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너와 함께 하는 내일(3)
"와, 집 개 크네. 돈 좀 썼나 보다?"
"그래. 고맙다. 니 덕이 절반이야."
"그래 이 새끼야. 평생 형님으로 모시고 살아."
"지랄하네 미친놈이."
준범이는 본인이 말했던 데로 집들이를 하러 왔다.
"옛다."
준범이가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바닥에 툭 하고 내려놨다.
집들이 선물하면 두루마리 휴지긴 하지.
"한 40평대쯤 되나?"
"잘 아네?"
"내가 지금 사는 곳이 30평대니까."
준범이는 겉옷을 벗고는 천천히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어쨌어?"
"너 온다고 해서 마트 갔어."
"마트?"
"어, 운전면허 연습도 겸해서 갔다 온다고 혼자 나갔어."
"이야... 시발 존나 대단하네. 여고생 아니 이제 여대생인가? 20살에 운전해서 마트 갔다 오는 여대생이라니 존나 신기하네."
준범이는 이상한 감탄사를 연신 내뱉으며 떠들다가 소파에 앉아서 TV를 켰다.
"잘 살고는 있냐?"
"나? 존나 잘살지. 난 집에서 안 나가니까 전염병이니 뭐니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자발적 격리 훌륭하십니다. 선생님."
준범이는 TV를 쳐다보다가 나를 올려다보곤 싱긋 웃었다.
"백수 새끼한테 들을 만은 아닙니다. 김백수 선생님."
준범이는 이죽거리며 그런 말을 던져왔다.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지금의 나는 정말로 백수니까.
"그래서 주식 좀 알려달라니까."
"그냥 거 유튭이니 뭐니 보고 적당히 따라 해서 적당히 벌어라."
준범이는 귀찮은 듯이 손을 흔들며 그리 말해왔다.
"너 저번에 그거 보고 주식하는 사람들은 자본시장에 유동성을 가져와 주는 훌륭하신 분들이라고 하지 않았냐? 먹이라고."
"그래. 너 훌륭하신 분이나 하라고."
"아, 새끼 존나게 빼네."
준범이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다가 아직까지 서 있는 나를 제법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야. 솔직히 지인한테 주식 배우는 게 남한테 배우는 것보다는 낫다. 근데 하... 솔직히 월급으로 먹고살기에는 물가도 집값도 너무 많이 오르기는 했지. 지금이라도 주식을 배워보겠다고 하는 건 나쁘지 않은 판단이긴 하다."
준범이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조금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주식이란 게 남한테 배우면 참 지랄이야. 3명의 인간을 불러놓고 가르쳐도 1명은 돈을 버는데 2명은 못 벌고 오히려 잃어."
"왜?"
"욕심이라던가 성격이라던가 여러 이유는 있지. 가장 흔한 패턴이 손절할 때는 대범하게 버티면서 올라갈 타이밍엔 조금 먹고 팔아버려서 손실은 극대화하고 이익은 최소화하는 패턴."
준범이는 본인이 주식을 하면서 겪었던 썰을 풀기 시작했다.
주식이 5년 차에 접어들며 단타도 스윙도 중장기 투자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아는 동생이 주식에 대해서 알려달라는 이야기를 해 왔다고 한다.
몇 번이고 거절을 했지만, 월급만으로 먹고살기에 힘들다며 자꾸 신세 한탄을 해서 결국 알려주게 되었단다.
처음에는 스윙이나 중장기로 잡기에 좋은 종목들을 찾는 법 등 직업이 있는 상태에서 하기에 좋은 매매법을 알려줬다고 한다.
그러다가 준범이가 단타를 하는 모습을 봤는지 그 비법도 알려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거절하려다가도 나름 리딩을 잘 따라왔기에 그러려니 하고 알려주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동생이 직장을 그만뒀다고 한다.
"5천만원 모아뒀던 게 1년 만에 주식으로 1억 5천이 되니까 굳이 회사에 다닐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그럴만하네."
"근데 진짜 순식간에 무너지더라."
그 동생은 직장을 그만두고 3개월 만에 1억5천에서 2천만원까지 잃어 오히려 원금까지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
전업투자를 하는 사람들과 직장에 다니며 투자를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HTS를 보는 시간이 달라서 유혹에 쉽게 빠진다고 한다.
직장에 다니면 바쁘니까 HTS나 MTS를 켜볼 시간이 없어서 잦은 매매를 하지 않게 되지만 전업투자를 하는 순간부터는 매일 아침 켜놓고 있으려니 그 순간부턴 굉장히 유혹에 약해진다는 것이다.
