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8화 〉비가 그친 다음엔ㅡ(1) (138/301)



〈 138화 〉비가 그친 다음엔ㅡ(1)

"그럼 가보겠습니다. 형님!"


"그래, 전염병 조심하고."

"예이~"

"아 얼른 나가아아아!!!"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선생님."

"응?"


"기다리고 있을게요."


쪽.

수진이가 내 뺨에 뽀뽀를 해주고는 손을 흔들면서 나갔다.

나도 수진이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수능이 끝난 후.


수진이가 이 집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사라졌고 우리의 눈치를 보던 처남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쉽기는 했지만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수진이가 집에서 나간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외로운 기분이 드는데 집에서 혼자 지내고 계실 수진이의 어머님은 어떻겠나?


전신으로 가기 싫다는 기운을 뿜뿜 뿜어내는 수진이를 배웅하고 책상에 앉았다.

내가 쓴 이야기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얼마 전에 친정에 다녀온 이야기를 끝내고 수진이의 어머님에게 싸대기를 얻어맞은 이야기까지 썼으니 거의 끝났다고 봐야지.

100편으로 끝내고 싶었는데 더 길게 써버렸다.

선작은 400을 넘어 곧 500명이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갤럼인거 같다.

확실히 많은 사람이 선호할 부류의 소설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적어도 500명은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니까.


나는 이야기를 쓰며 생각에 잠겼다.


어머님에게 인터넷 소설을 읽으라고 툭 하고 던져주면 과연 읽으실까?

요즘 30대는 그럴지 모르지만 40대는 모르겠다.

카페가 유행하기 시작했으니 보실지도 모르지.

하지만 수진이의 말로는 어머님은 수진이의 작품도 읽어보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그러니 어쩌면  이야기를 다 써도 어머님이 읽어주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그럼 안 되는데... 나는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단톡방에 글을 하나 올렸다.

`준호야, 웹소 일러 몇 개만 그려줄 수 있겠냐?`

어머님이 웹소설을 읽지 않으신다면 출판을 해버리면 그만이지.


종이책은 읽어주실 거다.


수진이도 어머님이 책은 종종 읽으신다고 했다.

웹소설도 출판하면 그 순간은 그냥 소설책이 되는 거지 뭘.


대학 시절에 본인이 쓴 소설을 책으로 만들어서 친하던 지인들에게 뿌리던 괴짜가 있었다.


들어본 바로는 조금 돈은 들어도 못할 정도로 비싸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니 이참에 과감하게 책으로 찍어낼 생각이었다.


한 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 준호가 단톡방에 톡을 올렸다.


`일러?  소설 쓰냐?`


`어, 소설이랑 이미지 갠톡으로 보낼 테니 확인 좀.`

`나 지금 일 존나 밀려서 2개월은 걸릴  같은데?`


확실히 요즘 웹소 일러가 돈이 되기는 하는 모양이다.


와이프가 자녀를 두고 도망쳐서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준호를 많이 걱정했는데 돈을 잘 벌어서 잘됐구나 잘됐어.

인한 강사의 소설도 준호가 그려서 잘 그렸다고 생각해서 부탁한 거 였는데 아쉽다.

준호는 흔히 씹덕 일러라고 불리는 그림체와 로판에 자주 쓰이는 실사에 가까운 그림체까지 다양하게 뽑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친구고 능력이 있는 녀석이니 부탁하려고 했는데 무리인 모양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지.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씌팔. 이미 부모님도 내가 여고생이랑 결혼하려고 한다는 걸 다 아는 상황인데 친구놈들에게 못 말할 건 또 뭐야.


이놈들은... 나의 대부분을 아는 녀석들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멀어졌고 각자의 가정에 충실하지만 그래도 좋은 녀석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헐뜯어도 여고생이랑 순애야스결혼이라니 존나 부럽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말할 녀석들이다.

그러니 오랜만에 동창회를 표방한 청문회가 열릴 각오를 다졌다.

`어벤져스 어셈블. 중대발표가 있겠습니다.`

나는 숫자가 10 밑으로 줄어들 때까지 눈치를 보다가 천천히 카톡을 보냈다.


