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1화 〉장모님. 따님을 주세요!(2) (121/301)



〈 121화 〉장모님. 따님을 주세요!(2)

오랜만에 찾아온 카페.


수진이와 나는 등을 맞대고 평소와 같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수진이의 타이핑 소리를 들으며 카페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이번에는 클래식을  모양이다.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커피의 향기를 맡으며 수진이가 내는 키보드 소리와 부드러운 템포의 클래식.


이게 인생이지.

"선생님, 다리 좀 그만 떨어요."

"아, 미안."

아무래도 머리로는 진정하고 있지만, 몸은 긴장을 하는 모양이다.


벌써 목요일이 되었다. 내일이면 수진이의 어머님을 만나 뵙고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는 날이다.

수진이의 어머님은 어떻게 생기셨을까?


"수진아."


"네."

수진이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머그컵의 커피를  모금 마셨다.

"후우. 말씀하세요."

"그, 어머님에 대해서 좀 들려줄래?"

"그걸 이제 와서 물어보세요?"

수진이는 작게 웃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게 궁금하신데요?"

"잠깐만."


수진이의 어머님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수진이의 어머님을 그만큼 알고 있어야지.

일단 외견이나 성격, 취미나 기호품 정도를 알면 될  같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은 외견이나 나이, 성격, 취미나 좋아하시는 음식이나 뭐 그 정도?"


"맞선이라도 보세요?"

"아니, 맞선이 왜 나와?"

수진이는 음~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엄마가 23살에 아빠를 만나서 24살에 오라비를 낳았다고 했으니까 아마 46 살일 거고요 외모는 저랑 좀 닮았어요."


"응?"

수진이의 어머님은 간호사라고 하지 않으셨나?

23살에 결혼을 했다고?

"아, 엄마는 전문대 간호학과 나와서 3년제라고 그랬거든요. 아빠가 환자로 입원했었다가 만났다고 들었어요."

환자와 간호사의 로맨스라니 뭔가 들으면 그럴듯해 보인다.

뭐 그 결말이 바람나서 이혼을 맞이했다는 것이 씁쓸할 뿐이다.

"성격은 그냥 평범해요. 오빠처럼 저렇게 사는 데로 사는 타입도 아니고 저처럼 할 말 다하고 사는 타입도 아니고."


평범한 성격이라고 하니까 더 어려워진다.

평범한 성격이 도대체 뭔데?

"취미는 드라마 보는 거랑 영화 보는 거? 그 정도예요."

"그러면 좋아하시는 음식이나  그런 건 없으셔?"

"음~ 좋아하는 음식이라..."


수진이는 한참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딱히 없는 거 같은 데요. 아, 그래도 과일은 즐겨드시는 편이에요. 그냥 올 때 과일이라도 조금 사서 오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 그건 잘됐네."

수진이도 수진이의 오빠도 개성적이라서 어머님도 그런 면모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진이의 말을 들어보면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사람이신  같다.


그래도 심지가 굳은 사람이겠지.

수진이의 오빠가 분위기를 잘 잡았다고 하더라도 이혼의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벅찰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잘 키우셨다.


수진이가 억 소리 나게 돈을 벌고 있으니 일을 그만두고 수진이에게 의존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어른으로서 의젓한 모습을 보이고 계신다.


평범하지만 본인이 정한 규칙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이겠지.


나는 수진이의 어머님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내 주관을 섞어서 메모장에 써넣었다.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아예 뒤로 돌아 내 어깨에 턱을 올리고 내가 써내려간 메모를 보고 있다.


"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셨나 보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뺨에 살짝 입을 맞춰온다.

"왜?"


"아뇨. 그냥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쪽쪽하고 뽀뽀를 두어  하셨다.

"이러면 굳이 이렇게 앉을 필요가 있나?"

"그러니까 이제 이렇게 앉지 말자고요. 이제 불륜이 아니잖아요? 그죠?"


"그러고 보니 그러네."


나는 수진이의 앞으로 노트북과 커피를 옮겼다.

"역시 이렇게 마주 보고 앉는  더 좋아요."


"나도 그래."

수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수진이의 어머님을 떠올려본다.

수진이의 얼굴에서 조금은 주름진 얼굴을 하고 계시겠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46살이면 나랑 8살밖에 차이가 안 난다.


그 정도면 그냥 누나라고 봐도 되는 느낌인데...


나와 수진이의 어머님과 수진이가 나란히 길을 걸으면 따님이  예뻐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


"선생님, 엄마 만나는  그렇다 치고 요즘 무협지는 계속 읽고 계세요?"

"무협지? 아 읽고 있기는 하지."


읽고 있기는 하다.

"뭔가 반응이 시원찮은 데요."

"요즘 너무 바빴으니까. 그리고 난 전통무협은 안 맞을 거 같아."

"그래요? 선생님 고유명사나 뭐 그런 거 쓰는 것 때문에 고생하셔서 무협이 맞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며 약간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무래도 꽤 진지하게 고민을 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점이 너에게 더욱 빠져들게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 걸까?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어."

"왜요?"

"나 이제 양판소도 써지는  같으니까."


그래. 나는 이제 양판소도 쓸  있게 되었다.

수진이와 함께 추석 연휴를 보냈던  날.

