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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화 〉너와 함께 하는 내일(1) (150/301)



〈 150화 〉너와 함께 하는 내일(1)



"이사가 이렇게 힘든 거였네요."


"짐이 적은 게 편할 때가 있긴 하지?"

"그러게요..."

제법 복잡한 절차를 끝내고 서로 이사를 준비했다.


애초부터 짐이 적었던 나와 옷가지나 필요한 물품만 챙기면 되는 수진이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사에 비하면 굉장히 쉬운 편일 거다.


"밥은 그냥 시켜먹죠."


"그러자."

쉽든 어렵든 이사는 피곤한 일이었다.


나와 수진이는 체력이 고갈되어 소파에 기대 꾸벅꾸벅 졸기까지 하고 있다.


그래도 드디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겠구나.

"설마 졸업식도 스킵할 줄은 몰랐네요."

"대학교도 그러던데 고등학교도 그러겠지. 애초에 사진 찍을 사람도 없잖아?"


"맞는 말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아프지도 않으면서."

연일 확진자가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대부분의 학교가 졸업식마저 생략했다.

수진이는 애초에 같이 사진을 찍을 사람도 없었으니 오히려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졸업식 사진은 나와 장모님, 처남이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듯 찍은 게 전부가 되었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으니 대학교에서라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사진도 많이 찍고 추억도 만들고 그랬으면 좋겠다.


"이러다가 대학교 1학기도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는 거 아니에요?"


"아마 그렇겠지?"

"...전 친구를  만드는 운명인가 보네요."


"2학기부터라도 힘내자."

2020년도 대학교는 2학기 모두 인터넷 강의로 대체했었다.


현재 확진자가 잡히지 않고 있는데 21년에 들어왔다고 바뀌지는 않겠지.


MT도 OT도 못 가서 친구를 만들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인싸들이야 아무하고나 쉽게 친해지지만, 인간관계에 소극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기회라도 없으면 사람과 친분을 쌓지도 못한다.


수진이는 내성적이거나 인간관계에 소극적인 사람은 아닌  같은데 홀로 지낸 기간이 너무 길어서 어떨지 모르겠다.


"점심 피자로 시켜도 돼요?"

"맘대로 해."

"네~"


수진이는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점심 먹고 뭐  거 남았나요?"


"글쎄? 넌 수강 신청하는 거 알아봐야 하고 나는 딱히 없지."


백수니까.


"으, 수강신청 하는 거 꽤 복잡하네요."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일단 19학점이 최대로 들을  있는 학점이라네. 찾아보니까 2학점짜리 강의는  개 없어서 전쟁이라는 것 같고 핵심교양은 2과목을 들어야 졸업을  수 있다니까 가능하면 이것도 신경 써야 하고. 17학점을 채우고 2학점짜리를 1개 찾아서 넣던지 1학점짜리를 찾아보든지 해야겠어. 최대한 많이 들어서 4학년 때 여유로운 게 낫지."


수진이는 내가 들려주는 말을 들으며 어떤 과목들을 수강해야 하는지 체크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짜준 시간표에 따라 공부하다가 본인이 직접 수강과목을 골라야 하니 조금 어색하긴 하겠지.


그래도 신경을 써서 하나하나 강의평가를 뒤져보며 1순위, 2순위로 시간표를 짜기 시작한다.

"후우~"

한참 동안 컴퓨터와 눈싸움을 하고 있던 수진이가 어깨를 두드리며 한숨을 내쉰다.


어찌어찌 시간표를 다 짠 모양이다.

"선생님.  이후에  하실 거 없죠?"
"없지."


"그럼 저 운전연습 좀 하게 밖에 나가요."

"그러든지."


수진이는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고 1주일의 시간을 거쳐 면허증을 땄다.


하자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하는 성격이라 시원시원하게 따버렸다.


그래도 아직 도로에서 주행하는 것은 불안한지 가끔 운전연습을 하러 나가자고 졸라온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땐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할 정도였다.


