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성가신 이웃사촌(4)
식사를 마치고 그녀의 앞에 차를 내어줬다.
어차피 내가 자주 마시는 인스턴트 커피다.
"감사합니다."
이제 이다정 강사는 쭈뼛거리는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그냥 감사히 받아먹을 뿐이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시계를 힐끔 쳐다봤다.
그러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디 나가시려고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점심 먹고 도서관이나 가보려고요."
"도서관! 아... 죄송합니다."
도서관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약간 큰 소리를 내고는 다시 쭈그러진다.
도서관의 이야기를 꺼낸 다음에 뭔가 기대를 하는 듯한 표정을 보이는 모습
"도서관 가본 적 없으세요?"
"네. 이사를 오고는 집안 정리 때문에 조금 바빠서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도서관에 가보고 싶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같이 가실래요?"
"그래도 되나요?"
밥을 얻어 먹을 때보다 더욱 방긋거리며 쳐다보길래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짐 덩이를 하나 받은 기분이다.
그냥 경력직 강사를 12월에 데려오면 끝날 부분을 인턴 형식으로 월급도 지급하며 가르쳐서 써먹어야 한다니...
도대체 원장님은 무슨 약점이 있어서 이렇게 귀찮은 방법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귀찮은 건 나인가?
나는 차 키를 들고 그녀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도서관 자주 가시나 봐요?"
그렇게 물어오는 그녀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내가 책을 넣은 에코 백을 빤히 바라본다.
"무협지가 관련이 있나요?"
돌직구를 던져오는구먼
"이건 이거고 그건 그겁니다."
그렇게 대충 둘러대고 차에 올라탔다.
그녀도 자연스럽게 차에 올라탔다.
그녀가 차에 타니 떠오르는 게 있다.
환영회 때 술에 취한 나 대신 운전을 했던 그녀
자연스럽게 차키를 받고 운전을 한다는 것은 평소에도 운전을 자주 했다는 뜻이 된다.
그럼 평소에도 차를 끌고 다녔다는 말이 되는 그럼 그 차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설마 사고라도 나서 수리라도 받고 있나?
그러고보니 마트에서도 무식하게 많은 물건을 샀던 게 기억난다.
자동차를 끌고 다니던 사람이기에 트렁크를 생각해서 무의식중에 많은 짐을 쌌을 수도 있다.
이걸 물어보는 것은 실례일까?
하지만 서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약간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자동차의 분위기를 어떻게 하고 싶었다.
"평소에 운전 자주 하세요?"
"네?"
너무 뜬금없었나?
나는 다시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장롱 면허면 함부로 대리 운전은 안 하잖아요. 평소에 운전 자주 하셨던 건가요?"
"아..."
그녀는 약간 우물쭈물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잠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버지가 대학 졸업했다고 차를 하나 사주셨었는데... 어머니가 일자리도 없는, 크흠... 아무튼, 동생 줬어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입을 닫았다. 끊었다.
그녀도 생각보다 고생이 많은 모양이다.
이 취업도 본인이 뜻한 바는 아닌 느낌이다.
취직도 안 하고 집에만 박혀있는 자녀가 아니꼬웠던 어머님께서 아무 데나 취직 좀 시키라고 하셔서 아버님께서 나선 모양이다.
안타깝다.
나는 약간 그녀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그럼 지금 사는 집은?"
"아버지가 제 명의로 사주신 집이에요."
월세나 전세가 아니었어?
젠장... 동정심은 취소다.
여기에 집이 있으니까 이 근처에서 다닐 직장을 찾았고 그게 아버님의 연줄과 닿는 학원 원장님이었나 보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누군가에게 주저리주저리 설명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처럼 말이다.
아마 그녀도 비슷한 이유로 학원 강사를 해보라는 말을 들은 게 아닐까?
나는 여기서 어떤 말을 더 이어가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차로는 금방이었으니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렸다.
도서관 건물로 들어가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다정 강사님. 제 휴대폰 번호는 아시나요?"
그렇게 물어보자 다정 강사는 "아"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게 제 휴대폰 번홉니다. 책 다 찾으시면 연락해주세요."
"네? 집까지 태워주실 건가요?"
그럼 버리고 가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말하고는 신이 나서 약간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책을 좋아하는 그녀다.
어쩌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을 반납하고는 다시 무협지를 빌리기로 했다.
목향
이 책도 생각보다 많이 유행하던 책이다.
고추놈들이 많이 읽던 책이었지.
뭐 주인공이 여자가 된다니 뭐니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일단 목향에 대해 전혀 모르니 10권을 빌려서 카운터로 가져갔다.
일상적인 설명이 오가고 나는 카운터 근처의 좌석에 자리를 잡고 그녀가 연락을 보내올 때까지 책을 읽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1권은 생각보다 굉장히 낡았고 또한 묵직했다.
슬쩍 살펴보니 400페이지가 넘는 모양이다.
글자도 빽빽한 것으로 보아 요즘 나오는 웹소설 기준이면 최소 60화 이상의 분량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책을 읽으며 이다정 강사를 기다렸다.
우우웅
휴대폰이 울어 확인해보니 이다정 강사다.
나는 카운터에 있다고 카톡에 답장했고 시간을 살펴보니 약 1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모양이다.
처음부터 빌리고 싶은 책이 있던 모양이다.
잠깐 시간이 지나자 그녀가 왔고 카운터에 책을 올려놓았다.
그러고보니 책을 빌릴 도서카드는 가지고 있나?
그 의문은 완전히 기우였다.
애초에 이곳에 집이 있는 시점에서 그녀도 한 번은 왔었겠지.
우리는 그렇게 다시 차에 올라탔다.
"저 정말로 죄송한데..."
그렇게 말하며 말을 흐리는 그녀
"뭐가요?"
