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둥지 짓는 김준수(6)
수진이에게 내가 썼던 소설이 담긴 문집을 건네준다.
"어떤게 선생님이 쓰신 소설이에요?"
"이거"
나는 내가 쓴 단편이 실려있는 페이지를 펴서 수진이에게 보여줬다.
"내일의 너에게?"
"어, 그게 내가 쓴거야."
"무슨 내용이에요?"
"읽어보면 알겠지."
나는 수진이 앞에 커피를 한잔 타주고 그 옆에 앉는다.
수진이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조용히 책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수진이는 책을 읽는 동안 조용하게 집중하는 모습도 보기좋다.
아니 미인이면 웬만한건 용서가 되는 법이지.
내가 쓴 단편의 내용은 이렇다.
19살 수능을 앞둔 김호준은 화가가 꿈이다.
주변에 그를 말리는 이는 한명도 남지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까.
호준이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학교로 출발한다.
일반적인 학생들의 발걸음으로 15분의 거리
그는 주변의 풍경들을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서 40분에 걸쳐 학교에 도착한다.
8시 10분부터 9시까지 아침자습시간이 이어지고 오후 5시가 되면 학교에서 집으로 간다.
친구들은 수험생인데 방과후학교도 자습도 하지않는 호준이를 부러워하지만 그의 꿈이 화가인 것을 알기에 굳이 그걸로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없다.
호준이는 생각보다 유쾌한 녀석이니까.
4월 1일 만우절이라고 머리를 빡빡밀고 학교에 와서 '나 사실은 암이라서 항암치료받는 중이야...' 라는 이야기를 해서 친구들을 경악시켰다가 '만우절인데?' 라며 웃을 정도로 재밌는 녀석이다.
호준이는 오늘도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집으로 향해 걸어간다.
학생들에겐 15분의 짧은 거리지만 그에게는 40분의 풍경이 담기는 길이다.
이야기의 초반부에는 제법 유쾌하고 꾀가 많은 호준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호준이는 손을 다치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이유로 체육도 빼먹는 양아치지만 하는 행동들이 비호감은 아니라서 아무도 욕은 하지않는 그런 존재이다.
하지만 호준이에게는 친구들에게는 알려주지않은 비밀이있다.
천천히 걷던 호준이는 학생이 타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택시를 부른다.
택시를 타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호준이
호준이는 한 병원에 내려서 의사와 몇 마디의 상의를 한다.
이후 병실의 한켠에 누워서 링거를 맞으며 누워있으면 한명의 소녀가 찾아온다.
오늘도 왔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소녀
나이에 비해 성장이 더딘 그 소녀는 주인공에게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물어본다.
주인공은 링거를 맞으면서 멍한 머리로 오늘의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다 전해들은 소녀는 재밌겠다며 주인공을 부러워하고 약간 씁쓸한 표정을 보인다.
유전적인 요인으로 아버지를 일찍 잃고 본인도 같은 병을 앓고있는 소녀
의학이 발전해서 소녀도 뭔가 위험한 수술을 받으면 나을수는 있다는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이 두려운 소녀는 그 수술을 받지않는다.
호준이는 그녀에게 따로 수술을 강요하지도 않고 훈계도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유쾌하게 학교에서의 일들을 알려주고 가끔가다 그녀에게 대충 휘갈긴 그림을 보여주면서 놀아줄 뿐이다.
호준이가 가장 즐거운 시간은 이 우울해 보이지만 가끔씩 또래 아이들마냥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여주는 소녀와 만나는 시간이다.
호준이는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 시야가 비틀거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서 집으로 들아간다.
옷을 벗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기어가듯 쓰러지는 호준이
호준이는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호준이는 이미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의 암환자다.
친구들에게는 웃으면서 만우절 농담이라고 했으나 그의 몸에 맞는 항암제를 투여하는 도중에 머리가 빠져버린 것이다.
