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비가 그친 다음엔ㅡ(4)
"엄마?"
"여사님?"
"왜?"
수진이와 처남이 굉장히 난처한 표정으로 나와 장모님을 번갈아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외투를 벗고 셔츠 위에 앞치마를 한 모습이었다.
"선생님이 소설에 집안일 잘한다고 하셨으니 확인 좀 해보려는데 왜?"
"엄마... 그거 갑질이야."
"얘는 갑질은 무슨 갑질이야? 그냥 우리 수진이가 뿅 갈 정도로 맛있다는 그 요리 맛 좀 보고 싶어서 그렇지. 왜? 엄마보다 요리 잘한다고 그랬잖니?"
장모님은 나이에 안 맞게 외견이 굉장히 젊으셨지만, 성격조차 그랬다.
모두가 차분히 앉아서 저녁을 어떻게 먹을까 이야기를 하다가 수진이가 내가 해준 요리가 너무 맛있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장모님이 그 이야기는 소설에서 봤는데 그렇게 맛있느냐고 물으셨고 기분이 좋아진 수진이는 "엄마랑 나보다 더 잘해!" 라는 말을 해버렸고 울컥하신 장모님은 나에게 앞치마를 넘겨주시며 그 요리 좀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그 앞치마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여사... 아무리 그래도 손님한테 요리는 좀 에반데. 사위는 100년 손님이라는 말이 있다고요."
"아들~?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소리 하면 용돈 반으로 줄일 거야? 수진이한테도 주지 말라고 말할 거야. 알겠어?"
"..."
처남. 설마 수진이랑 장모님 양쪽으로 수금하고 있던 거야?
어디에 그렇게 돈 쓸 일이 있는 거지?
인싸라고 했으니까 여친 만나서 선물하고 뭐 그런 곳에 돈을 쓰는 건가?
처남이 자꾸 돈을 함부로 쓰니까 수진이가 그렇게 쓸데없는 곳에 돈 쓰는 걸 싫어하는 건가?
나는 쭈그러져 있는 처남을 뒤로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익숙한 식재료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수진이가 내가 해줬던 그 요리를 선보이려고 사둔 모양이다.
그럼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될 듯싶다.
"수진아. 고기 어느 정도로 익혀서 먹어?"
"음, 저는ㅡ"
수진이에게 고기 굽는 정도를 들으며 곧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파스타 면도 있고 빵도 사뒀네. 크림 수프도 사뒀구나.
이건 본격적으로 해도 될 듯하다.
나는 파스타를 삶을 물을 올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방금 처남이 했던 사위는 100년 손님 어쩌고 했던 말.
사위는 100년 지객이라는 말의 구체적인 뜻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가장 많이 쓰이는 뜻은 100년 손님으로 귀하게 대하라는 이야기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만큼 사위를 가족이 아닌 손님으로 어렵게 대하고 존중하라는 의미로 쓰인다.
조금 씁쓸한 이야기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활발한 성격도 아니어서 이렇게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손님으로 잘라내 버리니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의 떠들썩한 집이면 나도 최선을 다 해볼 텐데.
사실 어머님은 이걸 고려해서 이런 일을 시키신 지도 모르겠다.
손님이 아닌 가족으로 받아주겠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소설 속에 곧 날 백수가 된다고 써넣었는데 수진이가 돈을 번다고 해도 남자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놀기만 하면 신경 쓰이셨을지도 모르고.
어떤 의미든지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 한다.
이때라도 좋은 점수를 따야지 후에도 편할 것 같다.
다행히 요리는 평소에도 하던 일이다. 실수할 일은 없어 보인다.
나는 시끌벅적한 거실을 힐끔 바라보며 요리를 했다.
***
"와!"
처남이 자리에 앉아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감탄사를 내뱉는 것이었다.
역시 처남이야. 분위기를 잘 아는구나.
어머님도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식탁을 한번 바라보셨다가 나를 힐끔 쳐다보셨다.
정말로 내가 이런 요리를 할 줄은 모르셨나 보지.
나는 앞치마를 벗고 수진이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어때? 정말로 잘하시지?"
