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네가 왜 여기서 나와?(4)
"준수형님 파티합시다 파티!"
"왜 갑자기 형님이라고 부르십니까?"
"아이 우리 사이에 왜 그래요?"
"무슨 사인데요?"
"어... 같은 웹소설 보는 사이?"
그게 무슨 사인데?
인한 강사는 갑자기 형님이라고 부르더니 파티를 하자고 했다.
"근데 무슨 파티 말하는 겁니까?"
"몰라서 물어요? 이다정 강사님 오셨으니까 작게나마 환영식을 해야죠."
"아 그렇네요. 그러죠 뭐"
생각해보니 환영식을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는 하다.
내 생일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어도 남의 일은 챙겨야지.
"근데 왜 사람이 없을 때 이야길 꺼내요?"
주위를 둘러본다.
주위에는 나와 인한 강사 그리고 그 사이에 앉아서 짐을 싸고 있는 다정 강사밖에 없다.
인한 강사는 귓속말이라도 하듯이 소곤소곤 말하기 시작한다.
"그분이 같이 오면 갑뿐싸라서요."
"아~"
역시 인한 강사는 눈치가 빠른 편인 모양이다.
그 불쾌한 남자 35살이 오면 찝찝한 분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짐을 싼 다정 강사를 돌아본다.
"다정 강사님은 술 드실 수 있나요?"
"저요? 그렇게 잘 마시지는 못하는데..."
"괜찮아요. 저도 잘 못 마셔서 맥주만 마시니까. 사이다나 시키시죠."
"그래도 되나요?"
"안될 게 있나요?"
나와 인한 강사와 다정 강사는 짐을 챙기고 술집으로 향했다.
그날 인한 강사에게 나의 비밀을 털어놓았던 그 술집이다.
좌석도 그날 그 자리로구나
"뭘로 시키실래요?"
메뉴판을 들고는 우리를 돌아보는 인한 강사
역시 사교성이 좋아서 주도적이다.
나는 가볍게 맥주를 시키자고 이야기를 꺼냈고 인한 강사는 소맥을 해먹겠다며 소주를 시켰고 다정 강사는 정말로 사이다를 시켰다.
사이다패스였구나 다정 강사
"이야 그래도 이렇게 쉽게 후임이 들어와서 다행이네요. 형님"
"언제까지 형님이라고 부를래? 아우"
"술값 쏴주세요~"
"에휴"
미워할 수 없는 인간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 동안 형님이라고 불러요."
"예 형님!"
아하하하! 요즘 준수형님 분위기가 좋으시네~ 라면서 룰루랄라 전화를 건다.
와이프에게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고 보고를 하는 모양이다.
능글맞은 녀석. 너구리 같다.
다정 강사는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쭈뼛거리고 있었다.
"오늘 환영회니까 그냥 먹어요. 제가 살 테니까"
그렇게 말하자 뭔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작게 고개를 숙여온다.
"저, 그 감사합니다."
나는 손을 저어서 가볍게 그 인사를 받았다.
나는 먼치킨 준수니까 이 정도는 쌉가능입니다.
주문을 하고 가볍게 물을 마시고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다정 강사는 모든 소설을 다 본다고 했는데 어떨려나
"인한 아우, 웹소설 말고 순문학은 보는지?"
"형님? 아니 진짜 아우라고 하네? 너무한 거 아니요?"
"크흠. 인한 강사님 그래서 어때요?"
"뭐 유명한 건 좀 봤어요."
책 이야기가 나오자 다정 강사의 고개가 휙 하고 올라왔다.
엄청난 반응이다. 수인이면 꼬리라도 흔들겠다.
그 모습에 인한 강사도 눈치를 챘는지 다정 강사를 보며 입을 연다.
"혹시 다정 강사님도 소설 읽는 거 좋아하세요?"
"네! 엄청 좋아해요!"
밝고 건강하고 높은음이다.
그렇게만 강의하면 1타 강사도 가능할 것 같다.
외모도 성능입니다.
"가장 좋아하시는 소설가라든지 있나요?"
"음... 글쎄요? 소설가를 딱히 좋아하진 않고 명작이라 불리는 것들은 대강 봤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어떤 소설을 봤는지 떠올리듯 허공을 바라본다.
