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신혼여행(7)
느긋하게 경치를 바라보며 가끔 좋은 장소다 싶은 곳을 찾으면 사진을 찍는다.
그런 평범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 엄청 잘 가네요."
"그래도 관광명소라고 제법 길이가 되니까. 차 렌트해서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도 있고."
수진이와 근처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후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본다.
제법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한참을 보고서야 끝이 났다.
"다리는 괜찮아?"
"괜찮아요. 평소에 운동도 하는데 이 정도는 괜찮죠."
"그래. 어젯밤에도 열심히 운동했는데 이 정도는 껌이지."
"..."
수진이는 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싶은 눈으로 나를 한번 째려보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사람이 없는지 확인을 한다.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우리의 좌석은 가장 안쪽이라 우리의 목소리가 들릴법한 위치에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이런 장난도 치고 그러는 거지.
수진이는 한숨을 쉰 다음 본인의 다리를 살짝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조금 오랫동안 걸었더니 다리가 아픈 모양이다.
"어차피 선생님이 다 움직여서 전 운동도 별로 안 되거든요?
"그럼 오늘은 수진이가 운동해볼래?"
"..."
수진이는 주위를 살짝 살펴본 다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싫다느니 변태느니 해도 막상 기회가 오면 본인도 룰루랄라 해선 자지를 부러트릴 것처럼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어온다.
사귄 지 1달도 안 돼서 페라라든지 파이즈리라든지 하는 수진이는 또래의 다른 여자들보다 훨씬 음란할 거라 생각하는데...
"또 야한 생각 하죠?"
수진이는 정말로 못 말리겠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럴 거면 호캉스로 할 걸 그랬다."
"신혼여행이 호캉스라니 절대 안 돼요."
"농담이야."
어차피 진심으로 한 말도 아니었어.
제주도가 좁기는 해도 신혼여행으로 이곳저곳 다 다니려면 4박 5일이나 5박 6일 정도로는 부족할 거다.
그리고 호텔이 아니어도 거의 매일같이 하고 있는데 굳이 호텔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이제 다음에 가야 할 곳이 성산 일출봉이죠?"
"어."
"일출봉이니까 오히려 여길 먼저 갔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일출 말고 그냥 경치가 굉장히 좋대."
"뭐, 어차피 아침엔 못 일어날 테지만요. 누군가 씨가 밤마다 자꾸 괴롭혀서."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발로 장난을 쳐왔다.
내 정강이부터 허벅지 안쪽까지 살살 간지럽히며 제법 음흉한 눈빛을 보내온다.
자꾸 그러면 호캉스가 되어버리는 수가 있어요.
내가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더니 수진이가 알아서 발을 뗐다.
왜 그러나 싶었더니 점원이 음식을 실은 쟁반을 들고오고 있었다.
점원이 음식을 내려놓고 떠나자 수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때?"
"와... 생각보다 엄청 맛있네요. 고등어 초밥이라니 상상도 못 했는데."
수진이는 본인의 앞에 놓인 초밥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맛을 음미하듯이 천천히 씹으면서 맛있다는 듯이 으음~ 소리까지 내고 있다.
고등어 초밥이 맛있기는 하지.
맛집이라고 해서 얼마나 잘하나 했는데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맛도 좋네.
이 정도면 맛집이라고 할만하지.
다음으로 집어 먹은 것은 도로 초밥이라고 참치 뱃살로 만든 초밥이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 일품이다.
내가 그리 초밥을 먹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또다시 장난을 쳐왔다.
"왜?"
왼손을 밑으로 내려서 수진이의 못된 발을 잡고 지압을 하듯 꾹꾹 누르니 수진이가 몸을 움찔 떨며 발을 조금 강한 힘으로 당겼다.
그리곤 작게 웃으면서 내가 젓가락으로 잡고 있는 초밥을 가리킨다.
"고등어 잘 드시네요?"
"언제적 이야기야?"
이젠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이야기죠."
"왜 이렇게 구체적이지?"
"어머님께 들었으니까?"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뭔가를 생각하듯 허공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나를 바라보는 수진이의 눈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7살 유치원 때. 어머님이 바쁘셔서 늦게 도착했더니 어머님이 안 보인다고 울상이 되어 반쯤 울다가 어머님을 발견해서 해맑게 웃는 게 굉장히 귀여웠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
뭐, 그땐 나도 어렸으니까 그럴 수 있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부모님이 온다고 하시곤 오지 않아서 굉장히 불안했던 기억은 어렴풋이 나는 것 같다.
아니 근데 어머니는 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나 모르겠네.
수진이의 입에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니 뭔가 근질근질하다.
볼을 살짝 긁으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자 수진이는 작게 웃으면서 손가락을 한 개 더 폈다.
아무래도 내 부끄러운 과거를 늘어놓으면서 내 반응을 살피고 싶은 모양이다.
이거 안 되겠는데. 나도 비장의 수를 꺼내야겠어.
수진이가 입을 열려고 하길래 수진이의 앞에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응?"
"이수진 만 5세. 처남이랑 같이 TV를 보다가 공포영화를 보게 됐는데 무서워서 처남한테 같이 자달라고 부탁함. 처남은 동생이 귀여워서 그러겠다고 하고 같이 잤는데 이럴 수가! 수진이가 밤에 지도를 그리고는 처남이 오줌을 쌌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음."
"?!"
