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처남 강림...!(2)
"인한 강사님 요즘 잠은 제대로 자요?"
"네? 아 뭐 그렇죠."
"표정이 영 아닌데."
"괜찮습니다."
인한 강사의 팔뚝에는 붙이는 파스가 붙어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물파스가 올라와 있었다.
잠도 부족해 보이고 손도 매우 아픈 모양이다.
"소설 쓰는 게 그렇게 재밌어요?"
"처음 쓸 때는 엄청 재밌었는데 지금은 뭐 그냥 그렇습니다."
"그래도 연중 한다는 이야기는 안 하시네요."
"당연하죠! 제 소설 벌써 선작만 5천이라고요? 보는 사람이 있는데 계속 써야죠."
그렇게 말하며 몸을 비튼다.
전신에서 우드득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제 소설 어때요? 재밌나요?"
"재밌긴 재밌습니다. 막 나가는 맛이 있어서 볼만해요."
"그래요?"
인한 강사는 내 감상이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싱글벙글 웃었다.
"안녕하세요."
다정 강사가 웃으면서 인사를 하자 인한 강사가 입을 다물었다.
"안녕하세요!"
활기차게 웃으면서 다정 강사에게 인사를 건네는 인한 강사.
"네. 안녕하세요."
다정 강사에게서는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주말 동안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모양이다.
"오늘도 웹소설 이야기 중이셨어요?"
"우리가 늘 그렇죠. 뭐."
"후후."
짧게 웃으며 짐을 내려놓는 다정 강사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어?"
그러다가 다정 강사가 인한 강사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디 다치셨어요?"
아무래도 시선이 바닥을 향하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지금 발견한 모양이다.
"아, 아뇨. 이건 그..."
인한 강사는 입을 열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참에 그냥 질러버릴까?
또다시 그날 했던 고민을 하는 모양이다.
"소설 쓰고 있어서요."
"소설이요? 정말요?"
아니 그걸 말해버리네.
인한 강사는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그냥 입을 열었다.
"네. 조아라에서 소설 쓰고 있습니다."
"조...아라요?"
다정 강사가 약간 흠칫한 표정을 짓는다.
아, 이건 아무래도 아는 듯한 느낌이다.
다정 강사가 약간 인한 강사에게서 거리를 두듯이 의자를 살짝 내 쪽으로 당겼다.
"큭!"
인한 강사도 실수한 걸 눈치챘는지 고개를 푹 숙인다.
다정 강사는 그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허둥지둥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 그러고 보니! 준, 준수 강사님도 소설 쓰시죠!"
"네? 다정 강사님이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설마 다정 강사님한테만 먼저 보여줬어요?"
인한 강사가 섭섭하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습작 예정이에요. 나중에 다시 다듬어 보려고요."
"그래요? 준수 강사님이 어떻게 쓸지 궁금한데."
"나중에 보여드릴게요. 나중에."
"데자뷔 안 느껴져요?"
"기분 탓이에요."
보여달라고 해서 보여줘도 미묘한 기분이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 소설은 나와 수진이가 주인공인 나이 차 로맨스 소설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읽는다면 뭔가 달콤쌉쌀한 느낌이 들겠지만 나와 수진이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뭐라고 말 못할 찝찝함에 읽기 거북하겠지.
***
"이야 진짜로 성적이 올랐네. 공부 열심히 했나 봐?"
9월 19일 토요일.
수진이와 했던 약속대로 놀이공원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당연하죠~ 아무튼 놀이공원 진짜 오랜만이다."
"얼마 만인데?"
"중학교 때 가고 안 갔으니 한 4년은 됐나?"
"나는 거의 20년 만이야."
"와! 20년! 진짜 선생님이 아재는 아재구나?"
"시끄러 인마."
"아하하하하!"
수진이는 정말로 성적이 올랐다.
국어는 1문제를 틀렸고 영어는 1등급까지 올랐다. 수학은 아쉽게 2등급에서 머물렀지만, 사탐도 만점을 받았다.
무난하게 성적이 오르고 있다.
