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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화 〉신혼여행(12) (175/301)



〈 175화 〉신혼여행(12)

눈을 뜨고 천천히 시계를 바라보니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주식을 배우고 있으므로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은 7시로 변함이 없다.


오늘도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한복을 입을 수진이가 치마를 걷어 올리고 보지에서 정액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봤더니 이성을 잃고 덮쳐버리는 바람에 밤늦게까지 너무 허슬해버린 모양이다.


수진이도 나도 기진맥진해서 샤워한다는 이야기도 안 하고 침대에 기절하듯이 누웠던 것까진 기억이 난다.

39살인데도 아직 내 하반신은 20대와 같은 건강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건 평소에 먹는 정력식품이나 운동, 혹은 수진이가 너무 섹시하기 때문이겠지.


수진이가 섹시하다는 이유가 가장 큰 것 같기도 하고...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수진이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씻으면서 머리를 개운하게 해야겠다.

미지근한 물을 머리부터 뒤집어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어젯밤의 흐트러진 수진이의 모습이다.

수진이와는 8월 이후부터 시간이  때면 섹스를 했다.


동거를 시작한 다음부턴 매일같이 수진이를 안았다.

그런데도 아직 수진이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면 몸이 멋대로 달아오른다.

정말 몽마 같은 여자가 아닐  없다.


김이 서린 거울을 손으로 닦았다.


1년 더 나이를 먹었지만 그리 달라진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평소보다 운동량도 늘려서 작년보다 몸도 더 좋아진 것처럼 보이고.

이번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헬스장도 다니면서 PT도 받아볼 생각이다.


근육은 처음부터 100%의 힘을 끌어낼  없다고 들었다.

평소에는 그리 자극을 줘서 힘을 끄집어낼 필요가 없으니까.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며 몸을 단련시킨 건 거리 두기라는 이유도 있지만, 헬스장에 다니면서 중량을 들을 정도의 최소한의 신경 단련을 해두기 위함도 있었다.

이젠 운동량을 더 늘려야지.

지금 이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앞으로 10년은  유지하고 싶다.


10년 후의 나는 49살로  50에 돌입하는 나이지만 수진이는 아직 30살이다.


요즘 사람들의 결혼 나이는 점점 늦어져서 대부분 30살이 넘는 나이에 결혼한다는 점에서 수진이는 사회 전체로 보면 10년 후도 현역이라는 말이지.

여자들은 30대부터 성욕이 강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 좆이 서지 않는다면 수진이가 어떤 표정을 보일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되도록이면... 오래도록 수진이를 만족하게 하고 싶다.


그리고 운동을 하면서 근육량이 늘면 수진이는 안아 들고 섹스를 하는 이른바 들박이라는 꿈의 자세가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왕이면 남들이 즐겼다는 체위를 다 해보고 싶어지는 게 남자의 마음이지.


아무튼, 그건 그거고...


머리에 물을 맞으며 수진이와 즐겼던 정사를 잠시 머리 한쪽으로 치운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버지가 내 소설을 읽고 있는 열혈독자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 소설을 읽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2주일도 되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사느라 살펴볼 시간이 없었다.

수진이와 동거를 시작한 날부터 나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서 수진이와 아침 식사를 하고 준범이에게 주식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와서 수진이와 함께 저녁 식사를 끝낸 다음엔 2시간에서 2시간 30분 동안 소설을  후 퇴고를 한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수진이와 섹스를 하고 잠을 잔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바빠서 확인해 볼 시간이 없었다.


후원을 꼬박꼬박 해주는 사람이었는데도 닉네임을 드래그해서 붙여넣기를 하느라 눈치채는 것이 늦었다.

가끔 소설을 보는 사람 중에 작가를 응원하기 위해 1편을 볼  100원을 후원해서 200원을 내며 소설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어디서 들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세상 어딘가엔 수진이처럼 내 소설이 정말로 재밌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지.

그래서 그날은 매일 후원을 하고 댓글을 써주시는 것에 감사하며  댓글을 쓴 사람의 닉네임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려니 영어로 적은 그 닉네임에 규칙성이 없었다.

그래서 그 닉네임을 한글로 바꾸고 써보니 아버지의 이름이 나왔다.


정말 깜짝 놀랐다.

처음엔 그 닉네임이 우연히 아버지와 같은 이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 닉네임에 붙어있던 레벨은 만든  얼마 되지 않은 계정인지 레벨도 낮았으니까.


아버지와 매일같이 후원해주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란 것을 눈치챈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얼얼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었지.


너무 충격적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얼마나 작은 인간이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도대체 얼마나 병신이었던 걸까.


우리나라 전체를 뒤져보면 우리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은 굉장히 많을 것이다.


 세대의 어른들은  명도 빠짐없이 공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고 본인들처럼 몸으로 때우는 일이 정말 힘든 일이라고 입에 달며 교육을 하니까.

그저 그 손 속이 조금 과했을 뿐이고 나는 고집이 있어 아버지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집의 아버지들과 비교하며 아버지를 원망했고 아버지도 사기를 당하신 피해자인데 피해자를 욕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집은 다른 집들보다 상당히 여유가 있던 집이었다.

적어도 1주일에 3번 이상은 고기반찬이 꼭 밥상에 올라오는 집이었으니까.

