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너와 함께 하는 내일(6)
장모님이 오시고 다른 포즈로 사진을 한 번 더 찍은 다음에 수진이는 드레스룸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는 시간을 가졌다.
나야 금방 갈아입고 나왔지만, 수진이는 드레스를 갈아입는 것과 동시에 머리 모양도 다시 세팅을 해야 해서 제법 시간이 걸린다.
나는 멍하니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처남의 옆에 가서 앉았다.
"여긴 뭐하러 왔어?"
"오지 않으면 엄마가 잔소리할까 봐요."
"현명하네."
"그죠?"
하지만 엄청 지루하긴 하네요~ 하면서 휴대폰을 끄적이는 처남.
단톡방에 모여있는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내며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연신 휴대폰이 울리고 있는 거보니 생각보다 시간 보내기는 수월해 보였다.
"이거 얼마나 걸려요?"
처남은 제법 긴 하품을 하며 그리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처남도 대학생이라 요즘은 좀 바쁜 시기일 텐데 좀 미안하긴 하다.
"음~ 한 4~5시간은 남았을 거 같은데."
"...레알?"
"어."
"허, 이건 뭐, 사진 그거 몇 장 찍는데 왤케 오래 걸리지?"
"그러게."
나도 모르겠다.
찍다 보니 그렇게 걸리던걸. 뭐.
처남은 휴대폰을 몇 번 더 만지작거리다가 신경이 쓰이는 점이 있었는지 아! 하며 소리를 냈다.
"그거 거절하셨다고 했는데 그 뭐더라? 모델?"
"아, 스튜디오에 세워두는 액자나 견본으로 쓰이는 모델을 하면 할인을 해준다고 하긴 했지."
"네. 그거 얼마나 할인받는 거였어요?"
"50만원."
"근데 왜 거절하셨어요?"
"수진이가 생각보다 섬세하니까 그렇지."
"섬세? 섬~세~? 아하하하하!"
처남은 매우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지만, 수진이는 처남 생각보다 엄청 섬세한 아이야.
스몰 웨딩을 준비하기 위해 예식장을 알아보고 예약을 한 이후 웨딩 촬영을 알아보다가 이 업체를 찾았다.
결혼에 앞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중에 당연히 이야기가 나오는 문제가 비용과 시간의 문제였다.
업체가 1개월이라도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서 곧바로 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비용은 결코 싸지 않았다.
웨딩 촬영 비용에는 웨딩드레스를 빌리는 비용도 포함되는 가격이었으니까.
웨딩 촬영과 드레스를 빌리는 세트로 해서 250만원의 돈이 들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결혼 촬영부터 예식장까지 다 소규모로 하는 건 굉장히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결혼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니까.
하지만 외모가 좋으면 어딜가든 득을 보는지 업체 사장은 수진이의 외모를 보며 찍는 사진 중에 몇 장을 견본에 싣는 모델이 되어주면 비용을 50만원 차감해준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제법 솔깃한 이야기였다.
수진이도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었다.
50만원이 땅을 파서 나오는 돈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내분이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 몇 살이냐고 이야기가 나와서 20살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자 사장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근처에서 일하던 몇 명이 흠칫하며 나와 수진이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
나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였는데 수진이는 동안이 아니고 실제로 너무 어렸던 거지.
몇몇 스텝들이 소곤거리며 뭔가 중얼거리는 게 보였다.
아마 우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겠지.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대화를 나누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느꼈던 건 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진이는 모델을 하는 걸 거절했다.
우리의 사진이 이곳에 남아서 모델로 쓰이는 순간 저 스텝 같은 사람들이 몇 명이고 나타나서 선생님이 도둑이니 뭐니 하며 이야기를 꺼낼 거라고.
그럼 스텝들은 우리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우리를 비웃을 거라며 싫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수진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여린 여자다.
처남은 수진이가 얼마나 성깔이 있는지 썰을 풀기 시작하며 그런 애가 아니라며 웃고 있다.
나는 처남의 입에서 나오는 수진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진이의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촤악.
커튼이 걷어지고 다시 수진이가 나타났다.
장모님은 옆에서 수진이가 예쁘다며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고 계셨다.
