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캠핑장에서 생긴 일(2)
"무리 안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평소보다 알콩달콩할 수도 있고."
"...그래."
"왜요? 아쉬워요?"
"아냐. 내일은 장 보러 가야 하고 그 다음 날엔 나가야 하니까 체력엔 신경 좀 써야지."
수진이의 눈물과 감동 없인 볼 수 없는 지옥의 기말고사가 끝이 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여름방학은 애초 예정했던 대로 캠핑으로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역시 실전압축 근육이 아닌 헬스는 체력이 달리나?"
"이 자식이? 또 한판 할까?"
수진이의 겨드랑이로 손을 집어넣어 큼지막한 가슴을 마구 비비어주자 수진이는 간지럽다는 듯이 웃으면서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잘못했어요, 그만해요. 오늘은 끝!"
그리고는 작게 웃으면서 내 가슴에 머리를 비벼온다.
다시 슬쩍 가슴을 만지려고 하니 내 손등을 살짝 꼬집어온다.
나는 얼른 가슴에서 손을 치웠다.
"쯧."
가슴이 민감한 여자도 생각해 볼 일이다.
난 계속 만지면서 즐기고 싶은데 만지다 보면 흥분해서 가슴만 만지면 화를 내니까.
그렇다고 진짜로 계속하면 밤새도록 할 거 같아서 문제다.
"또 저한테 그렇게 당하고 싶으신가?"
수진이는 저번에 한번 이겼던 걸 끄집어내서 알아서 처신을 잘하라는 이야기를 꺼내왔다.
솔직히 매일 최소 3번씩은 사정하고 신혼여행이라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는데 체력이 고갈될 만 했지.
본인이 뭐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면서 참나.
"오늘도 이렇게 잔뜩 싸고... 정말로 왜 임신을 안 하는지 궁금할 정도네요."
"그러게. 슬슬 임신할 때도 된 거 같은데."
"선생님, 솔직히 말해봐요."
"뭐가?"
"아이, 몇 명까지 가지고 싶어요? 제 눈치를 봐서 1명이나 2명 이러지 말고."
"왜? 진짜로 낳아달라면 낳아주려고?"
그렇게 물어보자 수진이는 내 팔을 베고 누운 상태로 내 가슴을 손으로 쓰다듬어왔다.
"시끌벅적하면 재밌고 좋지 않을까요?"
"글쎄? 좋을 거 같기도 하고 아닐 거 같기도 하고."
수진이나 처남처럼 떠들썩하게 지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혼자서 사색에 잠겨있는 시간도 좋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떠들썩한 가정도 좋지만, 애가 너무 많아지면 나도 다른 부모들처럼 아이에게 신경을 쓰느라 수진이에게 소원해질지도 모를 일이고.
"2명만 낳자."
"그래요?"
나는 수진이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수진이의 한쪽 뺨을 손으로 덮은 상태로 엄지만 살짝 움직이며 수진이의 뺨을 어루만져준다.
수진이는 그게 기분이 좋았는지 내 손에 본인의 한쪽 손을 얹은 상태로 작게 눈을 감았다.
꼭 턱을 더듬어줬을 때 턱을 앞으로 내밀고 눈을 감는 고양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애도 소중하지만 내겐 수진이가 가장 소중하니까. 애가 많으면 수진이한테 소원할 거 같아서."
"그래요?"
나는 말없이 수진이의 뺨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렇게 요령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아이를 많이 낳는다고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 사랑과 관심을 줄 자신도 없다.
그러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아이만 낳아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다.
"첫째 아이는 날 닮고... 둘째는 선생님을 닮나?"
"나는 닮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네?"
"날 닮지 말고 아들도 딸도 전부 수진이 닮았으면 좋겠네. 예쁘고 착하고 똑똑할 테니까."
내가 그리 말하자 수진이는 인상을 찌푸리고 내 머리를 살짝 두드려왔다.
"저번에도 그런 말을 하길래 그냥 빈말인 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어요?"