남들보다  먹어서 내 나잇대의 남자들보다 키도 큰 편이었다.


아버지는 키가 그리 크지 않으셨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잘 먹고 잘살다가 굴러버리니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똥통에 빠진 인간이라고 확대해석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악감정은 혜정이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며 더욱 악화하였다.

처음부터 무언가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본인이 뭔가가 결핍되었다는 것도 모른다.

배가 불렀기 때문에 잃어버렸던  날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했을 뿐이다.

남들보다 자신이 낫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기에 더욱 괴로워했던 것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한다.


나도 준범이 같은 친구놈이 반드시 갚을 테니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결국 손을 빌려주고 말 테니까.

아버지는 친구도 잃고 돈도 잃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버지다.


매일 밤 같은 방에서 주무시는데 골골거리시는 어머니를 보며 제일 괴로워했을 사람은 아버지시겠지.


그런데도 아버지가 결국은 그 고통을 딛고 일어나신 것은 존경할 일이지 원망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들이란 놈은 38살이나 처먹고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다가 윽박지르며 면전에 쌍욕을 퍼부었다.


동창회나 친구분들을 만나실 때마다 내 자랑을 하고 다니시는 그런 아버지의 면전에 쌍욕을 해버렸단 말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장모님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셨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고  당신의 잘못이라고.

아버지는... 아버지셨다.

그저 조금 서투신 분이었다.


혹여나  못난 아들놈이 본인을 알아챌까 봐 댓글에는 결코 본인이라는 티를 내지 않게 최대한 노력하신 부분이 보였다.

아버지의 닉네임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아버지가 처음으로 댓글을 쓴 부분부터 찾아봤는데 그 꼼꼼한 성격을 대변하듯 오·탈자가 없는 댓글이었음에도 계속 틀리는 부분이 있었다.

읍니다라는 표현이 그것이었다.


최초의  번만 읍니다를 사용하고 어느 순간부터 습니다로 바뀌기 시작한 표현.

1990년 이전에 학교들 다녔던 국민학교 세대는 읍니다가 표준법이었으니까.

비교적 젊은 사람들은 표준법이 바뀌었으니 따라 바꾸었겠지만, 공장에서 일하시느라 그런 일을 신경 쓰지 않으시고 살아오셨으니 쓰던 데로 쓰셨겠지.


누가 틀니 냄새가 난다는 댓글을 달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계속 읍니다로 쓰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를 숨기기 위해서 표현을 바꾸셨겠지.

아무래도 나에게 들키는 것이 부끄러우셨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고통을 알고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지 공감하며 아버지에게 죄송함을 느끼는 이 감각.


아무래도 나는 아버지가 될 준비가 된  같다.


지금은 어떤 아이가 오더라도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다.

아버지는 조금 서툴러서 실수하신 것뿐이다.

나는 그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니 나는 실수하지 않는다.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샤워를 끝내고 침대로 가니 수진이가 굼뜰 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서히 눈이 뜰  같다.

현재 시각은 8시 15분.

얼굴에 스킨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고 있자 수진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으읏..."


양팔을 살짝 구부렸다가 위로 쭉 뻗은 다음 몸에 힘을 빼고 침대에 추욱 늘어진다.

그러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곤 천천히 이불을 끌어올려서  바로 밑까지 가려버린다.

아무래도 자고 일어난 모습을 보이는  아직도 부끄러운 모양이다.


"잘 잤어요?"

"그래. 얼른 씻고 와.  먹으러 가야지."

그리 말하자 수진이는 손을 살짝 구부려서 나에게 다가오라는 사인을 보냈다.


내가 그리 다가가자 수진이가 천천히 내 목에 양팔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 상태로 가볍게 입을 맞춘 다음 아주 천천히 내 목을 놓아주었다.

"아침에는 모닝키스으~"


"알았어 알았어."


개인적인 견핸데 수진이는 외국 로맨스 영화 같은 걸 너무 많이  게 아닐까 싶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모닝 키스를 요구하는 아내라니.

좋네.

"자 얼른 씻고 와."


"네~"

수진이는 나보고 고개를 돌리고 있으라고 말한 다음 천천히 옷을 챙기고 샤워실로 향했다.

함께 침대에서 몸을 섞을 때는 내가 불을 켜고 하는 것을 좋아해서 대부분을 불을 켠 상태로 한다.


그런데도 아침에 알몸인 상태로 마주치면 부끄러운 듯 몸을 가리고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보지 말라고 한다.

그  수 없는 경계선이 사랑스럽다.

옷을 갈아입고 수진이가 나오길 기다렸다.


오늘은 느긋하게 렌터카를 끌고 제주도를 둘러보고 적당한 맛집에서 식사하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호텔로 돌아와 나는 소설을 쓰고 수진이는 인강을 보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4박 5일이라는 시간적 제약은 사라졌으니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수진이의 저질 체력도 고려는 해줘야지.


뭐, 밤마다 괴롭히는 나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으니까.


수진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온 것은 약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천천히 해."


머리도 말려야 하고 스킨로션도 발라야 하니까.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오늘은 예약도 없으니 느긋하게 우리들의 페이스로 움직이면 되니까 말이다.


"가요!"

"그래."


준비를 마친 수진이와 호텔방을 나섰다.


우리들의 신혼여행 연장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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