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4)
갤러리에 홍보하려고 보니 누군가가 이미 내가 쓴 소설을 리뷰한 글이 있었다.
내 소설을 은교와 비교하며 좋은 필력이라고 칭찬하는 글.
나는 처음으로 날 모르는 타인에게 아니 독자에게 칭찬받는 글을 쓰게 되었다.
어쩐지 선작이 많이 늘었다고 했더니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고맙다. 그저 고마웠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고마움을 곱씹고 천천히 홍보글을 올렸다.
보통 갤러리에 홍보글을 써봐도 사람들은 잘 읽지 않는다.
그래도 한 명이라도 나의 이야기를 읽어주고 코멘트를 남겨줬으면 싶었다.
글을 쓰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나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너무나 창피한 일이었으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리뷰의 효과일까? 아니면 홍보의 힘일까?
사람들이 응원하는 댓글들을 달아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 댓글들을 읽으며 천천히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이 이야기가 수필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 이야기는 수필은 아니다.
하지만 허구는 아닌 그런 이야기다.
그들은 나의 추잡한 더러움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며 나를 응원해줬다.
그들이 나를 응원하는 댓글을 읽는 순간 나는 비로소 작가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드디어 나는 배설물이 아닌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그 댓글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우리의 관계를 응원한다.
수진이와 나의 사랑을 응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 우리의 사랑은 특이한 것이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나의 이야기가 마냥 허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인공 강준수가 소설가가 목표였으면서 국어국문학과를 갔다는 이야기가 걸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강준수는 국어국문학과를 갈 수밖에 없었다.
성적이 좋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다.
K대학.
이 대학의 문창과는 세종에 있어 갈 수도 없었고 아버지가 절대로 허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국어 점수는 항상 만점이었기에 국어국문학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버지도 그의 성적을 알기에 말리지 않았다.
기왕이면 더 좋은 학과를 가길 바라시는 눈치기는 했지만...
하지만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허구로 받아들이든 수필로 받아들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지.
독자들이 공감하는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은 나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이지.
그 말은 어머님에게 나의 이야기가 닿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쓴 소설을 다시 읽어보고 정말 오랜만에 운동을 했다.
"응?"
몸이 피곤한 탓일까? 평소에는 쉽게 하던 동작들이 너무나 괴로웠다.
턱걸이도 한 번에 13개까지는 했었는데 지금은 10개를 하는 것도 힘들었다.
간신히 운동을 끝내고 씻은 다음 나는 곧바로 책상에 앉아서 소설을 쓰려고 했다.
그러다가 수진이의 당부가 떠올라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수진아 나 이제 자려고."
`휴... 선생님이 오늘도 전화 안 거실 거 같아서 제가 하려고 했는데 다행이에요.`
"걱정하지 마라니까. 오늘 소설 홍보도 하고 왔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라."
`네. 저도 봤어요. 다행이네요. 역시 선생님은 글을 잘 써요.`
"월억킥 님이 그렇게 말해주니 너무 기쁘네. 하아..."
나는 길게 하품을 했다.
아무래도 몸이 휴식을 요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 졸려요? 죄송해요. 오늘은 푹 주무세요.`
"그래. 잘 자~"
`네. 사랑해요.`
"나도."
전화를 끊고 시간을 확인했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노력하면 1편은 더 쓸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자야 하는 걸까?
나는 욕심을 부리려다가 수진이의 당부가 떠올라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
잠에서 깨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9시였다.
그동안 몸이 많이 피곤했었나? 나는 서둘러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식사를 끝마치고 세수를 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본다.
얼굴에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 있다.
평소의 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염을 정리하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너무 많이 자 버렸다. 소설을 쓸 시간이 부족하다.
오늘도 4편을 써야만 하는데 내가 미쳤지.
나는 서둘러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내를 덮친 순간부터 아내가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집안에는 부부싸움을 하기 이전과 같은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으나 강준수는 그것이 불쾌하기만 하다.
당연하다. 아내는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이제 와서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아내는 갈수록 기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수진이에게 전해줘야 했을 장미를 본인의 선물인 것처럼 웃으며 받아들이는 모습에서는 비웃음조차 나왔다.
그는 아내를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평소와 같은 남편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동료와 웃고 떠들며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
여기까지 썼을 때는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 5시가 되어있었다.
나는 놀라서 허겁지겁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또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강준수는 조금 더 과감한 행동에 나선다.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녀가 화장실로 간 순간에 컴퓨터를 뒤져보게 되고 그게 들키는 헤프닝이 일어나고 약점이 잡힌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이성적이었고 어찌어찌 휴대폰 번호를 얻어서 전화와 카톡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이야기를 써내려가니 오늘도 4편의 소설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시계는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혹시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만두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전화 못 해서 미안해 수진아...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수진이에게 용서를 구했다.
...