"마트 좀 들러주시면 안 될까요? 반찬 통을 사고 싶은데..."
정말로 죄송한 일이기는 하다.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그러죠 뭐"
호구잡힌 기분이다.
***
D마트에 왔다.
그녀는 곧장 반찬 통이 있는 코너로 가서 몇 개의 통들을 집어 카트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낑낑거리며 쌀을 실으려고 했다.
나는 그 쌀을 대신 실어주었다.
"감,감사합니다."
후우 소리는 내는 그녀
아무래도 쌀도 없었던 모양이다.
밥솥은 있는 걸까?
"밥솥은 있어요?"
그렇게 물어보자 살짝 굳어지고는 밥솥을 찾으러 떠난다.
설마 진심으로 인스턴트만 먹고 살려고 했던 것일까?
대단하다.
그녀는 밥솥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요즘 밥솥들은 기능이 참 많지.
뭘 사야 할지 모르는 느낌이다.
"어차피 혼자 자취하는 거니까 1인용 밥솥에 기능은 복잡한 거 없이 그냥 밥만 되는 거 사는 게 편해요. 기능 다 쓰지도 못하고 버릴 테니까."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1인용 밥솥을 하나 골라온다.
그녀는 미안한 눈치를 보이면서도 너무 사양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런 태도를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 모양이다.
그녀는 고른 물건들을 계산하고 씩씩하게 카트를 밀었다.
자연스럽게 내 차로 물건들을 끌고 가는 모습이 제법 사양이 사라진 모습이다.
나는 트렁크를 열고 짐을 넣었다.
그녀도 자연스럽게 내 차의 조수석에 앉았다.
얼마 전까지는 수진이가 앉았던 자린데 말이다.
수진이가 보고 싶었다.
차를 끌고 아파트로 향한다.
"그 준수 강사님"
"왜요?"
"저... 오늘부터 요리 배워보려고 하는데 나중에 궁금한 점 있으면 좀 여쭤봐도 될까요?"
나는 요리라도 알려달라고 할 줄 알았다.
그건 솔직히 좀 귀찮아서 어떻게 거절을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그 정도는 가능하지.
"네. 그 정도야 뭐"
그녀는 다행이라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손에 물 한번 묻혀본 적 없는 사람이 갑자기 요리라니 힘들기는 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밥솥도 없었는데 도마나 식칼은 있나?
"칼이나 도마나 그런 건 있어요?"
"네. 즉석식품도 칼이나 도마가 필요할 때가 있어서..."
그래. 스팸이라도 구워 먹으려면 칼이나 도마라도 있어야지.
나는 그렇게 차를 집으로 몰았다.
물론 그녀의 집까지 쌀을 날라주는 것도 나의 일이었다.
복잡한 기분이다.
책 10권에 쌀 10kg은 과연 좀 피곤한 무게였다.
아파트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그녀의 집까지 쌀을 옮겨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진짜 감사했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90도 인사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돌아섰다.
"됐어요. 다 돕고 사는 거지."
그렇게 말하고 문을 나섰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얽힐 줄 몰랐다.
그녀의 어머님은 아이를 너무 강하게 키우시는 게 아닐까?
최소한의 자취를 하는 법은 알려주셨어야지.
방으로 들어가서 책들을 내려놓았다.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보내겠네.
***
월요일이 찾아왔다.
차라리 이렇게 학원이라도 나오는 편이 낫다.
적어도 수진이를 잠깐이라도 만날 수 있으니까
수진이는 약 2주가 조금 넘는 방학을 맞이해서 오전은 집에서 공부만 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달이 끝나면 다시 학교 수업도 병행하는 시간이 시작되겠지.
일일연재를 계속할 것이라면 지금 미리 연재분을 쌓아두고 공부도 충분히 해뒀으면 싶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짐을 정리했다.
역시 아침 출근까지 같이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그냥 혼자 왔다.
그녀가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않겠지.
짐을 정리하고 강의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인한 강사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인한 강사님"
"네... 안녕하세요."
오늘 따라 힘이 없다.
요즘 무슨 일이라도 있는 듯이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했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집에 무슨 일 있어요?"
그렇게 물어보자 인한 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뭐 별건 아닌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아무래도 물어봐 주길 기다리는 모양이다.
"무슨 일인데요?"
그렇게 묻자 인한 강사는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저 시작했거든요."
"네?"
"그거 있잖습니까? 그거요 그거."
그게 뭔데?
나는 그런 표정으로 인한 강사를 바라봤다.
그러자 인한 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웹소설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 웃는다.
빈말이 아니었어?
"그럼 요즘 칼퇴근 하는 이유가?"
"네. 집에 가서 한 줄이라도 더 써보려고 그랬죠."
"허어..."
정말 굉장히 의외다.
나도 이 정도는 쓰겠다고 말하고는 그걸 곧이곧대로 실천하는 독자가 몇 명이나 있으려나?
대부분 메모장을 켜고는 10줄도 마저 써내려가지 못하고 그만둔다.
머릿속에 와 이거 정말 굉장한 장면이 떠오른 것 같아! 하며 시작하더라도 그 장면까지 이어지는 프롤로그와 스토리 전개, 캐릭터 설정을 잡지 못한다.
쓰다보면 선작하는 사람도 없어서 점점 지쳐서 그만두게 되는 게 이 바닥이다.
그러나 인한 강사의 표정에서는 피곤함은 보일지언정 괴로움이 보이지는 않았다.
"얼마나 쓰셨는데요?"
인한 강사가 칼퇴근을 하기 시작한 건 1주일 정도 된 것 같다.
그러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것일까?
"15편까지 쓰고 장마갤에 홍보까지 하고 왔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본격적이었다.
나는 그를 잠깐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