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신혼여행(1)
5월 29일.
나와 수진이의 결혼식이 열리는 날.
결혼식을 방문하는 하객들은 굉장히 귀찮은 날이겠지만 준비하는 당사자들도 상당히 분주한 하루다.
그저 식을 올리고 안녕! 하고 헤어지는 게 아니니까.
나와 수진이는 9시부터 예약을 잡은 샵에 들러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신랑의 메이크업은 짧으면 30분에서 길면 1시간 안에 끝나기에 조금 여유가 있지만, 신부는 다르다.
2시간이 넘게 준비를 해야 하니까.
저번엔 상당히 피곤한 표정을 보였으나 이번에는 제법 건강한 표정을 보였다.
내가 뒤에 서서 거울을 바라보자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는 싱긋하고 웃어주기까지 하는 여유를 보인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아직 여유가 조금 있음을 확인했다.
수진이는 드레스까지 다 입은 상태에서 이모들과 스텝들의 도움을 받아 승합차로 이동했다.
이제부턴 신부 대기실에서 몸에도 얼굴에 맞춰 화장을 해주고 머리 위에 베일과 티아라를 씌워주면 끝이 난다.
250만원의 돈값을 하기 위해 모인 스텝들은 수진이를 꾸미는 모습이나 우리의 결혼식 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아줄 것이다.
예식장에 도착하니 시간은 11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천에서 직접 올라오시기로 하셨는데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계셨다.
"후후. 새아기가 오늘은 정말로 선녀 같구나."
"고맙습니다!"
수진이는 굉장히 아름다운 미소를 보인 이후 이모들의 도움을 받아 신부대기실로 이동했다.
이제부터는 신랑과 양가 부모님들의 일이다.
보통의 결혼식은 하객들을 반기는 일과 축의금을 받는 일로 나뉜다.
하객을 반기는 것은 물론 양가 부모님이나 신랑의 일이다.
축의금을 받는 사람은 친한 사람이거나 혈연이다.
이 일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보통은 혈연이 한다.
봉투를 받고 식권을 주는 것과 장부에 봉투와 이름을 쓰는 것, 또 금액이 맞는지 확인해야 하기에 2~3명 정도의 손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스몰 웨딩이라 그런 번거로운 일은 조금 줄이기로 했다.
내가 초대한 지인은 인한 강사를 포함해서 20명밖에 되지 않았고 수진이 쪽의 내빈도 수진이의 이모분과 처남의 가장 친한 친구 4명만 초대를 했기 때문이다.
내 하객들은 축의금을 얼마씩 낼지 미리 약속해놓은 상태여서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쉬워도 힘든 건 힘든 건데ㅡ"
"알바비로 낭낭하게 챙겨줄게. 처남."
"ㅡ내 하나뿐인 여동생의 결혼식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죠."
스몰 웨딩이라 하객이 적더라도 손이 적게 가는 것뿐이지 준비할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웨딩 액자들을 배치하고 주문했던 생화들은 잘 배치가 되었는지 확인하고 식권은 충분히 있는지 확인을 하고 음식들은 잘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이 정신없는 짓거리를 두 번이나 하게 되다니.
혜정이와의 이혼을 생각하고 있을 때만 해도 이혼하면 다시는 결혼 따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11시 20분이 되자 준범이가 나타났다.
"씨팔."
"좋은 날인데 좋은 말 좀 하고 삽시다."
"개 귀찮다."
"잘 부탁합니다."
오늘의 사회자는 준범이가 하기로 되어있다.
"야이 새끼야. 그리고 씌팔 청첩장이 그게 뭐냐? 아나 미친놈."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리 말하고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읽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사회자를 맡기 위해 써온 글을 확인하는 모양이다.
정도를 아는 녀석이니 상식적인 선에서 하게 될 것이다.
그로부터 10분이 더 지나자 사람들이 한두 명씩 계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5분에서 10분 지각이 일상이던 녀석들이 오늘은 부지런했다.
"진짜 결혼하는 거야? 와... 미친...왜!"
"왜긴 왜냐 미친놈아. 하고 싶으니까 하겠지."
