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네가 왜 여기서 나와?(3) (76/301)



〈 76화 〉네가 왜 여기서 나와?(3)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인한 강사는 그런 노래를 부르면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짐은 왜?"


"준수 강사님 후임이면 옆자리에 앉는  아니에요?"


"강의준비실 자리가 없어서 여기서 자리 뺀다고 앉을 자리 없을 텐데요."

"아..."


여기보다 큰 학원은 사정이 다를까?

인한 강사는 옮기려던 짐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긁적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그냥 제 옆자리에 의자 하나 놓고 앉지 않을까요?"

"...불편하지 않나요?"

당연히 불편하겠지.

그래도 대놓고 그렇게 말하기도 뭐하다.


"뭐 저도 곧 그만두니까요. 그리고 인한 강사님도 좀 불편하실 건데 여러 가지 의미로 미안하네요."

"뭐 상관없어요. 덩치 큰 남자였으면  그랬겠지만..."


인한 강사는 그렇게 말하고 원장실 방향을 힐끗 쳐다봤다.


"미인이니까 죠습니다. 하하하!"

솔직해서 좋다.

앞뒤가 없는 남자


그래서 내가 품던 고민도 쉽게 내뱉어 버린 거겠지.

솔직하지 못한 인간은 저런 인간이겠지.

우리의 대화를 안 듣는 척하며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35세 이하생략


갑자기 거유미인 여강사가 들어오니 음습한 한남자아가 발기잇!하는 거냐?

오늘따라 유독 안절부절못한 느낌이다.

아까전부터 신문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고 있다고 이 사람아


여기저기 찔러보고 다니더니 뉴페이스가 들어왔다고 바로 이런 반응인가? 정말 대단한 놈이다.


준범이 말로는 결혼하면 좆되는 거라는데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싶을까?

아니면 그냥 떡칠 여자가 필요한 것일까...

아, 물론 여고생과 순애 결혼은 예외다.


그렇게 35살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강의준비실로 이다정 강사가 들어온다.


앞머리가 조금 길고 몸을 전체적으로 구부린 느낌이라서 인상이 흐릿하다.


왠지 소리라도 지르면 흐에엥 하고 울면서 주저앉아버릴 듯하다.

생각해보니 저 몸이 약간 구부러진 자세는 저 가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때 반에서 거유였던 음침한 아이가 있었는데 가슴이 큰 게 부끄러웠는지 몸을 숙이고 구부리고 그러고 다녔었다.

그녀도 사람의 시선에 민감한 타입일 것이다.


그러니 앞머리가 저렇게 눈썹 밑으로 내려오게 방치하지

그러니 최대한 시선을 주지 않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지성인의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가슴을 빨아먹겠다는 듯이 응시하지 말아라. 35살 지식인

징그럽다.


수진이 가슴을 애무할  조심해야겠다. 내가 저런 눈이면  년 사랑도 식을 느낌이다.


이다정 강사가 내 앞으로 걸어온다.


"저,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데 머리가 흩날린다.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인사를  때 고개를 치켜들고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머리를 숙이는 인사가 굉장히 보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인사하는  더 보기 싫다.

"네. 잘 부탁합니다."


물론 내색을 하지는 않는다.

인한 강사가 살짝 의자를 우측으로 이동하고 나와 다정 강사, 인한 강사가  줄로 앉게 되었다.


강의준비실의 책상이 제법 큰 책상이라서 부담은 없어 다행이다.

그렇다고 두 명이 나란히 작업하기에는 조금 비좁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참고서나 책들을 조금 정리해야겠다.


자리에 앉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나를 힐끗 바라보고 머뭇거리는 다정 강사


이름처럼 다정다감하게 말을 걸고 했으면 좋겠다.


내가 뭐 잡아먹을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당신이 수진이도 아닌데...


가방에서 USB를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줬다.

"자요."

"네?"