"이방인, 어린 왕자, 신곡, 노인과 바다, 돈키호테, 레 미제라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호밀밭의 파수꾼, 햄릿, 실락원, 파우스트, 모비딕, 걸리버 여행기, 위대한 개츠비..."
신이나서 본인이 재밌게 봤던 명작들을 줄줄이 나열하기 시작하는 다정 강사
인한 강사는 호~ 하면서 그런 다정 강사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나를 한번 바라본다.
나도 인한 강사를 한번 바라보고는 다정 강사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녀는 좋아하는 화제가 나오면 입이 가벼워지는 타입의 인간인 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당분간 소설의 제목을 말하다가 핫!하고는 헛바람을 들이켜고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노인과 바다는 명작이죠. 저도 그건 읽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인한 강사
과연 어색해진 분위기를 잘 받아준다.
그렇다면 나도 받아줘야지.
"노인과 바다 하면 그거죠.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에요."
"...준수 강사님 국어강산데 막 영어 쓰고 그래도 돼요? 갑자기 그분 생각나서 찝찝한데"
"갑자기 그분이라고 하지 마요. 분위기 다 망쳤네"
우리는 서로 한숨을 쉬고는 시킨 메뉴 언제 오나~ 하면서 종업원을 찾아본다.
과연 때마침 오는 구나
다정 강사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했는지 머리에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이다.
우리는 술잔에 술과 사이다를 따르고 다정 강사님을 위하여를 외치며 건배를 했다.
다정 강사님을 위하여라는 말을 할 때 목소리가 작아지며 조금 얼굴이 붉어진 다정 강사가 조금 귀여워 보였다.
"그런데 그분이 누구예요?"
친해지니까 돌직구도 던져오는 구나
나와 인한 강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해서 누가 말을 꺼낼까 의논을 한다.
말은 인한 강사가 잘하고 그를 잘 아는 건 나일거 같은데...
어차피 내가 사수 같은 느낌이고 그녀가 부사수 같은 느낌이니 내가 말해야지.
"그 제 맞은 편에 앉은 아까 셰익스피어 이야기 꺼낸 그분이요. 그분이 그분입니다."
"아... 그런데 그분이 왜?"
"유명해요 그분"
인한 강사가 말을 받는다.
"유명이요?"
"이렇게 겉바속축이라고요. 아하하하하!!!"
인한 강사가 빵 터져서는 혼자서 웃고 있다.
그런데 확실히 겉은 바삭해 보이는 인간인데 속은 축축하게 질척이는 인간이다.
다정 강사는 전혀 이해를 못 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조용히 귓속말해준다.
"있어 보이는 행동을 하는데 독신인 여성들한테 잘 보이려고 끼부리는 사람이에요. 조심하라고요."
그렇게 말하자 아~ 하더니 뭔가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 자신의 행동을 객관화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하꼬작가들이 내가 쓴 소설 존잼인데 왜 이리 인기가 없지? 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나 작품을 평가할 땐 5,700자의 장문이 나오는 것이 인간이란 것이지.
시켰던 안주가 마저 나오고 웃으면서 식사가 시작된다.
과연 책을 좋아한다고 한 만큼이나 책 이야기가 나왔다 하면 말이 많아진다.
근데 나 역시 그런 타입이었고 인한 강사도 말이 많은 편이었다.
다정 강사도 웹소설 중에서 인기 있는 것은 보는 편인지 우리는 수진이의 소설로 또다시 불타올랐다.
"역시 여자 시점으로 봐서도 재밌는 점이 있나 보죠?"
"당연하죠~ 여자라고 마X시리즈 안 보는 건 아니잖아요?"
"아 그렇긴 그렇네요."
"로판은 내용이 다 비슷해서 조금 질려요. 그러다 보면 순수 판타지가 끌릴 때가 있고 딱 판타지9 로맨스1 정도가 좋은 거 같아요."
"네? 로맨스가 그렇게 적으면 좀 심심한데... 2 정도까진 줍시다."
"솔직히 로맨스 보다가 물려서 보는 건데 로맨스 나오면 싫어요."
"아, 과연"
술이 들어갔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정 강사가 의외로 사교성이 좋았을까?
아무튼 우리는 평소보다 더 즐겁게 술을 마셨다.
기분이 좋다고 맥주에 소주까지 말아서는 서로 이제 지쳤다 싶을 때까지 마셔버렸다.
