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선생님?(1)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있자 다정 강사가 강의준비실로 들어왔고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끝냈다.
"오늘도 웹소설 이야기하셨어요?"
웃으면서 그렇게 물어오는 그녀
이제는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그렇죠 뭐."
그러자 그녀가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짐을 풀고 있는 다정 강사에게서 불편함이 느껴지진 않는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저 약간 길어서 시야를 방해하는 머리카락만 어떻게 하고 약간 굽은 등과 라운드 숄더만 해결하면 되겠다.
자세히 보면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쁜 사람이니까 조금 더 당당했으면 좋겠다.
"주신 자료 전부 읽고 어느 정도 외운 것 같은데 다른 자료는 더 없나요?"
"벌써요?"
"네. 제가 원래 암기는 좀 잘하는 편이라서요."
사실이라면 놀랍다.
최소 3주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자료도 넘겨주겠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전체 자료를 전부 건네주고 본인이 스스로 판단해서 정리한 내용을 내가 검증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다정 강사는 한동안 인수인계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인한 강사는 담배 좀 피우고 오겠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떠나가는 인한 강사를 잠깐 바라봤다.
한다면 하는 남자였다.
인한 강사는 아무래도 전자담배도 곧 끊겠지.
그의 재능이 부러웠고 몇 년째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공연히 수진이가 보고 싶어졌다.
8월의 마지막은 수진이와 함께 보내자고 이야기를 꺼내볼까?
몰래 나오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9살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하다니 중증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수진이를 보고 싶었다.
***
"9월 모의고사가 1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모의고사인 만큼 지금까지 노력해온 만큼 좋은 성적 거두셨으면 좋겠고 10월에는 학원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모의고사가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강의를 끝마친다.
오늘은 8월 28일 금요일
드디어 길고 길던 1주일이 끝나고 주말이 다가온다.
오늘은 칼퇴근을 하고 수진이를 부르도록 하자.
나는 곧장 강의준비실로 향했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다정 강사도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내가 나가려고 하니 35살과 눈이 마주쳤다.
나와 다정 강사가 같이 나가려고 하니 뭔가 의아한 눈초리를 보인다.
아차 실수했나?
"어? 준수 강사님. 다정 강사님이랑 약속이라도 있어요?"
인한 강사가 그렇게 물어온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뭐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말하면 되지.
"다정 강사님이랑 방향이 같아서 카풀하고 있습니다."
"아~ 카풀. 과연. 역시 차가 있어서 좋네요. 그럼 저도 실례하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이번 주말도 기대하세요~"
신이난 표정으로 강의준비실을 달려나가는 인한 강사
주말에 집에서 소설을 쓸 생각을 하니 그렇게 즐거운 것일까?
한편 나와 다정 강사가 카풀을 한다고 하니 35살은 굉장히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친도 아니면서 그런 표정은 왜 짓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른 강사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다정 강사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다정 강사님"
"네, 준수 강사님도요."
그렇게 말하면서 헤어지려고 하니 다정 강사가 나를 잠깐 돌아본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 아뇨! 오늘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네. 다정 강사님도요."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준비하고 수진이에게 연락을 해보자.
요리를 하면서 1주일간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본다.
읽었던 것들은 빌려 온 목향 10권과 인한 강사의 소설이었다.
목향은... 조금 실망했다.
학창시절때 친구들이 그렇게 재밌다고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막상 읽어보니 별로였다.
1~4권의 이야기는 무협의 이야기였는데 갑자기 판타지 세계를 가더니 여자가 되어버린 주인공을 보곤 이게 뭐지 싶었다.
뭐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일단 요즘 나오는 TS물 마냥 연애를 하지도 않고 주인공이 강하긴 해도 세계관을 부숴버릴 정도로 초월적 존재도 아니었으며 판타지 세계의 세력구도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읽고자 했던 소설은 순수하게 무협지였는데 이게 무협지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의 평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1~4권까지는 다들 재밌게 보는데 2부부턴 호불호가 갈리고 3부와 4부는 악평이 더 많다.
갈수록 필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다른 작가의 대필이라고 까지 주장하는 사람마저 있었다.
아무래도 이 소설로 무협을 공부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다.
목향 하차합니다. 작가님은 상하차하기엔 나이가 좀 많으시니 건필하십시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저녁 준비를 끝마쳤고 윾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젠 수진이에게 연락을 할 시간이다.
나는 수진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수진아 잠깐 시간 있니?'
그렇게 보내자 1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답장이 온다.
'네. 무슨 일이세요?'