"이수진 만 7세. 초등학교에서 친구들이랑 형제자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집에 와서 그걸 물어봤는데 처남이 섹스해서 생기는 거라는 답변을 함.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좋은 거라고 했는데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아이는 섹스를 하면 생긴다고 답변을 했다가 선생님들한테 걸림."
"으아아아악!"
수진이가 갑자기 귀를 틀어막고 소리를 질렀다.
내 흑역사라고 해봐야 별거 없다.
그냥 한창 감수성이 풍부할 중학교 시절에 내가 주인공인 판타지소설을 하나 써봤다는 정도가 가장 큰 흑역사다.
그리고 이걸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다.
형제자매가 있었다면 또 모르지만, 부모님은 바쁘셔서 내가 그런 소설을 썼다는 것도 모르신다.
친구들에게도 차마 그 소설만큼은 보여줄 수가 없어서 방 한구석에 박아뒀었지.
대학교에 진학한다고 방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다음 쓴웃음을 지으며 태워버렸었다.
하지만 넌 다르잖아.
처남은 3년 먼저 태어나서 아직 아이라서 천진난만하던 널 잘 알고 있다.
수진이가 옛날엔 어떠했는지 알려달라고 하자 처남은 신이 나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해줬다.
아직 이것 말고도 들려줄 이야기는 많이 남았다.
내가 조금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수진이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처남이 이것저것 많이 알려줬는데 더해?"
"..."
수진이는 입을 다물고 천천히 초밥을 먹었다.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익어버리고 귀와 목덜미까지 빨갛다.
부들부들 거리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놨다 하는데 아무래도 처남에게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미안해 처남.
다음에 만나면 또 용돈 줄게!
***
"일출봉이라고 해서 별로 기대는 안 했는데 여기도 경치는 좋네요."
"그러니 사람들이 굳이 보러 오겠지."
주변엔 사람들이 경치를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일출일 때 보러 오면 또 색다를 거 같은데."
"이제 거의 여름인데 이런 날에 해돋이 보려면 4시에는 일어나서 호텔을 나와야 할걸?"
"...그건 싫은데."
로망이 없는 녀석.
아니, 현실적인 건가.
수진이는 난간에 손을 얹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수진이의 뒤에서 수진이를 살짝 끌어안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있어?"
"이제 슬슬 다음 소설을 써야 하는데 어떤 이야기로 쓸까 고민하고 있어요."
"오, 이제 써보려고?"
"네. 이제 결혼식도 올렸고 곧 있으면 여름방학도 시작되니까 슬슬 생각해봐야죠."
"이번엔 어떤 이야기로 해보려고?"
"그건 이제 생각해야죠."
수진이는 한동안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머릿속으로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는 모양이다.
나는 수진이에게서 천천히 물러서서 수진이의 모습을 휴대폰에 담았다.
사색에 잠겨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모습이 제법 그럴싸하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수진이의 옆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본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저 너머까지 보인다.
찰칵.
"뭐야?"
"선생님도 멋대로 찍었잖아요. 이걸로 쌤쌤이지."
수진이는 작게 웃으면서 휴대폰을 흔들어 보인다.
"정말로 쌤쌤을 좋아하네. 그래서 날 좋아하는 건가?"
"..."
수진이는 기겁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내 옆구리를 조금 강하게 꼬집어왔다.
"이제 40살이라고 부장님 개그하고 그러는 거예요?"
"미안해."
그냥 웃으면서 받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나 보다.
수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같이 가. 여보~"
"오지 마요. 당신~"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잠깐 바라봤다가 작게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마스크를 쓰고 밀짚모자를 쓰고 있으니 그냥 평범한 신혼부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마스크가 이럴 땐 또 좋기도 하네.
수진이를 따라잡아 그 손을 살짝 잡아본다.
그러자 수진이가 살짝 손을 빼내려고 한다.
"나도 땀투성이니까 그냥 있어."
"당신 손이 끈적해서 빼려는 건데?"
"이 자식이."
반대 손으로 수진이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니 수진이가 크게 웃으면서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하읏, 흐읏, 아하하하!"
그런데 그, 웃음소리가 생각보다 섹시하네. 우리 부인.
수진이도 본인 목소리가 조금 의외였는지 입을 가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우리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작게 헛기침을 한 다음 자리에서 급히 벗어났다.
오랜만에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니 피곤하네.
수진이도 그리 생각했는지 나를 보며 작게 웃었다.
"집 밖으로 나오니까 사람도 많고 뭔가 신경 쓸게 많네요. 역시 집이 최고인 거 같아요."
"역시 호캉스가 좋다는 뜻?"
"아뇨."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일출봉을 돈 다음 외돌개까지 돌아본 다음 계획보다 조금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
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계속 산책을 하며 경치만 바라보고 있으려니 생각보다 금방 질리기도 했고 산책코스여서 계속 걷기만 하니까 생각보다 피곤했다.
"내일은 스킨스쿠버였죠?"
"어. 오전엔 호텔에서 좀 쉬다가 오후 2시까지 가면 돼."
"이럴까 봐 오전 일정을 비워둔 거에요?"
"스킨스쿠버가 체력을 많이 쓴다니까 오전을 비워둔 거 뿐이야. 오전엔 다른 예약자가 있기도 했고."
"그렇구나."
수진이는 뷔페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스킨스쿠버다.
처음 하는 일이라 조금 기대가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