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1)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왜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었는가? 그건 간단하다.
이젠 알겠다.
수진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김준수와 지금의 김준수는 완전히 별개의 인물이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다가 책상에 올라가 있는 지포라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다.
과거의 내가 어떠한 존재였는지 잘 떠올릴 수 없다면... 그때의 나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서 준범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준범아."
`뭐냐?`
"우리 학원 지금 `그거` 걸려서 격리 2주 받았다."
`레알?`
"어."
`캬~ 무급 수당 개꿀딱이구연. 그래서?`
"심부름 좀 해줘라."
뚝.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야, 한 번만 도와줘라."
`...`
"나 낙타 한 갑만 사다 줘."
`야, 너 담배 끊지 않았냐?`
"끊었지."
`근데?`
"이유가 있어서 그래. 내 집 주소 불러줄 테니까 집 앞에 던져놓고 가주라. 진짜 마지막 부탁이다."
`...씨발롬. 진짜 나 같이 좋은 인간은 없을 거다. 저번에 처먹었던 술값 계좌로 붙이면 해줄게.`
돈도 많은 놈이 그런 건 철저하네.
"그래그래."
나는 준범이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
담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생각에 빠졌다.
소설을 쓰려면 그때의 나로 돌아가야만 한다.
수진이를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갈 시간이다.
과거의 나는 어땠나?
팅 탁 팅 탁
오랜만에 손에 든 지포라이터를 튕기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의 나는 정말 인간으로서 글러 먹은 놈이었다.
남들보다 조금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컸지만, 마음은 또래의 누구보다 삭막했다.
친구들이 부러웠고 엄격한 아버지가 무섭고 싫었다.
도망치듯이 서울로 대학을 다니며 마음속에 위안과 자부심을 품었다.
나는 일류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그 자부심으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오니 가세가 기울어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혐오의 감정을 품었다.
나를 그렇게 가르치려 들었던 인간이 저지른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니까.
나에게 자부심을 주던 학력은 생계의 수단으로 전락하며 한없이 초라해졌다.
그때부터 주변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친하던 대학 친구들도 멀리하게 되었고 오로지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대학을 그만두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준범이 같이 용감하지도 씩씩하지도 않았다.
나라는 보잘것없는 인간에게서 학력마저 없어진다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빈껍데기가 되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알바를 하며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버텼다.
정신을 차려보니 졸업반이 되었고 눈앞이 캄캄해졌지.
팅 탁 팅 탁
한심한 인간이다.
그렇게 삶이 힘들었는데 담배도 못 끊고 말이다.
담배도 한두 푼이 아니었는데 담배라도 안 피웠으면 훨씬 여유로웠을 텐데.
하지만 그때의 난 사춘기의 청소년처럼 담배를 피우는 행동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하지 말라던 일을 저지르는 일탈에서 오는 쾌감.
그 작은 어긋남에 저열한 만족감을 얻고 있던 것이다.
아버지는 흡연에 부정적이셨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본인이 저지른 잘못이 있어서 큰소리를 치지 못하신 거지.
나에게 담배는 생각보다 치명적인 물건이었다.
팅 탁 팅 탁
먹고는 살아야 해서 이력서를 몇 장 끄적였다.
소설가는 되지 못했지만, 이력서는 멋지게 준비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취직에 성공했지.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학 때문에 뽑힌 거라 할 말이 없다.
내 자존심이었다가 밥벌이로 처박혔던 학력이 나의 삶을 영위하는 수단으로 굳어버렸다.
이미 나의 자존심은 스크래치를 넘어 아스팔트에 갈린 고깃덩이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살아가야 했다.
먹고 살기 위해 달리다 보니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고생한 보람이 있기는 했는지 집도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나에게 맞선을 보라고 보채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난 결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니, 자신이 없었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그랬다.
그러니 나 역시 내 아이에게 좋지 않은 부모가 될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메모장에 써내려간 나의 이야기를 읽어보았다.
그래 여기까진 얼추 비슷하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내용을 소설 속에 담을 수는 없다.
프롤로그는 수진이와 만나는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까.
어떻게든 이 이야기를 녹여서 글을 써내야만 한다.
나는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고 다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전 아내인 혜정이는 스타일이 좋은 미녀였다.
화장을 잘했고 양식을 우아하게 먹는 기품이 있었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
첫사랑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첫사랑보다 그녀가 소중했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혜정이에 대해 내가 느꼈던 감정을 써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떠올리며 쓰려고 하니 어떻게 써내려가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분명 그녀가 점점 미워지기 시작했고 끝내 그녀를 혐오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다.
나에 대해서라면 어느 정도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지만, 혜정이에 대해서 만큼은 어떻게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깜빡이는 커서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막힐 때마다 읽어보라던 수진이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수진이의 소설을 읽어보았다.
"하하..."
수진이가 왜 막힐 때마다 본인의 소설을 읽어보라고 했는지 알겠다.
수진이는 프로였지만 역시 아직은 꼬맹이였다.
소설 속에서는 나와 수진이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가 나왔다.
