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너와 함께 하는 내일(4)
4월이 시작되고 오전에는 준범이에게서 주식을 배우며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소설을 일일연재로 약 30편의 이야기를 썼다.
선작수는 간신히 천명을 넘었다.
내가 전에 썼던 수진이와 나의 연애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인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를 읽고 유입된 사람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니 원래라면 더 처참한 결과물이 될 뻔 했다.
그래도 읽으면서 쌍욕을 하는 독자는 없었다.
애초에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만 보는 그런 장르니까 말이다.
그래도 딱딱하게 검술로만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이세계를 방랑하는 이야기기에 마법도 나오고 여행도 하는 내용이라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다.
내가 소설을 쓰고 있으려니 맞은 편에 앉아서 인강을 보던 수진이와 눈이 마주쳤다.
싱긋.
한번 작게 웃더니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향한다.
인상을 찌푸리며 인강을 보고 있다.
아무래도 내용이 너무 지루해서 집중이 잘 안 되나 보다.
하긴 국어국문학과의 수업 내용이 엄청 지루하긴 하지.
국어 성적이 좋아서 오는 사람도 있고 책 읽는 거 좋아해서 오는 사람도 있고 나름 순문충이라고 오는 사람도 있는데 대부분 첫 강의를 들으면 멘탈이 나간다.
기대했던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으니까.
내가 대학교를 다닌 건 이제 거의 20년 전이다.
나는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는 다른 깊이 있는 학문으로서의 수업을 들으며 문장력을 키우고 논리적인 이야기를 배우겠거니 하고 가봤더니 실상은 완전 허탕이었지.
고전문학이나 현대 문학을 가르쳐주는 강의에선 오히려 놀랐다.
수준이 너무 낮아서 이런 수업을 들으려고 대학을 왔나 싶었으니까.
뭐 요즘은 좀 바뀌었을 수도 있다.
20년이나 세월이 지났으면 좀 더 깊이 있는 학문이 되었겠지.
뭐 달라져 봤자 국어학이나 조금 달라졌으려나 모르겠다.
애초에 학원에서도 국어국문학과를 추천하진 않으니까.
국어국문학과를 가는 사람은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거나 취직의 걱정이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국어국문학과는 취직이 잘 안 되니까.
수진이는 아예 입술을 삐죽 내밀고 윗입술에 샤프를 올려놓고 있다.
수진이도 이런 모습을 보이는구나 싶어 작게 웃었더니 수진이도 덜 달아 웃었다.
"인강이라도 수업에 집중해야지."
"어차피 직업도 있는데 성적 나쁘다고 뭐 큰일이라도 나요?"
"그렇긴 하지."
"그리고 국문과는 취직도 안 된다구요?"
본인도 잘 알고 있었구먼.
수진이는 턱을 괴며 괜히 대학을 들어갔다며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초중고 12년간 고생했던 반동을 겪는 모습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수진이의 앞에 커피를 한잔 타서 놓아줬다.
"고마워요."
수진이는 커피를 마시며 작게 인사를 건네왔다.
좀 안타깝기는 했다.
수진이는 애초에 대학교에 들어가지 않아도 됐다.
이미 직업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굳이 안 가도 되지.
하지만 장모님도 진학을 바라셨고 본인도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대학을 목표로 해서 노력을 해왔다.
그렇게 대학에 붙어서 고등학교 생활과는 다른 재미난 캠퍼스 라이프가 되리라 생각했더니 집에서 집중도 잘 되지 않는 인강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상당히 답답하겠지.
실강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MT도 OT도 없는 신입생에게 같이 어울릴만한 친구를 사귀기란 제법 난이도가 있는 일이다.
아무래도 수진이의 4년간의 캠퍼스 생활은 고등학교 생활의 연장선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왜 그리 인상을 쓰고 계세요? 이야기가 잘 안 써져요?"
수진이는 커피를 마시며 나의 안색을 살폈다.
아무래도 수진이의 조금은 불쌍한 캠퍼스 라이프를 상상하고 있으려니 표정이 나빠진 모양이다.
나는 미간을 손으로 누르며 인상을 폈다.
"수진이의 대학생활을 상상하고 있었지."
"...저 혼밥하는거 상상했죠?"
"어."
"..."
수진이는 한숨을 쉬며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본인도 누군가와 웃으면서 밥을 먹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수진아."
"네."
"점심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학교에 찾아갈 테니 같이 밥이나 먹자."
"네?"
"나랑 같이 먹자고."
"..."
"나도 점심 혼자 먹으면 외로워서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수진이는 오늘 하루 중에 가장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
"약속이에요?"
"그래. 어차피 소설은 카페에서도 쓸 수 있는데 뭘. 카페에서 기다릴게."
"고마워요. 선생님."
고맙긴 뭘. 나도 너랑 같이 밥을 먹고 싶을 뿐이야.
수진이는 지루한 강의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고 나는 팔리지 않을 소설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수진이는 강의가 끝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의 옆자리로 앉아 나의 팔에 기대어왔다.
그리고는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쓰셨어요?"
"이제 퇴고만 하면 돼."
"다 되면 좀 보여주세요."
"그래."
내가 쓴 문장의 퇴고를 하고 있으려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수진아."
"네."
"너 차기작은 언제 쓸 거야?"
"차기작이요? 음~ 글쎄요... 떠오르는 게 있으면?"
우리가 같은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했던 그 카페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카페는 결국 문을 닫아버렸다.
