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신혼여행(9)
"우리가 하는 게 그 산소통 짊어지고 하는 거 맞죠?"
"어. 그걸로 예약했어."
스노클을 착용하고 수영하는 건 굳이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간단히 할 수 있으니 평소에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게 낫다.
수진이는 굉장히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나보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른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다.
"어서 오세요. 김준수 씨 맞으시죠?"
"네."
건강하게 태운 갈색 피부에 튼실한 몸을 가진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웃으면서 이것저것 주의사항을 말해오기 시작했다.
몸이 좋으니 신뢰감이 생기네.
강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열심히 안전수칙을 설명해줬다.
그리 안전수칙을 다 들은 다음엔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배에 올라탔다.
수진이는 처음 입어보는 잠수복이 영 불편했는지 몸을 이리저리 뒤틀면서 확인을 해보고 있다.
확실히 뭔가 몸에 꽉 맞아서 조금 불편한 감이 있긴 하다.
배가 어느 정도 바다에 나간 다음 강사는 우리를 보며 천천히 바다에 들어가라는 제스쳐를 취해 보였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다로 들어갔다.
우리가 바다에 들어가자 강사도 바다에 뛰어들었다.
강사는 우리 둘을 보며 1m 정도를 잠수하는 것으로 일단 감각에 익숙해져 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에 힘을 뺐다.
산소통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웠기에 잠수를 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쉽게 잠수를 하고 고개를 드니 수진이가 조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잠수복을 입고 있으려니 잠수를 하는 순간 수압으로 잠수복이 몸을 꽈악 졸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처음엔 조금 낯선 기분이 들긴 하지.
나는 수진이의 손을 가볍게 잡은 다음 고개를 살짝 끄덕여줬다.
강사는 천천히 하면 된다며 천천히 천천히를 계속 반복했다.
수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잠수했다.
진정이 됐는지 제법 깊은 곳까지 확인하고 올라왔다.
강사는 수진이를 보며 어떠냐며 기분을 물었고 수진이는 괜찮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강사는 처음에 이야기를 끝내놓았던 것처럼 우리에게 혹시 뭔가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우리가 잠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와 수진이는 바닷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태양 빛에 반짝이는 바다가 예쁘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물고기 떼들이 줄지어 헤엄을 치는 모습을 본 수진이는 내 옆에서 나란히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개를 발견하곤 손으로 가리키며 저걸 따도 되느냐고 물어보는 듯한 행동을 한다.
산소통을 찬 상태로 조개를 캐는 건 불법이라서 해녀분들은 다들 잠수왕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눈으로만 보라는 손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수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또다시 다른 곳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저리 신나는 모습을 보니 예약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이제 봄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더운 날씨.
지상에서 바라보는 해는 살을 태울 것처럼 뜨겁고 눈이 부신데 바닷속에서 바라보는 태양은 이리도 아름다워 보이는구나.
내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찾아와서 어깨를 살짝 찔러온다.
뭘 그리 바라보고 있느냐는 눈치다.
나는 하늘을 가리키며 손으로 이것저것 제스쳐를 취해보았지만, 수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다.
잠수복에 얼굴까지 가리고 있는 상태에서 평소에 하던 대로 행동하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손과 고개를 흔들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구나 싶었는데 수진이와 함께 이렇게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면 비싼 값은 했다고 생각된다.
오늘 경험한 이 스킨스쿠버가 수진이의 소설에서 어떠한 식으로 재해석되어 이야기에 녹아들지 벌써 기대가 된다.
수진이가 이번에 쓰는 소설은 어떤 소설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
"아으으."
"죽겠어?"
스킨스쿠버를 즐기고 호텔에 돌아온 다음 서로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눕자 수진이가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리도 아니다.
어제도 그리 근육통을 호소했는데 스킨스쿠버까지 했으니 죽을 맛이겠지.
결국은 더는 못 움직이겠다며 침대에 누워서 이상한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저녁도 못 먹겠다고 이렇게 뻗어있는 모습을 보니 많이 안쓰러웠다.
"오늘도 주물러줄게."
수진이의 다리를 살살 주물러본다.
몸에 근육이 뭉친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으으윽, 살살! 살살해요, 살살. 너무 아파요."
어제와 비슷한 정도로 주무르고 있는데 이것조차 아프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건 좀 많이 아픈 모양인데.
계속 주무르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굉장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왜?"
"죄송해요. 몸이 너무 아파서 오늘은 못 움직이겠어요. 아마 내일도..."
그리 말하며 목소리가 점차 작아진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수진이의 머리를 살짝 어루만져주었다.
"죄송할게 뭐가 있어. 그렇게 따지면 우리 부인 체력도 고려 안 한 내 잘못이지."
어차피 우리의 신혼여행은 당초 예정보다 길어질 예정이었으니 하루 정도 호텔에서 쉬어도 그리 문제가 되진 않는다.