"아침 9시부터 9시 반까지가 가장 변동성이 커서 단타치긴 좋거든. 중장기나 스윙을 빼면 단타는 이때만 먹고 빠지는 게 맘 편해. 근데 한번 돈을 만지고 나면 사람이 이성을 잃는지 좀만 더 하면 따볼 만한데 하고 또 들어가는 거지. 근데 또 차트를 그리고 있는 거 보면 종목들이 그럴싸하거든. 근데 들어가면 쫙 빠지는 거야."
그 순간부터는 패닉이다.
잃은 돈을 복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더 잦은 매매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십중팔구는 잃는다. 침착하게 오를 종목인지 판단하고 사는 것과 잃어서 이성을 잃은 상태로 매매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
평소에 매매하던 방식이랑 안 맞는 부분이 있어도 뇌내에서 멋대로 보정작업이 들어가서 반드시 갈 거라고 헛된 믿음을 갖고 그렇게 잃다가 한 방을 노려서 중장기로 가져가겠다고 샀던 종목을 팔아버리고 단타 금액으로 사용한단다.
악질적인 건 그렇게 계속 잃으면 그냥 그만두기라도 하면 되는데 어떨 땐 또 따고 어떨 땐 또 잃으니 문제라고 한다.
"계속 잃기라도 하면 난 재능이 없구나 하고 떠나면 그만인데 한번은 1억이 되고 다시 7천이 되고 다시 1억1천이 되고 6천이 되고 이러면 사람이 돌아. 한 번만! 딱 한 번만! 이러다가 어느새 매매할 때 이것만은 지키자며 세워뒀던 룰도 다 좆까라 하는 거지."
"그래서?"
"그렇게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결국은 우리나라 주식판은 다 도박장이라고 말하고는 관뒀다. 나한테 좆지랄을 떨어서 연락도 끊어졌고."
"..."
"이런 새끼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서 별로 안 땡긴다. 불알친구마저 그 지랄나면 존나 좆 같을 거 같아서."
"그럼 그냥 돈 주고 배울까?"
"내가 여기서 너 안 가르쳐준다고 하면 돈 주고 배울 거지?"
"어."
"야, 주식을 잘하면 굳이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계좌에 있는 돈만 30억이 좀 넘는다. 이걸로 1년에 10퍼만 먹어도 3억이야. 그리고 주식은 돈이 돈을 버는 거고. 다음 해의 난 10퍼만 먹으면 3억3천을 버는 거지."
"그렇지."
주식은 복리투자의 개념이니까.
"그럼 굳이 투자 자문을 할 필요가 있겠냐? 1년에 10퍼만 벌어도 30억 있으면 3억을 버는데 굳이 한 달에 100만원씩 코딱지만 한 금액을 받으면서 알려줄까? 개소리지. 차라리 종목 한 개 더 찾는 게 돈 더 벌어. 근데 그렇게 안 하고 사람을 모으는 건 자신이 없다는 거고."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그리고 중장기는 애초에 건전한 회사의 주식을 사는 거라 논외로 치고 단타나 스윙은 제로섬이야. 누군가는 저점에 사서 고점에 팔면 누군가는 고점에 사서 저점에 팔아야 한다고. 그 새끼들이 장기적으론 경쟁자가 될 인간들을 만들까?"
준범이는 혀를 차며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기법을 알려주긴 하더라도 핵심적인 것들은 쏙 빼놓고 알려준다고.
그럼 배운 대로 매매를 하더라도 꼭 어딘가에서 어긋나는 부분이 나올 거고 그러다 보면 결국 잃는 방향으로 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단타만 안치면 된다는 거 아니냐?"
"니가 백수 새끼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 아니냐. 백수 새끼들은 꼭 장기투자한다고 해놓고서 지가 산 종목은 안 가는데 딴 놈들이 산 건 뭐 상한가를 갔니 1달에 2배가 올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눈이 돌아가서 꼭 단타를 했다가 좆망을 한다고."
"단타 안 해 임마. 백수 안 하고 작가 할 거니까."
"으휴 시발. 그래. 일단 알려는 준다. 매일 오전 8시 반까지 내 집으로 출근해라."
"고마워."
"지랄."
준범이는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목이 마르다며 물이나 가져다 달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결국, 가르쳐준다는거 아닌가? 혓바닥이 긴 새끼구만.
고맙다.
