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2화 〉캠핑장에서 생긴 일(3) (182/301)


〈 182화 〉캠핑장에서 생긴 일(3)

"강원도 또 가네요. 오줌도 안 눈다면서?"

"이 날씨에 다른 지역으로 가면 죽을 맛일걸?"


수진이와 차를 몰아 캠프장으로 향하는 길.


수진이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작게 웃기 시작했다.


"하긴, 그렇긴 하겠다."


강원도라고 다른 지역보다 엄청 시원하다거나 그렇지는 않겠지.

그래도 다른 지역보단 비교적 쌀쌀할 거라고 생각한다.

항상 에어컨을 빵빵 틀어놓고 사는 우리 현대인에게 여름철의 캠핑은 조금 많이 무더울 테니까.

"서방님은 캠핑 본연의 맛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예?"


"차에 이동식 냉풍기를 싣고 왔잖습니까? 캠핑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자연의 맛을 느끼는 것이 목적인데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그럼  냉풍기 쓸 테니까 너는 텐트 따로 치고 자라."

"아이 씨, 그런 게 어딨어요?"

"여깄지."


그래. 캠핑이 그런 불편함을 조금 감수하면서 추억을 만드는 거란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래도 난 편할 수 있으면 최대한 편했으면 좋겠어.

수진이와 이런저런 말을 하며 캠프장에 도착했다.

캠프장의 주차장엔 이미 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참 많구나.

수진이와 캠프장의 주차장 옆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서 예약자임을 밝히고 캠핑이 가능한 위치를 설명받았다.

화장실이나 전기이용 등등에 관련된 설명을 들은 다음 제법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이동을 시작했다.


상하기 쉬운 식재료는 이곳에서 보관해주고 식사시간이 되면 가져다 쓰면 된다고 하니 캠프장이 확실히 이런 면에서 많이 편하구나 싶다.


"이야~ 자연 본연의  따위 이런 편의성 앞에서는 한방이구나~"

"그렇지. 캠프장이 아닌 곳에서 캠핑하려면 진짜 개고생일걸?"

"겨울에만 캠핑할  있겠어요."

"..."


겨울에 캠핑이라니 갑자기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이 떠오르는데.


지금 군부대는 뭐 조금 좋아졌다 어쩐다하며 뉴스를 타지만 그때와 그리 많이 달라졌을  같지도 않다.

625 시절에 쓰던 수통을 나눠주는 국방분데 달라질  있나.


저질 같은 텐트에 저질 같은 훈련.

혹한기.

그 지랄 맞은 훈련에서 얼어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입장으로 겨울 캠핑만큼은 진짜 아니라고 생각한다.

씹마초였던 연대장 자식이 못질을 못 하는 병사들을 보며 본인이 검도와 태권도 유단자라며 힘  보여주겠다며 망치를 들고 와서 못질하다가  3개를 구부려 먹어서 옆에 있던 연대 주임원사가 헛기침하며 눈치를 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왜 그렇게 인상을 쓰세요?"


"저번 해돋이 갔을 때를 떠올려봐. 그런 날씨 속에서 캠핑하면 얼어 죽을걸?"

"...이 나라는  하지를 못하겠네. 추울 땐 엄청 춥고 더울 땐 엄청 덥고!"

수진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하는 듯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정말 날씨가 이상한 나라야.


캠핑하기에 최악의 나라지.

전기라는 혜택은 이젠 필수가 된 거야.

나약한 현대인에겐 더는 전기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에 짐을 내려놓았다.


안내해준 사장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답례를 표한 다음엔 곧장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도와드릴게요."

"그래."

수진이와 처음으로 시작하는 캠핑.

캠핑은 우선 텐트를 치는 일부터 시작한다.


캠핑의 시작은 텐트를 치는 것이고 끝은 텐트를 철거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일이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할 일이 없는 캠핑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부분이라는 이야기도 있더라.


그래서 2명뿐인데도 원터치식 텐트가 아닌 조금은 손이 가는 텐트를 골랐다.

"음음, 이걸 이렇게?"


수진이는 설명서를 한 손에 들은 상태로 이것저것 손에 들었다가 내려놨다가를 반복한다.