나는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수진이는 가끔 전화를 걸어왔고 그때마다 나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나는 그게 너무 미안해서 내 걱정은 그만두고 공부를 하라는 말을 해줬다.
나흘 동안 정신없이 소설을 써내려갔다.
손가락 마디가 관절염에 걸린 것처럼 아파서 소설을 쓰는 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쉬고 싶어도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아니, 이제는 독자들이 있다.
어쩌면 독자들이 있었기에 나는 힘들어도 책상에 앉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별 생각 없이 쓴 그 1줄의 댓글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힘이 되었다.
나는 약 상자에서 바르는 파스를 꺼내 손가락과 팔뚝을 적실 생각으로 발랐다.
키보드가 파스로 축축해졌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시 강준수가 될 시간이다.
오늘 쓰는 부분은 그날. 절대로 이혼할 수 없다고 난리를 치던 그 날의 이야기다.
아내가 강준수에게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며 협박을 한다.
자신이 욕을 먹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감당할 생각이었지만 수진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결국, 강준수는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다.
하지만 이미 수진이에 의해 변해버린 강준수는 그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버둥 치려 한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이미 오후 3시를 넘었다.
방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불을 켜놓고 있으니 시간의 경과를 모르게 된다.
밥을 먹고 다시 쓰고 쓰고 쓰고 쓰고...
그렇게 쓰고 또 쓰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위이잉
울리는 휴대폰을 바라본다.
수진이다.
수진이다 수진이.
나는 몽롱한 의식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선생님은 바보야. 바보 멍청이 변태 강간범...`
"왜..."
수진이의 비난에 몽롱하던 의식이 서서히 회복되어 간다.
수진이의 음성에는 치유 효과가 있는 모양이구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었어요?`
"오늘이 며칠이더라..."
`선생님...`
휴대폰 너머에서 굉장히 울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또 뭔가 저지를 모양이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왜 그렇게 무리를 하세요.`
"으응? 아니야. 안 했어."
`우리 100일 지났어요.`
"아."
`바보야!`
"미안..."
`제발 무리하지 마세요. 선생님 소설... 재밌어요. 읽으면 힘이 나서 공부도 잘 돼요. 그래도... 제발 무리하지 마세요. 걱정되니까.`
"미안. 진짜로 조심할게."
`진짜죠?`
"진짜야 진짜."
`하아... 아무튼, 저 공부해야 하니까 끊을 건데 진짜 조심하세요?`
"알았어. 오늘 보충은 수능 끝나고 꼭 할게."
`알겠어요. 쉬세요.`
"응. 사랑해 수진아."
`네. 저도 사랑해요.`
전화가 끊어졌다.
100일은 챙기려고 했는데 그것마저 잊을 정도로 열중한 모양이다.
확실히 요즘은 낮과 밤이 바뀐듯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미안해 수진아. 진심으로 미안하다.
하지만 이 흐름이 끊기기 전에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를 용서해라.
휴대폰을 확인해본다.
학원에서도 공지사항이 와 있었다.
아무래도 수능이 12월이고 2주 남은 시간에 특강을 하다가 전염병이 돌면 수능을 볼 때 위험할 수 있다고 11월은 그냥 1개월간 학원 문을 닫을 생각인 모양이다.
제법 손실이 클 텐데도 과감한 결정이다.
그래서 고마웠다.
이제 소설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은 제법 진행되었다.
강준수는 수진이에게 고백하고 둘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수진이가 준수에게 흘러가는 말로 중얼거린다.
운동 열심히 해서 오래 살라는 이야기.
준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오래 살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100살까지 살 거라는 이야기를 꺼내고 준수는 작게 웃으면서 120살까지 살 테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하며 잠이 든다.
그래. 이때는 몰랐다.
그저 수진이와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수진이가 던진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이란 짧더라도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하지만 듣는 쪽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주관적으로 바뀐다.
나는 수진이의 말을 간단히 넘겨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게 된다.
나와 수진이의 관계가 들켰다.
이혼을 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여고생을 따먹은 미친놈이 되었다.
아버지의 분노는 정당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날 38년을 쌓아둔 서러움과 분노, 증오와 섭섭함, 그러한 감정들이 폭발해서 폭언을 내뱉었다.
지금은 알고 있다.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픔과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하지만 강준수는 그걸 몰랐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강준수는 처음으로 완벽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렇게 그는 집으로 돌아가 짐을 싸고 친구 집으로 도망치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것이지.
주륵.
"어?"
나는 갑자기 코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각에 손을 가져다 댔다.
코피다. 코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느낌.
나는 책상에 올려둔 휴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코피는 오랜만인데. 정말 오랜만이야.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오늘이 며칠이었지? 지금이 낮인가 밤인가.
밥은 먹었나? 화장실은 갔었나? 샤워는? 세수는? 양치는?
운동은? ...?????
나는 주르륵 코피가 흐르는 코에 휴지를 말아 넣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코피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