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장모님. 따님을 주세요!(7)
"수진이는 어머님과 아버님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공부했다고 했습니다."
"네?"
어머님은 화를 내시다가 내가 하는 말에 급격히 이성을 찾으시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 나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있다.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끌고 나가면 된다.
"수진이는 이 집에서 외로움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의 관심이 오빠에게만 향해서 그게 외로워서 어떻게든 본인을 돌아봐 주길 원해서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공부도 운동도 그리고 성격도요."
"그게 무슨..."
어머니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급격하게 화가 났다가 풀렸다가 하며 오락가락하니 많이 피곤하신 것도 있고 갑자기 치고 들어온 이야기에 머리가 아프시겠지.
정상적인 판단이 서지 않으실 거다.
이때 계속해서 밀어붙여야 한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솔직히 수진이처럼 착한 아이가 뭐가 아쉽다고 저 같은 남자를 좋아할까... 궁금했지만 알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수진이가 저에게서 헤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말을 꺼낼까 봐 두려웠습니다."
"..."
"하지만 수진이가 그러더군요. 오빠가 미웠다고. 오빠만 신경을 써주는 듯한 부모님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고.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럴 수 없었다고. 그러다가 저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본인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겠느냐고 말하더군요."
어머님은 내가 한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셨는지 손바닥으로 이마를 누르며 고개를 숙이고 계셨다.
하지만 그래도 나의 말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다.
기회가 왔으면 놓치지 않는다.
"수진이는 생각보다 어른스럽고 뒤틀린 아이입니다."
"그만..."
"수진이는 저를 한 번도 아버지의 대용으로 생각한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그러더군요. 수진이의 아버님이 수진이를 찾아와서 돈을 달라는 이야기를 꺼냈다고. 엄마와 오빠를 버리고 떠난 인간이 돈을 달라고 찾아온 모습이 역겨워서 없는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윽..."
역시 수진이에게서 아무것도 듣지 못하셨던 모양이지.
좋다. 완전히 이쪽의 페이스로 끌고 왔다.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어머님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담아두었던 거겠죠. 굉장히 어른스러운 아이입니다."
"..."
어머님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신다.
흔들리는 눈동자.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들어 혼란스러운 기색이다.
하지만 내 입을 막지는 않았다.
그러니 나도 입을 다물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왜 이렇게까지 허락을 요구하시는지 궁금할 겁니다. 최악, 속도위반으로 결혼을 허락받으면 그만이니까요."
"..."
"그래도 전 어머님에게 허락받고 떳떳한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왜죠? 이럴 거면 그냥 그러시면 되잖아요?"
수진이의 어머님은 굉장히 지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리셨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은 수진이의 교우관계를 알고 계시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던 몇 명은 알고 있습니다."
"수진이는 지금 학교에서 왕따입니다."
"네?"
어머님의 눈이 부릅떠진다.
아무래도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수진이가 그러더군요.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워서 친하던 친구들에게 상담했더니 다음 날부터 학교에 소문이 났다고. 아빠가 영계 만나 도망쳤다고."
으득.
수진이의 어머님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나에게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격분하신 모양이다.
"수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사를 간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중학교의 소문은 꼬리표가 되어 고등학교까지 따라왔다고 합니다. 여자애들은 수진이의 가정사로 뒷담화를 하며 은근슬쩍 괴롭혔고 남자들은 예뻐지기 시작한 수진이의 환심을 끌려고 다가오고... 그렇게 점점 학교에서 고립되기 시작했다더군요."
"..."
"본인의 몸을 핥는 듯한 시선이 역겨워서 남자들이 싫었고 돈도 못 벌고 머리도 나쁜 또래들이 우습게 느껴져서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수진이의 어머님은 무언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는지 허탈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 수진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산다고 이야기를 꺼낸 것에는 그러한 배경이 있었다.
인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상당히 충격이 크실 거다.
"수진이가 또래보다 성숙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죠."
"수진아..."
어머님은 수진이를 부르며 울적한 목소리를 내뱉으셨다.
아무래도 상당히 충격이 크신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할 말은 끝까지 다 해야겠다.
"수진이에게 고백을 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함께 있겠다고. 그랬더니 수진이가 그러더군요. 120살까지 살라고."
"..."
"본인은 100살까지 살 테니 120살까지 살라고 그랬습니다. 저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습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수진이는 제가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각오하고서도 저를 받아준 겁니다. 그러니 저는 수진이를 포기하지 못하겠습니다."