나는 수진이를 뒤에서 끌어안은 상태로  설명서를 대충 살펴보았다.


모양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지 군용텐트와 그리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수진이를 끌어안고 있는 것이 제법 덥다고 느껴질 때쯤 설명서를 다 읽고서 곧장 텐트 설치에 들어갔다.

"여기 이렇게 잡고 있으면 돼요?"

"그래. 이렇게 당겨놓은 상태로 핀을 꼽고 지대를 세우고 하면 되는 거 같은데?"


바람이 조금 불고 있었기에 바닥에 까는 풋프린트라는 것이 날아가지 않도록 수진이가 잡고 있게 만든 다음 귀퉁이를 땅에 박았다.

무식한 군대식 텐트와 다르게 발로 꾸욱 눌러주면 쑥 들어가는 게 제법 설치하는 맛이 있었다.


이제 이너텐트라는  설치할 차례다.


"텐트가 뭔가 종류가 많네요."

"그러게."

설명을 보니 이너텐트는 텐트 안의 텐트로 비가 올 때 겉에 두르는 방수포가 아닌 사람이 잘 수 있도록 하는 그 텐트를 가리키는 모양이다.


참고로 풋프린트는 지면에서 습기나 냉기가 올라오지 말라고 까는 모양이다.


설명서에 적혀있으니 그대로 할 뿐이지만 설명서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텐트를 설치하는데 뭐 1시간이나 2시간이 걸렸다느니 해체에 한 세월이니 하며 캠핑을 가면 부부싸움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20분도  걸리지 않을 듯한 느낌인데 이걸 가지고 싸운단 말인가?

수진이를 힐끔 바라보자 곧장 설명서를 손에 든 상태로 뒤에 뭘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눈은 세상 진지했지만, 몸에서 즐겁다는 기운이 뿜뿜 뿜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제 텐트  설치!"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삼절곤처럼 되어있는 물건을 꺼내 들었다.


이게 텐트의 뼈대 역할을 하는 물건인 모양이다.


끝 부분을 아까 설치해둔 이너텐트의 끝자락에 끼워 넣으니  위치에 맞게 잘 구부려진다.


"뭔가 하다 보니 재밌네요. 생각보다 쉽고."

"그러게. 요즘 텐트는 편하네."


말뚝박듯 땅에다가 망치질할 것도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건 굉장히 쉽구나.


텐트 폴을 설치한 다음엔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이너텐트를 들어 올려 연결을 해주는 차례였다.

수진이는 설명서를 한 번  바라본 다음 순서대로 끼워나가기 시작했다.


텐트 폴과 이너텐트를 연결하기 쉽도록 밴드 부분을 같은 색으로 맞춰둬서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수진이는 생각보다 쉽게 술술 풀리는 텐트설치가 즐거웠는지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멜로디가 익숙하다.


저번에 노래방에서 불러줬던 노래인  같은데.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이젠 이 플라이시트만 씌우면 끝인가 본데요?"


"이거 10분도  걸린 거 아니야?"


"그 정도 걸렸나?"

캠핑이 이렇게 쉬운 거였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저기서 뭔가 큰소리로 언쟁하는 부부가 보인다.


4인 가족인 거 같은데 텐트가 크고 설치가 복잡해 보인다.

남편분은 되도록 냉정하게 받아치려고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봐도 머리에 스팀이 오른 듯한 분위기고 아내분은 뭐하러 이런 날씨에 캠핑을 왔느냐고 잔소리를 하고 있다.


수진이도 내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멀뚱히 서서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


"하하..."


수진이는 뭔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얼굴을 긁적였다.

캠핑이 쉽고 재밌다고 웃고 떠들다가 옆에서 저렇게 난리를 치는 부부를 보니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겠는지  모르겠지.


나는 거리가 좀 있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텐트를 치고 있는 남편분에게 힘내라고 응원을 보냈다.

"저럴 거면 왜 캠핑을 왔지?"

수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다음 플라이시트라는 이름의 일종에 방수포를 텐트 위로 얹었다.


"혹시 남편분이 아내분에게 많은 실례를 저질러서 약점이 잡혀서 저러고 있는지도 모르지."

