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2)
지금의 김준수라면 리메이크의 첫 줄을 써내려갈 수 있다.
나는 천천히 프롤로그를 넘어서 2화를 쓰기 시작했다.
배경이 카페로 바뀌었을 뿐 나라는 인간은 변함이 없게 신경을 써서 묘사해 나갔다.
지금의 김준수라면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병신같다고 생각하겠지.
본인조차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주제에 카페에서 인생을 허비하는 손님들을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 불쾌하면서도 모순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다.
강준수는 김준수는 아니지만, 한없이 그에 가까운 인물이 되어야만 한다.
강준수를 변호하면 안 된다.
수진이를 만나기 전의 나는 삶에 절망한 인간이다.
가정교육의 영향으로 주변에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이지 속으로는 썩어가던 인간이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 몸에서 담배 냄새처럼 흘러나오는 더럽고 질척한 타르 같은 무언가를.
그러므로 인한 강사는 특별한 것이다.
이런 김준수에게도 먼저 말을 걸며 대화를 시도했던 사람이니 말이다.
2화를 다 쓰고 천천히 내용을 읽어본다.
한줄 또 한줄, 읽을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다음 내용을 읽지 않아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지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나라는 존재를 표현하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자신의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생판 남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이런 모습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수진이에게 그리고 그 어머님에게 보여주는 행위.
점점 손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2화를 다 읽고 3화를 쓰기 전에 다시 메모장을 키고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진이를 만나기 전의 김준수는... 길다. 그냥, 강준수로 하자.
강준수는 이때까지만 해도 수진이에게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조금은 특별한 감정이긴 했다.
그 감정은 좋아하던 작가가 갤러리에 놀러 와서 글을 쓰고 독자들이 댓글을 다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그것과 닮았다.
좋아하는 작가와 아주 잠깐 만났다는 그 감정은 평소 즐겨듣던 노래를 부른 가수를 만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강준수는 작가를 좋아하던 것이 아닌 작품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가수를 좋아하는 팬과 달리 그녀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그녀가 올린 글을 보게 된다.
어땠을까?
강준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낀다.
전율했다고 표현할 수 있겠지.
자신과 나누었던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를 작가가 소설 속에 넣어준 것이다.
아무도 그 이야기에서 특별한 점을 찾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강준수만이 펜스룰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다.
좋아하던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고 있었으며 콘서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노래 가사에 섞어서 불러줬다는 상상을 해본다.
아마 그것과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가슴이 터져나갈 듯 차오르는 감정에 휩쓸려 평소에는 하지 않던 짓을 저질러버렸다.
가슴을 찢고 흘러나온 감정을 장문의 댓글로 남겼고 그게 박제가 되어 인터넷을 떠돌게 되었다.
순식간에 제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워졌지만 강준수는 서서히 작가의 작품이 아닌 작가 그 자체에 매료되기 시작한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의 자그마한 변화는 아주 조금씩 그의 주변을 바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끝내 자신의 가슴에 넘쳐흐르는 감정을 소설로 써보기로 했다.
그녀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에 주인공을 학원 강사로 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내가 쓴 메모장의 내용을 살펴봤다.
그래 이건 강준수지 김준수는 아니다.
진정해야 해. 진정해야 한다.
손이 덜덜 떨린다. 아무리 현실을 비틀었다고 해도 수필과 다름없는 소설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읽어본다면 바로 눈치챌 것이다.
나는 지금 주변 사람들에게 꽁꽁 감춰두던 추악한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글을 올리는 순간 주변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두 들통 나겠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인한 강사의 배신감에 물든 얼굴이 떠오른다.
내 글에 실망한 수진이의 얼굴이... 나에게 경멸하는 시선을 보내는 어머님의 시선이 떠오른다.
나는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빨가벗고 밖으로 나간 것과 같은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고칠 수는 없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이야기는 절대로 어머님에게 닿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 그 전부를 드러내는 수밖에 없다.
나는 망설임을 떨쳐내고 메모장에 적은 내용을 게재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찬물로 세수했다.
서늘한 날씨에 수도관도 차가워지기 시작했는지 제법 뼛속까지 시려지는 냉기가 느껴졌다.
머리가 개운해지며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던 열기가 씻겨나갔다.
고작 소설 몇 편을 쓴 것만으로 이렇게 피곤해지다니.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소설 2편을 쓰는데 5시간이 넘게 걸린 모양이다.
안 된다. 이런 페이스로는 하루에 4편을 쓰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저 소설은 아직 오·탈자만 검사한 퇴고도 제대로 하지 않은 소설이다.
시간을 억지로 쥐어 짜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저녁도 대충 때운 다음 곧바로 책상에 앉아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수진이와 처음으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날.
내가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때우고 있던 그 날 너와 만났다.
너는 단골도 아니면서 그런 핑계를 대고 나를 만나러 왔지.
아니다. 김준수는 알아도 강준수는 그걸 모른다.
이야기도 바뀌어야지.
강준수가 이곳의 점장인걸 아는데 몰랐다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하며 상담을 신청하는 것으로 바꾼다.
백일장에 제출할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강준수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다.
강준수는 수진이와 대화를 하게 되어 굉장히 설레는 기분이겠지.
