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신혼여행(10)
신혼여행 5일 차.
우리는 어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처럼 승마하기 위해서 호텔을 나섰다.
예약을 알아보니 12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예약이 비어있어서 약 1시간 정도 말을 타볼 수 있다고 한다.
비용이 천차만별이었는데 수진이는 조금 자유롭게 말을 타고 움직여보고 싶다고 해서 가장 비싼 코스를 예약했다.
도착하고 나니 굉장히 넓은 초원이 이어지는 굉장히 멋진 경치였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사장님이 웃으면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예약자임을 밝히고 이름을 말해주니 사장님은 교관에게 우리를 데려다주고 머리와 가슴보호대를 빌려주었고 우리의 신발사이즈를 물어본 다음에 부츠를 한 켤레씩 빌려주었다.
모든 장구류를 착용하자 교관은 우리에게 안전수칙에 대해서 말해주기 시작했다.
카메라나 셀카봉 같은 종류의 물건들은 들고 탈 수 없고 말을 직접 타는 게 아닌 교관이 인도하면서 같이 걷는 거란다.
하긴, 손님이 멋대로 타다가 사고가 날수도 있으니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수진이를 슬쩍 바라보니 조금 실망한 눈치다.
"그런데 셀카봉은 왜 안돼요?"
"말이 채찍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서 자칫 사고가 나거든요."
"아~ 그렇구나."
이후에도 몇몇 안전수칙을 이야기해주며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우리는 말을 타볼 수 있었다.
평소엔 아파트나 빌딩으로 가득한 서울에 있다가 이리 넓은 평야가 있는 목장에서 말을 타니 조금 갑갑하던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다.
수진이도 같은 기분인지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온다.
처음엔 안장에 올라탄 다음 조금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말에 올라탄 상태로 밑을 바라보니 평소보다 지면이 상당히 멀게 보여 불안한 느낌이 들 법하긴 하다.
그래도 이젠 제법 안정적으로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허리가 반듯이 선 상태에서 고삐를 쥐고 말을 타며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 승마 경험이 있는 사람 같았다.
교관도 자세가 좋다면서 칭찬을 하고 수진이는 조금 쑥스러운지 목덜미를 만지고 있다.
그래. 수진이는 승마를 잘할 줄 알았지.
우리는 교관이 이끄는 데로 천천히 말을 타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말에 올라탄 경치는 이런 느낌이구나.
아버지들이 목말을 태워주면 아이들이 몸을 움츠리면서 아버지의 머리를 꽈악 끌어안는 데 그 애들이 느낀 경험이 이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평소엔 가깝게 보이던 지면이 이렇게나 멀어 보이니 무서울 만도 하지.
그래도 평소보다 조금 높은 시야로 주변을 바라보니 신선한 기분이기는 했다.
"여보~"
"응?"
찰칵.
수진이는 나를 불러서 본인을 바라보게 만들고 휴대폰을 꺼내서 능숙하게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을 만지고 본인이 찍은 사진을 확인하더니 굉장히 즐거운 미소를 보인다.
"왜?"
"굉장히 자연스럽게 잘 찍혔어요."
"나도 찍어줄게."
주머니에서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서 수진이를 찍어줬다.
수진이는 방긋 웃으면서 한 손으론 고삐를 잡고 한 손으론 V 사인을 그린다.
아주 자연스럽게 잘 찍혔다.
수진이가 왜 셀카봉을 아쉬워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매력적인 미소를 짓는 수진이를 보고 있으려니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으니까.
한동안 말을 타고 이동을 하려니 초원을 바라보던 풍경이 어느새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경치가 되었다.
고도가 조금 높아진 느낌이었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으려니 내 말을 끌던 교관이 여기가 사진이 잘 찍히고 예쁘다며 휴대폰을 주면 사진을 찍어준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휴대폰의 잠금을 푼 다음 교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그러자 교관이 수진이를 담당하던 교관에게 신호를 보냈고 천천히 말 고삐를 쥔 상태로 내 쪽으로 다가온 교관이 수진이의 말과 내 말을 나란히 세운다.
"조금 아쉽긴 해도 재밌네요. 승마가 이런 느낌이었어."
"역시 직접 타보고 싶기는 하네."
"그죠? 이렇게 좀 느리긴 해도 지금보단 빠르게 뛰는 느낌으로도 타보고 싶었는데."
그냥 타고 있는 것과 달리는 말을 타는 건 또 다른 문제겠지.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수진이와 나란히 말을 탄 상태로 찍은 사진을 바라본다.
생각보다 괜찮게 찍혔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교관으로 일하면서 손님들 사진을 매번 찍다 보니 손에 익은 모양이지.
우리는 다시 천천히 말을 타고 코스를 돌았다.
수진이는 주변을 조금 신이 난다는 듯이 둘러보다가 어느 순간부턴 뭔가를 생각하는 듯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소설에 대해서 생각이라도 하는 걸까?
20만원게 가까운 비용을 낸 것치고는 생각보다 금방 끝난 승마체험이 끝난 이후에는 말에서 내려서 장구류를 반납하고 조랑말이 있는 곳으로 안내받았다.
우리는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고 같이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
"후우~ 시간이 진짜 엄청 빨리 가네요. 벌써 4일 차야."
