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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화 〉1부 에필로그 : 새로운 시작(2) (148/301)



〈 148화 〉1부 에필로그 : 새로운 시작(2)

다음날.

나와 수진이는 장모님을 모시고 백화점으로 찾아왔다.

"정말 의외네... 그렇게 헤어지면 죽니 사니 해서 커플링 정도는 했을 줄 알았는데."

"하하..."

들키면 위험하니까 사진도 커플링도 최대한 자제했었다.


지금은 카톡 배경이미지로 수진이와 찍었던 해바라기밭의 그 사진을 올려두고 있다.


장모님은 나와 팔짱을 끼고 즐거운 듯 주위를 둘러보는 수진이를 바라보고 계셨다.


나도 수진이를 바라봤다.

역시 추위를 타는지 저번에 입고 왔던 하얀색 롱패딩을 입고 왔다.

하지만 그것보단 귀에 눈이 갔다.

수진이는 내가 생일선물로 사준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나와 수진이의 관계가 변했음을 드러내는 모습이라 상당히 만족 중이다.

수진이는 내가 본인의 귀를 보고 있음을 눈치챘는지 살짝 눈웃음을 흘리며 귀를 보여왔다.

"잘 어울려요?"

"응. 선녀 같네."


"뭐지? 애를 3명 낳아달라는 표현인가?"

난 나무꾼은 아닌데.


그래도 요즘은 애 낳는  싫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장난이든 진심이든 이런 말을 해주니 뭔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수진이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고 있으려니 장모님이 뭔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셨다.


"무슨 일이세요?"

"아뇨.  나이에 할머니가 된다고 하니 좀 그래서."


"와~ 그러네?"


"남 일이야?"


"엄마. 그냥 받아들여."

"으이구 이 화상아!"

"아, 하지 말라고!"


장모님은 수진이의 머리를 손으로 꾹꾹 누르면서 한숨을 쉬신다.

수진이는 머리가 부스스해지는 게 싫었는지 손을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래도 별로 기분이 나쁘진 않은 지 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약혼반지면 결혼하자고 프러포즈하면서 건네주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같이 고르고 그래도 돼요?"

"이미 여러 가지로 엉망진창으로 꼬여서 잘 모르겠다."


"그래도 프러포즈는 해주실 거죠?"


"해, 해야지?"

"아, 이거 생각도 안 한 눈친데?"

수진이는 도끼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생각도 안 하긴 했다.

커플링 맞추러 오는 느낌으로 왔는데 생각해보니 엉망진창이긴 하네.

"그럼 오늘은 결혼반지를 맞추는 거로 하자."


"아, 뭐가 그래요!"


수진이는 내 몸을 툭툭 치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보통은 결혼하기 전에 프러포즈를 하고 반지를 건네주고 상대방이 승낙하면 양가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결혼 의사를 밝히는 게 보통이니까.

"어서 오세요."


"약혼반지 좀 보러왔는데요."

"네, 잠시만요."


점원은 친절하게 약혼반지를 보여주었다.

가격대부터 요즘 어떤 디자인이 많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등.

가격대는 6년 전에 들었던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혜정이에게 프러포즈할 때 사용한 반지는 돈도 아끼자는 느낌으로 1부 다이아반지로 했지.

지금은 돈이 좀 있으니 3부 정도는 해도 될 듯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반지를 고르려니 점원의 시선이 나와 장모님을 중점으로 향하며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무래도 나와 장모님의 재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수진이도 그걸 눈치챘는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자연스레 내 팔에 팔짱을 끼며 본인이 주인공이라는  강조했다.

점원은 처음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나와 수진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곧바로 자연스러운 대응을 선보였다.

수진이는 손가락 호수를 재며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손가락 호수는 10호로 나왔다.


우리는 좀 더 둘러보며 오겠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여러 곳을 돌아봤지만 나와 수진이를 연인으로 생각하는 점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


"뭐냐? 복어냐?"

"다물어."

"다~물어~"

"이 씨!"

"에휴."

수진이의 집은 오늘도 떠들썩했다.

나는 장모님이 내어주신 커피를 마시며 오늘 보고 왔던 반지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매장을 돌며 결혼반지와 약혼반지를 다 살펴봤는데 수진이가 좋은 반응을 보이는 반지는 딱히 없었다.

장신구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한 눈치였다.


어쩌면  선택을 존중해주려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걸지도 모르고.

 자리에서 사겠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몇몇 괜찮은 디자인의 반지들은 확인해뒀다.


내일이라도 사러 가야지.

그나저나 프러포즈라.

프러포즈는 이미 했잖아? 그날 고백했던 날.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달라는  내 딴에는 프러포즈도 겸한 거였는데...


프러포즈. 프러포즈를 어떻게 하는 거지.


혜정이한테는 그냥 무미건조하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반지를 건네줬다.

하지만 수진이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한참을 인상을 쓰고 고민하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뒤에서 끌어안으며 어깨에 턱을 올려왔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세요?"

"프러포즈 고민."

"아, 그거 아직도 생각하고 계세요? 장난이었는데."

"응?"


"전 이미 프러포즈 받았잖아요."

후우. 아무래도 그걸 프러포즈로 생각해주나 보네.

뭐로 할지 한참을 고민 중이었는데 한시름 덜었다.


"뭔 프러포즈?"


"뭐야, 오라비. 선생님 소설 안 읽었어?"

"상남자 특) 로맨스 소설 안 봄."

"상병신 특) 개소리만 잘함."


수진이는 처남을 한 대 때리고 나서 흠흠하며 헛기침을 하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뒤에서 나를 꼬옥 끌어안아 온다.