수진이는 내 볼을 살짝 꼬집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이 날 닮은 아이를 가지고 싶은 것처럼 나도 선생님을 닮은 아이를 가지고 싶은 거라구요. 왜 이걸 이해를 못 하지?"
하... 어쩜 이리 말도 예쁘게 하는 거냐. 우리 신부는.
나는 수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수진이의 등을 어루만지며 뭔가를 찾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그러자 수진이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등에 뭐 묻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본인의 등으로 손을 뻗어보는 수진이.
나는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등에 날개가 없는지 확인해보려고 그랬지."
"바보."
그렇게 말하면서도 듣기는 좋았는지 작게 키득 이는 소리를 내며 내 가슴에 머리를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7월이 되어 쌩쌩 돌아가는 에어컨의 냉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포근했다.
"그럼 선생님은 악마네요."
"뭐요?"
"여기에 뿔이 달려있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말랑말랑해진 자지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왔다.
"천사를 타락시키는 건 악마잖아요."
수진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런데 이렇게 자지를 콕콕 찔러오니 다시 피가 몰리는 듯한 느낌이다.
수진이도 그걸 눈치챘는지 내 자지를 찌르던 동작을 멈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을 감아버렸다.
"수진아."
"쿨~ 쿨~ 쿠울~"
굉장히 어색한 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는 어필을 하고 계시는 부인.
"선생님이 쌤쌤 한 번 해본다."
이전에 수진이가 듣고 경악했던 농담을 하며 수진이의 보지를 손가락을 만지작거리자 화들짝 놀라서 눈을 번쩍 뜨는 수진이.
조금 체온이 오른 듯한 느낌이 든다.
"하, 하지 말고 그냥 자자구요!"
"나도 장난이었어."
"이 씨, 잠이 확 깼잖아요!"
어차피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으면 곧 잘 자는 녀석이 그런 말을 하니 뭔가 묘하네.
나는 수진이의 배를 살짝씩 토닥여줬다.
"...뭐해요?"
"자장가라도 불러줄까?"
수진이는 이 사람이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람?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면서도 내 자장가에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한번 해보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진이의 배를 토닥이며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내가 열이 나서 앓는 날이면 어머니가 불러주시던 자장가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 그것도 저학년일 때 들었던 거라 이젠 가사도 기억나지 않지만, 기분은 편안해졌던 것 같다.
수진이는 내 콧노래를 들으면서 눈을 껌뻑이다가 작게 웃고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고 2분이 채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잠이 깼다는 녀석이 왜 이리 빨리 잠드는지 모르겠네.
머리를 슬쩍 쓰다듬은 다음 눈을 감았다.
***
"흥~ 흐흥~"
"그렇게 좋아?"
"캠핑은 처음이라서 너무 기대돼요!"
다음날.
나와 수진이는 마트로 장을 보러 나왔다.
오늘의 목표는 캠핑용품과 가서 먹을 식자재를 사는 것이다.
나도 캠핑은 처음이라 조금 설레긴 하는데 뭘 사야 할지 좀 막막해지긴 하네.
캠핑용품이라고 적혀있는 코너는 굉장히 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놓여있어 처음부터 뭘 살지 가격대와 상품을 정해두고 오지 않으면 굉장히 헤매게 되어 있었다.
눈에 띄는 건 역시 한 놈만 걸리라는 듯이 제법 비싼 가격의 물건이 전시된 곳이었다.
딱 봐도 재질도 모양도 좋아 보이는 게 어떻게든 팔고 싶다는 감정이 느껴지는 배치였다.
"그냥 텐트 하나만 대충 구하고 볼 피우고 철망 하나 깔아서 고기 굽는 게 끝인 거 아니었어요? 왜 이렇게 뭔가 많지..."
수진이는 캠핑! 캠핑! 하면서 신이 난 사람치곤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하긴, 작년까지만 해도 여고생이었고 캠핑을 가본 적도 없는데 그런 지식을 기대한 게 잘못된 거지.
나는 인터넷에서 가성비가 좋다고 추천이 올라왔던 품목들을 살펴보곤 고민도 없이 카트에 담아버렸다.