"예를 들면?"


"글쎄? 주식을 하다가 물려서 반 토막이 났다거나?"

"완전 주갤럼  되셨네."


"요즘은 주갤럼이 아니라 코갤럼이라고 부르는데?"


"잘났어요. 아주. 소설에 그만큼 신경을 썼으면 지금쯤 구매수 6천은 넘는 소설 썼겠다."

짓궂은 표정으로 그런 장난을 쳐오는 수진이.

조금 얄미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지금 당장 엉덩이를 맴매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뭐, 그래도 대충 말을 돌려서 잘 무마한 거 같다.

남편이 바람이라도 폈나 보지가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라서 입 밖으로 내뱉으려다가 간신히 삼킨 참이다.


이걸 그대로 내뱉었으면 `흐응~ 우리 서방님처럼?` 이런 말이 나올까  식겁했네.

나는 저기서 머리에서 스팀이 나오는 남편분 같은 입장이 되고 싶지는 않다.


텐트 설치가 끝난 후엔 짐으로 가져왔던 물건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텐트는 생각보다 넓어서 짐을  넣고도 둘이서 편안하게 누워서 잘만했다.


나는 수진이에게 캠프장에서 쓸 전기연장선을 받아오겠다고 말하고 잠깐 쉬고 있으라고 전했다.

수진이는 알겠다고 말한 뒤에 나에게서 차 키를 받아갔다.

아무래도 무게가 나가서 들고오지 못했던 이동식 냉풍기를 들고올 모양이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뒤에 캠프장 관리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후에 곧장 전기연장선을 받고 텐트 앞으로 돌아오니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뭐지?

"저, 죄송한데 텐트 설치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굉장히 죄송하다는 듯이 허리를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리 말해오는 남자.


아무래도 조금 전에 저쪽에서 텐트를 설치하며 싸우던 남편분인  같다.

나와 그리 나이 차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 남자.

4인 가족인데 결혼을 일찍 한 건가? 아니면 생각외로 동안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멍하니 있었더니 남편분이 조금 몸을 떨기 시작했다.


아, 이런. 너무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어서 거절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예. 가시죠."

나보다 왜소하고 안경을 껴서 조금 지적으로 보이는 그는  봐도 이런 걸 나서서 하는 성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러 온 걸 보면 상황이 단단히 꼬일 때로 꼬인 거겠지.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돕고 사는 거지...


수진이를 만나 조금 마일드해진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수진이에게 아까 다툼이 있던 그 텐트에서 도움을 요구해서 잠깐 도와주고 오겠다는 카톡을 보내고 남편분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도 캠핑 초짜라서 잘할지 모르겠는데 조금 전에 텐트 폴이라는 뼈대를 설치할 때처럼 한 명이 하기엔 조금 불편한 것들은 도와줄 수 있겠지 싶다.

아까 드문드문 들리는 언쟁을 듣고 있으려니 아내분이 텐트를 설치하는데 손을 놓아버린 거 같던데 최소한 방해는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 정말 감사합니다. 애들이 요즘 전염병이니 뭐니 그렇게 계속 집에만 있는 게 심심하다고 떼를 써서 잘 달래보려고 했는데 TV에서 캠핑이 나오는 걸 보더니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시간을 만들어서 왔더니..."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는 남편분.

당신도 참 힘들게 사시는군요.

나는 그에게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굉장히 미안하면서도 정말로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시원한 물부터 드시고 하라면서 아이스박스에 담겨있던 얼음물까지 건네주었다.


나는 그 물을 받아마시며 조금 양심이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아내는 캠핑한다니까 신이 나서는 자기 전에 캠핑! 캠핑! 거리며 노래를 부르고 쇼핑도 함께 다녀오고 텐트도 같이 쳤습니다.


아마 지금쯤 텐트 안에 냉풍기를 켜놓고 제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겠죠.


이게 기만자가 된다는 건가?


상대방의 불행에서 묘한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다니 내 인성이 정말 쓰레기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어깨가 으쓱여지기 시작했다.


역시 저출산이니 솔로 시대니 해도 결혼 잘한 남자가 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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