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4화 〉처남 강림...!(1) (104/301)



〈 104화 〉처남 강림...!(1)

메모장에 다정 강사에 대해서 적었던 내용을 전부 지웠다.

아무래도 그녀에 대해서 멋대로 이야기에 써넣기에는 꺼림칙함이 남았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노트북을 이리저리 만지자 수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수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요."

"응?"

"이번에  모의고사 성적, 저번보다 좋게 나오면 데이트해주세요."

"이것도 데이튼데?"


그렇게 말하자 수진이가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집 데이트 말구요. 놀이동산 가요!"

"놀이동산?"


놀이동산은 안 간지 거의 20년 가까이 됐다.

마지막으로 간 게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수진이가 눈을 반짝이면서 간절한 표정을 짓는다.


"갔다가 전염병 걸리면 어떡해?"

"걸렸다는 이야기  나오잖아요?"

그래, 안 나오겠지.  많은 인원을 전부 조사하기도 힘들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욕도 먹을 테니까.

질병청의 관리 방침으론 백신이 나올 때까진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처럼 전수조사를 해보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무증상자가 끊임없이 나오겠지.


얼마 전에 택시에 타고 있었는데도 옮았다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택시에 탔어도 마스크는 꼈을 텐데 걸렸다는 것은 비말로 인한 감염이 아닌 접촉으로 인한 감염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근 시간에 만원이 되는 버스나 지하철은 어떨까?

아마 감염이 없다고 보도를 하고는 있지만, 감염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직하게 대중교통으로 인한 감염이 있다고 보도를 하지도 못한다.

교통수단이 없으면 국민 대다수가 경제활동을 못 하고 나라가 마비될 테니까.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집과 학원 그리고 기껏해야 우리 집으로 놀러 오는 수진이가 그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들렀다가 감염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얼굴을 찡그리니 수진이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안 돼요?"


우울한 표정이다. 시무룩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도저히 안 된다는 말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가서 음식물 먹을  제외하면 마스크 제외하지 않기, 마스크는 비말을 확실히 막아주는 좋은 마스크로 쓰기, 손은 주기적으로 소독제로 소독하기. 이렇게 약속하면 갈게."

"흐~ 너무 깐깐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아무튼, 좋아요!"

"성적이 나와야 가지."


"걱정하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열심히 공부를 시작하셨다.

수진이는 점심을 먹을 시간이  때까지 열심히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적당히 무협지를 찾아보거나 근래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

"잘 먹겠습니다."

"그래."


수진이와 한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수진이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것이 있어서 입을 열었다.


"야 수진아."

"네?"

입을 가리고 나를 바라보는 수진이.

"혜정이 번호 지웠지?"

그러자 수진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필요 없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수진이의 표정은 극히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건 안 지웠고?"

"제가 막 선생님 교우관계에 참견하고 막 그러는 귀찮은 여자로 보이세요?"


"조금은?"


"흥!"


기분 나쁘다는 듯이 밥을 먹고 있는 수진이를 바라본다.


혜정이에 대한 이야기는 더는 꺼내지 말아야겠다.


이름이 나오는 순간 곧바로 표정이 딱딱해진다.


나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어떻게 해보려고 입을 열려다가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에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의 전화였다.

"잠시만."

"누구예요?"

"어머니."

"아."


"여보세요?"

`준수니? 바쁜데 전화 건 거 아니지?`

"아니에요.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은... 변호사 선생님이 이혼 잘 마무리됐다고 해서 연락해봤어.`

아무래도 변호사가 어머니에게도 이혼에 관해서 말한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궁금해서 어머니가 먼저 전화를 거셨을지도 모르지.

"전 별일 없어요. 잘 마무리됐고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학원은 뭐 전염병 문제라든지 없고?`

"아직까진 없어요.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고."

`그럼 다행이고. 그래서 그... 준수야.`

"네, 말씀하세요."


`이번 추석에는 내려올 거니?`


추석이라...

이번 추석은 이례적으로 긴 연휴다.

원래라면 한번 내려가는 것이 맞겠지.

우리 집은 아버지의 친가에 문제가 있어서 설날이나 추석을 모두 집에서 지낸다.


그러니 내가 내려가지 않으면 굉장히 쓸쓸한 추석이  것이란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지랄을 낸 상태에서 아버지와 얼굴을 맞댄다는 것이 너무나 불편했다.


"이번에는 전염병 문제도 있고 해서 다음에  진정되면 내려갈게요."


`그러니? 그러면 몸조심하고. 들어가.`


"네, 어머니도 마스크 꼭 차고 다니시고요. 들어가세요."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한동안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친가에 내려가는 것보다 더 위험한 놀이동산에 놀러 가자는 이야기를 꺼낸 입으로 전염병을 핑계 삼아 도망쳤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나 시원했는데 완전히 틀어져 버린 관계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져 온다.

영원히 담을 쌓고 살지도 못하는 처지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안 내려가세요?"


"어. 그러려고."

"..."