내가 그녀의 앞에 USB를 내려놓으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제가 강사를 하면서 익혔던 스킬이나 자료나  한마디로 노하우죠. 받으세요."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USB를 손에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혹시 이전부터 준비하셨나요?"


"아뇨. 후임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준비했습니다."


"아"

완벽하지는 않아도  구멍이 숭숭 뚫린 허접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원장님은 어떻게 하라고 하시던가요?"

"준수 강사님은 이쪽에서 오래 일하셨으니 열심히 배워보라고 하셨어요. 엘리트니까 가르치는 것도 잘 할 거라고..."

이다정 강사는 외모와 태도도 그렇지만 말하는 것에서도 소심함이 느껴진다.


상대방과 대화할 때 눈을 바라보지 않고 대화하는 점이나 말을 흐리는 점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보인다.


아니 어쩌면  유명한 여중, 여고, 여대 테크를 타서 남성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가야 할지 조금 고민이다.


오전 강의를 끝내고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를 해봐야할까


***

나는 건물 내에 배치된 식당으로 그녀를 데려왔다.

학교나 군대처럼 배식으로 식사할 수 있는 곳이다.

식권을 팔기 때문에 대량으로 사면 일정금액을 할인받을  있어서 강사들이 자주 식사하는 장소다.

하지만 그 35살은 이곳에서 본 적이 없다.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식권을 2장 꺼내 들었다.

"아, 아뇨!"


뭔가 삑사리가 난듯한 큰소리를 치며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그녀의 고개를 따라 흔들린다.


"저, 샀어...요. 식권!"


아무래도 미리 식권을  모양이다.

원장님에게 미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나?


"아, 네"

약간 어색하지만 어쩔  없지.

나는 식권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돈가스인가. 좋군


자리에 앉고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평소처럼 허겁지겁 먹다가 내가 빨리 먹으니까 당황해서 빨리 먹으려는 그녀를 바라보고는 잠시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녀는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른 느낌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고개를 돌린다.

답답하다. 꼰대끼가 또 올라오려고 한다.


그래도 강사면  더 당당 해야 한다.

높지도 낮지도 않고 올바른 발성을 해야 학생들 귀에도 이롭다.

그러니 그녀에 대해서 알아야 무언가 조언이라도 할 수 있겠지.

"남자가 불편한가요?"

돌직구를 날려본다.

그러자 그녀는 흠칫 몸을 떤다. 아무래도 정곡인 모양이다.


"여중, 여고 나오셨나요?"


그렇게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대학교도 여대였어요..."


그렇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는 잡촙니다."


"네?"


"어차피 몇 개월이면 안 볼 사이니 편하게 하자고요. 잡초라고 생각하세요."

"그게 될까요?"


"저랑 대화할 때도 그렇게 힘겨워하시면 학생들 100명 앉혀놓고 어떻게 강의하시려고요?"


"..."


다정 강사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본인도 걱정되는 모양이다.

"괜찮습니다. 학생들도 다 잡초라고 생각하세요."

"풉"

뭐가 웃긴지 가볍게 웃는다.

"아 죄송합니다..."

"그냥 방금처럼 편하게 생각하세요.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답니까?"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끄덕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경계심이 조금 옅어진다.


"그리고 제가 밥 빨리 먹는다고 따라 하지 마세요. 이건 그냥 습관이니까"


"아..."

그녀는 또 끄덕이고는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밥을 빨리 먹는다고 같이 앉아있던 사람의 식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자리를 뜰 만큼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최초보다는 조금 부드러운 느낌으로 식사를 마쳤다.


***

양치를 하고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다정 강사에게 뭐라 뭐라 이야기를 꺼내는 35살이 보인다.


결국엔 행동에 나섰구나 발정 난 새끼


그런데 뭐 때문에 갑자기 나설 용기가 난거지?


"다정 강사님. 양치는 하셨습니까?"

그렇게 물으며 자리로 자연스럽게 앉는다.

35살의 눈빛이 사나워진다.

