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집에 돌아갈 때까지 데이트(1)
"아마 이번 데이트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네"
수진이는 나의 말에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고 싶은 눈치인듯하다.
그 표정이 경악에서 슬픔에서 여러 가지 감정으로 변하기 전에 나는 뒷말을 내뱉었다.
"거리두기래. 이제 카페도 가지 말래"
"아..."
"수진이는 예언가 해도 되겠어. 정말로 카페도 접근불가래.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다는대?"
수진이가 어깨에서 힘을 빼더니 후우 하고 한숨을 쉰다.
제법 놀란듯한 표정이다.
내가 헤어지겠다는 말이라도 꺼낸다고 생각한 걸까?
헤어져봤자 손해인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럼 어쩌죠... 그 카페 이젠 못 가나요?"
우리들의 첫 만남은 학원에서의 우연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온 장소는 당연히 그 카페이다.
그저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왠지 세상이 우리들의 관계를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다행이네"
"뭐가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날 장소는 생겼으니까"
카페는 중요한 장소였다.
가까운 듯했지만 학생과 강사, 교단과 책상의 거리는 좁혀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카페는 평행선을 그려야만 했던 나와 수진이의 인생을 엮어준 장소이자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서로 이해할 수 있었던 공간이다.
이제는 만나지 못한다니 아쉽기는 아쉽다.
하지만 나는 얼마 전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카페가 아니면 자취방이 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수진이를 한 번 쳐다본다.
오늘도 데이트룩에 정성을 들인 것이 보였다.
기단이 조금 짧은 듯한 와인색 플레어 스커트와 하늘하늘한 흰색 반팔 블라우스의 코디였다.
얼굴도 역시 살짝 화장기가 있다.
수진이는 코디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 나이가 있는 여성 같은 코디를 하게 되었다.
그래. 귀여운 것보다 조금 섹시해 보인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그 조금의 변화가 나와의 관계의 변화를 상징하는 듯하여 뭔가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런 조그마한 것에 우쭐하는 자신이 우습기도 한 기분이다.
어쩌면 수진이는 그냥 본인이 그런 기분이 들어서 그런 옷을 입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수진이는 내가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아!하고는 뭔가가 떠오른 듯 나를 한번 올려다보더니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어떻게 한 것인지 궁금하다. 한쪽 눈썹만 치켜뜨고 흐흥~? 같은 소리가 날 것 같다.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없죠? 진짜 몸이 목적이셨나?"
그렇게 말하면서 옆구리를 살짝 꼬집어온다.
뭐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니니 반박도 못 하겠다.
혜정이와 지내며 서서히 성욕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의 나는 수진이를 생각하면 절반 이상은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뭐 카페에서만 커피를 먹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안되셨네요. 카푸치노 좋아하셨잖아요?"
카푸치노? 좋아하긴 하지.
그래도 카푸치노가 연인이 자취방에 놀러 온다는 상황만큼 기쁘지는 않다.
"난 자판기 커피도 좋아해"
"아~ 아재 같아"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키득거리고는 살짝 내 팔에 자신의 팔을 건다.
혜정이와 마주쳤던 그날을 기점으로 팔짱을 끼는 사이가 되었다.
예전에는 여름에 더워 뒤지겠는데 팔짱을 왜 끼고 다니나 싶었는데 확실히 더워 뒤지겠어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서 올라오는 향긋한 냄새 덕분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씁쓸한 인생, 커피 정도는 달아도 되지"
"그럼 담배는 왜 피웠어요? 쓰기만 할 텐데"
나는 쯧쯧 혀를 차며 수진이를 바라본다.
수진이는 이 사람이 뭔 헛소리를 하려는 거지? 싶은 눈동자로 바라본다.
"커담은 어쩔 수 없지"
"네?"
"몰라도 돼"
"..."
담배를 피우며 마시는 커피의 향기는 각별하다.
입 냄새 역시 강렬해져서 구강청정제를 매일 사용해야 하고 입냄새 제거용 스프레이도 사용해야 했지만, 그 조합은 안 해본 사람들은 모를 거다.
"근데 오늘은 어디 가는 거에요?"