"..."
수진이의 어머님은 천천히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고 계셨다.
할 말은 다 했다. 이제 수진이 어머님의 이야기를 기다려야지.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어머님이 고개를 드셨다.
눈이 살짝 붉어져 계셨다.
아무래도 눈물이라도 흘리신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
"수진이와 선생님이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습니다. 부모에게도 말 못하는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수진이가 선생님을 신뢰하신다는 것도 이해하겠습니다."
"그럼..."
"그래도 저는... 수진이와의 결혼을 축복하진 못하겠습니다."
아까와는 다르게 힘이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설득은 실패한 모양이다.
"제가 뭐라고 말하든 수진이도 선생님도 헤어지진 않으시겠죠. 그래도 전... 두 사람의 결혼을 웃으면서 허락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숙여오시는 어머님.
나는 입을 달싹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머님. 그럼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 들어주세요."
"뭐죠?"
"수진이에게 지금까지처럼 평범하게 대해주세요. 수진이는 어른스러워도 아직은 학생이니까요. 수능은 최고의 컨디션으로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건가요?"
약간 책망하는 어조로 그런 말을 건네오신다.
하지만 그 말에는 최초와 같은 날카로움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머님께 고개를 숙였다.
"쉽게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
"수진이는 그냥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고 끝낼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저는 기왕이면 화려한 결혼식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수진이는 친구도 없으니 어머님이라도 축하해 주셔야죠."
"..."
"그럼 가보겠습니다."
나는 굳어있는 어머님을 내버려두고 집 밖으로 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는데... 결국, 어머님을 설득하진 못한 모양이다.
나는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어 처남과 집에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수진이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왔지만 나는 그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줄 수는 없었다.
***
집으로 돌아와 넥타이를 풀고 소파에 앉았다.
수진이의 어머님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진심을 다해서 설득하면 꼭 알아주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수진이의 어머님은 단호했다. 수진이를 사랑하는 만큼 이 결혼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으셨다.
수진이의 어머님이 했던 말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죽은 이후 혼자 남게 될 수진이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지.
수진이는 그걸 각오하고 나를 만나고 있으며 나 또한 그녀를 혼자 두고 죽을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님께 나의 말은 닿지 않았다.
쉽게 납득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
수진이가 어떠한 심정으로 받아들였든 부모로서는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다.
결국, 자녀가 슬퍼할 걸 뻔히 아는 데도 허락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겠지.
수진이의 어머님은 이혼을 경험하셨다.
자신의 인생에 절반을 같이 살아온 반려의 배신에 가슴이 찢어지셨을 거다.
그러니 나를 잃고 나서 수진이가 겪을 아픔을 생각하면 결코 이 결혼에 찬성하실 리가 없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 맞겠지.
하지만 그걸 다 알면서도 나는 수진이를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수진이에게 약속했다.
수진이를 더는 혼자 두지 않겠다고.
수진이보다 오래 살아서 평생 수진이를 지켜주겠다고.
수진이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사랑하겠다고.
그러니 나는 계속 발버둥을 칠 것이다.
나는 찬물을 한잔 마시고 머리를 식히며 다시 한 번 상황을 정리했다.
나의 말은 수진이의 어머님에게 닿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수진이에 대한 마음을 고해도 그녀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들을 생각조차 없는 상대방에게 던지는 말만큼 허무한 것은 없을 것이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그 짧지만 많은 감정을 담은 말들은 상대방이 들어줄 의사가 있을 때만 빛을 낸다.
아무리 상대에게 용서를 구해도 감사를 표해도 고백을 하더라도 귀를 닫으면 들리지 않는다.
아마 이후 몇 번을 찾아가서 빌고 또 빌어도 결코 우리의 관계를 허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나는 천천히 내 방으로 걸음을 옮겨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책상에 놓여있는 노트북에 시선이 갔다.
"하하."
웃음이 나왔다.
지금의 김준수를 만들고 수진이를 만나게 해준 존재.
ㅡ소설.
결국은 돌고 돌아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하꼬 작가다.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킬 명작을 쓸 능력도 없고 수천 명이 재밌다고 읽어줄 장르소설 한편조차 만족스럽게 쓸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소설은 수진이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의 매력은 있었다.
그러니 써내려 가는 것이다.
수천 명은커녕 수백 명도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오직 단 한 명.
수진이의 어머님에게 나의 아니 우리의 이야기가 닿으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