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7화 〉하꼬 작가와 리메이크(1) (127/301)



〈 127화 〉하꼬 작가와 리메이크(1)

수진이의 어머님은 우리가 결혼하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어느 의미로 보면 허락은 맞다.


하지만 어머님이 보여주셨던 그 모습은 수진이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에서 오는 부채감이다.

우리를 진심으로 허락하고 축복한 것이 아니다.

부모이기에 자식을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하고 아프게 했다는 것에서 느낀 무력감과 패배감에 의해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청첩장을 보내는 일이 오더라도 우리가 아이를 낳더라도 진정한 의미로 우리를 축복해줄 것 같지는 않다.


억지로 뜻을 꺾어버려 납득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속도위반으로 결혼해서 사후승낙을 받는 것과 무엇 하나 다르지 않다.

수진이에게 있어 마지막으로 남은 아군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끝맺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머님이 우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나는 내가 썼던 25화 완결의 소설을 바라보았다.

수진이와 나의 이야기를 비틀어서 썼던 소설.

마무리가 굉장히 어설펐다.

주인공과 히로인에게 설득력이 부족했다.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 외에도 문제점이 여럿 보인다.


나는 소설을 천천히 살펴보며 어떻게 고쳐 쓸까 고민했다.

그래. 하꼬 작가들이 흔히 하는 리메이크다.

본인의 마음이 내키는 데로 써내려갔지만, 반응이 시원찮고 천천히 읽어보니 별로라는 생각에 많은 하꼬 작가들이 시도하는 그 리메이크.


리메이크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호응을 얻지 못한다.

리메이크를 결심할 정도면 작가가 본인의 글에서 많은 결점을 보았다는 것이고 그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이 식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하꼬 작가들은 절필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이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허구가 아닌 소설이다.


굳이 절필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소설이지.

나와 수진이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조금의 상상력을 통해 보완하고 담아낼 뿐이다.

나는 소설을 습작으로 돌리고 리메이크를 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내 소설을 선작했던 사람들에게 알림이 가겠지.


이번에는 저번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이번에 들려줄 이야기는 강범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김준수의 이야기도 아니다.


나는 새로운 글의 프롤로그를 써넣었다.


ㅡ한때는 소설가가 꿈이던 카페의 점장 40살 강준수.

와이프는 부모님 등쌀에 밀려 맞선결혼 결과는 2년차 섹스리스 부부


그런 그의 카페에 단골인 여대생이 있는데 월억킥 웹소설 작가란다.

이것은 7300일의 잿빛 인생을 걸어왔던 강준수가 겪는 7200시간의 일탈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서  수는 없다.


이것은 소설이지 수필이 아니니까.

하지만 수필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낼 소설이다.


어머님이 읽는 순간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소설.

나는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고민하며 조금이라도 좋은 문장이 생각나면 메모장에 옮겨적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옮겨적었다.

 권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기승전결의 결말로 짜 맞춰진다.


하지만 웹소설은 다르다.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독자들이 흥미를  만한 요소를 집어넣어 관성으로 읽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어떻게 이야기를 짜 맞춰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찮으세요?"


월요일이 되어 학원이 시작됐다.


인한 강사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그런 말을 건네왔다.


나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를 표했다.


인한 강사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고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드디어 일러 작업이 완성됐으니까 나중에 확인해주세요. tiger라는 일러레분이 요즘  그리시는데 그분이 그려주셨거든요. 아, 정산금도 내일 들어오니까 곧장 돌려드리겠습니다.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나는 인한 강사의 속사포 같은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의 카톡으로 계좌번호를 보내주었다.

어제는 수진이와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써내려갈지 플롯을 짜느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인제 와서는 왜 굳이 찻집으로 썼는지 내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그냥 학원 강사로 했으면 우리의 이야기를 그대로 쓸 수 있어 편했을 텐데...


인한 강사는 이게 일러스트의 힘이라며 자신의 폰을 들고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그의 소설은 일러스트가 올라오자마자 투데이 베스트에 올라 선작도 1만이 넘었다.

사람들은 일러가 개쩐다며 헤으응이라는 댓글을 달며 거의 축제 분위기에 빠져있었다.

태평한 사람들.

나는 작게 웃으며 그들의 반응을 살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게요?"

"네. 피곤해서 커피라도 마시려고요."

"그럼 오랜만에 함께 갈까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는 인한 강사.


아무래도 오랜만에 흡연실을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피곤해서 조금 걷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한 강사는 나와 함께 걸으면서 본인의 소설이야기를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화수목금토의 다섯 속성은 각각 특징이 있거든요. 화속성은 방출에 특화되어서 한번에 많은 마나를 공기 중에 분사가 가능하고 토속성은 밀도가 높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흡연실에 도착했다.

인한 강사는 아직도 본인의 소설이야기에 빠져있었다.

딸바보에서 이젠 분충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래도 그의 이야기는 제법 듣는 재미는 있었다.

작가의 입에서 나오는 리얼 라이브 스포일러.


이건 귀하군요... 인한 작가님.

"아..."

본인도 아직 쓰지 않은 이야기에 대한 스포일러를 했다는 것에 눈치챘는지 약간 껄끄러운 표정으로 커피를 두잔 뽑아온다.


"그, 죄송합니다. 읽고 계신데 스포일러를 해버려서."

"저 안 읽는데요?"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농담입니다."


"..."

인한 강사는 참 편하겠다.