그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학생들보다 25분이나 느린 걸음걸이로 학교로 향하는 것은 화가로서 주변의 환경을 돌아보는 것이 아닌 암투병으로 인해 약해진 체력을 숨기기 위함이다.
그가 체육을 하지않는 것도 약해진 체력을 들키지않기 위함이다.
친구들은 수능으로 민감한 시기이다.
자신은 이미 말기암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이미 죽는 것이 확정된 삶에 누군가에게 동정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1년 전의 김호준을 열심히 연기하고 있었다.
호준이가 투약한 항암제는 진정제의 효과가 끊어지는 순간 그의 몸을 좀 먹는다.
점심으로 먹었던 식사가 위를 역류하고 몸밖으로 배출된다.
변기를 끌어안고 끅끅대며 몇번이고 구토를 하는 호준이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위액만을 토해내는 입
몸은 호준이의 사고와는 상관없이 그가 삼켰다고 생각되는 위험물질을 토해내려고 한다.
하지만 호준이가 몸에 받아들인 것은 혈액속으로 흐르고 있는 항암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구토를 하며 자신의 몸을 지키려고하는 반사작용과 기절하고 싶어도 올라오는 구토감에 몸부림치며 밤을 지새우는 호준이
호준이는 그렇게 오늘도 잠못드는 밤을 보낸다.
1주일에 1번 정도 그렇게 항암치료를 받고나면 조금은 몸에 힘이 돋는다.
그러면 그는 굳이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림도구를 손에 들고 병원을 찾는다.
호준이는 처음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다.
세상을 저주했고 전신에 모공이란 모공에 바늘을 꽂는 듯한 아픔과 위를 태울듯한 아픔, 기절했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지독한 싸움
제발 누군가 나 좀 살려달라고 빌고싶었고 그만 죽여달라고 빌고싶었다.
그러다가 그 소녀를 만난다.
우울한 분위기를 보이던 그 소녀는 어째선지 다른 사람들은 피해도 자신을 잘 따랐다.
알고보니 내가 죽을 놈이란걸 의사나 간호사들이 이야기할때 들었나보다.
혹시 자신의 수술이 실패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때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남자를 발견해서 호기심을 보였는 듯하다.
하지만 호준이는 왠지 그녀가 마음에 들었고 어차피 죽을거 지금까지 살아왔던 긍정적인 김호준으로 살다가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로서 그리고 싶은게 있다.
어차피 죽을것이면 누군가에게 동정을 받기보다 죽어서도 이름이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연필을 들고 그녀를 그려나간다.
그녀를 살펴주러 오는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와 닮았다.
그녀가 성장하면 분명 저렇게 성장하겠지.
그녀가 수술에 성공해서 웃으면서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미 암에 범해져서 그립감도 약해진 연필과 붓으로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정성스럽게 그려나간다.
결국 그녀의 수술날짜가 정해진다.
그는 열심히 그녀에게 그렸던 그림을 전해준다.
그녀가 예쁘게 성장해서 본인이 다니는 학교의 여학생들처럼 교복을 입고 활짝 웃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
이 수술이 성공하고 학교에 다닐 내일의 너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퇴원하겠다며 떠나는 주인공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소녀
주인공은 약해진 몸으로 어떻게든 학기를 마치고 겨울방학을 맞이한다.
만나지 않아서 어떻게 됐을지 모를 소녀를 생각하며 부디 잘 나아서 그녀가 그렇게 꿈꾸던 학창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든다.
1년간 한번도 느껴본 적없는 평온함을 느끼면서
***
수진이는 한참 소설을 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는 살짝 물기가 보인다.
"잘,쓰셨네요..."
"나름 잘썼지? 마지막 잎새랑 행복한 왕자를 모티브로 만든거지. 화가가 꿈이고 이름이 호준인건 준호가 모델이라서 그런거고"
"근데 왜 새드엔딩이에요?"
그거야 그 당시에는 새드엔딩이 유행이었으니까 그런거다.