`본인 19살 여고생이랑 내년 5월에 결혼식 올릴 예정이다. 도움 바람.`

처음 1분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몇 명이 `?`라는 카톡을 올렸고 한 2분이 지나고 준범이가 `저 새끼 진짜 여고생이랑 갈 때까지 갔음. ㅋㅋ` 라는 카톡이 온 다음에는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그러다가 현우가 카톡을 보냈다.


`아 씨발 여고생 순애 야스 결혼은 못 참지.`

그러자 갑자기 미친 듯이 울리던 알람음이 멈췄다.


`현우야... 넌 씨발 언제 정신 차릴래? 고소당해야 차리냐?`

아무래도 현실 인물로 야스니 뭐니 해서 분위기가 좆망한 느낌이다.


하긴, 게임이나 소설도 아니고 순애 야스니 뭐니 그러면 좀 깨긴 한다.


하지만 내가 용서한다는 내용의 카톡을 보내자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준호는 `어어어...` 라는 카톡을 보냈다가 `에이 시팔! 여고생이면 킹쩔 수 없지.` 라며 내 부탁을 받아준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천 좆망팸 2020년 동창회엽니다. 장소는 여고생이랑 떡 치는 미친 새끼 김준수 씨네 집입니다.`


`찬성합니다.`

.
.
.

그렇게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모이게 되었다.

이 시국에? 라는 카톡을 보낸 현우가 다시 욕을 처먹었다.

어차피 정치인 새끼들도 안 지키는데 우리는 왜 지키느냐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씨팔! 김준수 이 개또라이 새끼야! 적셔!"

준범이의 선창 이후 우리는 미친 듯이 술을 퍼마셨다.


동창회인지 청문회인지 총각파티인지 모를 술파티가 시작됐다.

본래라면 욕을 먹을 상황이지만 아무도 그것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식장은 예약했고?"

19살 애가 있는 혁진이는 처음엔 껄끄러운 반응을 보이다가도 내가 좋다면 좋은거겠지... 하고 넘어가더니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술을 마시며 모여있는 친구들에게 내가 현재 소설을 쓰고 있으며  이유에 관해서 설명했다.

준호를 부른 것도 소설로 출판하기 위함을 밝혔다.


웃고 떠들고 술잔을 비우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노가리를 까던 녀석들이 찬물이라도 뒤집어 쓴 듯 조용해졌다.


나는 아무래도 내 말의 뒷부분을 바라는 느낌에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수진이와 있었던 일들을 소설로 썼다며 시간이 되면 읽어보라며 친구들에게 권했다.


준호에게는 해바라기밭에서 찍은 수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생겼는데 로맨스 소설에 어울리는 풍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준호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우르르 일어선 나머지 놈들이 휴대폰을 빼앗고 씨발 존나 예쁘네 개미친 김준수 호로새끼 술이 들어간다! 라고 내 얼굴을 붙잡고 소맥을 들이부었다.


위장도 옷도 술로 젖어가며 우리는 광란의 파티를 벌였다.


과묵한 병진이도 오늘만큼은 시끄러웠고 가장 조용한 건 어떻게 일러를 그릴지 고민하는 준호뿐이었다.

나는 술에 범벅된 상태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뭐냐, 결혼식... 우리끼리 해야 하거든? 우리 신부님이 친구가 없어서 아무도  와! 아하하하!"


술에 취해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끼리끼리 만났네!"라며 웃으며 잔을 드는 친구놈들이 보였다.

그래. 고향 친구밖에 없는 시점에서 나도 인간관계가 참 좁은 녀석이지.

우리는 그렇게 술을 퍼마시며 지인들만 불러서 단출하게 하는 결혼식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논하며 소설은 어디까지 썼는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술에 취한 디씨인 민석이가 내 소설을 소리를 내 읽으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캬~ 김준수 씨 120살까지  거야? 근데 술은 왜 마셔~"

모두가 민석이의 낭독에 귀를 기울이며 술잔도 기울였다.

역시 이놈들이라면 이렇게 할 줄 알았지.


그래도 개새끼니 씨발새끼니 소리는 들어도 혐오의 시선은 없었다.

다들 준범이와 비슷한 말을 들려줬다.

