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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화 〉장모님. 따님을 주세요!(4) (123/301)



〈 123화 〉장모님. 따님을 주세요!(4)

"수진아."


"네, 선생님."


"이대로 우리 집으로 갈까?"


나는 내 품에서 살그머니 떨어진 수진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수진이의 어머님은 분노로 이성을 잃으셨다. 아마 지금 집으로 들어가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이다.

수진이가 어머님에게 혼나고 맞을 거라고 생각하니 집으로 들여보내고 싶지 않았다.

수진이는 나를 바라보더니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돌아갈게요."

"괜찮겠어?"

나의 걱정이 담긴 물음에 수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방금까지 본인도 떨고 있었으면서 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당당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선생님만 믿으라고 그러셨잖아요. 믿고 기다릴게요. 그리고 이대로 나가버리면 엄마가 선생님을  미워할 테니까요."

"그래. 알았어. 다음에 보자."


"네. 선생님 들어가세요."


나는 수진이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넥타이를 풀며 천천히 소파에 주저앉는다.

"하아..."

역시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겠지.


그래도 말이라도 조금 섞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쫓겨나 버렸다.


어머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여러 말들을 준비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이 정도로 꺾일 생각은 없다.

나야 축객령이 떨어져서 집으로 쫓겨나듯 도망쳐왔을 뿐이지만 수진이는 그 집에 남아있다.

어머니에게 어떤 말을 듣고 있을지 걱정된다.


수진이에게 내게 맡기라는 그럴듯한 말을 해버렸는데 오히려 수진이의 부담만 늘리고 말았다.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소파에 몸을 묻었다.


내일도 다시 찾아가 봐야지.

다음날.

나는 또다시 수진이의 집에 찾아와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ㅡ


`돌아가세요.`





수진이의 집에 다시 찾아왔지만, 수진이의 어머님은 아예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다.


나는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ㅡ

`...`


"어머님. 잠깐이면 됩니다. 시간 좀 내주세요."

`돌아가세요. 경찰 부를 겁니다.`




아예 만나주지도 않는구나.

나는 문에 기대고 서서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만나주실 생각조차 없는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 들고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진아?"

`선생님. 괜찮아요?`


아무래도 수진이의 어머님은 수진이의 휴대폰까지 빼앗지는 않은 모양이다.


어젯밤에는 혹시 몰라서 전화도 안 하고 그냥 잤는데 다행이다.


"난 괜찮아. 어머님이 많이 화내셨어?"


`괜찮아요. 그보다 이제 어쩌죠? 엄마가 만날 생각도 없으니까 다시는 이야기도 꺼내질 말라던데.`


"그래?"


`당장 헤어지래요. 그래서 싫다고 했더니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전화기 너머로 수진이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역시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한 모양이다.


`지금 밖이세요?`


"어, 어머님이 문을 안 열어주시네."

`제가 열까요?`


"아니야. 어머님이 기겁하실 거 같으니까 오늘은 돌아갈게."

`내일도 오시려고요?`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라."

 장인어른이.

`후후, 그럼 기다릴게요.`

"그래. 내일 보자."

`네~ 들어가세요.`


나는 수진이와 전화를 끊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장기전이  것 같다.


다음날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또 수진이의 집 앞으로 찾아왔다.


그날 무릎을 꿇었던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포기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속도위반으로 찾아왔을 것이다.


`돌아가세요!`




또다시 고함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적어도 몇 마디 말이라도 나눠야 설득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나는 어제와 같이 수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도 안됐네요. 어쩌죠?`

수진이는 작게 속삭이듯 그렇게 말했다.


신경이 곤두선 어머니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말하는 모양이다.

나는 수진이와 잡담을 나누며 수진이가 집에서 겪고 있을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집이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TV를 보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 신경을 곤두세운 어머니와 어찌할 줄 모르는 오빠 그리고 본인.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는 상황이겠지.

차를 마시면 무슨 맛인지 모를 것이고 TV를 틀어도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집을 뛰쳐나가 버릴까 싶다가도 그렇게 나가버리면 혹시 나에게 큰일이라도 날까 봐 함부로 행동도 못 하고 있을 것이다.

저 작은 몸으로 그 중압감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난리를 치고 뛰쳐나갔던 그 날.


만약 내가 부모님과 같이 사는 중이었다면 나는 어쩔  없이 그 집으로 돌아가야 했겠지.