내가 예식장에 찾아온 내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려니 축의금을 정리하던 처남에게 무언가 큰소리를 내는 사람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처남 쪽의 지인인 모양이다.
저 사람이 처남이 말했던 수진이를 소개해달라고 졸랐던 남자인가?
안타깝네. 수진이는 내꺼다.
왠지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고생이 많아요. 김 서방."
"아뇨. 괜찮습니다. 장모님."
"재혼이라서?"
"...크흠."
"미안해요. 후훗."
장모님은 짓궂은 말과는 별개로 굉장히 화사하게 웃으셨다.
상견례에서 어머니가 한복을 입는다고 하셔서 본인도 한복으로 입겠다고 하셨는데 동안이신 장모님이 한복을 입으니 조금 색다른 기분이다.
한복도 누가 입느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이렇게나 바뀌네.
수진이의 한복이 귀여운 느낌이었다면 장모님의 한복은 성숙한 느낌이지만 늙어 보이지는 않는 절제된 매력이 있다.
"수진이. 잘 좀 부탁해요."
"물론입니다."
오늘부터 수진이는 부모의 슬하에서 벗어나서 나에게로 온다.
주례에는 평생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그래. 이제는 내가 수진이의 동반자가 되어 같이 걸어나갈 시간이 왔다.
***
불평불만을 내뱉던 것과는 다르게 준범이는 능숙하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대부분이 내 하객이니 웃고 떠들 이야기는 한 가득이었다.
"후훗. 선생님은 딱딱하고 재미없게 살아오신 것처럼 이야기하셨으면서 저렇게 재밌는 일들도 하고 그랬어요?"
"추억이라서 미화된 거지."
"그래요?"
"그래."
나는 수진이의 왼쪽에 섰고 수진이는 내 오른팔에 왼쪽 손을 얹었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결혼식은 대부분 신랑이 먼저 입장을 하고 신부는 장인어른과 함께 입장한다.
부모의 슬하를 벗어나서 사위에게 자신의 딸을 맡긴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수진이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조금 변형돼서 나란히 입장하게 되었다.
"긴장하지 마."
"안 했어요."
"평소보다 힘이 더 들어갔는데 뭘."
수진이는 괜찮다고 하지만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웨딩드레스는 불편하니까 넘어질지도 모른다.
"난 기대만 되는 데."
"네?"
"오늘 신혼 첫날이 너무 기대된다고."
"치. 매일 하면서도 그렇게 신이 나요?"
"요 1주일은 안 했잖아. 기대하라고."
"또 얼마나 변태 같은걸 하시려고..."
수진이는 도끼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그래. 긴장한 것보단 그게 낫지.
"신랑, 신부 입장!"
나와 수진이는 그 소리에 맞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곧이어 드레스 뒷자락을 잡아주는 이모들이 수진이가 걷는 것을 보조해주기 시작했다.
수진이는 걸을 때 웨딩드레스를 밟아 넘어지면 우스꽝스러운 결혼식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는데 축구라도 하듯 발로 치마를 걷어차듯 제법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내 신부는 정말 씩씩해서 좋다.
그리 길지 않은 길을 걸어 도착한 앞에는 오늘 주례를 담당해줄 사람이 서 있었다.
한때 직업적인 이유로 신세를 질뻔했었지만 다른 의미로 신세를 지기 한 만수 형.
처음에는 이혼에 당황해서 위로의 뜻을 전했던 그였지만 내가 여고생과 사귀고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내 머리에 헤드락을 걸으면서 본인이 왜 주례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화를 냈었지.
그래도 나와 친하고 웃으면서 주례를 서줄 만큼 성격이 좋고 스펙도 좋은 사람은 형밖에 없었어.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수진이와 인사를 주고받고 혼인 서약의 시간이 되었다.
나는 수진이에게 120살까지 살면서 지켜줄 거라는 이야기와 원하면 언제든지 해돋이를 보러 가겠다는 이야기, 나와 수진이를 닮은 아이를 2명 낳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마지막으로 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수진이는 나에게 100살까지 살면서 함께하겠다는 이야기와 현명한 아내로서 남편을 피곤하게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 나를 조금만 닮아서 변태적이지 않고 건강한 아이를 낳겠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마지막으로 나와는 다르게 진심으로 일생에 한 명만을 사랑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아니 그건 적혀있던 멘트와 좀 다른데.
