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너와 함께 하는 내일(13)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장모님이 준비하려고 하시길래 만류하고 수진이와 함께 부엌에 섰다.
어버이날은 오랜만에 친가에 가볼 생각이었기에 수진이의 친가는 어린이날 겸 어버이날로 하는 것이지.
카네이션은 수진이가 미리 꽃집에 연락을 해둬서 어버이날에 도착할 예정이다.
"미리 그런 것도 다 준비하고. 이제 좀 얼빵한 부분이 빠지는 건가?"
"누가 얼빵하다구요?"
너.
가끔 허당같이 한두 개씩 뭔가를 빼먹잖아.
아무튼, 나도 많이 변했네. 어버이날에 직접 찾아갈 생각을 다 하고.
이전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인데 말이다.
내가 수진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수진이도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한다.
"또 수진이 생각하고 있었다고 답하려고 했죠?"
"요즘은 거의 8할 이상 네 생각만 하고 있어."
"나머지 2할은?"
"글 쓰는 거나 돈벌이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등."
"그렇게 제가 좋아요?"
"그래. 말로 표현을 못 할 정도로."
"그래도 글로는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수진이는 작게 웃으면서 밥솥에 밥을 안쳤다.
"장모님은 어떤 거 좋아하셔?"
수진이는 검지를 입가에 대고 으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딱히 뭘 좋아하시지는 않는 거 같아요. 너무 자극적이지만 않으면 뭐든 다 드시고."
그럼 그냥 무난하게 만들어야겠다.
어버이날을 겸하는 거니 조금 특별한 거로 해보려고 했는데 말이지.
"어, 왔냐?"
낮잠을 잔다던 처남이 밥 먹을 시간이 되어서야 일어나선 거실로 나왔다.
정수기에 물을 받고 꿀꺽꿀꺽 물을 마시고는 나와 수진이를 히죽 하면서 바라보고 있다.
"이야~ 이렇게 보니까 또 부부 같기도 하고."
"같은 게 아니고 맞거든?"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올려다보며 작게 웃었다.
그래. 이젠 부부지.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이 흐르면 부부가 된다.
"그렇게 좋냐?"
"여친도 없는 게 자꾸 까불어."
"큭!"
그래. 인싸든 뭐든 밖을 나가질 못하는데 여친을 어떻게 사귀겠나.
처남은 오랜만에 수진이에게 한 방 먹었는지 제법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네. 저런 거에 아픈듯한 모습을 보이고.
30이 넘도록 여자를 만나지 않았었던 내 입장에선 그 감성을 잘 모르겠다.
주변에서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여친이 없었냐고 물으며 어디 하자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긴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상대방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에 집착한단 말이지.
없던 시간이 긴 사람에겐 그리 심각한지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지금 처남이 짓는 저 고통스러운 표정은 평생이 걸려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뭐, 수진이를 만난 시점에서 그런 감성 따위 알고 싶지도 않지만.
"처남, 시험은 잘 끝냈어?"
"그럼요. 제가 또 할 때는 하는 사람입니다."
"말은 잘해요."
"왜 또 시비냐?"
"아, 저리 좀 꺼져!"
"성격 봐라. 너 그러면 버림받아 이년아."
"선생님이 너 같은 줄 알아?"
그리 말하고는 내 허리에 팔을 둘러온다.
"으휴, 시발. 말을 말아야지."
처남은 눈꼴 시다는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소파로 향했다.
수진이는 처남을 격퇴하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리를 하고 있다.
이게 남매의 모습인가?
남녀 한 명씩 아이를 낳으려고 했는데 심히 걱정되는 미래다.
"왜요?"
"걱정돼서."
"뭐가요?"
"애가 애를 낳게 생겼어. 우리 애들도 이렇게 싸우면서 클까 봐 걱정돼서."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거든요."
나보곤 툭하면 꼰대니 아재니 그러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내가 한숨을 쉬고 요리를 하려니 수진이가 옆구리를 툭 하고 팔꿈치로 찔러왔다.
"왜?"
"왜 자꾸 애 취급하고 그래요?"
"애처럼 행동하니까 그렇지."
"집에 돌아가서 섹스할 생각으로 가득 찼으면서? 애랑 그렇게 하고 싶어요?"
수진이는 목소리를 낮추고 음흉한 눈빛으로 입술을 핥았다.
손바닥이 허벅지를 쓰다듬자 나도 모르게 몸도 자지도 딱딱해져 버렸다.
"봐봐. 바로 반응하면서."
나는 힐끔 하고 거실을 살펴봤다.
이 위치에서는 수진이의 손이 보이지 않는 위치다.
위험한 장난.
수진이는 이 행위가 주는 스릴에 몸이 달아올랐는지 살짝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의 몸에서 야릇한 냄새가 풍겨오는 착각에 빠진다.
방금까지 달콤한 향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섹시한 향기로 느껴진다.
내가 멍하니 수진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씨익하고 웃는 수진이는 그대로 내 자지 부분을 손으로 쓰윽 한번 만져주고는 곧장 손을 떼버렸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요리를 한다.
나는 몸이 달아올랐는데 여기서 그만두다니 얄미운 녀석.
수진이는 요리를 한다고 머리를 뒤로 묶었다.
그래서 드러난 목덜미가 너무나 섹시하다.
작게 깨물어주고 싶다.
지금 당장 침대로 데려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두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고...
나는 한숨을 쉬고는 요리를 마무리 지었다.
와, 그런데 이게 이렇게 기분이 짜릿하네.
누군가에게 들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섹스한다는 스릴감.
사람들이 야외에서 섹스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내가 그런 걸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하려나 모르겠네.
***
"으음~ 정말 맛있네."