수진이는 약간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수진이에게 네 잘못이 아니니 그런 표정을 짓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약간 답답한 분위기인 채로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


수진이와 함께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수진이는 차가운 커누를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아, 아뇨. 그냥 공부하니까 좀 피곤해서요."

"그래?"


수진이와 나는 뭔가 말은 했지만 어색해진 분위기를 좀처럼 해결하지 못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수진이의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아니!  여기서 가슴을 만져요?"

기겁해서 나를 돌아보는 수진이가 보인다.


"그냥."


내가 다시 가슴을 조몰락거리자 수진이가 꿈뜰거리며 몸을 뒤척인다.


"하읏! 하, 하지 마요. 오늘 공부하기로   아니었어요?"


"안 할게. 가슴만 만질게."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만지려고 하니 수진이가 손을 탁 쳐낸다.


"안  거면 만지지 마요."


"그럼 하면 만져도 돼?"

그렇게 말하자 수진이가 약간 부끄러운 표정으로 손을 내린다.


쩝. 기분도 잡쳤는데 야스나 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수진이의 가슴을 만지려고 하니 이번에는 수진이의 휴대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나는 수진이에게서 잠깐 멀어졌다.


"여보세요?"

`뭐하냐?`

"누구세요?"

`오라비 목소리도 까먹었어?`


"장난 전화면 끊을게요."

`아 씨발! 미친년아! 끊지 마. 할  있다고.`


"뭐야, 나 바빠."

``뭐야~ 나 바빠~``



수진이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휴대폰.


수진이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전화를 받았다.

"아 왜!"


`할  있다고 했잖아 미친년아. 나 전역함.`


"어?"

`나 전역했다고. 오늘 울 엄니가 맛있는 거 많이 해준다고 집에 들어오래.`


"왜 벌써 전역이야?"

`사단지침 나왔는데 말년들 그냥 휴가 나가고 부대로 복귀하지 말래. 휴가와 동시에 전역이다.`

"아이 씨. 알았어."

`그래, 썅년아. 성격 좀 죽이고. 오라비 없었으면 니가 돈을 벌었겠냐? 나한테 잘해야지.`


"지랄 좀 그만해. 그냥 말뚝이나 박지 왜 나왔어?"

`지랄시나이데`




수진이의 전화가 끊어졌다.


아무래도 수진이의 오빠라는 사람이 전역한 모양이다.

"저 돌아가 봐야 할 거 같아요."


"그래?"


"아쉬워요?"

"어. 그러니까 가슴 좀만 더 빌려줘 마망."

"풉!"

수진이가 아하하하!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빌려줄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올랐던 수진이 오빠라는 존재의 호감도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후우... 그래도 답답하던 분위기가 많이 희석됐다.


수진이는 짐을 챙기더니 나한테 팔을 벌렸다.

나는 수진이를 그냥 살포시 안아줬다.

"선생님 다음 주 토요일에 꼭 시간 비워두세요."


"알았어."


"그럼 갈게요."


"그래."


나는 수진이의 몸을 놓아줬다.

오늘도 수진이와 즐거운 주말을 보내겠다 싶었는데 이게 이렇게 되는구나.

수진이를 배웅하기 위해 현관까지 따라 나왔더니 수진이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잠깐만요."

그렇게 말하면서 손짓을 한다. 잠깐 고개 좀 숙여보라는 것 같다.

나는 수진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쪽.


수진이의 입이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어,  그래."

"후훗."


수진이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수진이가 떠난 집에는 고요함과 씁쓸한 커피 향이 남았다.


***

집안일을 끝내고 저녁 식사마저 끝내고 9시가 되었다.


주말마다 수진이와 놀다 보니 수진이가 없는 시간이 너무나 따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습관적으로 수진이에게 연락하려다가 그만뒀다.


아마 지금쯤이면 수진이의 가족은 식사를 끝내고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집에 돌아온 그 오빠라는 사람이 떠들면서 본인의 전역썰을 풀기 시작할 것이다.


통화내용을 조금 들은 것만으로 그가 어떤 인물인지 대충은 감이 왔다.


과장과 허풍 그리고 조금의 사실을 섞어 맛깔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수진이는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오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다.

어머님도 오랜만에 몸 건강히 돌아온 아들을 봐서 즐겁게 이야기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광경을 상상하고 있으려니 아침에 걸려왔던 전화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역시 피하지 말고 한번 대화를 해봐야 할까?


언제까지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결국 나는 전화를 걸기로 했다.


"여보세요."


'준수니? 무슨 일이야?'


"이번 추석... 내려갈게요."

'그래? 괜찮겠어?'

"네."

'그래. 알겠어. 언제 내려올거니?'

"음..."


달력을 보고 날짜를 확인해본다.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휴무로 5일간의 휴일이다.

"9월 30일에 내려갈게요."

'그래. 알겠다. 점심쯤에 내려오지?'


"네. 가던데로 갈게요."

'그래, 몸 조심하고'


"네, 주무세요."


'그래. 들어가라.'


"네."


전화가 끊어졌다.

이걸로 됐다. 언제까지고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휴대폰을 소파에 던졌다.


그 지랄을 내놓고 얼굴을 봐야 한다니 벌써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