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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화 〉성가신 이웃사촌(2) (84/301)



〈 84화 〉성가신 이웃사촌(2)

수진이가 신발을 신고는 나를 돌아본다.


"바람 피면 혼나요?"


그렇게 말하면서 싱긋 웃는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진지하다.

아무래도 혼나는 걸로 끝나지는 않을 모양이다.

"알았어."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살짝 내쉬자 수진이는 발을 약간 들어서 내 입에 키스한다.

"후훗. 그러면 되는 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한다.

나는 아차 싶은 마음에 수진이를 붙잡는다.

수진이도 그제야 옆 옆집의 다정 강사가 떠오른 모양이다.

나는 문을 열고 좌우를 살핀다.


아무래도 복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수진이는 계단을 2층 올라가더니 그곳에서 엘리베이터를 누르겠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진이를 배웅했다.


후우~ 주말에 찾아오더라도 계속 이런 식으로 만나야 하나?

안타깝다.


이사를 오면 아무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필이면 이사를 와도 이곳으로 온 것이냐 이다정 강사

나는 이다정 강사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수진이가 집을 나가니 갑자기 고요해졌다.

일요일 오전

누구나가 좋아해야 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지루했다.

수진이와 함께 누워있던 이불이 보인다.


이불... 그러고 보니 수진이가 지도를 그렸던 침대 커버와 매트리스를 말려야 한다.

우선은 세탁기에 넣어두었던 침대 커버에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다음은 매트리스인데... 얼룩이 져 있다.

중성세제를 물에 타고 수건을 적셔서 천천히 얼룩진 부분을 닦아 나갔다.


...야설로 볼 때는 매우 꼴릿했던 장면이 뒤처리로 넘어가니 너무나 피곤했다.

수진이녀석 나한테 이런 귀찮음을 남기고 도망가다니 다음번에는 양손을 묶어놓고 스팽킹을 해야겠다.

마무리로 소독용 알코올을 뿌리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렸다.

제법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침대를 청소하고 나니 이제는 방이 더러워 보이기 시작했고 내친김에 전부 끝내버리자는 생각에 방 청소를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이 도통 흐르지 않을 느낌이었다.

그렇게 청소를 마무리 지으려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오전내내 움직였더니 밥을 해먹기도 귀찮아졌다.

어차피 밥솥에 밥도 없는 거 그냥 시켜먹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소파에 앉았다.

잠깐 이렇게 눈이라도 감고 있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자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사이에 졸았나?


나는 눈을 깜빡이며 문을 열고 나갔다.


배달이요~ 소리가 들리는 데 배달이겠지.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니 철가방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든 배달원이 보였다.

요즘 중국집은 저런 가방에 음식을 넣어서 다니나?

나에게 음식을 내미는 배달원


"응?"

배달된 음식은 분식이었다.

"저 이거  시켰는데요?"

"네?  죄송합니다. 옆집인가 보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살짝 허리를 숙이면서 물러나는 배달원

어쩐지 너무 빨리 오더라.

나는 문을 닫고 다시 소파로 가서 앉았다.

아무래도 다정 강사도 점심으로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모양이다.

그럴 수도 있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도착한 배달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빌려 온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으면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다.

저녁을 먹고 수진이에게 전화를 하고 자려고 하니 수진이의 목소리가 조금 침울했다.

"어머님께 많이 혼났어?"

'네...'

"뭐라고 하셨는데?"

'이번 9월 모의고사 성적 떨어지면 죽을  알래요.'

"...힘내"


'그것 밖에 할 말이 없어요?'

그럼 뭐라고 말을 하는데?

나는 한동안 수진이가 꿍얼거리며 신세 한탄을 하는 소리를 들어주었다.

***


"준수 강사님, 주말에 어디 나갔다가 왔어요?"

나의 팔을 보며 그렇게 물어오는 인한 강사


아무래도 수진이랑 데이트를  때 밀짚모자를 쓴 얼굴을 제외한 팔부분이 조금  모양이다.


"답답해서 조금 드라이브 좀 하고 왔습니다."

"이야, 역시 혼자 사니까 좋네요. 부럽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인한 강사


아니 이 사람은 진짜 결혼을 후회하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네.

나는 인한 강사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다정 강사를 바라봤다.


나는 집에서 조금 여유롭게 나와서 학원에서 자료를 정리하며 오늘 강의를 어떻게 진행할지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편이다.


다정 강사는 그런 내 생활패턴을 몰랐는지 나보다 조금 늦게 학원에 도착했다.

인한 강사야 우리가 왜 따로 왔는지 의심을 안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것도 조금 불편한 일이 아닐까?


카풀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같은 방향이면 태워주는 게 카풀인데 같은 아파트에 살고 같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을 무시하고 혼자 와버리는 것도 조금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이 날씨에 도보로 오는 것도 조금 그렇다.

출근은 모르겠는데 퇴근은 같이 할 것인지 물어는 봐야겠다.

물론 인한 강사는 우리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지 모르니까 우리 둘만 있을  물어봐야겠지.


"그래서 제가 준 자료  봤나요?"


내가 말을 걸자 다정 강사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법 경계심이 옅어진 모양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외우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양을 다  게 대단하네요. 전 적어도 이번 주까지는 볼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자 웃으면서 나를 올려본다.