분위기 파악을 하라는 것인가? 분위기 파악이라면 잘 하고 있다.

딱 봐도 다정 강사가 어색한 미소를 짓는 게 보이잖아?


다정 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어요?"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약간 어색한 표정을 보이며 그녀가 가져온 수첩에 적힌 것을 보여준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유명한 문구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무래도 이 35살 발정 난 지식인은 본인의 지식을 어필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페라나 뮤지컬에 대해서 떠드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다정 교사는 영 불편한 모양이다.


"셰익스피어는 정말 대단한 작가죠. 이번에 한국에서 영어가 아닌 순수 한국어로 된 햄릿 뮤지컬이 상영됐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아, 네..."


"셰익스피어는 대단한 사람이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어색한 표정을 짓던 다정 강사도 나불거리던 35살도 나를 쳐다본다.

"영국의 자랑이자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남들에게 기억되는 작품이 아닌 예술품을 남긴 천재니까요."


그렇게 말하자 다정 강사가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35살은 갑자기 끼어들어 헛소리하는 나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햄릿, 리어왕, 오셀로 음... 아 맥베스의 4대 비극이 가장 유명하고 셰익스피어 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이네요.  로미오 당신은  로데오인가요?"

그렇게 말하자 다정 강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웃는다.

"아하하... 갑자기 로데오가 왜 나와요?"


"왠지 그래야 할  같아서요."


그렇게 나와 다정 강사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분위기가 불편했는지 35살은 나를 한번 노려보고 자리로 갔다.

"셰익스피어 좋아하세요?"


"딱히 좋아하진 않네요. 그래도 존경은 합니다."


"혹시 이유를 물어도?"


"제가 사이다패스라서 비극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말하자 굉장히 의외의 눈으로 바라본다.

"혹시 웹소설도 읽으세요?"


"저는 장르  가리고  읽습니다. 로맨스물도 읽어요. 최근에는 베스트셀러라고 밀어주길래 기욤 뮈소 책을 빌려봤었는데 조금 실망했었고요."


"와... 로맨스... 근데 왜요?"

"주인공이 전부 복제인간인 것처럼 똑같아요. 자수성가형 주인공에 사연 있는 여주인공. 너무 뻔해서 기대가 안 되더라고요."

"아 하긴 그런 면이 있긴 하죠."

"읽으셨나 보네요?"

"네! 저도 책은 안 가리고  봐요."

과연. 그 약간 굽은 등과 구부린 어깨, 조금은 긴 앞머리


문학소녀였군


"혹시... 사실은 사서가 하고 싶던  아니에요?"


"?!"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놀랄게  있나?  정도 대화했으면 캐치할 수도 있지.

원장님에게 듣기로는 그녀는 29살이라고 한다.

29살에 책을 좋아하는데 취직이 잘  됐으면 아무래도 사서 쪽이겠지.

그쪽은 자리가 잘  나온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감입니다."

"아닌 거 같은데"


그녀는 아까보다 더욱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이제는 나를 상대로 말을 흐리거나 사양하는 기색이 줄었다.


경계심이 거의 풀린 모양이다.


그래 경계할 필요는 없어.

경계해야하는 것은 저기 반대편에 앉아서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인상을 쓰고 있는 35살을 경계해야 한다.


저런 놈들이 꼭 사고 치는 녀석들이야

저렇게 여자한테 아닌척하지만 찝쩍거리는 놈이 아직 독신인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저 인간보다 후줄근했지만 결혼해서 지금은 겉도 깔끔하고 속도 깔끔한 인한 강사를 봐라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다 피해 가는 것이지

본인만 모르는 법이다.

나도 저런 인간이었으니까 더욱 눈에 밟힌다.

제발 사고만 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가슴 그거 큰게 좋기는 한데 나이를 조금만 더 먹으면 역시 여자는 골반과 엉덩이와 다리와 쇄골과 목라인과 음...

가슴도 중요하긴 하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