하객들은 다시 한 번 웃으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뭐, 내가 변태기도 하고 수진이 이전엔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기도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닌데...
약 30초 정도의 시간이 흘러 분위기가 진정된 다음 만수 형이 결혼식에서 나오는 그 멘트를 내뱉었다.
대충 아플 때든 건강할 때든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가 오가고 나와 수진이는 맹세하겠다는 말을 했다.
만수 형은 고개를 끄덕이고 성혼이 성사되었음을 내빈들에게 알렸다.
이후 만수 형의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처음 봤을 때 눈에 독기가 가득 차서 일 잘하겠다 싶어 뽑았는데 정말 일을 잘하던 녀석이라며 나에 대한 추억을 읊기 시작하는 만수 형.
마음에 드는 녀석이라 잘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서 뭔가 마음이 복잡하다는 이야기와 설마 여고생과 재혼을 꿈꿀 줄 몰랐다며 여기 계신 내빈들은 도둑놈을 축하하러 모이셨다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주례가 나오자 다들 참지 않고 와하하하! 하며 웃기 시작했다.
우리의 결혼식은 다른 결혼식과 다르게 축제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주례가 끝나고 대충 끝이 나리라 생각했더니 준범이 녀석은 나에게 무리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대충 내용은 이제 내년이면 40인 아저씨가 한창인 여대생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확인을 해봐야 한다면서 수진이를 안고 스쿼트를 시키거나 수진이를 허리에 앉히고 푸쉬업을 시켰다.
수진이는 굉장히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으나 난 아무런 문제 없이 준범이의 지시사항을 수행했다.
애초에 수진이는 그렇게 무겁지도 않은 편이고 나도 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넘어서 수진이 정도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준범이는 제법 놀랐는지 휘파람을 한번 불고 친구 녀석들도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오히려 더 해보라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신이 난 준범이 녀석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지껄이기 시작해서 정신을 차리니 사회라는 이름의 합법적 린치 현장이 되어있었다.
숨을 헉헉거리기 시작하니 친구들과 준범이는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고 나는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상태로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한 이후 퇴장하게 되었다.
부케를 던져서 잡는다던가 하는 것들도 있었지만, 수진이의 부케를 받아줄 사람이 없어서 이것만큼은 알바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내 주변에 결혼을 해야 할 여자는 없고 수진이는 친구가 없다.
난감한 상황이긴 하다.
나와 수진이는 옷을 갈아입고 다시 만났다.
"이제 부부네요. 선생님."
"그러게. 잘 부탁해. 여보."
"네. 당신."
수진이는 웃으면서 내 팔에 팔짱을 껴왔다.
나는 수진이를 데리고 식당 쪽으로 향했다.
"응?"
수진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의아하다는 소리를 내었다.
"왜?"
"아니, 이대로 가는 거 아니에요?"
"하객들이 다 가고 떠나는 게 예의야."
"아, 그렇구나."
아무래도 결혼식을 올린 다음 쌩하고 신혼여행을 간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그건 예의가 아니지.
나는 밥을 먹는 내 친구들과 주례를 서준 만수 형, 사회자인 준범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한 강사도 오랜만에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와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인한 강사는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 행복하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래. 앞으로는 행복해야지.
인한 강사의 앞길에도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식사 시간은 1시간으로 잡혀있었고 모든 하객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뒷정리를 끝냈더니 오후 4시가 되어 있었다.
"그걸 또 가져오네."
"네. 웨딩드레스랑 다르게 말리면 보관하기 쉬우니까요."
수진이는 해맑게 웃고는 부케를 만지작거렸다.
웨딩드레스가 번거롭고 어쩌고저쩌고 했는데 역시 아쉬웠나 보다.
하긴 처음 웨딩드레스를 봤을 때 눈에 별이라도 깃들었는지 반짝반짝하던 그 모습이 생생했는걸. 뭐.
그래도 너무 아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를 위한 웨딩드레스는 이미 한 벌 샀으니까.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액셀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