어차피 헬조센엔 우리 말고도 욕할 놈들이 많으니 우리는 응원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술 때문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모여서 떠드니 기뻐서인지 아니면 그 말에 감동했는지 오랜만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우리의 술잔치는 그렇게 금요일 밤에 시작되어 다음 날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술잔치를 벌이며 나온 이야기들을 머릿속에 잘 새겨넣었다.

이왕 결혼식을 할 거면 좀 특별하게 해보라는 이야기.


어차피 50명도 안 모일 텐데 무리하지 말라는 이야기 등등.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친구놈들이 툭툭 내뱉는 이야기들을 메모했다.


이렇게 술을 마시면서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수진이에게 전화한다는 것을 까먹고 말았다.


***

"와! 여고생! 와! 고3! 와! 와! 와!"


"야이 병신아. 아기리  해봐라."


시끌시끌


수진이는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나를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라고 말이다.

나는 너무 술을 처먹어서 아픈 머리를 붙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친구들에게 우리 결혼할 거라고 나중에 결혼식 하면 찾아오라고 했거든."


"겨, 결혼식이요? 진짜로 결혼식 올릴 생각이셨어요?"


수진이가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식탁에 앉아서 마주 보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우리 둘을 19명의 시커먼 아재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내년이면 여대생 와이프! 내가 50대가 되어도 30대인 와이프! 와! 센즈!"


"민석이 아가리 좀 시켜봐라."

술이 강한 놈들은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 먹고 있고 술이 약한 놈은 화장실에서 나오질 않는다.

아주 난장판에 냄새까지 나는 상황에 수진이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설마 이렇게 곧바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져서 연락이 안 됐는데 또 내가 무리를 해서 쓰러졌는지 확인하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가 이렇게 되었다. 대충 이런 상황이었다.

"그럼 진짜로 할 생각이었지. 지인들만 불러서 사진도 찍고 하자고."

"하아... 사진에 남자밖에 없겠네요?"


"저놈들 와이프도 부르면 남자도 절반 여자도 절반이겠네."


"하하..."

수진이는 굳은 표정으로 웃었다. 눈이 전혀 웃지 않아서 무서웠다.


그걸 눈치챘는지 친구놈들은 한 놈, 두  천천히 "그럼 이만~!" 소리를 내고는 집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준범이랑 준호뿐이었다.


준범이랑 준호는 더러워진 방을 대충 치우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더니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넌 왜 안가냐?"


"모델이 직접 왔는데 사진이라도 몇 장 찍어가야 표지를 만들지. 넌 뭔데?"

"나야 뭐 여기랑 집이랑 가깝고 오늘, 내일 휴장이니까 그렇고."


"이 새끼 아직도 딴따라 하네. 근데 돈 좀 되냐 그거?"

"환쟁이 새끼가 평생 그려야 내 재산 절반은 따라올까 모르겠다?"


"씨발 나도 주식이나 해?"

시끌시끌.

그들은 우리가 어떤 분위기를 하고 있든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나는 굳어있는 수진이의 볼을 양쪽으로 주욱 당겼다.


부드러웠지만 조금 차가웠다.

"하이마요."


인상을 쓰는 수진이도 귀여워.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알아서  할 테니까."


"...뭔가 처지가 바뀐 거 아니에요?"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결혼식을 남자가 준비할 수도 있지."

"하긴 선생님은 백순데..."

"자꾸 그럴래?"


"풉!"


문득 주변이 조용해져서 청소하던 두 놈을 바라보니 준범이는 인상을 쓰고 있었고 준호는 "호우 호우..." 라는 이상한 추임새를 넣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표지 값은 얼마나 받을 거냐?"

준호는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마, 우리가 남이가?"


"사람은 대가가 있어야 좋은 결과물을 만든다는 건 알지."

"크으... 역시 여고생이나 꼬시는 대현자 김준수 선생님입니다. 표지 70, 삽화 넣을 거면 흑백으로 장당 40만 받으마."

"쓰레기 같은 놈."

"얌마 니가 돈 준다며?"


내가 그런 말을 주고받자 수진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표지 값이 무슨 소리에요?"

나는 웃으면서 수진이에게 내가 계획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