메이커도 아닌 카페가 이런 불황을 계속해서 겪으니 결국은 버티지 못한 거지.
오랜만에 한번 찾아가 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차를 끌고 찾아갔더니 임대문의라고 적힌 A4용지가 붙어 있었다.
그럴 거면 같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두는 거였는데.
아무튼, 그 카페에서 나와 수진이는 서로 소설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굳이 서로의 다른 취미에 맞춰줄 필요 없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자아내며 시간을 보내던 그 시간.
그 시간이 나에겐 가장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니 수진이가 빨리 신작을 써줬으면 싶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할 거야?"
"이번에도 무난하게 판타지로 하겠죠?"
"그래?"
"네. 좀 생각해둔 게 있긴 한 데 요즘 바쁘기도 해서 좀 정리되면 써보려고요."
"기다릴게요. 월억킥 선생님."
"선생님도 제 소설이 많이 기다려져요?"
"그것도 있고 같이 소설을 쓰는 시간이 좋아서."
"아~"
수진이도 내가 카페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모양이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카페가 망해서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을 좀 많이 찍어둘 걸 그랬어요."
"나랑 같은 생각 했네."
"역시 부부라서 닮는 건가~?"
수진이는 키득 이며 내 옆구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 소설 꾸준히 선작이 오르고 있기는 한데 유료 연재하면 구매수는 얼마 안 나올 거 같아요. 선생님도 아시죠?"
수진이는 내가 퇴고를 끝낸 소설을 읽어보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기성 작가의 눈으로 봐도 역시 그런 모양이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알아."
"그럼 연중하실 거에요?"
"아니. 끝까지 쓸려고."
"구매수가 안 나와도?"
"끝까지 보겠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도 끝까지 써보려고."
"역시 반쯤 취미니 결과에 연연하지 않나 보네요? 전업투자자 김준수 씨?"
수진이는 키득 이며 그리 말해왔다.
시드머니 1천으로 시작한 전업투자는 제법 순조로운 양상을 띠고 있었다.
아직 유료연재를 하지 않은 소설보단 더 수익이 나오고 있다.
"그래도 독자들은 좋아하지 않을까? 책임감 있게 끝까지 쓴다고."
"싫어하진 않겠죠. 저도 선생님이 쓰신 소설 재밌게 보고 있어요."
"그래?"
"네. 이게 나작소를 보는 독자의 기분이겠죠?"
그래도 빈말이 아니고 정말로 재밌게 봐주고 있으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
웹소설은 참 어려운 녀석이다.
딱 봤을 때 이게 팔리나 싶은 문장력을 갖춘 소설이 엄청나게 잘 팔리고 이게 왜 안 뜨지? 싶은 문장력을 갖춘 소설이 씹 하꼬로 사는 경우도 있고 말이지.
"그나저나 이제 중간고사도 코앞인데 이렇게 떠들고 있어도 돼?"
"아직 3주 남았어요."
"과제는 많이 있겠지."
"윽!"
수진이는 인상을 쓰며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인강을 하다 보니 교수들이 생각보다 많은 양의 과제를 낸 모양이다.
교수들은 별 생각 없이 이 정도면 1주일 안으로 다 하겠지 하고 내겠지만, 학생들은 강의를 하나만 듣는 게 아니란 말이지.
수진이는 애써 잊고 있었는데 그걸 왜 떠올리게 만드느냐는 듯이 인상을 쓰며 노려봤다.
"서둘러서 끝내야 할걸. 우리 웨딩 촬영도 이번 달 안에는 끝내야 해."
"아..."
수진이는 웨딩 촬영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제 결혼도 1달하고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았을 뿐이다.
청첩장을 준비하고 돌려야 하니 안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어야 하고 그러면 적어도 1달 전에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면 2달 정도 전에 하는 게 좋지만, 수진이는 최대한 예쁘게 찍어야 한다고 이것저것 하는 도중이라 이번 달에 찍게 되었다.
평소보다 운동도 늘리고 피부케어도 받으러 다니는 등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은 모양이다.
그냥 혼인신고서만 접수하고 끝낸다니 뭐니 했는데 결국 결혼식이라고 하니 알아서 준비하는 모습이 안 했으면 섭섭할 뻔 했다.
"웨딩 촬영이라고 들으니까 진짜 코앞인거 같아요."
"코앞이지. 달라지는 건 없을 거 같지만."
"달라질걸요?"
"그래?"
수진이는 수줍게 웃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 애도 낳아야 하니까요."
"...그러네."
그래.
결혼식을 하고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나면 우린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
지금은 애가 생기면 결혼식과 신혼여행에 차질이 생길까 봐 피임을 하고 있지만, 결혼식을 올리면 그런 문제가 사라진다.
이번 해에 수진이가 아이를 가진다면 내년에는 태어나겠지.
내년이면 내 나이도 40살이다. 제법 늦게 낳은 편이지.
그래도 수진이는 고작 21살이 되는 거라 많이 미안하긴 하다.
수진이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내 코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른다.
"그러지 마요. 저도 싫으면 싫다고 말하니까."
"고마워."
"또 그런다."
"사랑해."
"저두요."
수진이는 결국 과제도 던져버리고 나를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귀여운 녀석.
나는 결국 수진이의 과제를 함께 해주는 처지가 되었다.
사실은 이걸 노린 걸지도 모르겠다. 수진이는 제법 영악한 녀석이니까.
수진이는 시험공부와 과제를 하고 나는 주식공부와 웹소설 연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수진이의 중간고사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시기.
우리는 웨딩 촬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