"호캉스도 나름 괜찮지. 비싼 돈 주고 예약했는데 그냥 잠만 자는 것도 조금 아쉽잖아."
"고마워요."
"그래."
수진이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다시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힘들어 보이면 오늘은 그냥 자야 하겠다.
내일도 아마 그래야 할 것 같고.
아쉽기는 해도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내일은 예약을 잡아둔 게 아니라서 그리 문제가 되진 않겠다."
"그러게요. 근데 제주도에 오면 다 승마를 한다는데 왜 우린 계획에 안 넣었어요?"
제주도에 왔을 때 전 아내랑 말을 탔었으니 가급적이면 피한 거지.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하니 수진이는 본인이 물으면서도 답을 알아챘는지 조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가요. 저도 한번 타보고 싶으니까."
수진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이전과는 다르게 여유가 있는 표정으로 보였다.
다리를 살짝 주무르려니 살짝 찡그려지는 표정부터 다시 살짝 힘을 주니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변한다.
아무래도 이젠 내 전 아내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 우리는 결혼을 해서 신혼여행까지 왔고 혼인신고서도 제출해서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는데 신경 쓸 필요가 없지.
혜정이... 혜정이라.
잘 살고는 있겠지.
"수진아."
"왜요?"
"굳이 승마할 필요가 있을까?"
"네?"
"너 어제도 승마했잖아? 아주 잘 타던데."
수진이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돌리고 이불을 덮어버렸다.
"오늘은 안 할거에요."
나도 할 생각은 없었어.
수진이가 몸을 돌리고 누운 상태로 약 1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고른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수진이의 머리를 잠깐 쓰다듬어준 후 그 옆에 같이 누웠다.
조금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저녁을 먹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
신혼여행 4 일차.
본래라면 오늘을 마지막으로 제주도를 대충 둘러보고 내일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예정이었다.
마지막으로 동문 재래시장이나 둘러보거나 해수욕장에 들러서 잠깐 경치나 구경하려고 했는데 신혼여행이 길어지게 된 것도 있고 수진이가 저질 체력인 점도 있어서 오늘은 호캉스가 되었다.
호캉스라고 해도 호텔을 완벽히 만끽하거나 그런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방에서 나는 소설을 쓰고 수진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거나 인강을 켜놓는 다거나 소설을 보고 밥을 먹을 시간이 되면 방을 나가서 먹고 다시 돌아오는 서울에서 보내던 때와 거의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냈다.
"돈 아깝다~"
"그러게."
비수기라도 1박에 30만원 가까이하는 비싼 호텔인데 이렇게 그저 시간을 소비한다는 개념으로 있는 게 조금 아깝게 느껴지기는 했다.
"우리 5일부턴 그냥 민박에서 지낼까요?"
그리 말하면서 휴대폰으로 주변의 숙박비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다.
돈을 생각하면 그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래도 돈에 여유가 있다면 호텔에서 지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데.
"그냥 여기서 지내자."
"왜요?"
"우리 수진이가 밤마다 그리 소리를 지르는데 방음도 안 되는 곳에서 지내는 건 좀 불안하지 않을까?"
"...제가 그렇게 소리를 질러요?"
원래 본인은 잘 모르는 법이지.
수진이는 절정에 가까우면 꽤 큰 소리로 울다가 딱 임계점을 넘으면 거의 소리를 지르는 느낌으로 신음을 내뱉고 몸에 힘이 쫘악 빠진다.
그 상태가 되어서 몸을 움찔거리는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이어서 사정을 한 다음에도 자지에서 발기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정말 야하고 매력적인 여자다.
"나는 수진이가 그렇게 큰소리로 신음하는 게 좋더라."
"그런 거 같았어요. 매번 소리를 줄이려고 할 때마다 더 못살게 굴었으니까."
"싫었어?"
"...아니요."
약간 수줍은 상태로 고개를 돌려버리는데 이게 또 매력적이어서 지금 당장 하고 싶다.
그래도 저 예쁜 종아리에 붙여놓은 파스를 보니 하자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저리 아프다고 골골거리는데 여기서 무리하게 섹스를 해서 체력을 빼버리면 내일도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겨야 할지도 모른다.
가끔 남편이 절륜해서 신혼여행을 호캉스로 보냈다는 이야기를 하는 부부가 있긴 한데 잘못하면 우리가 그 부부가 될지도 모르니까.
비싼 돈을 주고 여행을 왔는데 집에서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보내고 싶지는 않다.
수진이가 굳이 대학교에 간 것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경험을 위해서니까.
신혼여행도 그녀에겐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으니까.
내가 수진이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 외형이 취향인 점도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수진이의 소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수진이의 소설을 좋아했기에 수진이가 소설가라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고 그렇게 떡밥을 물어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소설이 아닌 수진이에게 빠져들었지만 내가 수진이에게 반한 것은 소설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소설에 녹여낼 귀중한 경험이 될 신혼여행은 조금은 특별한 경험으로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