수진이는 양손을 허리에 대고 코로 흥 소리를 내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장모님과 처남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 앞에서는 마냥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어머님은 수진이의 그 표정을 바라보시더니 작게 웃으시곤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드셨다.
"얘는... 지가 만든 것도 아닌데 별꼴이야."
어머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곤 스테이크를 썰어 소스에 찍어서 입으로 넣으셨다.
그리고는 오늘 최고로 놀란 표정을 지으시며 식기를 내려놓으셨다.
"저, 정말로 잘하시네요."
한참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시다가 마침내 무난한 이야기를 내뱉으셨다.
수진이는 본인이 칭찬을 받은 것처럼 더욱 콧대가 올라가서 흥흥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장모님의 옆을 쳐다봤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흡입하고 있던 처남과 눈이 마주쳤다.
처남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입에 집어넣던 파스타를 마저 씹다가 입을 열었다.
"맛있습니다. 형님!"
"아, 드러워! 다 먹고 말해!"
수진이가 짜증을 내며 처남을 타박한다.
처남은 입에 남은 파스타를 씹으며 "또 생리하냐?" 라며 수진이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사이가 좋은 남매인지 나쁜 남매인지 알 수가 없다.
처남과 수진이가 마주 앉은 위치여서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장모님은 수진이와 처남을 바라보며 작게 인상을 쓰셨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엄마?"
수진이가 장모님을 올려다보며 부르자 장모님은 소리 없이 찬장 앞으로 가셔서 뭔가를 꺼내오셨다.
와인과 와인잔이었다.
"받아요. 김서방."
장모님은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와인을 따라주셨다.
"네. 감사합니다. 장모님."
나는 선생님에서 준수 씨에서 김서방이 되었다.
그 호칭 하나에 이렇게 기분이 들뜰 수 있다니.
나는 장모님께 와인병을 받고 장모님에게도 와인을 따라 드렸다.
"나는?"
처남이 우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어왔고 장모님은 찌릿하고 처남을 노려보는 것으로 상황을 종결시키셨다.
처남은 쭈굴해져선 "나도 잘 마시는데..." 라며 툴툴거리며 수프에 빵을 찍어 먹었다.
어머님은 잔을 들고 나에게도 잔을 권하셨다.
짠 소리가 나며 건배를 하시더니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으셨다.
나도 따라서 와인을 마시고 내려놓았다.
이것이 어머님 나름의 환영이리라.
나는 작게 웃으면서 식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수진이가 약간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제가 술, 담배 하지 말라고 했죠?"
그렇게 말은 하지만 아무래도 장모님과 내가 건배를 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던 게 아닐까?
옆에서 보면 부모님과 자녀로 보일 모습이니 샘이 났던 모양이다.
내가 피식 웃으며 수진이의 머리를 만지려고 하니 손을 툭 쳐내고 내 옆구리를 꼬집어 온다.
"아하하!"
장모님이 우리가 하는 짓을 보고는 조금 크게 웃으셨다.
"아, 미안해요. 김서방. 저 꼬맹이가 벌써 다 컸구나 싶어서. 김서방 앞에서는 그런 얼굴을 하나 봐요?"
"네, 네..."
"사양하지 말아요. 이게 원래 내 성격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장모님."
"이젠 누나라고 안 불러요?"
"..."
"김서방은 진짜로 놀리는 맛이 있네요. 왜 수진이가 좋아하는지 알 거 같기도 하고."
와인을 마셔서 조금은 붉어진 얼굴로 그런 말을 내뱉으시는 장모님.
수진이와 닮은 모습으로 저런 말을 하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수진이도 나이를 먹으면 이런 느낌일까?
그러고 보니 수진이가 술을 마신 걸 본적이 없는데 수진이는 술을 마시면 어떤 분위기를 보여줄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아까보다 제법 힘이 들어간 손으로 내 옆구리를 꼬집어 오는 손이 있었다.
"아파."
"..."
내가 아프다고 하는데도 짜증이 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알았어 알았어. 장모님 안 볼게.
설마 장모님한테도 질투할 줄은 몰랐지.