"그러게. 4박 5일로 하고 돌아가면 아쉬울 뻔했다."
"진짜로요. 아, 그런데 오늘 승마 밖에 한 게 없어서 좀 아쉽네요."
"그렇긴 하네. 그래도 4박 5일이 아니니까 몸 상태도 봐가면서 느긋하게 즐기자."
"네~"
호텔에서 보낸 시간이 조금 아쉬웠던 모양이네.
확실히 4박 5일의 일정이었다면 하루를 승마로 보내버리면 굉장히 아쉽긴 했을 것 같다.
그래도 조금 긴 신혼여행을 하기로 했으니 컨디션도 살펴가며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괜찮지.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말을 타봤다.
나랑 같은 경험을 나눈 수진이도 오늘 느낀 점이 좀 있겠지.
"오늘 말 타면서 소설 생각했지?"
"어떻게 알았어요?"
수진이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이제 어느 정도는 너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약간 멍하니 뭔가를 생각하는 느낌이었으니까. 말 타면서 인강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고. 판타지에서 말 타는 등장인물이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각하던 거 아냐?"
"이씨! 선생님, 지금 당장 내 머리에서 나가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몸에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수진이.
부부는 이심전심이라는데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이 상황이 생각보다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1박에 20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가는 거나 승마나 스킨스쿠버를 체험할 때 들어가는 비용, 식사비까지 생각보다 거금이 들어갔으나 이렇게 같이 웃으면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비싸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 신혼여행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멀리 가는 것도 좋고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하는 가의 문제지.
수진이와 함께라면 제주도도 충분히 매력적인 신혼 여행지다.
...생각해보니 나도 참 많이 바뀌었네.
혜정이와 신혼여행을 했을 땐 즐겁다고 생각하는 한편으론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였는데.
수진이와는 비용을 더 내도 신혼여행을 길게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선생님도 소설에서 이거에 관해서 쓸 거죠?"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모르겠네. 나는 처음부터 승마할 줄 아는 주인공이고."
"그럼 내가 써야지."
"그러시든지."
아무래도 수진이의 다음 이야기도 판타지가 될 것 같다.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지 기대된다.
"선생님, 내일은 뭐 하죠?"
"글쎄."
원래라면 내일은 제주도에서 기념품을 산 다음 집으로 향할 시간이다.
조금 계획이 어긋났는데 원래라면 경치나 좀 더 보려고 했는데 저리 골골거리니 그냥 드라이브나 좀 해야 할까?
"내일은 좀 쉬면서 선생님이 쓰던 소설이나 더 쓰면서 비축분 만드는 게 어때요?"
그리 말하면서 침대에 앉자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하는 수진이.
그래.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수진이는 다리를 주무르다가 내가 올린 소설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휴대폰의 댓글란을 가리키며 작게 웃는다.
"선생님도 팬이 생기셨네요. 매번 와서 첫 번째로 댓글 남기고 후원도 꼬박꼬박 해주시는 독자분이요."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댓글을 손으로 가리킨다.
매번 첫 번째로 소설을 읽고 매번 100원씩 후원을 해서 실질적으론 편당 200원씩 돈을 주며 소설을 읽어주는 팬.
수진이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고 웃으면서 그리 말해왔다.
하긴, 평범한 독자였다면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고 웃어넘겼겠지.
하지만 난 웃음보단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표정이 왜 그래요?"
"그 사람 닉네임을 한번 봐봐."
수진이는 내 말을 듣곤 닉네임을 확인해봤다.
"이게 왜요?"
"영어로 `rlawnsdn`라고 쓰여 있잖아? 아마 닉네임이랑 아이디랑 구분을 못 해서 그리 썼을 거야. 김준우... 우리 아버지 이름이야."
"아..."
수진이는 굉장히 어색하다는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다가 에헤헤... 하고 웃으면서 단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래. 아버지다.
아무래도 내가 소설을 쓴다는 걸을 알게 된 이후론 내가 쓰는 소설을 체크하고 계신 모양이다.
내가 처음으로 완결을 낸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댓글을 남기시면서 읽으셨더라고.
집에 찾아갈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평소처럼 행동하시는 데 말이다.
이게 경상도 남자란 말인가?
나도 처음에 그 댓글을 발견했을 땐 정말 깜짝 놀랐었지.
어디서 후원이란 걸 또 알아오셨는지 후원도 꼬박꼬박 해주시고 말이다.
후원이란 기능을 아셨으면 닉네임을 바꾸는 기능도 알아오셨어야지...
아버지.
다음 소설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무협으로 한번 써보겠습니다.
"어, 엄마는 내 소설 안 읽는데 선생님은 읽어주시니까 부럽네요!"
의도치 않게 탈룰라를 시전해버린 수진이는 열심히 짱구를 굴려 그럴싸한 대답을 해왔다.
아무래도 나에게 많이 미안한 모양이다.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데 말이다.
오히려 아버지가 내 소설을 인정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와 아버지는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어쩌면 수진이와 만나서 1년간 나누었던 대화가 아버지와 39년 동안 나누었던 대화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말로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도 있는 법이지.
나와 아버지의 부자 관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