"`손가락질 받을 거야, 미친 새끼라고. 욕먹을 거야, 변태새끼라고. 싸대기도 맞겠지, 제정신이냐고. 그래도 상관없어. 나랑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줄 거면 키스해주고 아니면 밀치고 개변태새끼 꺼지라고 해`"


수진이는 목소리를 깔고 그날 수진이에게 했던 말들을 똑같이 따라 했다.


내가 했던 말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걸 보니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서 외워버린 모양이다.

방에서 히죽 이며 내가 했던 말을 곱씹고 기억이 나지 않으면 다시 읽어보며 침대에서 바동거리는 수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상당히 귀여운 짓을 한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남들 앞에서 프러포즈를 했던 이야기를 떠벌리니 상당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봐라. 장모님도 조금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계시잖아.

처남은, 음. 굉장히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외동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이게 여동생의 연애를 지켜보는 오빠의 표정이겠지.


처남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형님은 상남자네. 그러니까 이런 추파카브라 같은 년이랑 결혼하지."

처남은 저 혼자 납득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수진이는 그 말을 듣자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처남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또 우당탕하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 분위기다.

처음엔 처남이 왜 저리도 맞을 짓을 하는가 싶었는데 몇 번이고 지켜보는 사이에 이게 처남 나름대로 수진이를 위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처남이 저렇게 자꾸 시비를 걸고 수진이는 화를 내면서 처남에게 달려들면 어느새 몸에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이다.


물론 수진이 입장에선 자꾸 긁어오는 처남이 귀찮게만 느껴지겠지만 이렇게 제 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보이는 것도 있다.

한참을 수진이에게 얻어맞던 처남은 웃으면서 장모님에게 손을 내민다.


"나도 읽게 좀 줘봐."


"방에 있어. 알아서 가져가."


"예이~"


결국, 상남자를 포기한 처남은 장모님의 방에 들어가서 내가  책을 들고 나왔다.


"캬~ 표지가 선녀네. 표지빨 개쩌는 구만."

"그거 내가 모델인데?"

"...씨발?"

"아들~?"

"아, 예~ 예~"

처남은 투덜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준비가 끝날 때까진 나오지 않겠지.

"그래서 어디서 살지는 생각해 봤어요?"

"아뇨. 그것도 포함해서 이야기도 좀 하려고요."


나와 장모님 그리고 수진이는 식탁에 앉아 어디에 집을 구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진이가 다닐 학교와 너무 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위치로 잡고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으니 거품이 빠져도 폭락하지는 않을 만한 위치도 고민해야 한다.

장모님은 소설을 읽으셨으니 내가 어느 정도의 돈을 가졌는지 아신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집을 살펴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꽤 오랫동안 나누었다.


처음엔 전세도 생각했는데 장모님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거라고 판단하시는 모양이다.

준범이도 거품이 낀 거 같긴 한데 공급이 없어서 계속 오를 것 같다고 말을 바꿨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집값을 통제하지 못할지는 본인도 몰랐나 보다.


"34평 정도면 좋지 않겠니?"


"아냐. 45평!"


"얘는 45평이 얼마나 큰지 알아? 우리 집이 34평인데?"

"우린 집 밖으로 잘  나가니까  잘 꾸미고 살 거야."

"이사는  하고?"

"나도 선생님도 집에서 일할 텐데 이사는  가?"


"아이고, 천생연분 납셨네."

어차피 돈도 있는데 집은 좋은 거로 살 거라며 제법 흥분된 기색으로 여러 가지 매물을 뒤적이고 있다.

장모님도 뭐라 뭐라 말은 하시지만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선생님은 어떤 게 좋아요?"


"수진이가 좋다고 하는 거로."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에요?"

"당연하지."

"집안 가구부터 배치까지 전부  맘대로 할거에요?"


"그건 좀..."


"그럼 빨리 이리 와서 선생님도 고민 좀 해봐요."


마냥 귀엽고 순진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제법 생활감이 물씬 풍긴단 말이지.


반지를 보러 갔을 땐 시큰둥했는데 집에는 제법 신경을 쓰고 있다.

수진이가 중점으로 보고 있는 건 가장 집값이 비싼 강남이나 서초구 쪽의 매물이었다.

강남에 45평짜리 집들은 가격이 진짜 천외천이구나.


수진이가 아무리 월억킥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어도 그에 가까운 돈을 벌기 시작한 건 1~2년 사이일 것이다.

저번에 물어보니 이왕 버는  월억킥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만든 닉네임이라고 했으니 실제로 월억킥도 아닐 거고.


한 7~8천 정도 벌고 있겠지.

강남구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서초구 정도가 적당하겠지.


그래도 수진이가 바라는 평수의 집은 20억이 넘어가는 매물이다.


10억이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이렇게 보니 정말 집값이 엄청 비싸다는 게 눈에 들어온다.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버는 사람들이 아니면 평생 꿈도 못 꾸겠네.


어쩐지 요즘 2~30대가 미친 듯이 주식을 한다고 했는데 왜 그런지 이제야 알겠다.

이건 진지하게 준범이에게 주식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안 쓰는 시간엔 주식이나 하는 거지.


어쩌면 내 소설로 버는 돈보다 주식으로 버는 돈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40평대로 하자."


"역시 넓은 게 좋죠? 50평대는 솔직히 청소하기 너무 힘들 거 같고."

우리는 한참을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었다.

집이란  보다 보면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며 이야기할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전세나 월세가 아닌 매매를 하는 것이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는 아무런 결실도 보지 못하고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전세 살  몰랐는데 집을 산다는 건 생각보다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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