차라리 매일 학교로 데려다주고 싶은 지경이었는데 1학기가 인터넷 강의니 1학기가 끝날 때까진 익숙해지겠지.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


점심을 먹고 수강신청 과목들을 살펴본 이후 수진이의 요청에 따라 도로로 나와 운전연습을 하게 되었다.


 근처를 한 바퀴 돌면서 근처에 뭐가 있는지 살펴보고  학교로 가는 도로를 주행하며 길을 익히는 중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세우는 것까지 생각보다 괜찮은 운전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젠 왜 선생님이 운전할 때 앞에만 보고 하는지 알겠어요."


신호대기 중인 상황임에도 수진이는 온 정신을 전방에 향한 상태였다.


두 손은 핸들을 꽉 붙잡은 상태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운동신경이 좋아서인지 생각보다 금방 익숙해지는  같다.


"여기서 좌회전 신호 받고 코너를 돌면 우리 집 앞이야."

"네."

수진이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도로 위의 점선에 따라 차를 몰았다.

약 30분 정도 시내를 천천히 돌았는데 그렇게  문제는 없어 보였다.


조금만 더 익숙해지면 혼자서도  다닐 것 같다.


"차는 어떤 거로 살지 고민은 해봤고?"

"잘 모르겠어요. 옵션이 뭘 말하는지도 모르겠고 가격 차이가 왜 이리 큰지도 모르겠고."


"그럼  고민을 해보던가. 돈이 있으니 외제 차도 괜찮고."

"외제 차랑 국산 차랑 차이가 커요?"


수진이는 신호가 바뀜에 따라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외제 차랑 국산 차의 차이라고 하면 뭐 많겠지.


한국에서 사면 외제 차를 사든 국산 차를 사든 전부 호구 잡힌다고 보면 된다.

외제 차는 유지관리비가 많이 들어가는 편이고 국산 차는 외국에서 1+1 수준의 떨이 수준으로 인식이 나쁘다.


내수용과 외수용에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도 알 사람은 아는 이야기고.


"그냥  많으면 외제 차가 편해."

"왜요?"


"다른 차들이 알아서 방어운전 해주거든."

비싼 차가 근처에 있으면 알아서 방어운전을 해준다.

그것만으로 수진이는 외제 차를 타줬으면 한다.

"엄청나게 눈에 띄겠네요. 진짜로 친구  만들  같은데."

"아, 그것도 그런가?"


수진이는 기본적으로 옷을 백화점에서 사서 입는다.

이사를 하는데 옷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서 옷을 보다가 명품가방이나 주얼리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옷은 백화점에서 사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수진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말을 했다.

기본적으로 백화점엔 유행인 옷을 전시하고 있을 것이고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이랑 비슷한 계열로 골라서 사면 크게 뒤처지지도 않아서 옷을 사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돈이 있는데 굳이 가성비를 찾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간을 쓰는 것보다 돈을 더 주더라도 백화점 옷을 사 입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아무튼, 옷이란 옷은 전부 백화점에서 사 입는 수진이다.

왼손에는 결혼반지를 끼고 옷은 백화점에서 파는 좋은 옷들을 입고 다니는데 차까지 외제 차를 끌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또래의 친구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상상도 못 하겠다.


내가 여자라도 수진이 같은 애랑은 친구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


"친구가 없어도 나는 언제나 옆에 있어 줄게."


"네네 고맙습니다~"


수진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지만, 문제는 없었다.


하다 보면 좀 더 빨라지고 익숙해지겠지.


"후우~"

수진이는 길게 한숨을 토해내고 내 옆으로 다가와 팔짱을 꼈다.


"고생했어. 그래도 이젠 제법  하는  같은데?"


"그렇죠? 이젠 선생님이 피곤하시면 제가 대신 운전해 드릴게요."

수진이는 작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왔다.

아무래도 장거리 운전을 할  피곤한 기색을 보이던 게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런 작은 배려가 고맙게 느껴진다.


그래, 이게 결혼이지.

수진이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 외투를 벗고 보일러를 켰다.