눈앞에 동경하던 가수가 나타나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설렌다는 것으로 부족한 심경이겠지.
그러니 정말 친한 친구만 알고 있던 자신의 가정사를 고민 끝에 털어놓는 것이다.
나의 이 보잘것없고 비루한 삶이 그녀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싶은 거다.
그녀에게 나라는 존재를 각인시키고 싶은 거지.
나를 봐줘. 나를 다른 팬들과는 다르다고 인식해줘. 그러한 심정에 가까운 발버둥이다.
그녀는 강준수의 이야기에 빠져들듯 한참 동안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강준수는 오랜만에 매우 만족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본인의 지식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부류의 사람.
그것이 강준수라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집으로 돌아온 강준수는 그녀의 소설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올라오지 않는 소설과 휴재 공지.
강준수는 수많은 팬을 거느린 아이돌을 독점한 듯한 감각에 빠져들고 저열하고 치졸한 우월감에 빠져든다.
그렇게 잠이 들려고 하지만 저녁이 가까운 시간에 2잔이나 마셔버린 커피로 인해 잠이 오지 않았고 잠이 올 때까지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강준수는 전신을 울리는 고양감과 카페인으로 인해 잠이 오지 않았고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저지른다.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최소한의 퇴고조차 하지 않은 소설을 마음이 시키는 데로 써내려가고 피로함이 전신을 지배하자 비로소 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그는 천천히 그녀라는 이름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래. 이때부터였다.
이 순간부터 강준수는 확실히 그녀의 작품이 아닌 그녀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은 사회인이고 유부남이었고 상식이 있는 어른이었으니까.
그녀는 작가이지만 여고생이었으며 아직은 어린애였으니까.
그녀에게 자신은 어울리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혐오스러웠다.
됐다. 나는 내가 쓴 소설을 확인해봤다.
5편을 썼는데 현재 시각은 자정을 넘어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잠이 몰려온다.
어떻게든 일어서서 침대로 몸을 던졌다.
나는 쓸 수 있었다. 쓸 수 있어.
수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수진이의 어머님에게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ㅡ.
ㅡ나는 쓰고 있다.
***
위이잉 위이잉
뭔가 소리가 난듯하지만 잘 모르겠다.
머리가 무겁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계속해서 침대에 몸을 묻고 있으려니 계속해서 위이잉하고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알람은 아닌 모양이다. 알림이면 이렇게까지 계속 울릴 리가 없겠지.
누구지?
"여보세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수진이니?"
천천히 머리에 피가 돌기 시작하면서 잠이 깨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본다.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나는 항상 7시면 몸이 멋대로 일어났는데 어젠 필요 이상으로 피곤했던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거실로 나가 소파에 주저앉아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목소리가 왜 그래요? 전화도 안 받고... 지금까지 주무신 거에요?`
"어? 어, 왠지 졸려서 늦잠을 잤네."
`거짓말하지 마세요. 선생님 어제 새벽까지 소설 쓰시다가 주무신 거잖아요."
"..."
아무래도 내가 올린 소설이 연재된 시간을 본 모양이다.
`무리하지 마세요. 선생님...`
무리하는 수 밖에 없지. 지금은 무리를 해야 하는 순간이니까.
"괜찮아. 이젠 주의할게."
`...보고 싶어요. 선생님.`
오늘따라 수진이가 상당히 감정적인 느낌이 든다. 휴대폰 너머로 수진이의 흥분을 억누른 감정이 흘러드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왜 그래 수진아?"
`선생님이 쓰신 소설 읽었어요... 역시 잘 쓰시네요.`
"고마워."
`하아...`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한숨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혹시 내 소설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일까.
`선생님, 무리하지 마세요. 소설을 읽고 있으려니 저, 너무 괴로웠어요. 선생님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게 되니까... 너무 괴로워."
"..."
`지금 당장 만나고 싶어요. 왜 하필 지금 격리를 해서...`
"괜찮아. 이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난... 난 아는데! 선생님이 어떤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알고 있는데...`
수진이는 내가 어떤 심정으로 이 소설을 쓰고 있는지 알아주는 모양이다.
나 만큼이나 나를 알아준다.
나는 그게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그러니 최대한 괜찮다는 어필을 하기 위해 목을 가다듬고 수진이를 진정시켰다.
`오늘부터 소설 3편씩 올라갈 거에요.`
"응?"
독자들의 기대감을 위해서 2편씩 올린다며?
`꼭... 제 소설 읽어보세요.`
"그래. 고마워 수진아."
독자보다 나를 우선해줘서. 나를 격려해줘서.
`사랑해요. 선생님.`
"나도. 사랑해."
전화는 금방 끊어졌다.
방금까지 몸에 스며들던 온기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래. 그녀의 사랑이 지금의 내게 닿으면 안 된다.
그러면 나는 소설을 쓸 수 없게 된다. 지금의 나에게 수진이는 너무나 눈부시다.
나는 김준수에서 강준수가 되어야 한다.
나는 냉장고에서 과일과 우유 등을 대충 꺼내서 늦은 아침을 먹고 세수를 한 다음 책상 앞에 앉았다.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고작 5편의 소설을 쓰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버리다니 이러면 늦는다.
퇴고할 시간이 없을 것 같다.
나는 아직 어지러운 머리를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다시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