내일이 쉬는 날이라서 다행이다.
우리는 그렇게 비틀거리며 서로 헤어졌다.
"우욱!"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과음해서 머리가 강강 울린다.
"괜찮으세요?"
사이다만 마신 사이다패스가 물어온다.
괜찮지~ 괜찮어~~ 괜찮다구~~~
나는 비틀거리면서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집까지 15분은 걸어야 하는데 괜찮으려나...
"택시 부를까요?"
택시? 태액시? 죻지~
아 근데 나 차 끌고 왔는데...
"저 차 끌고 왔는데..."
"아 그러면 제가 운전할까요? 저 술 안 마셨는데"
"그뤠 쥬실래요?"
"네"
나는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그녀에게 줬다.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은 얼마 만인가?
그러고보니 수진이를 보고 싶은데 내일 쉬는 날이고 좀 보자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잠깐 감았다.
잠깐이라도 자면 몸이 회복이 될 거야...
"준수 강사님. 다 왔어요. 일어나세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흔드는 다정 강사
내가 언제 잠이 들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 키를 받고 대충 주머니에 넣고는 아파트로 걸어간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뭐를 믿고 차 키를 맡긴 거지? 미쳤구나 김준수!
비틀거리며 서로 아파트에 올라가 문앞에서 헤어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가 씻고 자야 한다는 생각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웠다.
아 몰라 자야지
***
몸을 흔드는 느낌이 든다.
귀찮다.
술을 마셔도 빨리 깨는 편인데 과연 소맥은 힘들었다.
머리가 강강 울려서 좀 더 자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눈을 감고 더 자려고 했다.
꾸욱
"아!"
누군가가 귀를 잡아당겼다.
뭐야!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누구냐!
"선~생~님~"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수진이와 눈이 맞는다.
왜 수진이가 여기서 나와?
"수진이?"
"네~ 선생님의 아내이자 여자친구인 수진이에용"
오늘은 뭔가 상태가 이상한 듯한 느낌이다.
저번에는 가볍게 흔들면서 부드럽게 깨워주더니 오늘은 왜 이런 거야?
그보다 언제 왔어?
머리가 울려서 인상을 찌푸리고 머리를 긁으면서 일어나려고 하니 수진이가 귀를 잡아당긴다.
"아아아아!!!"
아 씨발 왜!
"아파요?"
"아파!"
"맞을 짓을 하지 말았어야죠."
내가 뭘?
수진이는 나를 노려보더니 내 옷을 가리킨다.
나는 그게 뭔가 싶어서 내려다보니 뭔가 얼룩이 져 있다.
뭐지 이게?
손으로 비벼본다. 냄새를 맡아본다.
음. 립스틱?
술에 범벅됐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흡사 어둠의 장막을 걷어낸 사마리안인 처럼 머리가 듀얼코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건 아마도 어젯밤에 같이 술을 마시던 다정 강사의 립스틱 같다.
내가 차에서 비틀거리면서 못 내리니까 도와주다가 옷에 뭍은 것 같다.
나는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고 수진이를 바라본다.
웃으면서 화내고 있는데 미치겠다.
"그 있잖아? 그 이번에 새로 강사님이 오셨는데... 환영회를 하다가 술이 많이 취해서"
"그래서 갈 때까지 갔어요?"
"안 갔어... 인한 강사도 같이 마셨어"
"그래요? 그럼 뭐 다행ㅡ"
나는 조금 안심이 돼서 한숨을 쉬었다.
"ㅡ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옆집에 그 강사님이 사시는 거에요?"
딸꾹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분명히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안 한 모양이다.
식은땀이 흐른다.
이건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지.
"우연이야. 말하려고 했어"
"선생님은 재주도 좋으시네요. 본인이랑 나이가 2배나 차이가 나는 여고생도 꼬시고 학원에 온 지 1일밖에 안된 강사님도 꼬시고? 완전 럽코네요 럽코"
수진이가 바가지를 긁는다.
과연. 이게 남자들이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이윤가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이렇게 잔소리를 하는데 와이프가 미인이 아니라면 못참지
수진이는 미인이고 여고생이고 월억킥이니까 내가 잘못했지.
"미안"
그렇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수진이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흔든다.
"밥해놨으니까 씻고 와요."
그렇게 말하면서 방에서 나가는 수진이
아니 도대체 아침 일찍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