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신혼여행(14)
"흐으으윽..."
수진이가 침대에서 엉덩이를 꿈틀거리며 엎드려있다.
얼굴을 땀에 젖은 머리카락으로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약으로 도핑을 하는데 거기에 마늘을 먹어 강화된 나의 울분이 녹아들어 갔으니 그 어떤 미약보다 달콤했으리라 믿는다.
엎드려 누워있는 수진이의 보지에서 천천히 정액이 흘러나와 침대 커버를 더럽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점심으로 먹었던 마늘 범벅 쌈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흐으읏, 흐윽!"
수진이가 몸을 덜덜 떨면서 아주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양팔로 침대를 짚고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갓 태어난 사슴이나 송아지처럼 굉장히 불안해 보인다.
그렇게 계속 빤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결국 일어나는 것은 포기하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어떻게든 이불을 사수해서 몸을 가리려고 고생하고 있다.
"그래. 마늘이 정력에 도움이 많이 되기는 하나 보네."
"하아, 하으, 하아..."
수진이는 심호흡을 하며 거칠어진 숨을 다듬었다.
그렇게 1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수진이가 천천히 이불을 내리고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왜 우리 남편은 지치지 않지? 신혼여행을 나 혼자서 걸은 것도 아니고 할 때도 나보다 많이 움직이는데..."
"아유, 마님. 돌쇠가 그 정도로 지칠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요?"
강사는 하루에 몇 시간이고 일어선 상태로 강의를 해야 하는 직업이다.
의자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보단 체력이 낫지.
수진이는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난 준범이의 집에 주식을 배우러 가면서 걷기도 하고 나간 김에 마트에서 식재료도 사오니까.
운동량도 수진이보다 훨씬 많으니 그리 쉽게 지치지는 않는다.
수진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옆에 같이 누운 내 팔을 살살 찔러왔다.
"정말 내년에 40이 맞아요?"
그렇게 말하더니 작게 웃으면서 머리카락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남자의 자존심을 채워주는 수진이가 너무 사랑스럽다.
수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다음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와서 수진이에게 건네줬다.
수진이는 물을 받아서 꿀꺽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물을 마실 때도 저렇게 양손으로 페트병을 잡고 마시는 게 뭔가 다람쥐가 해바라기 씨를 까먹을 때 양발로 잡는 듯한 모습과 닮은 거 같아서 귀엽다.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신경 쓰였는지 수진이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다.
나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수진이는 약간 아리송한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천천히 침대에 누웠다.
섹스를 하기 전과 후에 반드시 샤워하던 수진이지만 이젠 그럴 힘도 없는지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이제 깔끔 떠는 건 끝난 거야?"
"...너무 자주 씻으면 피부 상해요."
"그래그래."
"..."
수진이는 나를 노려보다가 내 팔뚝에 이를 박아넣었다.
으그극 소리를 내며 이를 세운다.
"선생님이 너무 힘내니까 이런 거에요. 선생님 때문에 더럽혀졌어."
그렇게 말하면서 우는 척을 한다.
흑흑 소리를 내다가 나를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흑흑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 어색한 연기가 생각보다 귀엽게 느껴졌다.
수진이를 향해 돌아누워 살짝 팔을 벌리자 굼뜰 거리며 천천히 내 품 안으로 기어들어 온다.
쌩쌩 돌아가는 에어컨의 냉방이 수진이의 체온으로 적절한 온도로 바뀌었다.
수진이도 제법 추웠는지 내 몸으로 더 파고들어 온다.
수진이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자 작게 웃으면서 내 뺨에 뽀뽀해온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살짝 입을 벌리고 코를 깨물 것처럼 이를 드러내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얼굴을 뒤로 빼더니 이번엔 본인이 입을 벌리고 내 코를 물어왔다.
우리는 침대에서 장난을 치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그래서 다음 작은 무협지로 할 거예요?"
"그러려고."
수진이와 잠수함을 타러 가는 도중.
수진이는 나의 차기작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 내가 쓰는 소설은 초반부여서 완결이 나려면 적어도 올해가 끝나야 한다.
그런데도 차기작에 대해서 생각이 미친 것은 역시 아버지가 생각나서겠지.
아버지가 본인을 드러내지 않고 응원해주시는 것처럼 나도 아버지에게 뭔가를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차기작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조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무협지 생각보다 어렵다고 금방 포기하셨으면서."
"그렇긴 하지."
"괜찮아요?"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무엇이든 하다 보면 되는 일도 있으니까.
처음부터 어렵다거나 안 된다거나 그런 결론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처음엔 조금 간단한 거로 해보려고."
"간단한 거요?"
"그래. 무협스킨만 씌운 소설을 써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무림여학교 같은?"
"뭐 그런 거처럼."
"선생님이 캐빨물을 쓴다고요?"
수진이는 뭔가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그런 걸 쓸 수도 있지.
아재라도 쓸 수 있다!
"참고로 어떻게 쓸 건데요?"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지."
무협지에 무 자도 모르는 사람이 무협지를 쓴다고 해봤자 무협지를 정말로 좋아하는 코어층은 이런 건 무협이 아니야! 라는 소리가 나올 거고 무협지를 처음 접해본 사람은 1화를 보자마자 뒤로 가기를 눌러버릴 거다.