우리는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쳤다.
가장 신이 난건 역시 처남이었다.
남자라고 처남은 조금 넉넉하게 준비해줬더니 디저트까지 먹고 트림을 내뱉었다.
수진이가 더럽다는 표정으로 노려보나 마나 처남은 마이페이스였다.
식사가 끝난 다음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는 시간을 가졌다.
TV란게 봐서 재미는 없는데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로는 나쁘지가 않네.
TV... 한 대 사야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어느덧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내가 집으로 가려고 일어섰더니 수진이가 내 팔을 붙든다.
"선생님, 차 끌고 오셨는데 술 마시셨잖아요. 자고 가요."
"어?"
"그래요 김서방."
장모님은 한번 허락하시면 굉장히 털털해지시는 모양이다.
그래도 어색할텐데...
나는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떠들썩하던 집에서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니 왠지 조금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 돌아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샤워를 받고 처남이 빌려준 옷으로 갈아입고... 처남의 방에서 자게 되었다.
아무리 결혼이야기가 오고 갔어도 딸의 방에서 남자를 재우는 건 역시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처남은 처음엔 탐탁지 않은 표정을 보이다가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이는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장모님이 노려보자 결국은 깨갱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제부턴 계속 함께 살 테니 조금만 기다리자.
나는 처남의 방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처남은 역시 올빼미족이 됐는지 컴퓨터로 게임을 하느라 바빴다.
"불이라도 꺼 드릴까요?"
"아니 됐어."
에라이. 집이 더 편했겠다.
위이잉.
카톡이 왔다. 수진이었다.
`자요?`
`아직.`
`후후 선생님. 빨리 주소록에서 이름 바꿔요.`
`응?`
`우리 이젠 부부잖아요♡`
그리고는 뭔가 부끄러워하는 이모티콘이 2개 연속으로 올라왔다.
내가 더 부끄럽네.
바꾸긴 해야겠는데 뭐로 바꿀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렇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우리 집보다 높은 방 온도와 햇볕에 말린 지 얼마 안 된듯한 뽀송뽀송한 이불 냄새, 그리고 긴장이 해소된 반동이겠지.
그리고 평소와 같은 시간에 눈이 뜨였다.
나는 기지개를 켜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설다 싶었는데 어제 수진이의 집에서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꿈이 아니었다. 나는 수진이와의 관계를 허락받았다.
전신에 안도감과 고양감이 퍼져나간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살펴봤다.
처남은 늦게 잠들었는지 침대에서 코를 골며 졸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방에서 나왔다.
크리스마스 당일.
다른 사람의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뭔가 설레는 기분이다.
방에서 나오니 수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
아무래도 수진이는 나한테 장난을 치려고 일찍 일어났는데 내가 너무 일찍 일어난 모양이다.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는 녀석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주고 화장실로 향했다.
소변을 보고 몸을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해서 단정하게 하려고 했는데 수진이가 화장실로 따라 들어왔다.
"왜?"
꼬옥.
내 몸에 딱 달라붙어서 좌변기에 커버를 올리고 오줌을 싸려고 했던 내 자지를 손으로 흔들어온다.
"큭!"
우리 집도 아니고 여기서 이런 행동을 하다니.
수진이가 내 등에 얼굴을 딱 붙이고 옷 넘어로 뜨거운 숨을 불어넣는다.
그곳에서부터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는 온기가 가슴을 펌핑시키기 시작했다.
자지가 빨딱 서버려서 도저히 오줌이 나올 분위기는 아니었다.
"후후 여보, 아침부터 건강하네?"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후다닥 도망쳤다.
아무래도 저번에 하자는 신호를 보냈는데 안 해줬던 일을 담아두고 있던 모양이다.
귀여운 녀석.
그래도 이젠 네가 싫다고 해도 열심히 귀여워해 줄 생각이니 걱정하지 마라.
적어도 20년은 힘내볼게.
...그 이상은 나도 모르겠다.
갈수록 성적인 표현을 늘리고 있는데 나중엔 강제로 착정 당하는 미래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힘이 있을 때 리드라도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