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1부 에필로그 : 새로운 시작(1)
"여러분도 오늘 하루 은하처럼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Have a good day~"
몇 번이고 들어도 불쾌한 알람음에 눈이 뜨였다.
불편한 자세로 잤더니 전신이 쑤신다.
현재 시각은 늘 일어나는 오전 7시.
나는 수진이를 흔들어서 깨웠다.
"수진아, 수진아. 일어나봐."
수진이는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 선생님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팔을 벌리면서 안아달라는 자세를 취한다.
나는 수진이를 품에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줬다.
"흐읏~ 아, 아~ 우리 어제..."
"그래. 조수석으로 앉아. 이제 곧 해가 뜰 시간이니까."
평소와 같이 7시에 알람을 맞춰두지 않았다면 해돋이를 보러와서 못 보고 그냥 갈뻔했다.
수진이가 조수석에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손거울을 꺼내는 것을 확인하곤 차의 액셀을 밟았다.
하조대에서 그리 먼 곳으로 오진 않았다.
해돋이는 문제없이 볼 수 있겠지.
손거울로 얼굴을 살펴보던 수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꿈에서 해돋이 못 보고 그냥 돌아가는 꿈 꿨어요."
"뭔 꿈이 그래?"
"제가 그래서 선생님한테 마구 화를 냈거든요?"
수진이는 뭐가 웃긴지 키득 이며 뜸을 들였다.
빨리 물어보라는 식으로 나를 보채는 눈빛을 보내온다.
"그래서?"
"그랬더니 선생님이 웃으면서 다음에 또 오면 된다고 했거든요."
뭐, 그렇게 말하겠지.
"그래서?"
"그래서 제가 막 화를 냈어요. 20살의 해돋이는 이게 마지막인데 어떻게 할 거냐고."
"80년 동안 매해 해돋이 보러 오자고 했겠지."
"그거보다 먼저 꺼낸 말이 있어요. 뭐게요?"
수진이는 아직도 웃긴다는 듯이 피식거리며 물어온다.
전혀 상상도 안 가는데.
내가 모르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가볍게 저으니 수진이가 헛기침을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아ㅡ. 해돋이는 못 봤어도 홍콩은 봤잖아? 풉! 아하하하하하하!"
수진이는 혼자 말하고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아하하하하 하며 웃기 시작했다.
혼자 그렇게 배를 붙잡고 신나게 웃더니 너무 크게 웃어서 눈물이 맺힌 눈을 닦았다.
"선, 선생님. 안전운전! 안전운전해야지 왜 자꾸 힐끗거려요? 홍.콩.맨! 풉!"
내 머릿속이라도 들여다봤나? 홍콩 보내준다는 이야기는 머릿속으로만 한 거 같은데...
어찌 꿈속의 나는 나랑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거 같은데.
수진이는 한참을 웃다가 목이 아픈지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후. 아무튼, 꿈속의 제가 선생님이 아재 같다고 놀리니까 선생님이 그제야 남은 삶 동안 매년 새해를 보러 가자고 그러셨거든요."
"그랬겠지."
"현실은 해돋이를 보고 가네요."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아쉬운 걸까?
나는 수진이를 힐끔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진이가 원하면 언제든 해돋이 보러 와야지."
"...정말요?"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면 들어줘야지."
"10년 후도요?"
"어."
"20년 후도?"
"어."
"그럼 80년 후도?"
"와야지."
"그럼 매년 해돋이 보러오기. 이게 제 첫 번째 소원이에요."
"소원?"
"저번에 소원 두 개 들어준다면서요."
"아~ 그랬지. 그럼 나머지 하나는 뭔데?"
"그건 나중에 생각나면 말할게요."
수진이는 제법 기분이 좋아졌는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뭔 노랜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기분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하조대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추운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해돋이요."
"응?"
"차 안에서 봐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저렇게 추워 보이는데 나가고 싶지 않다.
나는 적당히 차를 세우고 해가 뜨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해가 떠올랐다.
"새해에도 잘 부탁할게."
"저도 잘 부탁해요. 서방님~♡"
"이번에는 여보가 아니고 서방님이야?"
"남자들이 이런 거 좋아한다던데요. 싫어요?"
"아니. 괜찮네."
