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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화 〉이럴거면 왜 그러셨어요...?(5) (102/301)



〈 102화 〉이럴거면 왜 그러셨어요...?(5)

아침 7시.

평소와 같은 시간에 눈이 뜨였다.


9월 12일 토요일. 수진이가 찾아온다고는 했지만 언제 찾아올지는 모르겠다.

어제는 나의 송별회와 다정 강사의 환영회를 겸한 회식을 했다.

침대에서 몸을 천천히 일으켜서 기지개를 켠다.

점점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어제 다정 강사를 우리 집에서 재웠다.

소파에서 그대로 뻗어버린 거로 기억하는데 일어나서 본인 집으로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방에서 나왔다.


다정 강사는... 소파에 뻗어있었다.

잘 자는 구나. 그래, 그렇게 소맥을 말아 드셨다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천천히 세수하고 부엌에 섰다.

술을 마신 다음 날엔 북엇국이 제격이지.


재료를 꺼내고 식사준비를 시작한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다정 강사는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모양이다.


다 큰 여자가 조심성이 없기는 하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식사 준비를 마쳤다.


다정 강사를 깨워서 내보내야지.


"다정 강사님. 다정 강사님 일어나세요."

나는 지난밤의 교훈에 따라 그녀를 흔들지 않고 두드리면서 깨웠다.

"으응..."


다정 강사가 잠꼬대하며 몸을 뒤척인다.

아, 가슴이 진짜 엄청 크긴 크구나...


35살 놈이 왜 그렇게 다정 강사에게 집착하는지   같기도 하다.

만약에 내가 수진이를 만나지 않았고 어쩌다가 다정 강사와 얽히게 된다면... 내가 그 35살처럼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나는 독서라는 공통된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대화에 불편함도 없었으니까.


"하암~"

다정 강사가 하품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뜬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다정 강사.


다정 강사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더니 "아" 소리를 내고는 몸을 움츠렸다.


"세수하고 오세요."

"네..."


다정 강사가 고개를 푹 숙이고선 화장실로 향했다.

술에 취했던 지난밤과 달리 맨정신인 아침은 여러 가지로 죽고 싶을 심정일 것이다.


첫사랑이니 금사빠니 뭐 그런 말도 오갔고 내 몸에 토사물도 뱉어냈으니 얼굴 보기도 민망하겠지.

약 5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정 강사가 나왔다.

"자리에 앉으세요. 술 많이 마셔서 속이  좋을 테니 그냥 해장국이라도 드세요."


그녀가 자리에 앉아서 북엇국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어젯밤엔 죄송했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다.

"됐습니다. 얼른 드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술이 세다는 것은 정말인지 밥도 먹는다.


밥을 먹으면서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

당신은 미인이고 성격도 좋으니까  정도 실수는 털어내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아..."

그러니 그렇게 한숨만 쉬지 말고 힘 좀 내세요. 다정 강사님.

***


식사를 끝내고 그녀의 앞에 차를 타주고 나니 어느새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되어있었다.


다정 강사도 이젠 제법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찝찝하지 않아요?"


내가 그렇게 말하며 내 옷의 가슴을 가리키니 그녀가 그것을 바라보고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니 얼른 들어가서 씻어야죠. 그, 죄송했습니다. 드라이클리닝 비 드릴게요."

"괜찮아요. 그냥 세탁기 돌려버렸으니까. 아, 혹시 다정 강사님 그 옷 드라이클리닝 해야 했나요?"

도리도리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야 했어도 아니라고 했을 것 같다.

다정 강사는 그런 사람이니까.


나는 천천히 그녀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어색함이 사라졌다. 이제는 그냥 훌훌 털어낸 모양이지.

그래. 그거면 된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마셨다.

삑삑삑삑 위잉


"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왔어요. 선생님!"

그렇게 말하며 집으로 들어오는 수진이.

나와 수진이의 눈이 마주친다.

지금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나는 멍한 눈빛으로 수진이를 바라봤다.


수진이는 내 눈을 바라보다가 내 앞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다정 강사를 바라본다.

다정 강사도 돌발적인 상황에 놀랐는지 굳어버렸다.

수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선생님 보고 싶어서요. 안돼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수진이의 눈은 장난기로 가득했다.

"선,생님?"

다정 강사가 깜짝 놀라서는 우리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어?"

수진이는 그 반응을 보고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쳐다본다.

"하아..."


아무래도 다정 강사는 우리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모양이다.


그냥 여친이 있다 정도로만 생각한 모양이지.


나는 멍하게 있는 다정 강사를 바라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씻고 오세요. 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굳어있던 다정 강사가 엉거주춤 일어서서는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 수진이를 바라봤다.

"노렸지?"

그렇게 말하자 수진이는 싱긋 웃으면서 내 옆구리를 살살 꼬집어온다.

"모르겠는데요?"


이건 딱 봐도 혹시 내가 다정 강사가 그렇고 그런 관계를 저지른 게 아닐까 싶어서 호다닥 뛰어온 것 같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온 것으로 보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밥만 먹고 뛰어온  아닐까?

"저 배고파요. 밥 주세요."

"밥도 안 먹고 왔어?"


"우유 한잔 마시고 왔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칭얼거리는 수진이의 머리를 몇 번 두드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님이 용캐 보내주셨네?"


그렇게 말하자 수진이가 히히거리며 입을 열었다.


"요번에 거리두기 끝나서 늦게 가면 도서관에 자리 없다고 빨리 나가겠다고 말하고 나왔어요."


"그래?"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부모님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긴 하겠다.