나는 수진이 덕에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진이가 돌아간 다음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단편으로 글을 끄적이다가 눈치채버렸지.

소설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애초부터 없었다.


소설에 나를 담아낼 필요가 있나? 소설은 소설에 불과한데.


이야기에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


그럴 거면 수필을 쓰면 그만인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소설가가 되려는 것이지 나의 이야기를 녹여내는 수필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나란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다.

나라는 존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오랫동안 써지지 않던 판타지물도 생각보다 편하게 써지기 시작했다.


이름이니 지역명이니 그런 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배경 설정을 작게 잡으면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머물게 이야기를 쓰면 되는 것이지.

이세계물이 유행이니 주인공이 현대인이라고 기준을 잡으면 고블린 한 마리도 제대로 처리를 못 해서 구르고 발광하면서 천천히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면 되는 것이다.


고구마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보지 않겠지만, 묘사에 힘이 들어가서 현실감이 넘치는 밑바닥 인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찾아서 읽어주겠지.


"와..."

수진이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본다.

"왜?"

"마마는 눈물이 나올 거 같아요. 이게 모성애?"

"지랄났네."

"저번에는 마망 맘마줘라고 했으면서?"

"아이 씨."


"아하하!"

수진이는 작게 웃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정말 기뻐요."


"왜?"


"선생님은 모를 거예요 아마."


"뭐가?"

"누군가가 나 때문에 천천히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정말... 정말 어떤 기분인지 선생님은 모를 걸요?"

"나도 알아.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면 귀가 빨개져서 화장실로 도망치던 여고생이 아침에 펠라랑 파이즈리로 깨워주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웅장해지고 부랄이  떨리지."




"악!"


수진이가 제법 강하게 정강이를 걷어찼다.

으으! 입이 만악의 근원이구먼.


"그렇게 분위기를 다 망쳐야 속이 후련했냐!"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았네."

"알면 됐어요. 알면."

수진이는 제법 식은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미안하다 수진아.


네가 너무나 애틋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런 말을 꺼내니까 순간 가슴이 철렁해서 미칠  같아서 그랬다.


그런 개소리라도 안 했으면 당장 카페를 박차고 나가서 너를  방으로 끌고 들어가서 덮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여자는 아름다워진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얼핏 들은 기억이 있는데 사실인  같다.

방금까지 수진이가 짓고 있던 표정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무튼, 내일  시에 오실 거에요?"

"너희 어머님이 편한 시간대로 해야지."

"어머니 내일 오전 근무로 알고 있어요. 점심 이후로 찾아오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러면 3시쯤에 찾아봬 면 되겠다."

"그래요."


"아 수진아, 마트에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거라도 사러 가자."

"네~"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카페를 나섰다.


***

"음~ 그냥 과일 바구니라도 하나 사면 어때요?"

수진이는 카트를 밀면서 그렇게 말해왔다.


"과일 바구니? 그건  환자 병문안 같지 않아?"

"그렇다고 박스로 사 들고 가는 것도  아니지 않아요?"


"하긴..."

나는 수진이와 카트를 밀면서 뭐를 사가야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난한 선물부터 처음에 이야기가 나왔던 과일, 그리고 비싼 와인은 어떠냐는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수진이의 이야기대로 과일 바구니를 카트에 챙겨 넣었다.


"결국은 과일 바구니로 하시네요?"

"수진이 말을 들으면 무조건 좋은 일이 생기거든."

"그래요? 그럼 이제부턴 제 말만 들어요."

"또 기어오르네."

"원래 부부싸움은 아내한테 져주는 거라고 그랬어요."

"그래 그래."

나는 수진이의 말을 대충 무시하며 카트를 끌고 계산대로 향했다.


수진이는 시간을 확인해보기 위해서인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 오라비네."


아무래도 수업 중에 무음으로 해놔서 카톡이 온 지 몰랐던 모양이다.

수진이는 휴대폰을 다시 진동으로 바꾸고는 카톡을 확인했다.

"흡!"


수진이가 깜짝 놀라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수그린다.

"왜 그래?"


"오라비가 오늘 엄마가 냉장고에 식재료가  떨어졌다고 마트에 갔대요. 오랜만에 맛있는 요리를 할 거라고 했으니까 빨리 돌아오라는데 엄마가 마트에 있을까 봐요."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 나도 네 이름 안 부를게. 아니, 여기서 헤어지자. 먼저 나가."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카트를 반대로 끌기 시작했다.

수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와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 수진아?"

흠칫.

"엄, 엄마?"


"여긴 뭐하러 왔어?"


"어? 어어~ 아이스크림  사려고."


"돼지년아, 이제 가을인데 아이스크림은 뭔 아이스크림이야. 살쪄."


"엄마는 내가 살찐 것처럼 보여?"

"너 그러다  간다?"

"예~ 예~"

큰일 날 뻔했다.

나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힐끗 바라봤다.

마스크를 써서 잘 모르겠지만, 수진이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윤기 있는 검은 머리가 닮았네.


수진이의 어머님은 수진이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곧바로 알아보신 모양이다.

평소에 딸을  살펴보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수진이에게 남친이 생긴 것도 눈치채신 거겠지.


큰일 날 뻔했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천천히 수진이와 어머님이 있는 곳에서 먼 곳으로 가서 계산을 마쳤다.

처남. 진짜로 고마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