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너와 함께 하는 내일(7)
수진이와 웨딩 촬영을 끝낸 다음 날.
수진이는 인상을 쓰며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적이 나빠도 상관없다고 했으면서 천성인지 결국 시험공부를 하는 모습이 제법 흐뭇하다.
"수진아."
"네."
"점심 먹으면 스튜디오에서 보내온 사진도 확인해야 해."
"아, 맞다. 으아아아!"
투명 수진이는 크와와왕 하고 울부짖었다.
보통 웨딩 촬영을 하고 이렇게 급하게 사진을 고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결혼이 1달 앞으로 다가온 우리에겐 앞으로 5일 안으로는 웨딩 사진을 골라야만 청첩장이나 결혼식장에 놓일 사진 등을 준비할 수 있다.
웨딩 앨범도 준비해야 하고 상당히 바쁘지.
수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바라봤다.
"저 대학 그만두면 안 돼요?"
"장모님이 허락하실 리가 없잖아."
"으아아앙!"
책상에 엎드려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인강이라고 교수들이 과제를 무더기로 냈으니 제법 피곤하긴 할 거다.
수강신청을 할 때 내 경험담을 물어와서 1학년 때 학점을 따기 쉬우니 교양보다 전공을 들으라고 했더니 신청할 수 있는 모든 전공을 신청해서 눈이 핑핑 돌아가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대학교와 고등학교는 수업방식이 다르니까 피곤하긴 할 거다.
모든 시간표를 본인이 계획해서 해야 하고 가르치는 사람도 학기마다 바뀌니 스타일을 찾기도 어렵다.
시험에 족보라도 있는 교수는 다행이지. 요즘은 말이 많이 나와서 그런 것도 드무니까.
수진이는 한차례 울부짖은 후 마음이 진정됐는지 다시 시험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진이의 앞에 블랙커피를 한잔 타서 놔주고 수진이의 맞은편에 앉아서 스튜디오에서 보내온 사진을 확인했다.
최소한의 보정을 넣은 사진과 원본 사진을 보내왔다.
이제 이 사진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야 한다.
결혼식장에 걸어놓을 사진, 청첩장에 넣을 사진. 그리고 웨딩 앨범에 넣을 사진을 고르면 끝나는 일이다.
수진이는 어떤 각도로 찍어도 예쁘니까 다 넣고 싶은데 다 넣을 수가 없으니 문제다.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2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웨딩 촬영을 한 다음에 선택한 사진 외의 것들은 다 지워버린다.
원본 사진을 얻고 싶으면 돈을 내야 한다.
더러운 새끼들. 그냥 찍은 거 주면 되는데 이 사진을 얻기 위해서 20만원을 추가로 냈다.
이러니 전국에 웨딩 촬영이니 예식장이니 그런 것들이 넘쳐나지.
아무튼, 수진이는 시험공부로 바쁘니 내가 일차적으로 사진을 조금 걸러둬야겠다.
나나 수진이가 눈을 감고 찍은 사진들은 스튜디오에서 알아서 편집해서 없다.
그래도 느낌상 뭔가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은 한쪽으로 빼둔다.
작업은 상당히 오래 걸렸다.
수진이는 어떤 웨딩드레스를 입고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어도 예뻐서 어떤 걸 빼고 어떤 걸 넣어야 할지 상당히 고민이 됐으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빼는 사진들조차 굉장히 아쉬웠다.
그래도 사진을 고르는 기준은 있어서 편했다.
4벌의 웨딩드레스와 한복, 그리고 평상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으니 한복과 평상복에 몇 장을 할애하고 나머지 사진을 4벌의 웨딩드레스로 나누면 됐으니까.
약 30분에 걸쳐서 고민하고 사진을 분류하며 시간을 보냈더니 수진이가 기지개를 켰다.
"작업 다 끝나셨어요?"
"1차 선별은 끝났어. 나중에 너도 확인해."
