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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화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3) (131/301)



〈 131화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3)

강준수는 수진이에게 빠져버렸다.


아니, 미쳐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정상적인 성인 남성이라면 결코 19살이나 연하인 그것도 여고생인 학생에게 빠져들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아직 그는 그걸 자각하지 못했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자각하기 싫었겠지.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기 위해 체면도 버리고 강의준비실에서 잠깐 눈을 붙였더니 꿈속에 수진이가 나와서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감정을 직시하게 하였다.

그래. 강준수는 수진이에 대한 마음이 흘러넘쳐 있을 수 없는 행위를 저질러버렸다.

그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서 그 사건의 자초지종을 확인했다.


그가 새벽에 써내려간 소설은 너무나도 감성을 울리는 글이었지만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글이었다.

평범한 독자들은 로맨스니까 감정 과잉이 일어났다고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겐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강준수는 다행히도 이 소설을 아직 수진이가 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읽어버리고 마는 것이지.

수진이가 쓴 소설에서 자신이 보낸 러브레터에 답장을 하는  같은 장면을 읽어버린다.


그 순간 그가 쌓아온 가치관과 윤리, 상식과 같은 것들이 그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녀는 월억킥, 본인은  한 채도 없는 비루한 38살 아저씨다.

그녀에게 어울리지도 않고 어울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도망친다.

1주일을 그렇게 비겁하게 도망치다가 아내를 피해 카페에 들렀다가 그녀에게 붙잡히게 된다.


그녀에게 본인이 썼던 소설에 대해 들키고만 강준수.

그는 그녀에게 붙잡힌 순간 그녀에게 미쳐버리고 말았다고 자각한다.

그녀의 졸업식은 2월이고 지금은 4월. 약 10개월.


7,200시간이 남았다.


성인조차 아닌 어린 학생을 사랑하게 된 몹쓸 어른의 일탈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 그래서 일탈인 것이다.

미짜인 여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결코 쉽게 용서받을  있는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성인이 되면 그 순간 그들의 이야기는 더는 일탈이 아니다.


조금은 별난 이야기가 될 뿐이지.

강준수는 그렇게 본인에게 최면을 걸고 자신을 납득시킨다.

항상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체면을 차리던 자신을 의식적으로 지워버리고 천천히 걸어가던 길에서 일탈해버린다.

그래. 그렇게 그는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겐 혐오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그는  길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래. 강준수는 서서히 죽음을 향해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강준수는 다시 태어났다.

 길 끝에는 김준수가 있는 것이다.

시간을 확인한다. 이미 2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


1편을 쓰는  4시간이 걸려버렸다.

안 된다. 이 속도로는 하루에 4편이 무리야.

나는 레토르트 음식을 허겁지겁 퍼먹어서 배만 채우고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지금의 이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글을 써야만 했다.

언제 이 영감이 사라질지 몰랐다. 두려웠다. 어떻게든 써야만 한다.

이후 강준수는 카페에서 그녀와 주기적인 만남을 가지기로 한다.

시계태엽처럼 항상 똑같은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새로운 일상이 생겼다.


그녀와 카페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평생 평행선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와 강준수 사이에 새로운 길이 생겨났다.


그는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그의 마음에는 아내를 혐오하는 감정이 부풀어 오른다.

아내가 미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내를 미워해야지만, 증오해야지만 수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순수성이 더해진다.

그가 수진이를 사랑한  도피도 불륜도 아니라고 되뇐다.

38살의 아저씨가 운명이라는 말을 믿을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든 것이다.


운명의 사람을 만나서 어쩔  없는 것이라고 아내가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은근슬쩍 자신에게 변명한다.


그런 치졸함을 모르는 그녀는 웃으면서 강준수를 대해준다.

그녀의 눈부심에 그의 몸에서는 독기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어진다.

그렇게 그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연재한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간신히 4편의 소설을 썼다.


눈이 뻑뻑하고 허기가 지고 머리가 아프며 손가락의 마디가 아팠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점심을 먹은 시간이 2시였는데 벌써 11시였다.


엉망진창이다. 밥도 먹고 운동도 해야 했는데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나는 서둘러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양치를  이후 소파에 앉아서 잠깐 쉬려고 했다.

잠깐 쉬려고 했는데... 엉망이 된 생활패턴이 몸에 악영향을 미쳤는지 급격하게 잠이 오기 시작했고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

스윽.

천천히 눈이 떠졌다.

찌푸둥한 몸. 여기가 어디지?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래도 밥을 먹고 혈당치가 높아져서 그대로 곯아떨어진 모양이다.

어이가 없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4시였다.


아직 동이 트기엔 너무나 이른 시간.


나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을 쓰는 속도가 느리다.

이렇게 일찍 일어났으면 오히려 글을 쓸 시간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지.


어젯밤에는 씻지 않고 잠이 들었다. 따뜻한 물로 몸의 노폐물과 피로를 씻어내고 다시 소설을 쓰는 것이다.


휴대폰을 바라보니 부재중 전화가 3통이나 걸려있었다.


아무래도 수진이가 전화했던 모양이다.

휴대폰에서 계속해서 울리는 보건당국의 문자가 소설을 쓰는  방해가 되어 무음으로 해놨었다.


수진이의 전화를 받지 않은 건 고의가 아니다.


...수진이가 많이 화가 났으려나? 나 때문에 성적에 영향을 미치면 미안하다.

