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8화 〉하꼬 작가와 리메이크(2) (128/301)



〈 128화 〉하꼬 작가와 리메이크(2)

수진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식사한 이후에는 곧장 책상 앞에 앉았다.

최대한 빨리 소설을 마무리를 짓고 어머님에게 허락을 받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글이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


이야기의 무대를 학원에서 카페로 옮겼기 때문일까?

그래도 최대한 빨리 이야기를 쓰고 싶기는 한데...


머릿속이 복잡하다.

나는 글을 써지지 않아서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기사를 조금만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았다.


"응?"


인터넷 기사에서는 전염병의 확진자 수가 늘고 있다는 기사였다.

추석 명절을 보내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기사.


뭔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전염병의 무증상자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데 지금 와서 지역 감염이 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다니.

나는 기사를 더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

"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운동하고 씻을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글을 1줄도 쓰지 못했다.


자신만만하게 글을 쓰겠다고 해놓고서 이런 시작이라니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성급하게 썼다가 저번보다 졸작이 나오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주일이나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선생님..."

수진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그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지 말아줘.


나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반짝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했다. 이전과는 명백히 다른 현상이다.

그래도 이상하게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양판소로 끄적이는 글은 또 써진다.


아무래도... 이건 내 심경의 변화 때문인 모양이다.


나에게 소설을 연재하는 것은 마음속에 담아뒀던 감정을 토해내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필요성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니 단순히 소설은 소설이라며 나와 소설을 분리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쓰려고 하는 소설은 나와 수진이에 관한 이야기다.

필연적으로 나의 이야기가 녹아들어야 하는 이야기다.


이전에만 해도 그게 너무나 쉬웠다.


내 생각을, 내가 느낀 감정을 써넣으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수진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과 지금 내가 품고 있는 감정은 전혀 다르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그래서 1주일간 의미도 없는 시간만을 보내고 말았다.


그동안 수진이는 비축분을 7일 치 더 쌓았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말았다.


자신만만하게 나만 믿으라고 했는데 쪽팔렸다.

나는 수진이를 한번 바라봤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 힘내요! 선생님은  수 있어요. 아자 아자!"


"언제적 아자 아자야?"


수진이의 그 어색한 격려에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제 거의 완결까지 썼겠네?"


"네. 이제 2~3일만 더 쓰면 완결분까지 다 써요."

"그래?"

"네. 그러니 선생님도 힘내세요. 소설 쓰다가 힘들면 제 소설 읽어주세요."

"그래."

"꼭 읽어보세요. 하루에 2편씩 연참으로 올릴 거니까."

"그럴 거면 그냥 비축분 전부 한꺼번에 올리지그래?"

"아뇨. 이렇게 조금씩 사료를 풀어야 독자들이 기대를 하고 읽을 테니 그건 안되고요."

"진짜 프로긴 프로네."


"그럼요. 저 월억킥이라구요?"


내 굳어있던 표정이 천천히 풀려감에 따라 수진이의 표정 역시 밝아지기 시작한다.


본인 시험 걱정이나 할 것이지. 속 편한 녀석.


"근데 진짜로 왜 리메이크 하시는 거에요? 리메이크라서 그러고 있는 거 아니에요?"

"어?"


"리메이크한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 돌아온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

나도 웹소설 작가 중에 리메이크한다고 해놓고 돌아온 작가를 본 적이 없다.


"..."


수진이가 말을 꺼내고선 아차 싶었는지 굉장히 어색한 표정으로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럴 거면 말을 하지 말지.

나는 수진이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괜찮아. 열심히 써볼게."

"선생님."

"응?"

수진이는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 리메이크하시는지 이유 들려주시면 안 돼요?"

나는 그 진지한 표정을 바라보며 말을 꺼낼까 말까 망설이기 시작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들려줘야겠지.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니까.


수진이에게도 들을 권리가 있다.

"저번 주에 어머님을 만나고 이야기를 했어."

나는 천천히 수진이의 어머님과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작정 헤어지라는 이야기를 꺼내셨던 어머님을 설득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님은 나와 수진이의 나이를 이유로 헤어지길 바라셨다.

나는 어떻게든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어머님의 약점을 찌르는 듯한 발언을 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끝내 우리의 관계를 허락하진 않으셨다.

어머님이 마지막으로 보이셨던 모습을 떠올려본다.


 모습은 나의 무신경한 말에 상처를 입은 모습이었다.

우리를 어떻게든 헤어지게 하려고 하는 어머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무리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어머님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음에도 결과는 시원찮았다.

그러므로 나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는 것이다.


말이란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바뀌는 주관적인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커플에게 사랑해라는 말이 오가는 것과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고백하는 사랑해라는 말이 같은 의미일 리가 없지.

내가 수진이에게 사랑을 고백하듯 어머님에게 수진이와의 사랑을 열렬히 고백한다고 해도 어머님에겐 닿지 않는다.


내가 수진이를 위하는 마음을 사랑이라는 말로 담아낼 자신이 없다.

어머님도 결코 들어주실 생각이 없겠지.


나와 어머님의 사이에는 수십 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쌓아온 가치관과 상식이라는 이름의 벽이 세워져 있다.

어머님의 마음에 정말로 닿고 싶다면 평범한 말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소설인 것이다..

나의 마음이 그녀에게 닿기를 기도하며 한 글자씩 써내려가려는 것이다.

