.
***
낮잠을 그리 오래 자지는 않았다.
약 30분 정도 눈을 감았다가 뜬 우리는 텐트를 치며 소모했던 체력을 회복한 다음엔 텐트에서 서로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아직까진 시간에 여유가 많았다.
저녁은 바비큐를 해먹는다고 해도 그리 많은 준비를 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수진이는 기본적으로 소식이니까 많이 구울 필요도 없고 준비에 시간이 들지도 않는다.
나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내 팔뚝을 물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수진이를 바라본다.
캠핑이라고 신이 나서 나왔는데 막상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이렇게 텐트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니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요?"
잘근거리며 내 팔을 물고 있던 수진이가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는 수진이의 볼을 살짝 꼬집어준 다음 텐트에서 나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뭐하려구요?"
"캠프장에 왔으니 캠핑다운 일이라도 하자고."
나는 그리 말하고는 수진이와 함께 차를 타러 갔다.
"어디 가려고요?"
"해먹이라도 하나 사 와서 설치해보자. 넌 거기에 누워서 바람이라도 쐬고 난 책이라도 읽고."
"해먹, 해먹이라... 좋아요!"
우리는 그렇게 차를 끌고 캠프장을 나섰다.
이거 차를 타고 다닌 시간이 캠프장에 머문 시간보다 더 긴 것 같은데.
그래도 해먹은 처음이라며 제법 신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수진이를 보니 좋은 판단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시내로 나와 마트로 향해 해먹을 구한 다음 텐트 근처의 적당한 나무에 해먹을 매달았다.
수진이는 해먹에 조심스럽게 눕고서는 신이 난다는 듯이 웃음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다음 저녁 식사 준비를 하였다.
"아, 저도 할게요."
"됐어. 그냥 쉬고 있어."
캠핑은 남자의 일이지.
집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건 조금 번거롭다는 생각이 드는데 캠프장에서 하면 생각보다 재밌게 느껴진단 말이지.
"이걸 하는 것도 캠핑이라구요."
수진이는 결국 해먹에 누워만 있는 건 심심했는지 내 등에 박치기하며 그리 말해왔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수진이와 함께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캠핑용품은 편한 게 많아서 굳이 나무를 태워 불을 낼 필요도 없었다.
숯조차 파니까 말이다.
바비큐용 그릴에 고기와 마늘, 버섯을 올려놓고 굽는다.
치익이는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바비큐를 바라보며 수진이가 신이 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것도 잠시 점점 말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더, 더워..."
여름이라 저녁이 돼도 덥긴 하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수진이에게 차가운 얼음물을 건넸다.
캠핑 초보들에겐 불편함이 낭만이 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