장모님은 내가 만든 가지 튀김을 드시며 정말 맛있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거 중간에 고긴가? 엄청 맛있네."
처남의 입맛에도 맞는 모양이다.
가지는 튀겨먹으면 정말 맛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가지를 튀기지 않고 그냥 밥과 함께 요리하거나 물컹이는 식감 그대로 버무려서 먹는단 말이지.
어렸을 땐 이 가지가 정말로 싫었었다.
지금이야 뭐 맛있게 잘 해먹으니 상관없긴 한데.
수진이는 내가 만든 요리가 호평이니 기분이 좋아진 듯 웃으면서 본인도 먹기 시작했다.
"요리 잘하는 남자가 최고야. 오라비는 요리도 못 하고 머리도 나쁘고 어떻게 결혼하려고?"
"지랄. 요리가 취미인 여자를 만나면 되지."
"풉!"
수진이는 히죽 이며 처남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은 만날 수 있으면 만나보라는 느낌의 감정이 묻어 나왔다.
하긴 요즘 시대에 요리가 취미인 사람이 있기는 하려나 모르겠다.
휴대폰만 켜도 바로 배달음식이 오고 초중고 12년은 꼬박 공부만 하는 게 요즘 애들인데 요리까지 할 줄 알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한 일이 아닐까.
수진이도 요리를 할 줄 알지만 레시피가 많은 건 아니다.
레시피대로 만들 줄 아는 거지.
그래도 또래의 여자들보단 엄청 요리를 잘하는 편이겠지.
아무튼, 처남이 요리를 안 하고 사려면 수진이 정도로는 요리를 할 줄 아는 여자를 만나야 한다는 거다.
밑반찬으로 5개 정도는 만들 줄 알고 메인 메뉴로 1주일 로테이션 정도는 돌릴 줄 아는 그런 여자.
어렵다.
키가 180은 안 돼도 175는 넘고 외모가 엄청 잘생기진 않았는데 평범보단 잘생기고 연봉이 억 단위는 아닌데 6천은 벌고 몸이 우락부락하진 않은데 체조선수처럼 탄탄한 몸매를 가진 그런 남자를 찾기 어려운 것과 비슷한 거지.
"내가 넌 줄 아냐? 친구도 없는 게 까불어."
"뉘예~뉘예~ 친구가 많아서 부럽습니다~ 그 친구들 전부 대기업 들어갈 때 혼자 상·하차나 할 것같이 생겨서는."
"뭐 이년아?"
"이수진, 이성진. 밥이나 먹어."
""네~""
떠들썩해서 분위기를 따라가질 못하겠네.
집이 화목하고 떠들썩한 집에 평소엔 좀 과묵한 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려니 역시 어색함이 묻어 나온다.
그래도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이런 화목한 가정을 보고 있는 건 그것만으로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이 광경에 10년 정도 후의 모습을 겹쳐보고 있다.
나와 수진이가 낳은 아이들이 웃고 떠들면서 식탁에서 장난을 치고 수진이가 그걸 보고 있다가 좀 조용히 식사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알겠다는 듯이 대답은 하지만 또 몇 분이 지나면 투닥거리며 장난을 치겠지.
그럼 수진이는 한숨을 쉬며 쓴웃음을 내뱉고 나는 그 모습을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을 것 같다.
내가 조용히 식사하고 있으려니 장모님이 내 쪽을 바라보셨다.
"죄송해요. 김 서방. 우리 집 애들이 좀 시끄럽죠?"
"아뇨. 조용한 것보다 이렇게 떠들썩한 게 더 마음에 듭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장모님은 이미 20년에 가까이 이 시끌벅적한 애들을 키워오셨다.
이런 녀석들이란 걸 알고 있으니 그냥 반쯤 포기한 분위기다.
시끄럽게 떠들고 그래서 예의가 없어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처남도 수진이도 이미 충분히 어른이다.
외식을 할 땐 충분히 어른스러운 행동을 보인다.
여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사적인 공간이니까 이렇게 하는 거지.
그래. 이제 그들은 나에게 사양을 하지 않고 평소 집에서 지내던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거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진 않았지만 훌륭한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고 있다는 증거인데 이게 시끄럽다거나 예의가 없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남이 보기에 그래 보여도 어차피 남이 볼일도 없을 텐데 뭘.
"선생님은 떠들썩한 게 보기 좋다고 그랬어. 그죠?"
나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나는 내 친가와 같은 분위기가 싫다.
내 아이들은 아버지란 존재에게서 권위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이 있으면 든든하고 같이 놀아주는 재밌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옆에서 보면 4인 가족으로만 보이는 화목한 식사가 끝이 나고 TV 앞에 네 명이 나란히 앉아서 TV를 본다.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으며 TV에서 나오는 시답잖은 개그에 작게 웃고 떠든다.
그런 별것 없는 광경이 앞으로 내 삶에 다가오게 된다.
앞으로 20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에게도 이 광경이 당연한 일상이 된다.
기대된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남들처럼... 그래. 남들처럼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다.
이런 당연한 광경을 보고 싶었다.
결혼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이런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데 결국 결혼을 하게 된 것도 이런 광경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첫 결혼은 실패했다.
나는 아직 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었고 혜정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제는 다르다.
실수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이젠 잘못하지 않는다.
수진이를 닮은 귀여운 딸아이가 태어나고 나를 닮은 조금 건방진 아들 녀석이 태어나고 그 둘이 시집과 장가를 가고 내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이 또 결혼하는 그 미래까지 지켜보고 싶다.
나는 TV에서 어린이날 특집이라며 웃고 떠들면서 사회를 진행하는 예능인을 보며 그리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