수진이는 나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서더니 나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수진아?"


"왜 엄마를 괴롭히고 그래요?"

그렇게 말하더니 본인이 때렸던 부분을 손으로 만져주다가 나를 끌어안았다.


나를 끌어안은 수진이의 얼굴로부터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갑자기  이래?

"선생님이 연애 초보라서 다행이야."

"뭐요?"

수진이는 그렇게만 말하고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꼬옥 끌어안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들려줬던 말 중에 그녀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수진이는 나를 안은 상태에서 천천히 중얼거렸다.

"이야기가  써질 때는 꼭 제 소설 읽어보세요. 아셨죠?"


그렇게 말하고 내 몸에서 살짝 떨어져서 눈을 맞추는 수진이.

그 입술이 천천히 다가와  입에 살짝 포개어지고 멀어진다.

수진이는 나에게서 멀어지더니 천천히 화장실 방향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얼굴 끝까지 열기가 돌았나 보다.

귀여운 녀석.

결국, 수진이에게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를 말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역시 무리라고 그만두는 건 쪽팔린 일이지.

나는 어떻게든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

"네? 학원 전원 검사를 하라고요?"

 일은 갑자기 찾아왔다.


학원의 본래 스케쥴대로 10월로 모든 강의가 끝이 났다.

11월에 수능을 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기 때문에 남은 것은 수능을 보기 전에 단기간으로 시행되는 특강이다.


수능이 1개월 연장되었기에 특강이 조금 길어지게 되었지만 어쨌든 학원이 계획한 진도는 전부 나간 것이지.

그래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네. 이번에 원장님이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근처의 학원에서 전염병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수능이 1달밖에 안 남았으니 혹시 모른다며 검사하겠답니다."

인한 강사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11월 2일 월요일.

학원은 수강생 전원과 학원 강사진에게 전염병 검사를 받으라는 알림을 보내왔다.


그래도 다행히 진도는 전부 나가고서 나온 이야기라 부담은 적었다.

그리고  검사한다고 어떻게 달라지겠나?


강사들도 학생들도 전부 마스크를 쓰고 강의를 들었다.


그러니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학원에서 확진자가 15명이나 발생하기 전에는 말이다.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생각하지만 다행히도 학원이 미리 짜둔 스케쥴로 진도가 나가서 필수적으로 진행해야 할 강의는 다 진행이 끝났다.

수능 파이널이라며 마지막에 요점정리를 하는 강의가 있지만 이건 환불해주면 그만이지.

학원으로서는  피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피곤한 일이  것이다.


2주간 격리생활을 해야 한다.

그동안 전염을 걱정해서 집에서 나가지도 못하지.

스트레스도 받을 것이고 그러면 컨디션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수진이가 걱정된다.

왜 계속 연달아서 사건이 터지는지 모르겠네.

나는 소파에 주저앉아 여러 가지 것들을 떠올려봤다.

일단 학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학원은 일시적으로 접근 금지가 되었고 원장님은 상당히 속이 쓰린 표정을 짓고 계셨다.

하지만 일이 커지기 전에 미리 검사하길 잘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인한 강사도 같은 말을 했지.

다정 강사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곧 본인이 강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첫 단추부터 어긋나버렸다.

그래도 바로 강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그런 자신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고 있던 모양이다.

내가 다정 강사를 바라보자 어색한 미소가 씁쓸한 표정으로 바뀌었었지.


격리가 끝나면 2주가 지나고 그러면 수능이 정말로 코앞이다.


실질적으로 내가 강의실에  있는 시간이 2주밖에 남지 않게 된다.


내가 곧 사라진다는 사실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래. 이제 국어 강사 김준수는 사라지는 것이다.

 현실이 눈앞에 들이닥쳤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하고 천천히 휴대폰을 들었다.


지금은 수진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진아, 괜찮아?"

`선생님...`

전화기 너머로 수진이의 울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슴이 옥죄는 기분이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뱉고 입을 열었다.

적어도 나만큼은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이 혼란스러운 기분이 휴대폰을 통해 전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괜찮아. 힘내자. 어차피 학원 진도는  나갔잖아."

`그건 괜찮은데요... 그건 괜찮은데...`


수진이는 조금 괴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100일... 못 만나겠네요. 그죠?`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더욱 울적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00일에는 시험준비로 바빠서 그런 거 신경 못쓸까 봐 미리 선물을 준거라며?

나는 수진이가 준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허풍쟁이 녀석.

나는 수진이의 울적한 목소리를 들으며 입을 열었다.


"수진아, 선생님 쓸게."


`네?`


"이번에는 수진이가 정말로 재밌다고 최고였다고 말해줄 소설을 쓸게. 내일부터 갱신될 거니까  확인해. 멀리 있어도 만날  없어도 항상 응원하고 있을게."

`...지금까지 한 줄도 못 썼으면서?`

"그래. 약속할게. 이번엔 진짜야."


`...`

"선생님이 주는 100일 선물이야. 기다리고 있어."


`정말로요?`


"그럼.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하면서 기다려 알았지?"


`네! 내일부터 선생님 소설만 기다릴게요. 히힛.`

"공부는 빼먹지 말고."


`알겠어요~`

수진이는 나의 말에 기운이 난 듯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진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결의를 다졌다.

이번에는 정말로 쓰는 것이다.

나와 수진이의 이야기를ㅡ.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