"왜 이리 무미건조하지?"
"졸려서 그런가 보지. 자, 돌아가자."
"이게 끝이에요?"
"원래 해돋이란 게 기름 낭비하고 와선 시간 낭비하다가 돌아가는 거야."
"..."
꼬집.
수진이가 내 허벅지를 꼬집어왔다.
아까 매년 해돋이를 보러 오자고 해놓고서 이렇게 말하니 심술이 난 모양이다.
"그래도 수진이가 옆에 있으면 이것도 나쁘지 않아."
"치~ 됐거든요. 흥!"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그래도 화를 내지는 않았다.
"내년에는 미리미리 숙소 예약도 잡아놔야겠다."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없죠?"
"뭐가? 해돋이를 매년 차에서 하려고?"
"선생님이 말하면 다 그런 생각으로밖에 안 보여요."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제가 왜요?"
"이 나잇대 남자 중에는 안 서는 사람들도 많아."
"..."
수진이는 눈을 껌뻑이며 나를 바라본다.
"선생님, 큰일 나셨네."
"왜?"
수진이는 작게 웃으면서 내 허벅지를 손으로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운전 중에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여자들은 30대부터 성욕이 늘어난대요."
속삭이듯이 그런 말을 던져온다.
30대부터 성욕이 늘어난 다라. 그럼 앞으로 10년 후고 나는 이제 50줄이 되겠네.
의무방어전이 펼쳐지겠다.
"저 40살까지는 안아주실 거죠?"
"...노력은 해볼게."
"안 안아주시면 제가 뽑아낼 거에요?"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그렇게 말해온다.
갑자기 자지가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와~ 아침부터 건강하시네."
"시끄러워 짜식아."
"야동에서는 이렇게 남자가 운전할 때 여자가 입으로 해준다는데... 선생님도 막 그런 거 해주면 좋아요?"
좋기는 하겠지. 근데 엄청 위험할 것 같으니 자제해야지.
"위험하니까 됐어."
우리는 그렇게 차를 몰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보통은 해돋이도 보고 밥도 먹고 주변도 돌아다니다가 올 텐데 굉장히 심플한 해돋이였다.
하지만 굳이 해돋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매년 보게 될 연례행사다.
1년 정도는 이렇게 무미건조해도 괜찮겠지.
"많이 피곤하죠?"
수진이는 많이 미안한 표정으로 내 안색을 살폈다.
"피곤하긴 하지. 어제 수진이가 너무 섹시해서 무리했어."
"그런 거 말고요."
"됐어. 신경 쓰지 마."
"선생님."
"응?"
"저 겨울 동안 운전면허 딸게요. 좀 도와주세요."
운전면허?
뭐, 하긴 돈도 있으니 차만 있으면 나쁘진 않겠지.
"괜찮겠어? 좀 걱정되는데."
"괜찮아요. 어차피 돈도 있는데 튼튼한 차로 사면 되죠. 뭐."
"그래 그럼."
수진이가 운전면허증을 따고 운전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대학생인데 본인 명의의 차가 있어서 등교할 때 차를 끌고 가는 거지.
나처럼 외견에 신경을 쓰는 편이니 옷도 예쁜 걸로 골라 입고 다니겠지.
여러 가지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눈에 띄는 학생이 될 거 같다.
해충이 꼬일 거 같기도 하고. 아니, 차가 있으니 주눅이 들어서 안 꼬이려나.
나라면 주눅이 들어서 말도 못 걸 것 같은데 인싸들은 좋다고 달려들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커플링을 안 했네.
"수진아."
"네?"
"우리 돌아가면 커플링이나 하나 맞추자."
"이제 와서요? 우리 약혼반지 맞춰야 하는 데요?"
"그럼 약혼반지도 좋고."
"갑자기 왜 그래요?"
"아니, 뭐 별건 아니고."
벌레 꼬일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려니 수진이가 히죽거릴까 봐 그만뒀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서울에 도착했다.
수진이를 집 앞으로 데려다주려다가 지난밤의 성교가 떠올라서 월셋집으로 차를 몰았다.
돌려보내도 냄새는 지우고 보내야지.
월셋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려고 했는데 수진이가 목욕하자고 졸라서 욕조에 물을 받고 함께 들어갔다.