"뭐 별건 없고. 뉴스 보다가 거리두기 하자니까 떠올라서"
나는 그렇게 수진이와 한 가게에 들어갔다.
약간 흙먼지가 묻은 앞치마를 묻은 점원이 다가온다.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나요?"
"네"
"성함이?"
"김준수요"
"김준수 고객님...아, 전화번호 뒷자리가 이게 맞으신 가요?"
고개를 끄덕인다.
점원은 우리를 좌석으로 안내해줬다.
"여긴?"
"도자기 만드는 곳이야. 머그컵에 그림 그려서 구울 수도 있고"
"뭔가 이렇게 좀 더 너저분한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뭔가 카페 같네요?"
"저 안쪽으로 가면 판으로 돌려서 직접 빚는 것도 가능하다고는 들었는데 그건 신청 안 했어"
"아 왜요. 그것도 재밌어 보이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뭔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수진이를 바라본다.
...저렇게 공들여서 입고 왔는데 혹시라도 옷에 덕지덕지 흙이 묻으면 미안하니까 안 한 거다.
"다음에도 오면 되잖아?"
"아, 그건 그렇네요."
수진이는 다음에, 다음에를 중얼거리며 후훗하고 웃는다.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음에, 다음에..."
툭
수진이가 앞발로 정강이를 살짝 걷어찬다.
찌릿하고 노려보는데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 아무튼 뭐로 하실 거에요!"
아직 부끄러운지 약간 목소리가 커진 수진이는 어떤 걸로 할거냐며 머그컵의 크기와 가격이 적혀있는 종이를 가리킨다.
"아무거나"
"그럼 제가 선택해도 되죠?"
"그래"
수진이는 으음 하면서 고민을 하더니 가장 무난한 머그컵 모양을 2개 골랐다.
일반적으로 350mL 정도의 물이 담기는 크기의 머그컵이다.
우리는 점원을 불러서 컵을 받는다.
점원은 어떻게 머그컵에 그림을 그리고 어떻게 완성될지 완성됐을 때의 사이즈를 설명해주고 완성에 걸리는 시간을 알려준다.
완성을 하면 다시 한번 구워야 해서 약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배송해준다는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본다.
"선생님"
"왜"
"뭐로 하실거에요?"
"글쎄"
해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냥 무난하게 커플 머그컵으로 하면 되지 않나?"
그렇게 말해본다.
"커플, 커플 머그컵..."
수진이는 아까처럼 커플, 커플을 중얼거린다.
뭔가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렇게 사소한 게 기분이 좋단 말인가?
"저 좋은 게 떠올랐어요."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왠지 뭔가 알 거 같기도 하다.
"하트 곤란"
"...그럼 뭐 떠오르는 거라도 있어요?"
조금 화가 난 듯하다.
솔직히 하트는 조금 부끄럽다.
이제 40이 다 된 나이에 하트라니 뭔가 좀 이건 아닌데 싶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그림에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니 간단한 걸로 하고 싶은데 말이다.
그렇게 견본이 있는 소책자를 살펴보니 글을 써넣는 경우도 많나 보다.
글, 글이라...
그러고보니 좋은 게 있었네
"K-헤밍웨이, 나는월억킥"
"아"
"그렇게 하면 되겠네"
"하트도 넣으세요."
"...알았어"
"후훗"
우리는 서로 만든 머그컵을 선물하기로 했다.
중앙에 하트를 크게 그리고 그 중앙에 나는월억킥을 넣는 것이다.
종이와는 다르게 굴곡이 있어 쓰기가 어렵지만, 연필로 그리고 지워가며 최대한 종이에 쓴 것처럼 반듯하게 그려넣는다.
고개를 들어 힐끔 수진이를 바라봤다.
수진이는 상당히 집중했는지 전신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저러다가 컵이 깨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도 뭔가 상대에게 주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생각하니 그런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
"헐"
수진이의 입에서는 요즘은 듣기 어려워진 요즘 애들 같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왜?"
"선생님 글씨 잘 쓰시네요..."
수진이는 내가 만든 결과물을 받아들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글씨는 어렸을 때부터 교정받았다.
...뭐 가정교육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말을 꺼낸다면 분위기가 칙칙해지겠지.