수진이가 진짜 미인이긴 미인이지.
이번에 입고 나온 드레스는 좀 전에 입었던 드레스보다 펑퍼짐하게 퍼지는 드레스였다.
화려한 레이스 장식이 아름다웠다.
"전에 입었던 드레스를 뭐라고 하죠? 그 몸에 달라붙던 옷."
"머메이드라고 부르지. 허리부터 골반, 다리라인을 강조해서 예쁜 옷이야."
"그걸 다 아세요?"
지금은 웹소설 망생이지만 한때는 순문충을 꿈꾸며 국문과에 진학한 학생이었다.
책의 장르도 가리지 않고 읽고 말이야.
나와 수진이의 두 번째 촬영이 시작되고 처남은 수진이의 사진을 한 장 찍더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장모님은 처남을 한번 노려보시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셨다.
원래 남자는 다 그런 겁니다. 장모님.
아까와는 다른 세트장에서 여러 각도와 소품으로 사진을 찍는다.
장모님은 환하게 웃으시면서 수진이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으셨다.
수진이는 그게 기분이 좋았는지 잔뜩 흥분해서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힘이 들어간 상태로 사진을 찍었다.
수진이가 장모님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고 했는데 정말로 그렇긴 했나 보다.
장모님이 웃으면서 우리 딸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쁘지? 라는 이야기를 하니 배시시 웃는다.
"엄마 닮아서 미인이지~"
"얘는, 아하하!"
수진이와 장모님은 쇼핑하러 나온 여자처럼 파워풀했다.
그에 반비례해서 처남은 점점 더 자세가 무너지고 있었다.
이제는 아예 반쯤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편해 보이네. 나도 얼른 쉬고 싶다.
그렇게 2번째 촬영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처남의 옆에 앉았다.
"대학은 다닐만하고?"
"어차피 인강이라서 편하죠. 뭐."
"그렇긴 하겠네."
처남은 카톡을 실컷 치다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왜?"
"친구들이 선생님 보고 도둑놈이라네요."
"응?"
처남은 본인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흔들었다.
"친구 몇 놈들이 수진이가 엄청 미인이라고 소개 좀 해달라고 그랬었거든요. 저도 얼른 데려가아아아~ 이러고 놀았고요. 뭐, 그놈들이랑 어울리기엔 수진이가 아주 쪼~금 아까워서 소개해주진 않았는데 요즘 수진이 뭐하냐고 카톡 보낸 녀석이 있어서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을 올렸더니 거품을 무네요. 아하하! 선생님 보고 도둑놈이래요."
도둑놈이기는 하지.
근데 처남. 수진이 보고 매번 성격이 지랄 났다느니 복어니 뭐니 장난을 치는데 친구들 상대로는 아깝다고 생각한 거냐?
츤데레 같은 녀석이네.
처남은 다시 늘어져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나도 휴대폰을 꺼내서 웹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촤악.
다시 한 번 커튼이 걷어지며 수진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첫번째로 입었던 웨딩드레스보다 밑단이 조금 넓게 퍼진 걸 보아하니 시스 라인으로 보인다.
키가 그리 큰 편은 아니어도 몸매가 좋아서 잘 어울린다.
머리는 가볍게 컬을 넣어서 목덜미가 보이도록 오른쪽 쇄골 쪽으로 가지런히 모아서 늘어뜨리고 있었다.
"저건 뭐에요?"
"시스 라인."
"이게 돌싱남의 저력인가..."
...그래. 사실은 독서보단 돌싱남이 원인이긴 하지.
연애 경험도 없는 남자가 결혼을 하려 하니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을 알아보고 준비하다가 알게 된 지식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수진이와 사진을 찍었다.
이전과 같이 무난하게 진행되는 사진촬영이 끝나고 수진이는 마지막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이번에는 미니스커트 타입의 웨딩드레스였다.
수진이의 나잇대에 가장 어울리는 드레스는 사실 이게 아니었을까?
깜찍함과 사랑스러움 동시에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여러 포즈를 잡으며 사진을 찍은 다음엔 한복으로 갈아입는 상태로 촬영이 시작됐다.