"후우~ 역시 겨울엔 목욕이죠?"
"그래. 기분이 좋긴 하네."
수진이를 뒤에서 끌어안는 듯한 자세로 목욕을 즐긴다.
가슴이 크면 물에 뜬다던데 자세히 보니 정말로 뜬 거 같긴 하네.
"수진아."
"왜요?"
"가슴 무슨 컵이야?"
"D컵이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나는 수진이의 가슴을 양손으로 주물럭거렸다.
D컵인가.
D컵은 엄청나게 큰 거라고 다들 그래서 엄청 큰 줄 알았는데 이게 D컵이구나.
수진이가 파이즈리를 해주기 전까지만 해도 C컵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다정 강사는 도대체 무슨 컵이지?
그러고 보니 다정 강사를 안 본 지도 꽤 됐다.
인한 강사도 그렇고 11월에 격리가 되고 나서는 한 번도 안 봤네.
새해가 되기도 했으니 안부 전화라도 한번 해봐야겠네.
내가 가슴을 주물럭거리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아주 작게 신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손이 유두를 살짝 스친 모양이다.
야릇한 소리를 들으니 다시 자지에 피가 몰리는 듯한 기분이다.
"아, 안 할 거예요."
수진이도 그걸 느꼈는지 깜짝 놀라서 나를 돌아본다.
"나도 피곤해. 그냥 씻고 잠이나 자자."
"아침은 꼭 드시는 거 아니었어요?"
"피곤하면 거르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그리고 가슴은 언제까지 만질 거에요? 안 할 거면 그만 만져요."
"쪼잔하긴."
"에잇."
수진이가 손으로 물을 떠서 내 얼굴에 뿌렸다.
내 몸에서 떨어지더니 연신 얼굴에 물을 뿌리며 장난을 쳐온다.
나도 수진이 얼굴에 물을 뿌리며 한동안 장난을 쳤다.
***
집으로 돌아와서 목욕을 마친 이후.
수진이는 헤어드라이어의 전원을 끄고 나를 돌아봤다.
"저희 이제 같이 살아야죠."
"그렇지? 집이라도 보러 가야 하나."
"대학 근처로 알아볼까요?"
"계속 거기서 살 것도 아니잖아? 우리 결혼하는 건데 어디서 살지 정해서 신중하게 사야지."
"아, 그런가?"
"그리고 집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니까 장모님이랑도 이야기를 해봐야 하고."
"네~"
수진이는 머리를 다 말리고 나서 침대에 누워있는 내 옆으로 와서 누웠다.
나를 끌어안고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요."
"그래?"
"춥잖아요."
"그렇긴 하지."
수진이는 더욱 강하게 내 몸을 끌어안아 온다.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꼬옥 끌어안았다가 천천히 팔의 힘을 풀기 시작했다.
"이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렇게 선생님이 누워있는 건가?"
"그렇겠지."
"선생님은 이제 날 백수니까 어디 가시지도 않겠네요?"
"날 백수라고 하지 마."
"그럼 기둥서방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옆구리나 배를 손으로 누르며 장난을 쳐온다.
"기둥서방이 더 기분 나쁜데."
"맞는 말이잖아요?"
"맞는 말이니까 기분 나쁜 거지."
"괜찮아요. 이제 글먹하신다고 했잖아요?"
"그래. 한번 해봐야지."
"괜찮아요. 글먹 실패하면 제가 키워줄게요."
"`키워`주는 거야?"
"네. 선생님은 가끔 이렇게 밤일에 힘써주고 내가 힘들다고 하면 살포시 안아주고 내가 피곤하다고 하면 위로해주고 내가 졸리다고 하면..."
수진이는 그렇게 뭔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잠이 들었다.
밤새 섹스를 하고 3시간 정도밖에 못 잤으니 많이 피곤하겠지.
애초에 수진이가 벌어들이는 수익을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벌든 별 의미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수진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재밌는 소설을 써 보고 싶다.
키워준다니 뭐니 건방진 녀석.
남자의 가슴에 불을 지를 줄 아는구나.
기다려라. 너도 깜짝 놀랄만한 소설을 써볼 테니까.
그런 결의를 다지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