이렇게 계속 성적이 오른다면 확실히 그녀가 바라는 대학에 무난하게 들어갈 것 같다.
"수진아."
"네?"
"근데 왜 K대학이야?"
"선생님이랑 같은 대학 다니고 싶어서요."
"그런 이유로 대학교를 고르나?"
"성적이 되는 곳 중에 가장 좋은 곳인데요?"
"그래. 뭐 맘대로 해라."
"네. 맘대로 할 겁니다. 김 기사님. 안전 운전하세요."
"예이."
수진이는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성적도 무난하게 오르고 있고 연재하는 소설도 순항이다.
수학이 오르지 않은 것이 조금 걱정이긴 하지만 `가`형이면 3개월이면 충분하다.
수진이는 애초부터 기초가 되어있으니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차를 몰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오빠를 만난 기분은 어땠어?"
"뭐가 어때요? 그냥 성가시고 시끄럽지."
"그래?"
"네. 얼마나 허풍이 심한지 알아요? 최전방에서는 무슨 독수리가 사람만 하다든지 멧돼지가 자동차 크기라고 하는데 으휴."
"허풍이 아닐걸."
"네?"
"전방은 진짜 그런다고 하더라고. 나도 강원도에서 군 생활했는데 최전방은 그렇대."
"진짜요?"
"왜 오빠 말은 안 믿고 내 말은 믿는 거야?"
"선생님이니까요."
"..."
"아, 부끄러워요? 히힛."
싱글벙글 웃더니 오늘은 어떤 걸 순서대로 돌아볼 것이라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어차피 놀이기구가 다 거기서 거기 일 텐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신이 나서 거기엔 뭐가 있고 뭐가 있고 라면서 떠들어 온다.
나는 수진이의 말에 적당히 공감을 해주며 차를 몰았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선 보람이 있는지 오전 중에 도착했다.
수진이가 빨리 빨리라면서 내 손을 당겨온다.
나는 수진이에게 손이 당겨지면서 수진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꽤 짧은 반바지와 크기가 커 보이는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평소보다 상당히 활동적인 옷을 입고 왔다.
"바지가 너무 짧은 거 아니야?"
"으... 선생님도 엄마 같은 말하네요."
"어머님은 걱정돼서 하는 거고."
"그럼 선생님은요?"
"짧은 옷은 내 집에서만 입자."
"으~ 변태."
"..."
"알았어요. 다음부턴 주의할게요."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이끌었다.
놀이동산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거리두기가 우습게 보이는 광경이었다.
우리는 자유이용권을 2장 사서 안으로 들어섰다.
"선생님 저기요 저기."
그렇게 말하며 수진이가 나를 잡아당긴다.
"역시 놀이공원은 이거죠?"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띠를 2개 사서 내 머리에 하나 얹어왔다.
"아하하하!"
수진이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내 머리에 이런저런 머리띠를 얹어보고 본인도 하나씩 손에 집어서 머리에 써보고는 어때요? 어울려요? 라며 연신 물어왔다.
나는 토끼띠를 하나 골라서 머리에 씌워주고는 대충 하자면서 수진이의 손을 끌어당겼다.
수진이는 확실히 시간이 아깝다며 내 손에 끌려왔다.
놀이공원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처음엔 뭐 탈까요?"
나를 올려다보며 그렇게 물어오는 수진이.
나는 천천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뭐 대기열이 긴 것부터 타는 게 낫지 않을까?"
"짧은 것부터 타는 게 낫지 않아요?"
"재밌으니까 길겠지."
"아 그런가? 짧은 건 많이 탈 수 있잖아요."
"그냥 니가 타고 싶은 걸로 타자."
"그래도 돼요?"
"그래."
"히히. 여기에요 여기."
어차피 놀이공원에 오자고 한 건 수진이었다.
수진이가 놀고 싶은 데로 맞춰주기로 했다.
수진이는 정말 드라마에서 커플들이 노는 것 같은 코스로 나를 이끌었다.