외출복에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TV를 켜고 소파에 앉았다.


시시덕거리며 뭐가 그리 재밌는지 본인들끼리 웃고 떠드는 연예인들을 보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TV 안 사실 줄 알았는데 사셨네요?"

"아, 뭐 별건 아니고."

수진이의 집에 갔을 때 TV를 켜놓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 꽤 좋은 광경으로 보였으니까 그리 해보고 싶었다.


너무 적막한 것도 별로인 것 같고 왠지 집에서 TV를 빼버리면 어렸을 때의 나와 상황이 겹치는 것 같기도 했고.


수진이는 TV의 채널을 돌리다가 이전에 유행했던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를 틀었다.


"이거 재밌다고 하던데 전 안 봤거든요. 봐도 되죠?"


"어차피 난 TV 틀어라도 뭐가 뭔지 몰라.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봐."

"선생님은  모르시네."

내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웹소설이나 보려고 하니 수진이는 내게서 폰을 뺏어 들고 손가락을 흔들고 있었다.


"부부는  같이 하니까 의미가 있는 거라고요."

"꼭 그렇지는 않을걸."


"왜요? 같이 있으니까 뭐든 같이 하고 싶고 공감하고 싶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런 이야기가 있지."


가장 오래가는 부부는 주말부부라는 이야기가 있다.

30년간 주말부부여서 한 번도 싸워보지 않으셨던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갔는데 나흘째 여행에서 부부싸움을 하게 되어 분위기가 엉망이 된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왜 그럴까요?"

"연인이랑 부부의 차이겠지."


연인은 약간 안 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게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평소에 청소를 자주 안 하는 남친과 자주 청소를 하는 여친이 있으면 커플 때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는 문제가 된다.

집안이 더러워지면 자주 청소를 하는 여자에겐 청소를 해야 하는 순간인데 남자로선 아직 깨끗한 상황인 거다.

처음엔 여자만 청소를 하다가 그게 쌓이기 시작하면 잔소리를 하는 거지.

너도 청소 좀 하라며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자로서도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거다.

아직 본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깨끗한데 깔끔을 떤다고 생각하겠지.


청소에 한해서도 이런 문제가 조금씩 발생하는데 식사나 잠자는 시간, 취미까지 하나, 둘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서로에 대한 사랑보다 미움만이 남게 되고 그럼 금방 이혼 절차를 밟는 거지.

"그래서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편하다고 말했던 거에요?"

"그렇지."


"그럼 우린 규칙이라도 만드는 게 어때요?"


"규칙?"

"네. 집안일은 1주일마다 돌아가면서 누가 하고~ 이런 식으로."

"그래도 좋고 아예 같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취미도 공유해요."

"굳이?"


"저는 선생님이랑 같이 뭔가 하고 싶은데요."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숙여 올려다보는 눈빛을 보내온다.

눈을 깜빡이며 깜찍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면 다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잘 아네.

예쁜 마누라가 그러자고 하면 그래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TV를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내용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남편의 주머니에서 나온 여성이 쓸법한 립밤을 발견하고 이 출처를 묻는 아내에게 입술이 건조해서 샀다며 둘러대는 남편.

하지만 목도리에서 갈색 긴 머리카락이 나오고 본인이 흑발이라 그런 머리카락이 나올 리가 없어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남편이 외도를 하는  같아서 그 뒤를 캐기 시작하는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저도 선생님이 좋아하는 거 같이 해드릴게요."


한창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으려니 그런 말을 건네온다.

내가 좋아하는 거라.


"같이 책 읽는 건  심심할 거 같은데."


"다른 건 없어요?"

"음~ 게임?"


"게임이요? 음, 생각해 볼게요."


그래. 어쩌면 취미를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좋아하는 일을 상대방도 좋아하고 존중하는 일.


함께 있는 시간이 긴 만큼 서로 취미가 비슷하면 더 즐겁겠지.


"드라마도 나름 재밌죠?"

"흥미진진하긴 하네."


그렇게 저녁을 먹을 시간이  때까지 함께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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