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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화 〉1부 에필로그 : 새로운 시작(3) (149/301)



〈 149화 〉1부 에필로그 : 새로운 시작(3)

월셋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진이는 따라오고 싶어 했으나 장모님은 아직 결혼도  했고 곧 같이  텐데 왜 이리 조신하지 못하냐고 수진이를 붙잡았다.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아무래도 수진이가 곧 떠나니 섭섭한 마음도 있고 지금까지 못 챙겨준 게 마음에 걸리셔서 그런 거겠지.


그래도 조금 아쉽기는 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수진이가 옆에 있고 없고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는 기분인데.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한순간이었다.

"아! 오랜만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 아.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정 강사님."

정말 오랜만에 다정 강사와 마주쳤다.

거의 2개월 만이다.

격리조치를 받은 이후 2개월간 글을 쓰느라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마주칠 일이 없었다.

다정 강사와 인한 강사에겐 나중에 연락을 해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마주쳤네.

그나저나 인상이 확 바뀌어서 많이 놀랐다.

이전에는 눈 밑으로 길게 내려오던 앞머리를 정리하고 아직까진 조금 굽어 있지만 상당히 많이 펴진 어깨와 허리가 보인다.

이렇게 똑바로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는 것도 그렇고 그동안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 잘 어울리시네요."


"그래요?"


다정 강사는 기분 좋은 미소를 보여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감사했습니다."

"네?"

"여러 가지 가르쳐주신 것도 그렇고 뭐 이런저런..."


다정 강사는 그렇게 말하며 쑥스러운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얼굴을 긁적였다.

그러다가 큰 맘을 먹은 사람처럼 몸에 기합을 작게 넣고 나를 바라봤다.


"준수 강사님이  소설 읽어봤거든요. 미인이니 좀 더 당당했으면 좋겠다거나 머리카락을 정돈하면 좋겠다던가."


"아, 그 죄송합니다. 좀 실례가 됐을까요?"

"네."

거기서 '네' 라는 말이 나올 줄 생각도  했는데.

내가 당황에서 딱딱하게 굳어있으려니 다정 강사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검지와 엄지를 세웠다.

그리고는 그대로 나를 향해 내밀며 어린애에게 훈계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직장 내 여성의 외모를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성희롱이라고요?"

"죄, 죄송합니다."

"아하하! 농담이에요~"


다정 강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정말로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짓던 다정 강사는 헛기침하며 분위기를 다 잡더니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칭찬받은 기억이 없어서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아뇨, 그건 그 사람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었나 보죠."


"또 또, 그러다가 수진이한테 혼나요?"


다정 강사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작게 웃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내가 나왔던 엘리베이터 쪽으로 간다.

나도 이제 곧 이사를 갈 테니 아마 더는 볼 일이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다정 강사도 내 소설을 읽고 있었다니.


빈말이 아니었구나. 고마운 일이다.

***


"와~ 고마워요. 선생님!"

수진이는 내가 사온 약혼반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끼워주길 바라는지 내 손에 올려놓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수진이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흔히 남자들이 프러포즈하는 자세를 취했다.


"나랑 결혼해줄래?"


"알면서 물어요?"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얼굴을 붙잡고 짧게 키스를 해줬다.


그리고는 반지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하지만 반지 그 자체가 좋다기보다는 내가 준거라서 좋다는 분위기다.

"그러고 보니 주얼리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나 봐."

"꼭 그걸 좋아해야 해요?"


"남자들이 차나 지갑이나 시계에 집착하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니야?"

"선생님도 그런 거에 별로 신경 안 쓰잖아요?"

그건 내가 그런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지.

나도 돈이 충분히 있다면 비싼 외제 차 정도는 끌고 다니지 않을까?

"거추장스러워요. 어차피 밖에 잘 나가지도 않는데. 제가 뭐 드래곤도 아니고 뱅퀴어도 아니고."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눈치를 살핀다.

내가 어떤 드립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모습이다.


근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멀뚱히 서 있자 수진이가 헛기침하며 말을 돌렸다.


"선생님은 보석이나 명품 좋아하는 여자가 좋아요?"


"그런 남자는 없을걸?"

"그죠?"


수진이는 작게 웃으며 왼손 약지를 바라보며 작게 웃는다.

굉장히 행복한 미소였다.


"어차피 제가 명품인데 굳이 꾸밀 필요 있나요?"


"너 밖에서 그러고 다니면 재수 없다는 소리 듣겠다."


"어차피 친구도 없는데요. 뭘. 그래서 저 재수 없어요?"

"아니. 수진이가 명품이긴 하지."


"그죠?"

"보지가 아주 명기야."


딱.

수진이가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하여튼, 이 입이 문제야. 으이구!"


으이구! 라고 하는 게 장모님이랑 많이 닮았네.

수진이는 한숨을 내쉬고 "어쩌다가 이런 사람한테 반했는지..." 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잠시 냉장고로 걸어가서 보리차를 꺼내 마신 수진이는 소파에 앉아서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얌전히 수진이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자, 이제 도와주세요."

"뭘?"


"저 운전면허  거라고 했잖아요."


"진심이었어?"

"그럼 매일같이 학교에 태워다 주실 거에요? 거의 1시간 거린데?"

"바란다면 해줘야지."


"이래서 반했나 보네."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본인이 때렸던 부분을 손으로 쓰다듬어온다.

나는 수진이의 쓰다듬을 받으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필기는 쉬워. 그냥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해도 80점은 나오니까."


"그래요?"

"어. 불안하면 스마트폰에 필기 문제 깔아서 풀어봐. 한 번만 보면 90점은 나올 거 같은데."

필기는 공부를 안 해도  상관은 없다.