"미래에는 대문호가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싸인 연습은 필수지"
"그렇게 개노잼 소설만 쓰시면서?"
"끙"
"농담이에요."
히힛거리면서 내가 만든 머그컵을 이런저런 각도로 바라보면서 와~ 와~ 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일까?
"나는월억킥 선생님은 글씨가 왜 이 모양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수진이가 만든 머그컵을 한번 바라보고 수진이에게 히죽히죽 얄미워 보이는 미소를 보여준다.
"끙. 그거 종이가 아니라서 그런 거에요."
"그래? 그럼 여기에 글씨 좀 써볼래?"
"못할 거 같아요?"
욱한 표정으로 A4용지에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수진이
수진이는 최대한 정성을 들여서 글을 쓴 듯 어때요? 라는 표정과 함께 종이를 내민다.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체가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글씨가 위아래로 약간씩 벗어난 부분이 보인다.
아무래도 공책에 쓰는 건 익숙해도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글을 쓰는 건 익숙하지 않나 보다.
안녕하세요라고 적힌 문구를 보며 그날의 일을 떠올린 나는 손을 끼적였다.
헤밍웨이 선생님. 나는월억킥 작가입니다. 앞으로도 잘부탁드려요?
수진이가 적어놓은 글 밑에 그런 문구를 적어서 수진이에게 돌려준다.
"우와..."
수진이는 그걸 보더니 놀랐다는 표정으로 내가 쓴 문구를 바라본다.
"진짜 예쁘네요."
"그래?"
"네, 저 방금 세대차이 느낀 거 알아요?"
아니 그걸 왜 거기서 느껴?
무언가 한마디 해주려고 했는데 점원이 다가와서 입을 닫았다.
"다 되셨나요?"
우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묻는 점원
나와 수진이는 잠깐 서로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점원은 우리들의 머그컵을 가져간다.
깨지지않고 잘 구워져서 왔으면 좋겠다.
"으응~"
많이 긴장했었는지 수진이가 기지개를 켜며 앓는 소리를 낸다.
"그거 조금 했는데 엄청 피곤하네요."
"그래?"
"선생님은 멀쩡해 보이네요."
"뭐 그냥"
우리는 계산을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점심은 뭐로 할래?"
"으음, 아무거나!"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뭐가 먹고 싶게요? 맞춰보세요라는 느낌으로 방긋방긋 웃는다.
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패턴이다.
그래도 수진이가 예쁘니까 그냥 넘어가 준다.
"더우니까 국물을 싫지?"
"네"
"더우니까 기름진 중국집도 패스한다."
"네"
"여름이니까 회도 될 수 있으면 피할까?"
"음... 그래요."
그러면 뭐가 남지?
"냉면은 어떠신지?"
"그럼 그래요."
왠지 아무거나 먹자고 했어도 아무거나 먹겠다고 했을듯한 반응이었다.
싱거운 녀석
그럴거면 아무거나 먹자고 말하지.
아 아무거나 먹자고 말했었나?
우리는 그렇게 냉면집으로 이동했다.
"냉면 못 먹는데 먹는다고 하고 온 건 아니지?"
"아니에요."
점원이 다가오고 주문을 받는다.
수진이는 점원이 떠나가자 나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냉면 못먹는 사람도 있어요?"
"있기야 있지."
"친구분 중에?"
"어, 어렸을 때 냉면 먹다가 체해서 안 먹는데. 쫄면도 싫어하고 겨자가 들어간 음식도 그게 떠올라서 잘 안 먹고 그러더라고"
"뭔가 인생의 절반 손해 본 기분이겠네요."
"절반까지는 아니겠지"
1할 정도는 손해 보고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니 수진이는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느낌이다.
"너는 뭐 못 먹는 거 없어?"
"저요? 음... 잘 모르겠는데요. 너무 향이 강하거나 특이한 요리만 아니면 다 먹어요. 선생님은요?"
"나도 뭐 가리는 건 없는데 좋아하는 건 있어도"
"카레, 돈까스, 불고기, 갈비요?"
"잘 아네"
"후훗"
우리는 그렇게 메뉴가 도착할 때까지 잡담하면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