"이렇게 고민도 없이 사버려도 돼요?"
수진이는 조금 걱정된다는 듯이 카트에 담긴 물건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캠핑용품이란 게 낚싯대처럼 늘리다 보면 끝도 없이 늘어나고 돈도 많이 든다더라. 그냥 가성비가 좋은 물건으로 장만하는 게 최고라고. 내가 카트에 담은 게 그나마 좀 낫다는 평이 많아."
"그래요? 하긴, 컴퓨터 맞출 때도 그래픽카드가 어쩌구 CPU가 어쩌구 말이 많아서 굉장히 어려웠으니까 그게 편할 수도 있겠다. 그럼 식재료 사러 가요."
"그러자."
제법 묵직해진 카트를 밀고 식재료 코너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역시 캠핑이라고 하면 바비큐겠지.
2명뿐이라 그리 많은 양을 사진 않겠지만 바비큐는 정말 오랜만이다.
10년도 넘은 거 같은데.
"바비큐 말고 뭐 없을까요? 카레나 매운탕?"
"굉장히 매칭이 안 되는 메뉴뿐이네. 그리고 생각보다 손이 가서 힘들 걸."
카레는 집에서 만들어서 편한 거지 캠프장에서 해먹기에는 굉장히 불편한 요리다.
만화에서야 재밌다는 듯이 해먹어서 좋아 보이지 2명밖에 가지 않는 캠핑에서 카레라니 손만 많이 가는 일이지.
매운탕은 기본적으로 낚시하는 사람들이 즉석에서 해먹는 이미지가 강한데 우린 낚시는 없는 순수한 캠핑이 목적이라 그것도 힘들다.
"그럼 고기만 구워 먹고 끝?"
"캠프장에서 끓여 먹는 라면도 맛있겠지. 쌀도 가져가서 오늘 산 캠핑용품으로 해먹고. 카레는 그냥 레토르트로 해먹으면 되지."
"아, 레토르트로 해결하는 거구나."
수진이는 카트에 식재료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리도 즐거울까?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벌써 한창 즐기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소풍 가기 전날에 신이 나서 떠드는 아이들을 보는 듯한 기분이라 여기까지 기분이 좋아지네.
"가자."
"네."
옷을 살 때는 이곳저곳 둘러보며 본인의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른다고 제법 시간을 쓰는 수진이지만 이런 쇼핑에서는 생각보다 간결하게 끝마치는 경향이 있다.
본인이 잘 모르는 건 전적으로 나의 판단에 의지하는 편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만 본인이 잘 아는 곳에서는 강한 자기주장을 해오고 모르는 분야에선 발을 빼고 나의 판단에 의존하니 우리의 배는 항상 바다로만 향한다.
나와 수진이가 싸움이란 걸 하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아마 저번에 묶어놓은 상태로 방치했던 그 날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욕하면서 소리치고 깨물고 난리를 치던 모습이 제법 신선했는데 말이야.
"또 제 생각하고 있었죠?"
내가 평소보다 조금 느린 발걸음으로 걷고 있으려니 수진이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그리 물어왔다.
"어떻게 알았지?"
"매번 똑같은 답변만 하면서."
그렇게 말하며 옆구리를 간지럽혀오는 수진이.
나는 수진이의 귀를 깨물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렸다.
"꺅! 아하하!"
수진이는 자신의 귀를 손으로 가리고는 신이 난 아이처럼 웃고 떠들었다.
이렇게 좋다고 하는데 앞으로도 캠핑을 자주 가봐야 할까.
이럴 줄 알았으면 가성비로 사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캠핑용품을 장만해보는 거였는데.
이걸 지금 돌아가서 다시 사자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하네.
나는 순간의 유혹에 져서 캠핑용품을 새로 사려고 하다가 금세 제정신을 차리고 그만두기로 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족단위로 캠핑하게 되면 또 그때 생각하면 되는 일이다.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니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팔에 팔짱을 껴온 수진이와 함께 계산대로 향했다.
자, 캠핑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