그리고 솔직히 단편으로 쓰기에는 새드엔딩만큼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이야기도 없다.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암도 걸리고 완전 개고구마네"
"..."
"사이다는 없어요?"
"야"
"농담이에요. 근데 진짜 잘쓰셨는데"
"어차피 마지막 잎새 패러디 비슷한 느낌이라서 그렇게 칭찬은 못 받을걸"
"근데 암환자가 이렇게 아파한다는건 어디서 알았어요?"
"책보고 알았어. 암투병하는 환자가 수필로 썼던 이야기를 좀 봤지."
그렇게 말하자 수진이는 눈가에 남은 물기를 닦고 나를 쳐다본다.
"왜 굳이 웹소설 작가 할려고 하세요? 그냥 순문이나 하시지."
"안돼"
"예?"
"한국에선 안 된다고"
"왜요?"
한국에는 순문이 힘들다.
일단 먹고살기가 힘들고 선배라는 것들은 그야말로 분충마냥 자신을 위대한 지식인마냥 행동하고 신입들을 얕잡아보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 정책으로 책을 밀어주지도 않고 빨리빨리 한국인이 소설을 즐겨보지도 않는다.
배고픈 직업인 것이다.
그런 뜻을 전한다.
"어렵네요."
"어렵지. 최소한 일본정도 수준이면 순문으로도 먹고 살만한데"
"일본이요?"
"어, 일본은 좀 쉬운 편이지. 책 쓰는 기계라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도 막상 읽어보면 몇몇은 이게 돈주고 팔릴만한 소설인가 싶은데도 베스트셀러로 이름이 올라가잖아? 결국 명함팔이지."
명함팔이다. 그런데 그게 먹힌다.
"한국은 명함팔이도 안되잖아. 책 한권당 가격도 높고 그래서 순문은 포기했어"
"뭔가 꿈도 희망도 없네요."
그러니까 웹소설 작가인 것이다.
물론 내가 웹소설로 먹고 살만한 느낌도 아니지만 말이다.
"하아"
한숨을 내쉬는 수진이
수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 가려고?"
수진이가 나를 돌아본다.
수진이는 나의 얼굴을 붙잡고는 살짝 키스를 해준다.
"실망했어요?"
"어?"
"처음부터 야한거 할려고했죠?"
뭐 틀린말은 아니지.
"뭔가 오늘은 그럴 분위기가 아닌거 같아요. 여러가지로"
그렇게 말하며 손거울을 꺼내서 얼굴을 이리저리 확인해본다.
그러고 문쪽으로 걸어가면서 뒤를 돌아본다.
"토요일에 데이트하고..."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고개를 돌린다.
"어, 알겠어"
무리하지는 않아야지.
너무 그녀에게 성적으로 접근할려고 무리를 하면 그녀도 거북할 것이다.
갑자기 역시 내 몸이 목적이였어요? 이러면 곤란하니까 천천히 하자.
"선생님"
"어?"
"역시 선생님은 소설, 잘쓰시는거 같아요. 편하신데로 하세요. 쓰시는 소설 폭도 넓으신거 같은데"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열고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굳이 판타지로 한다고 설정이니 지명이니 인물이름이니 기술명이니 고민이신거 같은데 다 똑같은거 써도 욕 안먹는 무협지면 괜찮게 쓰지 않을까요?"
"무협지는..."
"괜찮아요. 선생님이라면"
수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싱긋 웃어줬다.
"안녕히 계세요."
"어, 토요일에 보자"
문이 닫힌다.
혼자만이 남은 방
수진이는 나에게 무협지를 써보라고 했다.
무협지라... 아마 죽을때까지 읽지도 쓰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협지가 그렇게까지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날, 아버지에게 섭섭함을 털어놨을때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됐다고 생각한다.
무협지
어쩌면 그게 웹소설 작가로서의 나의 새로운 길이 될지도 모른다.