가령 해바라기밭에서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쓴 성녀를 눈부시다는 듯이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
마물을 몰아내고 왕국이 축제에 빠지고 하늘 위로 폭죽이 터질 때 아무도 오지 않는 조용한 구석에서 둘이 달라붙어 조용히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모습.
달콤한 것을 싫어하던 주인공이 서서히 성녀와 닮은 식성이 되어가는 모습 등.
그냥 잘라놓고 보면 주인공과 히로인의 꽁냥거림을 담은 에피소드였지만 나에게는 달리 보였다.
남에겐 자랑할 수 없는 우리의 사랑을 아무도 모르게 새겨넣는 수진이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웃음이 나온다. 월억킥의 프로면서도 이런 장난을 치다니.
수진이는 우리의 사랑을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나의 등을 밀어주는 것이겠지.
방황하던 나에게 조금만 더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소설을 다 쓸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며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괜찮다. 괜찮아 수진아.
너의 소설을 읽으니 나도 눈이 뜨인 기분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수진이가 나에게 보내온 응원에 응하고 싶어졌다.
수능은 12월 3일.
이제 1개월이 남았다.
100화 분량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선 적어도 하루에 4편씩은 써야 한다.
나는... 써야만 한다.
지금의 나로서 혜정이를 머릿속에 그릴 수 없다면 이전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천천히 내가 이전까지 썼던 메모들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혜정이에게 느꼈던 감정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내용이 영 어색하고 불쾌해서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직이다. 나는 아직 그 시절의 김준수가 되지 못했다.
팅 탁 팅 탁
나는 지포라이터를 손에 들고 있다가 천천히 준범이가 사 왔던 담배를 손에 들었다.
천천히 비닐을 벗기고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들었다.
천천히 입에 가져가고 불을 붙인다.
스읍 하ㅡ
빨아들였던 숨을 내쉬고 담배를 손에 들고 바라본다.
이렇게 끔찍한 물건을 좋아라 피우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 이러면 안 된다.
나는 담배를 모기향처럼 타오르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불쾌한 향기를 맡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전의 나는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달달한 커피를 좋아하는 초딩 입맛이지만 이 담배 냄새만큼은 싫지 않았다.
천천히 불쾌한 냄새가 몸에 스며든다.
그래. 나는 이 담배 냄새 같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혜정이는 독한 향수였다.
상반된 존재들이 만나버렸다. 우리는 결코 섞이지 않았고 섞일 수 없었다.
나는 너의 향에 취해 이성을 잃었고 독설을 내뱉었다.
너는 나의 독에 상처를 입고 나에게서 도망쳤다.
우리는 그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너는 아버지에게 오냐 오냐... 아니 아직 이때의 나에게는 그녀가 왜 그런 성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이다.
나는 천천히 내가 써내려갔던 메모들을 읽어보며 다시 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혜정이는 나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혜정이는 눈에 띄게 출장을 핑계로 한 외박이 잦아졌고 몸을 꾸미는데 평소보다 오랜 시간을 들이게 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너에게서 낯선 남자의 냄새를 느꼈다.
독한 향수로는 가릴 수 없는 끈적하고 불쾌한 악취.
나는 너에게 실망감과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관계를 끝내기 위해 흥신소에 의뢰해서 너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혜정이에게 증오를 느꼈지만 나는 아직 그녀에게 미련이 있었... 아니 아직이다.
나는 혜정이에게 미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천천히 조금씩 수진이를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날 3월의 마지막.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강의실에서 나갔다가 두고 온 물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시 되돌아갔지.
그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나는 내가 쓴 메모장의 뒷부분을 읽기 전에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해봤다.
나는 나의 뒷담화를 하는 학생들에게ㅡ 역겨움을 느꼈다.
자신보다 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저열한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무시하는 학생들에게 참을 수 없는 치욕감을 느꼈다.
나는 내가 쓴 메모장의 뒷부분을 읽었다.
그래. 이게 김준수였다.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던 학력이 유일한 자랑거리가 되었고 밥벌이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남들보단 낫다며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건만 집값이 오르며 나는 상대적으로 빈곤해졌다.
그 순간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증오를 품은 것이다.
이런 건 내가 아니다. 이런 건 내가 아니라며 답답한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배설행위에 공감해주는 독자는 존재할 리가 없지.
독자들은 안다.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지 않는 작가의 작품은 초라하고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소설의 원인을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내 소설을 헐뜯는 독자들을 비난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럴 때 너와 만나게 되었다.
너는 내가 근래에 봤던 소설 중에서 가장 빛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장르소설에 불과하지만 큰 틀로 보면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춰 짜임새가 있었고 등장인물들이 살아있는 듯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너의 소설에서 격의 차이를 느꼈고 부러워는 했지만 하꼬 작가가 품는 질투를 품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나에게 너의 소설은 내가 나아갈 방향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소설을 쓴 사람이 여고생이라니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너에게 흥미가 생겼다. 그러니 거의 10여 년 만에 오지랖을 떨었다.
너에게 우산을 건네주었고 그렇게 우리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