"정리가 잘되어 있어서 읽기가 쉬웠거든요. 애초에 뭘 읽는 것도 좋아하고"


아무래도 그녀는 활자중독자가 아닐까 싶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오전 강의의 준비를 하면서 이다정 강사에게 오전 강의가 어떻게 흘러가고 오후 강의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수업할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져온 수첩에 내가 했던 말을 빠르게 적어 넣는다.

호감이 가는 태도였다.


이런 태도를 보이면 좀  여러 가지를 설명하고 싶어지지.

나는 맞은 편의 앉은 35살이 조금 언짢은  헛기침을 할 때까지 다정 강사에게 내가 강사를 하면서 배웠던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


저녁시간

오늘은 인한 강사가 칼퇴근을 해버렸다.

 전자담배를 한 번 들이켜고 돌아가던 남자가 무슨 일일까?


덕분에 강의실에 나와 다정 강사가 남았다.


"다정 강사님"

"예?"

"집에 바로 돌아가실 건가요? 태워 드릴게요."

그렇게 말하자 다정 강사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태워주는  불만일까?

"죄,죄송해요. 저 밖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가려고요."


"그러신가요?"

"네"


아무래도 그녀는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인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다정 강사


나는 다정 강사에게 내일 보자는 이야기를 꺼내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행동이 3일간 반복되었다.


과연...  정도로 나를 거부하는 거면 그냥 내 차를 타는  싫다는 뜻이 되겠지.

아무래도 내가 좀 많이 거북한 모양이다.


이러면 곤란하다.


별로 그녀와 친분을 쌓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몇 개월 후면 더는 만날 일이 없는 나에게도 이렇게 거부감을 보이면 강의를 할 때 지장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과감하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다정 강사님"


밥을 먹던 다정 강사가 나를 바라본다.


"네?"


수저와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나를 바라보는 다정 강사

"혹시 제가 아직 거북하신가요?"


그렇게 물어보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잘 대해주시고 친절하시니까 그렇지는..."


그녀는 그렇게 말을 줄였다.

 반응을 살펴보는 모습이다.

그녀에게서 악의나 불편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혹시  차에 같이 타는 게 부담스러우신가요?"

"아,아뇨! 진짜로 저녁은 사 먹고 돌아가서 그런데..."

"...외식 너무 자주 하시는 거 아니에요? 여기 물가가 싼 편도 아닌데"

이 근방에서 밥을 싸게 먹을  있는 장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식권을 받는  가게 정도가 그나마 싸다고 할 수 있다.


"그...  여기서 저녁 먹고 들어가거든요."

"여기요?"

"네"


여기도 그렇게 싸다고는 못한다.

나는 다정 강사를 바라봤다.


다정 강사는 슬그머니 나의 눈을 피했다.

설마?

"혹시 요리 못 하세요?"

그렇게 말하자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다정 강사

아무래도 정곡을 찔린 모양이다.


"그... 역시 이 나이에 자취도 못하면 이상한 걸까...요?"


그렇게 약간은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인다.


글쎄? 자취를  해봤으면 못할 수도 있지.

내 알 바는 아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조금 표정이 풀어졌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주말에는 어떻게 하시는 데요?"

"요즘은 배달도  되니까..."


"그럼 앞으로도 주말에는 계속 배달음식, 평일에는 점심도 이곳, 저녁도 이곳이에요?"


내 말이 추궁하는 것으로 들렸을까? 그녀가 몸을 약간 움츠린다.


신경쓰인다.


아니 도대체 그러면 지금까지는 어떻게?

"그럼 지금까지는 어떻게?"


"그, 얼마 전까지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거든요."

아 그렇군


실질적으로 사회초년생인 느낌이다.

나는 여기서 무언가 말을 더 꺼내려고 하다가  이상은 과연 꼰대 짓이 아닐까 싶어 그만뒀다.


20대 남자들도 계속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면서 산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녀도 알아서 잘하겠지. 굳이 간섭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주말이 되었고 수진이는 어머니의 눈초리가 무서워서 당분간은 못 나가겠다며 칭얼거리는 전화를 보내왔다.


괴로웠다. 그래도 전화라도 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수진이와 낮에 전화하는 것도 색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에 쌓여있던 쓰레기들을 밖에 내버리고 방으로 올라오려고 하니 다정 강사와 눈이 마주쳤다.


"다정 강사님?"


다정 강사의 얼굴이 매우 괴로워 보였다.


"무슨 일 있어요?"


그렇게 물어보자 그녀는 배를 쓰다듬으며 나를 바라보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그, 그게... 제가 배달음식을 잘  시켜먹어서 그런지 속이 좀 더부룩해서요..."

그렇게 말하면서 배를 쓰다듬는 그녀


...미치겠다.


아무래도 엄격한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부모님께서 해주시는 집밥을 먹고 균형 잡힌 식단으로 식사하다가 대충 배만 채우도록 나오는 학원 건물의 식당 요리와 기름진 배달음식을 먹고는 배탈이 난 모양이다.

머리가 딱딱 아프다.

그냥 방치할 수도 없는 느낌이다.


버려진 고양이나 개랑 눈이 마주쳤는데 그냥 지나치려니 계속 떠오르는 그런 기분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내가 한숨을 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다정 강사가 나를 올려다본다.

"다정 강사님. 집에 반찬 통은 있어요?"


그렇게 물어보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따라와요."


나는 다정 강사를 방으로 들였다.

이건 바람이 아니다 수진아.

불쌍한 이웃사촌을 돕는 봉사활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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