나는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며 몸에 쌓인 피로를 씻어냈다.

짧은 샤워를 끝내고 몸에 물기를 닦은 다음엔 곧바로 책상에 앉았다.


아직 더 써야 한다.

11월 2일에 검사가 있고 나서 바로 격리가 되었고 11월 3일부터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은 11월 5일.


아직 소설을 쓰기 시작한  2일밖에 되지 않았고 소설 전체로 보면 이제야 간신히 프롤로그가 끝난 것이다.

오늘 최소 4편의 소설을 더 써서 15편을 채운다.

3일에 15편.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하면 되는 법인 모양이다.

인한 강사가 갤에 홍보를 하고 선작이 늘었다고 했으니 나도 그렇게 해봐야겠다.


지금의 나는 분충이다. 작가의 시선이 아닌 독자의 시선으로 봐야 보이는 것이 안 보일 것이다.


나는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위이잉 위이잉


휴대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휴대폰의 액정에는 수진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왜 전화 안 받아요. 걱정했잖아요...`


"미안."


역시 수진이에게 걱정을 끼친 모양이다.


`그래도 오늘은 목소리가 괜찮네요. 소설 재밌게 보고 있어요.`


"그래?"

`그래도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루에 4연참이라니...`


"괜찮아. 선생님은 히트작은 없어도 계속 소설 쓰던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여유지."

아니다. 전혀 아니야.

나는 수진이나 인한 강사처럼 빠르게 글을 써내려갈 수 없었다.

25화의 단편으로 끝난 이 소설을 쓸 때는 이상할 정도로 손이 멋대로 움직여서 한편을 1시간 반 정도에 써내려 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글을 쓰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 하지만 수진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김준수가 아닌 강준수다.


그는 19살에 불과한 어린 소녀에게 어른으로서 허세를 부려야 한다.

나는 아직 김준수가 될 수 없다.

`정말... 조심하세요? 그리고 제 소설 꼭 읽어보세요. 알겠죠?`


"알았어. 꼭 읽어볼게."

`오늘은 자기 전에 꼭 전화해주세요?`


"알았어."

`선생님.`

"응?"

`사랑해요. 쪽.`

나는 작게 웃음이 나왔다.

아... 수진이와의 통화는 내 안에 쌓인 강준수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다.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나도 사랑해."





전화가 끊어졌다.


초조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이러면 안 된다.

나는 지포라이터와 낙타를 한 개비 손에 들었다.

입에 낙타를 물고 불을 붙이고 들이마신다.

후우ㅡ

담배 연기를 내뱉고 다시 모기향처럼 책상 위에 올려놨다.

그래. 이 냄새가 나를 다시 김준수에서 강준수로 만들어준다.

떠올려라. 수진이가 나에게 처음으로 데이트 신청을  날의 기억을.

나는... 아니 강준수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었지? 어떤 감정을 품었나?

그때 강준수의 아내는 집에 남자를 불러들여 성교하고 있었다.

강준수는 의문이었지. 왜 아내는 바깥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위험을 감수하고 집안까지 남자를 끌어들이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내는 자신을 모욕하며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아내에 대한 알 수 없는 증오와 분노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의 감정을 느낀 상태에서 수진이에게서 데이트 신청을 받는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삶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수진이를 자신이 살아온 부천으로 데려가서 데이트하기로 마음 먹는다.


잿빛이던 학창시절을 그녀와 함께 청춘이란 색으로 물들이고 싶은 것이다.

그는 그렇게 데이트를 준비하고 집안에 남자를 끌어들인 아내를 은근슬쩍 조롱하며 데이트를 나선다.

그래. 아내가 사준 향수를 뿌리고 딴 여자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아내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 것이다.

자신을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주제에 그렇게 어린아이 같은 장난을 치는 것이지.


데이트를 하면서도 그런 모습이 비친다.


19살이나 어린 여성에게 설레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버린다.

그러다가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온 이유를 알게 된다.

그녀는 편모 가정이었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자신은 그녀를 한 명의 여성으로 생각하고 데이트를 하러 나왔건만 그녀는 자신을 아버지와 같은 존재 혹은 소설의 영감 정도로만 생각하고 만나러 왔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쪽팔렸을 것이다.
비참했을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겠지.


근래에 들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가장 비참했던 시간이 되어버렸다.


자신에게 잘 대해주던 여자가 알고 보니 자신을 남자로 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을 38살을 먹고 알게 된 것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생각도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붙잡은  순간부터 강준수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차였지만 차인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녀에게 어울릴 사람이 되기로 결의를 한다.

술에 취한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가 대형사고를 치지.

아내를 강간하게 되는 것이다.


아내를 수진이와 겹쳐보며 쪽팔림과 비참함을 그리고 꼭꼭 숨겨놨던 아내에 대한 분노와 증오, 질투를 토해내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된다.

...이건 솔직히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다.


하지만 강준수의 꼬여버린 연애사정에는 반드시 아내의 이야기가 있어야만 한다.

숨기지 않고 쓰는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4시부터 썼던 소설을 썼건만 오후 2시가 되어 있었다.


10시간에 3편을 쓴 거면 나름 빨리 썼다고 할 수 있지.

아침도 점심도 먹지 않았다.

그렇게 자각하자 배가 고파왔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게 되었다.

점점 생활 리듬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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