이 나이가 돼서 회전목마나 범퍼카를 타게 될 줄 몰랐는데 말이다.
그래도 수진이가 옆자리라고 생각되니 제법 재밌었다.
"봐요. 딱 맞죠?"
수진이가 휴대폰을 보여온다.
오전에 대기열이 적은 놀이기구를 2개 타니 딱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래그래. 밥이나 먹고 생각하자."
"네. 아 밥은 적당히 드세요. 이후에는 저런 거 타러 다닐 거니까."
수진이가 손으로 가리킨 방향을 보니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못 타는데 무리해서 어울리려고 하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빨리 밥이나 먹어요. 배고프다."
밥은 놀이동산에서 파는 군것질로 해결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는 대기열이 긴 어트랙션 앞에 줄을 섰다.
"와.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네요. 뭐가 거리두긴지."
"우리도 왔잖아."
"그건 그렇죠."
수진이는 덥다면서 자신이 가져온 에코백에서 미니 선풍기를 꺼냈다.
"으흐 덥다."
선풍기 바람을 쐬다가 잠시 후면 나에게 바람을 쐬게 해준다.
수진이의 이마에 땀이 보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수진이의 땀을 닦아줬다.
"아."
수진이가 뭔가 부끄러운 듯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사귄 지 얼마 안 된 커플들은 놀이공원에서 데이트 안 한대요."
"그래?"
"네. 대기열이 길어지면 어색해서 대화라도 잘 해야 하는데 뭔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서 분위기만 망친다던데요?"
"그럴 수도 있겠네."
"아, 그러고 보니"
사귄 지 얼마 안 된 커플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별로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 걸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수진이는 한숨을 쉬고는 시트 깊숙이 몸을 기댔다.
대기열이 긴 어트랙션을 3개 정도 타고나니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재밌게 즐겼으니까 빨리 간 거겠지."
"그죠? 아~ 그래도 뭔가 아쉽네요. 저렇게 놀이기구가 많은데 반도 못 타고."
"담에 또 오던가."
"그래도 돼요?"
"어."
"히힛."
수진이는 머리에 쓰고 있던 머리띠를 손에 잡고는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왜?"
"이런 거 좋지 않아요? 이렇게 추억을 만들었다! 이런 느낌이라서."
"그런가?"
"네."
수진이는 머리띠를 만지작거리다가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왜?"
"카톡이 와서요."
"어머님?"
"아뇨. 오라비가 언제 오느냐고 물어봐요."
"음... 한 10분 정도면 도착할 거 같은데."
"네~"
"뭐 집에서 같이 식사하기로 한 거야?"
"네. 엄마가 언제 오냐고 물어보라고 그랬나 봐요."
"그래? 너무 늦었나?"
시간은 6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수진이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조금 늦는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오빠랑 친한가 봐. 내 친구들은 누나나 여동생이라고 하면 학을 떼는데."
"안 친하거든요."
"카톡 주고받으면 친한 거지."
"그런 거에요?"
"어. 아예 말도 안 주고받는 애들도 있다던데."
"그래요?"
수진이는 내 친구들에게 관심이라도 생겼는지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봤다.
나는 수진이의 물음에 적당히 대답을 해주며 차를 몰았다.
그렇게 수진이가 평소 차를 타는 곳에 차를 세워줬다.
"그럼 잘 가고. 주말 잘 보내."
"네, 선생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그래, 잘 들어가고."
"와 씨발 존나 개 놀랍다 동생아."
"흡!!!"
수진이가 깜짝 놀라서 튀어 오른다.
"야... 난 엄마가 너 남친 생긴 거 같다고 알아보라고 했을 때 귀찮게 왜 이런 걸 시키지 했는데 진짜 존나 개반전이네. 아침에 차 타고 나갈 때 대학생인가 싶었는데 와...씨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수진이는 돌발적인 상황에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 수진이 오빠 되는 사람인데요... 잠깐 시간 되시나요?"
수진이를 밀어내고 어색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을 걸어오는 남자.
미묘하게 수진이를 닮은 것 같은 느낌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