뭐라고 보내야 할까?
'주말에 시간 되니?'
그렇게 보내자 숫자는 사라졌는데 답장이 보내져 오지는 않는다.
나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저 보고 싶으세요?'
'어'
그렇게 보내자 잠시 시간이 흐르고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외로우시구나?'
키득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 왠지 얼굴이 좀 보고 싶은데"
그렇게 말하자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후, 후훗 그래요? 어떻게 할까나~'
그렇게 말하며 뜸을 들인다.
이러면 거의 100퍼센트 온다는 말이 나온다.
조금 기다리자 수진이가 입을 열었다.
'네. 내일 오전에 봐요.'
"그래"
'후후, 저 정말 많이 사랑하시나 봐요?'
"말했잖아. 사랑한다고"
'네~ 알겠어요. 그래서 지금 뭐하세요?'
"뭘 그냥 밥 먹고 쉬고 있지. 너는?"
'저요? 저는 음... 히힛'
"왜?"
'저 선생님 생각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딱 연락이 와서요.'
"..."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니 뭐라고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 부끄러워요? 히힛'
수진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머니가 뭐라고 안 해?"
'처음엔 화를 내시다가 그냥 넘어갔어요. 다음부턴 조심하래요.'
"그래?"
'네. 역시 성적도 좋고 돈도 잘 벌고 예쁜 딸이니 그렇겠죠?'
"그래그래"
'아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에요?'
"본인 입으로 예쁘다고 하는데 뭐라고 말해줘?"
'저번에는 얼굴도 예쁘고 가슴이랑 골반도 크고 다리도 섹시하고 허리도 가늘다고 했잖아요.'
얼굴이 예쁘기는 하지만 그 말은 꺼낸 기억이 없는데 알아서 잘 지어내고 있다.
수진이와는 한동안 그런 별것 없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주말이 끝나고 9월이 되면 방학도 끝나서 싫다는 이야기와 요즘은 카페에 못 가서 아쉽다거나 연재하면서 공부하려니 피곤하다는 신세 한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라도 수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약 20분간 대화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주말이 기대된다.
전화를 끊고 잠시만 쉬었다가 운동을 해보려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세요?"
'택배요!'
택배가 온 모양이다.
나는 곧장 문을 열고 나갔다.
"김준수 씨 맞으신 가요?"
"네"
"여기 택배요."
"네 감사합니다."
철컥
문을 닫고 택배 상자를 방으로 가지고 왔다.
상자를 열어보니 잘 포장된 머그컵이 2잔 나왔다.
아~ 수진이와 데이트했을 때 만들었던 머그컵이 도착한 모양이다.
다행히도 깨지지 않고 잘 구워졌다.
나는 머그컵을 한번 깨끗이 씻어서 식기건조대에 올려뒀다.
수진이가 와서 이 컵을 보면 기뻐할 것을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
토요일 아침 7시
평소와 같은 시간에 눈이 뜨였다.
오늘은 수진이가 찾아오는 날이다.
방은 깨끗해 보였지만 수진이가 오니 조금은 더 깨끗하게 해두는 것이 좋겠지.
샤워를 하고 아침을 차려 먹고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진이가 언제쯤 도착하려나?
나는 시간을 살피며 수진이의 도착을 기다렸다.
삑삑삑삑 위이잉
문이 열리고 수진이가 들어온다.
서둘러서 문을 닫고 들어오는 수진이
"후우... 세이프~"
수진이가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는다.
"어서와. 많이 더웠어?"
"네. 더운 것도 있고 혹시 그 강사님한테 들킬까 봐 조심스러웠어요."
하긴 그러니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서둘러서 들어왔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진이를 소파에 앉혔다.
"뭐 마실래?"
"그냥 시원한 보리차 주세요."
"알았어"
수진이가 방에 들어온 것만으로 분위기가 밝아지는 구나
나는 수진이의 앞에 보리차를 따른 컵을 내려놨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컵에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던 수진이가 컵을 내려놓더니 시선이 컵에 머문다.
"아! 이거?"
"어. 어제 왔어. 다행히 안 깨졌더라."
수진이는 나는월억킥이라고 적힌 머그컵을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후훗"
즐거운 듯이 웃으면서 컵의 표면을 쓰다듬는 수진이
수진이가 나를 돌아보며 싱긋 웃어 보인다.
"선생님도 컵들고 이리로 앉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앉은 소파의 옆부분을 툭툭 두드린다.
나는 수진이 말대로 K-헤밍웨이가 적힌 머그컵을 들고 수진이의 옆에 앉았다.