그러면 엄청나게 껄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일상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 위가 아파져 온다.

수진이는 지금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니 얼른 이 상황을 끝내야만 한다.


어떻게든 수진이의 어머님을 설득하고 수진이에게 일상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수진아."

`왜요?`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입을 열었다.

"어머님이 다니시는 병원 좀 알려줘. 몇 층에서 일하시는지도 알려주고 가능하면 근무하는 시간대도 알려주고."


`설마 병원에 찾아가시려고요?`


"그래."

집에서 만나주지 않는다면 만날 수밖에 없는 곳으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지.


굉장히 민폐라는 것은 알고 있다.

만나고 싶지 않다는데 억지로 만나려고 하는 게 얼마나 짜증이 나고 혐오스러운 일인지도 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춰있을 수는 없다.

수진이가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악영향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험이 2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이건 치명적인 문제가  수 있다.

이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좋지 않다.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래. 오늘은  쉬고."

`네. 선생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나는 그렇게 또다시 별다른 소득 없이 터벅터벅 차가 주차되어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는 차에 올라타서 곧장 출발하려다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생각해보니 준범이 덕에 거의 10억에 가까운 돈이 생겼는데 인사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답례도 하는 겸 술이나 한잔하면서 울적한 기분을 떨쳐내고 싶어졌다.

전화를 걸고  초 후 준범이가 전화를 받았다.

`뭐냐? 안 하던 전화를 다 하고.`

"네 덕에 돈을 벌었는데 제대로 답례도 안 한  같아서.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 하자."


`술? 이 새끼 또 좆지랄났나 보구만. 그래 형이  마셔줄게.`


"형은 지랄. 그래, 저번에 파전 먹었던 거기 근처에서 보자."

`오냐.`


***

"오랜만이다?  먹고 잘 싸느라 존나 바빴나 보다?"

"뭘 싸 미친놈아."

"술이나 쏘세요."

준범이는 그렇게 말하며 생맥주와 안주들을 시켰다.

점원이 주문을 받아적고 물수건과 뻥튀기를 내려놓고 돌아간다.

나는 물컵에 물을 따르고 한입 마신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오랜만에 얼굴이나 좀 보고 고맙다고 인사  하려고 불렀다."


"지랄하네.  보니 좆지랄나서 신세 한탄 하려고 부른 거구만. 술 마시고 말해. 맨정신으로 듣기 거북  거 같으니까."


준범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점원이 들고오는 생맥주를 기다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점원이 생맥주와 맥주잔을 내려놓고 떠난다.

준범이는 생맥주를 내 맥주잔에 따라줬고 나도 준범이에게 맥주를 따라줬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건배를 하고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스읍 허~ 좋네."


그렇게 말하며 뻥튀기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명절에 수진이를 데리고 친가에 내려갔다 왔거든."

"초반부터 존나 흥미진진하네. 그래서?"


준범이의 상체를 살짝 기울이고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독촉한다.

"수진이랑 같이 집에 들어가고 보니까 안 사온 물건이 있는 거야. 그래서 마트 좀 갔다 오려니 수진이가 집에 남아서 어머니가 점심 준비하는  도와주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냥 혼자 나갔다가 왔더니 어느새 부모님이랑 친해져 있더라고."


"존나 의외네. 너희 부모님이 그렇게 쉽게 허락해주실  같진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팝콘 대신 뻥튀기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굉장히 보수적이니 그렇게 쉽게 허락하는 건 솔직히 의외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찌어찌 그렇게 되어있더라고. 그래서 잘 쉬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그러더라고. 지금이라도 수진이 어머님의 허락을 받으라고."

"그래서?"


나는 다시 맥주를 한입 마셔서 마른 목을 적시고 입을 열었다.

"어머님을 찾아가서 딸이랑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다고 말했지. 그랬더니 얼굴이 싸악 굳어져서 천천히 물어보시더라고. 나이가 몇이냐고."

"아 이제 알겠네. 싸대기 한 대 맞았겠구먼."

"그래. 38살이라고 하자마자 싸대기 한 대 맞아버렸지. 그래도 어떻게 말이라도 붙여볼 수 있을까 했는데 말도 안 들으시더라."

"입장 바꿔 생각해서 니가 부모라도  들을 거 아니냐?"


"뭐 그렇지."