이걸로 하꼬 작가라도 최소한의 수익은 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고 한 5분쯤 지났을 무렵 수진이가 돌아왔다.
"밖에 많이 추웠지?"
"네. 얍!"
수진이가 차가워진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온다.
정신이 번쩍들 정도로 차가웠다.
"아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야 제수씨."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너도."
수진이는 준범이랑 인사를 나누면서도 내 얼굴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준범이는 나와 수진이를 힐끔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TV를 바라봤다.
바퀴벌레 커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뭐 어쩌나.
동거를 시작한 커플은 다들 이런 느낌이 아닐까.
"무슨 이야기 하고 계셨어요?"
"주식 이야기."
"...선생님, 웹소설 작가 하는 거 아니었어요?"
"부업이지. 요즘은 다들 주식하잖아?"
"적당히 하세요."
"그래그래."
수진이는 사온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으며 정리를 하려고 했기에 실내복으로 갈아입으라고 방으로 들여보낸 후 내가 대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의외네."
"뭐가?"
"주식 이야기하면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잖아."
"요즘은 대학생들도 주식한다더라."
"많이 바뀌긴 했네. 얼마나 집값을 좆창냈으면 좆팔육세대들이 주식은 도박이라고 그렇게 세뇌 교육을 했는데도 젊은 애들이 주식을 다하냐."
준범이는 그렇게 신나게 정부 욕을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다.
이전에는 우파정권 정치인들을 그리 욕하던 녀석이 이제는 진보정권 정치인들을 이리 욕하고 있으니.
"너 이전에는 보수 정치인 욕하지 않았냐?"
"했지."
"근데 지금은 왜 그러냐?"
"정치인들은 다 똑같이 해먹으니까. 그럼 많이 해먹어도 국가가 발전이라도 하는 대통령이 낫지. 지금 이 꼬라지가 뭐냐?"
준범이는 TV를 보며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요즘 TV에서 뉴스가 나온다 하면 다 정치 이야기긴 하더라.
관심이 없던 사람도 저절로 욕하는 상황이긴 하다.
"아저씨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옷을 갈아입은 수진이가 머리를 묶으며 그리 물어왔다.
"그냥 조금 정성 들인 걸로 해줘."
"그게 뭐예요? 후후, 친구라서 그런지 닮으셨네."
"내가? 쟤랑? 제수씨, 농담이 좀 심하네?"
"최고의 칭찬인데요?"
"하,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구만."
허탈한 표정으로 애꿎은 리모컨만 괴롭히는 준범이 녀석.
신혼집에 집들이 왔으면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지.
나는 구시렁거리는 준범이 앞에 다과를 두고 수진이와 같이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준범이가 주식을 가르쳐준다고 하니 다행이다.
소설로 돈을 벌지 못해도 다른 수익처가 생기는 일이니까.
1월부터 3월 말인 지금까지 어떤 소설을 쓸까 많이 고민했다.
생각이 나는 대로 프롤로그를 쓰고 플롯을 세웠다가 퇴고도 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좀처럼 쓰면서 재밌다고 느낄만한 이야기가 써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수진이는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써보라고 했다.
양판소가 무난하게 써진다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기는 했다.
결국, 내가 쓰게 된 이야기는 회귀도 빙의도 환생도 없는 판타지였다.
기사 가문의 삼남으로 태어나 7살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시동 일을 하다가 10살이 넘어 아버지가 섬기는 영주의 밑에서 일을 하며 기본적인 산수법이나 군사교육을 받으며 기사의 길을 걷던 주인공.
그대로 무난하게 기사가 되리라 생각했으나 국왕이 죽어 후계자를 둘러싼 내분이 일어나고 하필 영주가 밀던 왕자가 전쟁에서 패배하여 숙청당한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도망치지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벼랑에서 떨어졌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본 적 없는 세계에 떨어지게 되어 이세계를 방랑하는 스토리다.
15편까지 쓰고 홍보도 했는데 유료화로 넘어가면 300명도 보지 않을 소설이다.
요즘 복수니 뭐니 하는 소설은 별로 좋다고 볼 사람이 없으니까.
괜찮은 필력을 갖추고 트렌드에 맞으며 읽으면서 피로가 쌓이지 않는 소설이 잘 팔리는 소설이다.
하지만 입맛에 맞는 사람들은 좋다고 읽을 그럴 소설이다.
웹소설 작가로서는 빵점짜리 작품이다.
팔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다른 돈벌이가 있다면 성적에 목을 매지 않아도 좋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