영악한 녀석이다.

나는 수진이에게 밥을 차려주곤 수진이의 앞자리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힘차게 인사를 하고는 밥을 먹는다.

나는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아하니 영락없이 그 또래의 여자애로 보인다.


아이보리색의 허리에 악센트가 들어간 하늘하늘한 원피스와 촉촉해 보이는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과하게 꾸미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충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닌 그 절묘한 꾸밈이 청초함과 섹시함을 함께 뽐내고 있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열심히 밥을 먹던 수진이가 천천히 입을 연다.


"왜요?"

나는 입을 오물거리며 나는 바라보는 수진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도 수진이가 예뻐서. 볼 때마다 입는 옷이 달라지는  같아."


"히힛."


싱글벙글하며 밥을 먹는다.

이 정도 립서비스에도 기쁜 것일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응? 선생님?"

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자 의아했는지 나를 부르는 수진이.

"잠깐 청소  하게."


나는 수진이를 돌아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어제 다정 강사를 집으로 들일 때 토사물이 어떻게 됐을지도 모른다.

나는 소파부터 문까지 살펴보았다.


어젯밤에 대충 치웠는데 별다른 위화감은 없었다.


소파에서도 흔적은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밥을 다 먹었는지 수진이가 나에게로 걸어온다.


"어제 진짜 별일 없었죠?"

그렇게 말하며 살짝  옷을 잡아당겨 온다.


살짝 불안한 눈빛이다.

나는 천천히 수진이의 입에 키스를 해줬다.


짧게 입술이 닿는 느낌의 키스. 수진이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본다.

"괜찮아."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살짝 두드려준다.

수진이는 내 몸을 살며시 끌어안아 온다.


나도 수진이를 잠깐 끌어안고 있었다.

수진이는  몸에서 살짝 떨어지더니 화장실로 향했다.


아무래도 양치라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식탁을 치우고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대략 8시 반쯤의 시간이 되었다.


다정 강사는  9시쯤에 오려나?

어디부터 말을 해줘야 할까? 아니면 그냥 거북해서 오지 않는다고 할까?

설거지하며 다정 강사가 오고 나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했다.


다정 강사가 입을 나불거려서 우리의 비밀을 소문내고 다닐 타입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준 사람이다.

성의를 표할 필요는 있겠지.


나에게 실망을 할 테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사실대로 말해줄 생각이 들었다.

***

식탁에 나와 수진이 그리고 다정 강사가 앉아있다.

수진이는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내 옆구리를 살살 찔러온다.

나는 다정 강사를 바라봤다.

다정 강사는 몸에 달라붙는 하늘색 치마와 그에 어울리는 하늘색 꽃무늬가 들어간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여름에 맞게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느껴지는 옷이다.

그녀가 평소 주변에 보이는 소심함과는 대비되는 옷이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수진이를 힐끗 쳐다봤다.

수진이는 다정 강사의 가슴 부근을 열심히 노려보다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살짝 기운이 없는 듯한 눈치다.

그녀의 가슴을 보고 자신의 가슴에 자신감을 잃은 것일까?


있는 놈이 더 하다더니 우스운 광경이었다.

나는 수진이의 모습에서 잠깐 용기를 얻고는 입을 열었다.

"그... 제가 학원을 그만두는 계기가 이 애랑 사귀는 것 때문입니다."

"네..."


"부부싸움을 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아내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해서요."


나는 그렇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정 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내가 열심히 입을 열고 수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다정 강사를 살피는 눈치를 보이고 다정 강사는 내 말을 들으며 가끔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에게 3월 말에 시작된 우리의 작은 인연에 대해 전부 토해냈다.


그녀는 후우 하고 한숨을 토해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 그 소설의 작가가 고등학생일 줄 몰랐네요. 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수진이에게로 눈을 향한다.

수진이는 잠깐 굳어있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수진이라고 합니다."


아직 인사도  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일까? 수진이가 어색하게 인사를 한다.

"아, 안녕하세요. 이다정입니다..."


다정 강사도 어색하게 고개를 숙인다.


굉장히 어색한 공간이다. 나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입을 열려고 했는데 잠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다정 강사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다정 강사의 눈은 생각보다 초롱초롱했다.


"뭔가... 뭔가 로맨스 소설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빛낸다.


나는 다정 강사의 눈을 바라보며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약간 어긋난 듯한 감상을 내뱉는다.

보통은 기분 나쁘다거나 뭐 이해한다거나 그 둘  하나의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눈빛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이도 싱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도 가끔 그런 생각 해요. 뭔가 이렇게 운명이 서로를 이끌었다던가 흣!"

본인이 말하고서 닭살이라도 돋았는지 말을 하다가 만다.

그 말을 들은 다정 강사는 뭔가 연애 이야기를 하는 여고생처럼 눈을 빛내면서 수진이를  번 쳐다봤다가 나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혹시 저도 그 준수 강사님이 쓰신 소설, 읽어볼 수 있을까요?"

"뭐, 어차피 무료연재 소설이니 자유죠. 읽고 부족한 점만  알려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다정 강사는 신이 난 표정으로 내가 알려준 작가명을 찾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뭔가 눈치를 챈 듯 내 수중에 있는 컵을 바라본다.

"K-헤밍웨이"

그녀는 잠깐 말없이 내 컵을 바라보더니 작게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있으면 방해겠죠? 그럼... 준수 강사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네. 다정 강사님도요."

다정 강사가 집에서 나가고 수진이와 나만이 남았다.


긴장이 풀리고 몸에 힘이 빠져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수진이는 나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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