내가 부모였으면 죽빵을 갈겼을 것 같다. 그러니 그 정도면 양반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한글날부터 오늘까지 3일간 계속 찾아갔어. 한 번만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그런데 문전박대당했다."

"오! `문`재인 `전`두환 `박`근혜 김`대`중?"

"돌았냐? 미친 새끼."


나는 그 소리가 뻘하게 웃겨서 크게 웃었다.


준범이는 본인이 말하고도 웃겼는지 키득이기 시작했다.


"적셔!"


"미친놈."


우리는 다시 서로의 잔을 채우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안주가 나오고 안주를 먹고 있으려니 방금까지 고민하던 것들이 사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가  로미오나 줄리엣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네.


"그래서 포기하려고? 헤어지진 않을 것이고 속도위반 각입니까?"


"뭔 속도위반이냐 미친놈아. 그냥 정공법으로 가야지."


안주를 입에 집어넣던 준범이가 다시 안주를 내려놓더니 인상을 찌푸리고 입을 열었다.

"안 만나준다는데 어떻게 하려고?"

"수진이 어머님이 간호사라고 하셔서 병동에 찾아가 보려고."

"...야 그거 개민폐인거 아냐?"

"알아. 아는데 어쩔 수 있나. 어떻게 말이라도 섞어야 하는 상황인데."


"너 좀 변하긴 변했나 보다."


"어?"


준범이는 내려놓았던 안주를 다시 집어 입에 넣고는 오물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그런 거 존나 싫어했잖아. 누군가한테 민폐를 끼친다든가 예의에 어긋나는 뭐 그런 거."


"그렇지."


"하. 이 나이를 먹고도 변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보다. 사람 일이란 게 진짜 모르는 거긴 하네."


준범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맥주와 안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준범이를 따라 그렇게 식사에 가까운 술자리를 가졌다.

우리는 서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연거푸 마셨다.

"역시 맥주로는 안 취하는구먼."

준범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작게 혀를 찼다.


그러다가 잠깐 내 눈치를 살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야."

"왜."

"미안했다."


"엉?"


준범이는 고개를 처박고 본인  접시에 있는 안주를 희롱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고."


"뭐가 미친놈아."

갑자기 뜬금없이 내뱉어지는 사과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술도 잘 처먹는 새끼가 갑자기 술이라도 취했나?

준범이는 계속 고개를 처박고 입을 열었다.


"내가 그때 니 소설 좆노잼에 병신같다고 욕했으면 넌 그냥 준석이처럼 경영학과나 경제학과나 그런데 가서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그러고 살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은 준범이와 눈이 마주쳤다.

준범이의 눈은 제법 진지했다.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다.

"너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준석이보다 성적 좋았잖아..."



나는 오뎅국을 떠먹던 수저로 준범이의 머리를 한  때렸다.


"에이 씨팔!"

준범이는 인상을 쓰며 나를 노려봤다.

"그래서 주식 추천해준 거냐?"


"뭐 그런 것도 있지."

"지랄났구만 씹새끼."


나는 수저를 새로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 인상을 쓰고 있는 준범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니가 병신같다고 했어도 난 언제든지 소설가가 되려고 했을 거다."


나에게 소설은 단지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수단이었으니까.


늦든 빠르든 결국은 소설가가 되자고 덤벼들었을 것이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너져내렸을 것이다.

"아무튼, 덕분에 돈 벌어서 고맙다. 설득력이 좀 생기겠어."


"엉?"


"수진이 어머님으로선 나이 많은 아저씨가 수진이 몸이랑 돈 때문에 접근한 미친놈으로 보일 거 아니야. 10억 정도 있으면 돈 때문에 접근한 게 아니라고 말해도 어느 정도 설득력은 되겠지."

"킹능성이 있구만."


준범이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니가 병신같은 소리 하는 바람에 기분 잡쳤다. 술값 니가 계산해."


"아니, 이 씨발롬이?"

우리는 그렇게 평소와 같은 분위기로 술을 먹고 헤어졌다.

준범이 놈은 아무래도 어느 정도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내가 아내와 좋지 않은 관계가 된 것에 책임감이라도 느끼고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오히려 고마워하면 고마워했지 원망은  한다.


 모든 일이 수진이를 만나기 위함이었다면 나는 시간을 되돌려도 똑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정도로 수진이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다.


그러니 더는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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