이미 6시를 넘긴 시간이라 다들 제법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래도 예정보단 조금 일찍 끝날 것 같아서 다행이다.
수진이의 한복 차림을 보고 있으려니 부모님이 생각나네.
부천에서 여기까지 올라오신다고 하길래 피곤한데 그러지 말라고 집에 계시라고 했는데 나중에 사진 찍은 파일도 보내드려야겠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세요?"
"부모님이 수진이 사진을 보고 싶어 하시겠다 싶어서."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오시라고 하긴 너무 미안했어요."
"그렇긴 하지."
"후우. 이제 한 벌만 더 입으면 끝나네요. 엄청 힘들다..."
"그래서 가져온 옷이 뭐야? 빨리 말해줘."
"후후후. 잠깐만 기다려봐요."
수진이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사진을 찍으면서도 계속 키득거렸다.
장모님도 그걸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다.
도대체 뭘 가져왔길래 이러는 걸까?
그렇게 한복을 입은 상태로 촬영도 끝나고 수진이는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처남 고생이 많네."
"와... 진짜 뒤지겠네."
"자."
나는 10만원을 꺼내 처남의 손에 얹어줬다.
"혀, 형님?"
"올 때 처남이 운전했다며? 잘했어."
"뭐 이런 걸 다..."
처남은 그런 말을 하는 주제에 거절 한번 하지 않고 싱글벙글하며 지갑에 돈을 집어넣었다.
솔직해서 좋다.
그런데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처남은 앞으로 1년 후에 맞이할 우리 아이에게 다 반납해야 한다니까.
내 친구 중에 현우라고 말실수가 잦은 놈이 있는데 누나만 3명이라서 어렸을 땐 용돈을 받고 컸다가 지금은 조카들만 5명이라서 매번 돈이 털리는 녀석이 있어.
처남은 23살이니까 결혼까지 최소 10년은 남았고 내년에 우리 애가 태어나면 5살부터 용돈을 받아도 앞으로 5년은 우리 아이한테 용돈을 줘야 하는 처진데 안타깝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처남은 감격한 눈빛으로 역시 형님은 멋쟁이라며 치켜세우고 있다.
처남과 그리 놀고 있으려니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수진이가 나타났다.
"아휴~ 이 화상아!"
장모님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마를 손바닥으로 짚으며 괴로워하고 계셨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어때요. 선생님?"
수진이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면서 팔에 팔짱을 껴오는데 머리가 딱딱 아팠다.
그래. 나와 수진이라고 하면 딱 이런 느낌이긴 하지.
처음 만났을 때도이랬으니까.
스튜디오의 스텝들도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죄를 지은 느낌이 팍팍 들기 시작한다.
수진이는 내가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더니 장난이 성공한 아이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촬영으로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런 피곤이 전부 날아간 표정이었다.
아주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다.
잠시 굳어있던 스텝들은 나의 눈치를 살피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시선을 보내왔다.
나는 그냥 이대로 진행하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우리 사진하면 그거죠 그거?"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진의 포즈까지 오더를 했다.
하나는 나와 수진이가 등지고 앉아있는 모습과 하나는 마주 보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웃는 사진.
그래. 우리의 지금이 있게 해준 것은 그 카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카페가 사라졌어도 우리의 추억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지.
그립다.
등지고 찍은 사진과 마주 보고 앉은 사진을 바라본다.
배경은 다르지만,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당시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등지고 앉아서 커피를 마셨었지.
그러다가 관계가 진전되며 서로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우리의 관계가 변했음을 상징하는 듯한 사진이다.
다른 사진은 모르겠지만, 이 2장의 사진만큼은 웨딩 앨범에 넣어야겠다.
후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기겁을 할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교복 입은 여자애의 사진이 있으면 놀랄지도 모르지.
그래도 우리의 관계가 변했음을 상징하는 듯해서 왠지 포기할 순 없었다.
수진이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를 보며 싱긋 웃고 있다.
"잘했죠?"
"그래. 잘했어."
웃으면서 머리를 기대오는 수진이를 살짝 안아줬다.
그래. 나는 여고생과 만나서 결혼하는 나쁜 남자다.
그래도... 욕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이라면 어쩔 수 없는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