그 정도로 난이도가 쉬운 편이니까.


"어차피 2종으로 볼 거잖아?"

"1종이 트럭이죠?"


"어."

"그럼 2종으로 봐야죠."

"2종이면 별 어려울 것도 없지. 학원 등록하면 금방이니까."

"선생님이 막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그런 거 아니었어요? 드라마에선 그러던데."


"드라마니까 그렇게 하겠지. 같이 따라는 가줄게."


운전면허는 학원을 다니는 게 빠르고 편하다.

기본적으로 조수석에 브레이크가 있어서 사고 위험이 낮고 차량도 눈에 확 띄기에 다른 차들도 방어운전을 하니까.


수진이는 뭔가 기대했던 상황이 아니었는지 살짝 인상을 쓰고 있다.


그래도 결국은 납득을 하긴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우린 이사부터 생각해야죠."

"그래야지. 부동산엔 지금이라도 연락해두자."


"하루라도 저랑 빨리 살고 싶어서요?"

"그래.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제 그 선생님도 바꿔야겠는데."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여보라고 할까요?"


여보도 좋지. 저번에 불러줬던 서방님도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선생님도 조금 아쉽기도 한데.

"그냥 선생님으로 하죠."


"응?"

"작가도 선생님이라고 부르긴 하잖아요? 그리고 입에 붙어서 이제 와서 바꾸기도 좀 아쉽고."

"편한 대로 불러."

"네~"


우리는 한동안 휴대폰 어플로 운전면허 필기 문제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서로 장난을 치며 장모님이 밥을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


수진이와 함께 집을 둘러보러 나왔다.


머리가 벗겨진 50대로 보이는 공인중개사는 처음 우리를 봤을 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별말 없이 매물을 보여줬다.

수진이는 백화점에서 쇼핑하던 그때처럼 굉장히 신나 보였다.


수진이가 신이 난 것과는 별개로 나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집을 살펴보고 있었다.


수진이는 그저 평수가 넓고 집값을 기준으로  개를 골랐고 장모님도 비슷한 형식으로 찍었던 거로 기억한다.

수진이는 이사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니 이사를 해도 한번에서  번 정도를 한다고 가정하고 최대한 오래 살 생각으로 구해야 한다.

일단 서초구니 교통이나 편의 시설 등 집 외부 환경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수진이가 다닐 대학교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차로는 1시간 정도의 거리니 문제없이 다닐  있다.


집 안은 창문 크기나 채광량을 살펴봐야 하고 방충망, 방범창은 잘 되어있는지 방구석에 곰팡이는 없는지 욕실이나 주방의 수압은 어떤지 배수는  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추가로 환기나 냉난방 효율이 어떤지도 살펴보면 좋지.


평수가 넓은 만큼 가구배치에서는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수진이는 나를 보며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이전에 집을 알아볼  시큰둥했던 것과 지금의 태도가 사뭇 달라서 이상한 모양이지.

부동산은 눈으로 직접 보고 여러 가지 살펴야 알 수 있는 거지.


그냥 가격대랑 평수, 위치랑 사진만 딸랑 올라온 인터넷의 매물정보는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어차피 부동산에 가서 직접 물어보며 찾아볼 생각이었기에 시큰둥했을 뿐이지 관심이 없던 건 아니다.

"남편분이 굉장히 꼼꼼하시네요. 좋은 신랑을 찾으셨습니다."

공인중개사는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그리 말해왔다.

"그렇죠?"

수진이는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내 팔에 매달려왔다.

근데 20억짜리나 하는 아파트라 그런지 눈에 띄는 하자는 안 보였다.


아마 이 가격대의 아파트로 계약할 것 같은데 좀 더 둘러보다가 결정하게 되겠지.


우리는 총 네 군데의 집을 둘러보고 후에 연락을 준다는 말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에 든다고 바로 계약을 해버리기엔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 문제였으니까.

나와 수진이 그리고 장모님과 처남이 모인 자리에서 충분한 이야기를 거치고  함께 보러 갈 시간을 잡은 다음에 결정하기로 정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  같이 집을 살펴본 이후에 집을  준비가 되었는데 수진이는 인상을 팍 쓰며 이를 갈고 있었다.


"자금출처계획서니 뭐니 왜 이렇게 준비할  많아."


"그러게."

나는 주식으로 돈을 번 게 7억쯤이니 주식거래명세서를 준비해야 하나?

HTS랑 MTS로 거래하고 거래도 사고파는 걸로 4번밖에 안 했는데 애초에 어떻게 준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밖에 예금잔액증명서나 소득 금액증명원 등등 준비해야 하는 항목들을 체크해서 준비해나갔다.

그래도 이게 끝나고 나면 드디어 같이 살게 되는 거로 생각하니 그나마 낫다.


"선생님."


"응?"


수진이는 갖춰야 할 서류들을 확인하다가 고개를 들고는 나를 바라봤다.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상당히 중요한 말을  모양이다.

"있잖아요. 사람들이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니 종착지니 그러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은 사람이 결혼을 두고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가장 젊고 열정이 넘치던 20을 넘어 점점 늙어가는 30대쯤에 결혼을 하니 그리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아니면 책임감이 생겨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유는 많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이야기가 종착지일 리가 없다.


현실과 소설은 다르니까.

소설은 에필로그가 끝나면 이야기가 끝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로맨스 소설이 주인공과 히로인의 결혼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면 현실은  이후의 이야기가 기다린다.


결혼은 하나의 에필로그가 될 수 있지만 새로운 이야기의 프롤로그도 되는 법이다.


그래. 나와 너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수진이는 내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더니 꽃이 피어나듯 환한 미소를 보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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