무협지를 좋아하는 사람도 피식하고 웃게 만들고 무협지를 처음 접해본 사람도 부담감이 없는 느낌의 소설을 써야지.
가령 무협지에서 초식을 입으로 말하면서 쓰는 건 뭔가 기술명을 외치는 소년만화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나선환! 이런 느낌말이다.
그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그러면 선생님도 천마로 하는 거예요?"
"...천마는 너무 흔하니까 혈마는 어때?"
"혈마는 무슨 기술 쓰는 데요?"
나도 잘은 모른다.
그냥 피를 사용한 능력을 쓰는 거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김포이닉스 승수 오브 자하카르 같은 느낌의 기술을 쓰려나.
"혈마라고 하니까 좋은 생각이 난 거 같기도 하고."
"뭔데요?"
나는 수진이를 잠깐 힐끗하고 바라본 다음에 다시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인공이 혈만데 한남충인거지. 남자가 혈마라니 왠지 달거리 하는 여자 같아서 쪽팔린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요?"
"소꿉친구가 천마라서 시기하는 거지. 예로부터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하였거늘 어딜 감히 여자가 천마라는 칭호를 사용하는가. 갈!!! 이러는 거지. 그리고 본인이랑 결혼해서 천마라는 칭호와 혈마라는 칭호가 마땅히 가야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개소리나 하는 무직 백수 혈마면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그걸 누가 봐요?"
"재밌게 잘 쓰면 누군가는 보겠지. 어차피 무협을 써본 적도 없는데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쓰다 보면 무협지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 이해도 생기겠지."
"그럴까요?"
수진이는 매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난 내가 쓰면서 재밌는 소설이 아니면 계속 써나갈 자신이 없다.
내가 뜰딱이라 이런 게 즐겁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으나 왠지 써보면 재밌을 것 같단 말이지.
주인공이나 소꿉친구 천마나 구대문파의 젊은 당주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백수에 모쏠인 혈마 주인공의 캐릭터를 진하게 잡으면 코믹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요즘 독자들도 재밌다고 보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쓰면서 틈틈이 떠오르는 데로 정리해서 쓴 다음 상황을 살펴봐야겠다.
"아, 다 왔나 봐요."
수진이가 그리 말하자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나왔다.
이제 잠수함을 탈 시간이다.
***
안내방송이 나온 다음 잠수함에 올라타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난 다음 잠수함이 천천히 바다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잠수함에 원형으로 나 있는 창문을 통해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진이와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봤던 그 경치다.
차이점이라면 지금은 서로 대화를 하며 감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겠지.
"이것도 괜찮네요."
"그지?"
그래도 이미 한번 봤던 광경을 잠수함으로 보니 금방 질렸던 걸까? 스킨스쿠버를 하며 보여줬던 반응보단 조금 미지근한 반응이 돌아왔다.
"저것도 봐봐."
"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수함의 창문으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4명의 사람이 잠수함을 맴돌며 물고기들과 수영도 하고 손동작으로 사인을 주고받고 인어처럼 우아하게 수영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건 또 마음에 들었는지 반짝반짝한 눈으로 창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잠수함 데이트도 마음에 들었나 보네.
혜정이와 왔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그리 바뀌지는 않는구나.
그래도 옆에서 이렇게 즐겁다는 반응을 보여주니 데려온 보람이 있다.
혜정이는 처음엔 조금 흥미로운 눈으로 보다가 금세 별로라는 티를 냈었는데.
아니, 안 내려고 했는데 작게 내쉰 한숨 소리를 내가 들어버린 거겠지.
뭐, 아무튼 수진이는 굉장히 즐겁다는 듯이 창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좋아하니 데려온 보람이 있다.
"선생님."
"응?"
"선생님은 별론가 보네요?"
"어?"
"전에 와 봤구나?"
"어, 와봤지."
"...선생님이 가본 적 없는 곳에만 간다면서요?"
"너도 이제 별로 신경 안 쓰잖아?"
"신경이 안 쓰이진 않아요.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처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추억이라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딨어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본인의 집착이나 질투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 비칠까 봐 조금 두려운 모양이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수진이의 뺨을 살짝 어루만져주었다.
"너는 그리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오늘 처음 온 것 같은 기분이야."
"네?"
"너랑 다르게 별로 흥미가 없어 보였거든."
"그래요?"
잠수함은 처음이라고 했지만 수족관은 처음이 아니었겠지.
아마 상당히 자주 갔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반응이 나왔던 거겠지.
"선생님은 도대체 왜 그런 사람이랑 결혼했어요?"
"...나도 그땐 여자 보는 눈이 없던 거지."
"지금은?"
"알면서 왜 물어?"
"바보."
수진이는 작게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왔다.
우리가 그리 꽁냥거리고 있으려니 주위의 몇몇 사람들이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꽁냥거리는 커플들을 보면 바퀴벌레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올해는 내가 이러고 있네.
사람 사는 세상이란 게 정말 알 수 없는 일투성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