저렇게 아이디어가 툭툭 튀어나온다니 두개골을 쪼개서 뇌를 살펴보고 싶구만.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인데 그렇게 피곤해 보이시는 거죠?"

"아뇨. 저도 소설을 새로 쓰고 있는데 생각보다 어렵네요."

"아, 이번엔 진짜로 보여주실만한 소설 쓰시는 거죠?"


"선작 1만도 넘은 초대형 신인에게 보여주긴 좀 껄끄럽네요."


"지금 질투하시는 겁니까?"


"아뇨."


우리는 그렇게 별것 아닌 잡담을 나누다가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다정 강사가 강의준비실에 짐을 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다정 강사도 우리를 보고는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준수 강사님 소설 리메이크 하시나 봐요?"

아, 다정 강사도 내 소설에 선작을 했던 사람인 모양이다.

외모만큼 성격도 좋은 사람이다.

"네. 이번에는 조금 장편으로 써보려고요."

"와~ 어느 정도로 써보시려고요?"


"아직은  모르겠는데 한 100편 정도로는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툭툭


인한 강사가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아무래도 왜 다정 강사는 알려주고 본인은 알려주지 않느냐고 섭섭해 하는 눈치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인한 강사에게 소설을 알려주었다.

"K-헤밍웨이!"

"..."

"아, 아하하... 아하하하하..."

인한 강사는 영혼 없이 웃고 있었다.


그래서 알려주기 싫었단 말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자리를 정리하고 오늘의 강의를 준비했다.

***


강의가 끝나고 나와 수진이는 카페에 왔다.

평소와 같이 잡담을 주고받다가 헤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진이는 평소처럼 노트북을 꺼내놓지도 않고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머그컵을 잡고 손을 녹이다가 천천히 입을 여는 수진이.

"선생님, 솔직히 말해봐요."


"뭐가?"

"엄마한테 뭐라고 했어요?"

"몰라."

"정말요?"

수진이는 인상을 쓰며 나를 추궁해온다.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엄마가 이상해요."

"뭐가?"

"뭐가 뭐가 하지 말고요. 선생님 때문이잖아요."

"모른다니까."


"엄마가 오빠랑 똑같은 행동을 해요. 저만 보면 헤어지라고 엄마 죽는  보고 싶냐고 그러시더니 이젠 공부할  힘든 일 없느냐고 물어보고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으면 피곤한데 쉬엄쉬엄하라면서 과일도 깎아서 가져다주시고."


정말로 피가 섞이긴 했나 보다.


나는 작게 웃음이 나왔다.

"아, 역시 뭐했죠?"


"어쨌든 집안 분위기가 조금은 나아졌다는 거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수진이는 역시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모르는 척 커피를 마셨다.


수진이는 나의 태도에서 추궁해봤자 아무런 해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이내 천천히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아, 그러고 보니까요."

"응?"


"소설 리메이크 하시려고요? 저번에는 완결 낸 작품이니까 그대로 둘 거라고 하셨으면서?"

"어, 그러려고."

"흐응?"


수진이는 뭔가 석연찮다는 듯이 작은 소리를 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려는 듯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수진이를 잠깐 바라봤다가 날짜를 확인해봤다.

"수진아."

"네?"

"이제 수능도 진짜로 코앞인데 계속 일일연재할 거야?"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수진이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씨익 웃었다.


"후훗."

"왜?"


그 득의양양한 표정은 마치 그렇게 물어볼 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저 비축분이 30화에요."

"어?"


비축분이 30화 분량이라고?

저번 추석 연휴 때는 한 10화 분량을 쌓아놨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제법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수진이는 장난이 성공했다는 듯이 싱긋 웃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루에 1편씩 자동으로 예약을 걸어놨고 하루에 2편씩 썼거든요."

나는  소리를 듣자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공부는 어떻게 하고?"


"공부도 했죠. 덕분에 고생 좀 했어요. 그래도 전 4~5천 자 분량 쓰는데 1시간에서 1시간 반밖에 안 걸려서 금방이었어요. 미리 플롯을 짜두고 쓰니까 글 쓰는데 막힘이 없어서요."


소설 한 편을 쓰는데 4~5시간이 걸리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나 빨리 쓰다니 놀랍다.


내가 입을 벌리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놀랐죠?" 라며 싱긋싱긋 웃는다.


"그래서 이번 달까지만 쓰고 연재는 쉬고 공부에만 집중할 거에요. 시험 1달 전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렇지..."

"그리고 앞으로 50화 정도면 완결이니까요."

"역시 완결 각은 잡고 있었구나?"

"네. 300화 완결로 깔끔하게 끝내고 싶어요."

"그래."

300화로 완결을 낸다면 완성도는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조금 아쉽기도 하다. 보던 소설의 완결이 다가오면 왠지 읽고 싶지 않은 기분.

나는 수진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페에서 쓰는 소설들은 연금식으로 막 1천 화도 넘고 그러잖아. 너는 그런 생각 해본  없어?"

"아, 연금소설이요? 저는 별로예요."

"왜?"

"이미 프롤로그랑 완결에 대해서 플롯을 짜뒀는데 그렇게 길게 늘이면 솔직히 끌고 갈 자신이 없어서요."


"그래?"

"네. 그리고 장르소설이라도 읽고 나서 괜히 봤다는 소리가 안 나오게 짜임새는 있으면 좋겠거든요."


소설에 나와의 이야기를 집어넣으며 장난을 치던 어린애 같은 면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수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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