"네~"
웨딩 촬영을 한 이후 사진을 선별하는 건 기본적으로 여성이 하는 일이다.
결혼식은 신부를 위해 하는 것이니까.
내가 좋다고 생각했던 게 수진이에겐 별로 일수도 있고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게 수진이에겐 좋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수진이는 앉아서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힐끔힐끔 내 쪽을 쳐다보는 게 평소의 수진이 답지 않게 산만했다.
아무리 어려도 수진이는 이미 훌륭한 신부였다.
***
"이건 아까운데... 이것도..."
점심을 먹은 이후에는 수진이가 웨딩 사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수진이는 내가 따로 빼놨던 사진들도 아깝다면서 몇 장 되돌리고 있었다.
내가 뺀 기준은 수진이의 표정이 조금 어색하다 싶은 것이었는데 수진이의 기준으론 내가 잘 찍혔으면 그것도 고려사항인 모양이다.
시험공부를 할 때보다 더 인상을 쓴 상태로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보면 거북목 된다."
"그럼 좀 주물러주세요. 어깨가 너무 아파요..."
수진이는 한 손으론 어깨를 주무르며 한 손으론 마우스를 잡고 사진을 확인하고 있다.
가슴이 크니 어깨가 결릴 만도 하지.
나는 수진이에게 손을 뻗었다.
"...뭐 하세요?"
"어깨가 결린다며."
"여긴 어깨가 아닌데요."
"내가 대신 들어줄게. 이제 어깨가 안 아플 거야."
장난기가 발동해서 수진이의 커다란 가슴을 밑에서 받쳐주었다.
그랬더니 수진이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피식하고 작게 웃었다.
"매일 밤 그렇게 만지면서도 안 질려요?"
"질렸으면 좋겠어?"
"아뇨."
수진이는 내가 잠깐 가슴을 만지작거리게 두다가 내가 본격적으로 손을 움직이려고 하니 손을 한 대 가볍게 때렸다.
"선생님은 사정관리 싫어하면서 가슴만 만지지 말아요. 요즘 민감해서 자꾸 만지면 하고 싶어지니까."
"그럼 하면 되지."
"저 진짜 바쁘거든요? 밤에 해요."
"알았어."
수진이의 표정에서 아주 약간 분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기에 바로 손을 어깨로 옮겼다.
이제 수진이가 어느 정도 선을 넘어야 화를 내는지 어렴풋이 알 거 같다.
커플 사이엔 가끔 다툼도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건 연애가 아니고 결혼이다.
연애는 그러한 자극이 서로에게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어도 결혼은 앙금이 될 뿐이다.
주말부부가 사이가 좋은 이유는 연애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앙금이 될 문제가 색다른 경험이란 이름의 스파이스가 되기 때문에 그것도 나름의 맛이 있는 거지.
다툼이 있더라도 서로 잠시 떨어져서 머리를 식히고 차분하게 자신의 잘못과 연인의 잘못을 비교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서로에게 더 빠져들 수 있는 거다.
하지만 결혼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러니 상대에게 악감정을 품기 시작하는 순간 상대방에게서 보이던 사소한 결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하품을 길게 하는 것을 평소엔 많이 피곤하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악감정을 가지고 보게 되면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그리고 그런 생각이 쌓이면 진짜 그렇게 생각되는 거다.
원활한 부부관계는 서로가 싫어할 만한 행동을 최대한 피하고 서로서로 위하는 것.
그게 최고의 부부관계다.
수진이의 어깨를 마사지하고 있으려니 제법 뭉쳐있어서 이 정도면 아플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읏, 아앗, 아, 아파요...!"
아주 살짝 손으로 자극을 줬을 뿐인데 온몸을 비틀면서 아프다며 신음을 내뱉는 수진이.
하지만 그 신음이 뭔가 야해서 아랫도리가 불끈해지는 기분이다.
...참아야지.