수진이는 보리차가 든 물통의 물을 내 머그컵에 따라줬다.
그리고는 내 머그컵과 본인의 머그컵을 나란히 내려놓곤 사진을 찍는다.
"히힛"
뭐가 좋은지 그렇게 웃던 그녀가 내가 살짝 머리를 기댄다.
"저 뭐 달라진 거 없어요?"
"응?"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아무래도 오늘은 머리 모양이 바뀐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모양이다.
"머리 예쁘네. 그걸 뭐라고 하더라?"
"반머리요. 예뻐요?"
"그래 예뻐"
나는 그녀의 머리의 끝 부분만 조심스럽게 만져본다.
과연 머리를 건드리면 셋팅이 망가진다고 조금 화를 내겠지.
"뭔가 반응이 조금 그런데요..."
"그럼 어떻게 말해?"
"그건 또 그러네요."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시간은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수진이는 언제까지 집에 있어주려나?
"오늘은 언제 돌아갈 거야?"
"엄마가 오늘도 외박하면 죽을 각오 하라고 했으니 돌아가긴 해야죠."
그건 좀 아쉽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을까? 수진이가 조금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역시 강간마 선생님은 조금 아쉽나 봐요?"
"누가 강간마야"
"그럼 레이피스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진이는 그렇게 한동안 변태라고 노래를 부르다가 내가 한편에 쌓아둔 목향을 발견했다.
"어, 목향이네. 저것도 다 보시려고요?"
"아니, 저건 그만 보려고. 후반부가 좀 그렇다고 해서."
"헤~"
"왜?"
수진이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비뇌도가 연중작인데도 읽으신다고 하시길래 그냥 다 읽으시는 줄 알았어요."
"나도 독잔데 하차는 자유지."
"그건 그렇네요. 그럼 선생님 책도 빨리 보시는데 최근엔 뭐 다른 거 읽은 거 없어요?"
다른 거라... 있긴 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플을 켰다.
"이게 뭐예요?"
"인한 강사님이 요즘 소설을 쓰신다고 하더라고. 어차피 야설이라 너는 못 볼 테니까. 생각보다 재밌어서 요즘은 이거 읽었어."
그러자 내 다리를 살짝 꼬집어오는 수진이
"제 소설은 안 읽고요?"
"읽었는데 댓글만 안 달았어."
"진짜요?"
"어"
"수상한데~ 그럼 최근화 내용이 뭐예요?"
그렇게 나를 심문하면서 본인은 내가 보여준 인한 강사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내가 혼자서 중얼중얼 소설의 이야기를 꺼내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수진이는 30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고개를 들었다.
"재밌네요. 진짜 이게 처음 쓴 소설이래요?"
"어. 놀랐어"
수진이도 나와 감상이 같은 모양이다.
"요즘 모험물 쓰는 사람도 없고 선작도 벌써 1,500명이네. 이 사이트에서 이 정도면 많은 편인가요?"
"나도 잘 몰라. 아무튼, 재밌더라."
내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수진이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왜?"
그러자 그녀가 내 머리를 살짝 안아준다.
"선생님, 인한 강사님한테 질투하고 있죠?"
"어?"
"저 이제 선생님 표정만 봐도 다 알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온다.
그녀의 몸에서 희미하게 바디워시 향이 풍겨온다.
이 날씨에 걸어와서인지 살짝 땀을 흘렸는데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선생님도 잘 쓰실 수 있어요. 힘내요."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수진이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과연 그건 아니다 싶어서 수진이를 살짝 밀어냈다.
"오늘은 오랜만이니까 정성 들인 요리라도 만들까?"
"뭔데요?"
"카레는 어때?"
"에잉 뭐가 정성 들인 요리야"
그렇게 웃으면서 내 옆으로 다가와서 손을 내미는 수진이
"왜?"
"저도 앞치마 주세요. 하나 더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앞치마를 수진이에게 건네준다.
아무래도 요리를 도울 모양이다.
나는 그렇게 수진이와 요리를 준비했다.
***
"후우~ 여름에 카레라니 힘든데요."
"재료가 좀 애매하게 남아서. 지금 다 처리하려고"
"지금 저한테 짬 처리 시키는 거에요?"
"짬도 알아?"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띵동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
누구지?
"잠시만 카레 안 타게 좀 살피고 있어."
"네~"
수진이에게 냄비를 보게 하고 인터폰을 확인해봤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준수 강사님!'
문 앞에는 다정 강사가 서 있었다.
...
나는 갑자기 방 기온이 내려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