수진이는 본인이 약간 부끄러운 소리를 냈다는 자각은 있는지 살짝 귀를 붉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계속해서 사진을 살폈다.
하지만 사진을 한 장 고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아까보다 좀 많이 느려졌다.
수진이의 입에서 이제 됐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어깨를 주물러줬다.
"후우."
제법 오래 어깨를 주물렀는지 손에 힘이 잘 안 들어간다.
손을 털며 수진이의 모습을 바라보니 어깨결림이 많이 해결됐는지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앞으로도 종종 해줘?"
"그래도 돼요?"
"안 될 것도 없지."
"고마워요. 선생님. 이래서 다들 결혼하나 봐요."
"그래?"
아닐걸? 요즘 결혼하는 사람들은 나이는 찼고 혼자 살기는 외롭고 주변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것도 점차 비혼 주의로 가는 추세고.
그래도 이런 사소한 거로 결혼하는 거로 생각하는 그 때 타지 않은 순수함이 눈부시다.
수진이의 사진 선별은 그로부터 3시간이 더 지나고서야 끝이 났다.
다 끝내고 나니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역시 이걸 빼놓을 순 없죠."
"그렇지."
"역시 신의 한 수였죠? 기쁘죠?"
"...그래."
수진이가 웃으면서 가리키는 사진은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나와 수진이의 모습이었다.
그래. 이것만큼은 제외할 수 없지.
수진이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어주고 피곤해 보이는 수진이에게 잠깐 눈이라도 붙이라고 말해준 다음 스튜디오에 연락하고 사진을 보냈다.
스튜디오에선 우리가 사진을 엄청 빨리 정했다고 제법 놀란 듯했다.
혜정이와 사진을 찍었을 땐 촬영을 하고 3주가 지난 다음에야 처음으로 사진 파일을 열어서 확인했었다.
다른 예비부부도 최소한 1주일은 생각하며 고르겠지.
사장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 앞으로 어떤 일정으로 진행될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청첩장에 들어갈 문구도 선택할 수 있는데 딱히 없으면 업체 측에서 해준다는 모양이다.
나는 청첩장에 들어갈 문구는 내가 직접 쓰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업체 측은 알았다고 하며 이번 주가 끝나기 전까진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수진이가 들어간 방을 한번 힐끗 쳐다본 다음 부엌에 서서 저녁을 준비했다.
요즘은 스몰 웨딩이 유행이다.
결혼을 준비할 때 들어가는 돈이 장난 아니게 비싼 편이라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점점 여러 가지 것들이 간소화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이 청첩장이지.
요즘 젊은 세대들은 모바일 청첩장만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모바일 청첩장이 편하기는 하다. 거리의 문제도 시간의 문제도 해결되고 돈도 절약되니까.
하지만 나는 그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꼰대여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모바일 청첩장 `만` 보내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결혼하는 쪽에서 지인들을 불러다 비싼 밥을 한 끼 대접하고 청첩장을 건네며 바쁜 일이 없으면 참석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
그러는게 예의였다. 결혼식은 지루하고 축의금도 내야 하니까.
하물며 나는 재혼이다.
친구놈들만 부른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 번씩 참석해서 축의금도 냈던 녀석들에게 모바일로만 툭 하고 던지듯이 보내버리고 거기다가 들어가는 문구조차 업체에서 찍어내듯 나온 문구를 써넣는 건 아무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이니 이해를 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 언제 죽냐고 물어보고 쌍욕을 주고받는 사이라도 이런 일에는 예의를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구는... 19명 분을 다 따로 써야겠다.
녀석들은 청첩장을 가지고 찾아올 것이며 서로 청첩장을 보여주며 서로 다른 문구를 확인하곤 웃으면서 술안주로 삼을 것이다.
나의 재혼이 그들에겐 하나의 추억이 되도록. 최대한 즐거운 행사가 되길 바라며 써볼 생각이다.
장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150화나 되는 분량의 소설을 썼던 나다.
이 정도는 하루면 끝낼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